이미 세계는 남쪽에서 다시 쓰이고 있다

관리자
2025-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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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예술 생태계는 지금 서구 중심의 기준이 흔들리고 새로운 중심축을 찾는 과도기에 있다. 한국은 그동안 경제적 성장과 제도적 정비를 통해 국제 무대에서 의미 있는 위치를 구축했으나, 문화적 정체성 면에서는 스스로를 여전히 누군가의 기준에 맞추는 대상처럼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국제 기획이 외부의 평가 체계에 의존할수록 한국의 예술은 늘 검증을 기다리는 형태로 자리하게 되고, 스스로 발화하는 능력을 제한받는다. 이제 한국은 따라가는 위치가 아니라 질문을 만드는 위치로 이동할 준비가 필요하다. 한국의 주변성과 중심성이 교차하는 특수한 감각은 아시아 예술의 새로운 구조를 디자인할 자원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시아 내부에서의 중심 재편을 목표로, 한국은 제기되지 않은 문제를 드러내고, 세계가 주목해야 할 감각의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결정적 시점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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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글로벌 사우스’라고 부르기에는 발전한 국가이지만, ‘글로벌 노스’라고 단정하기에도 설명되지 않는 역사적 층위를 지닌다. 분단의 경험,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서 발생한 도시 불평등, 이주와 노동 문제, 수도권 집중 구조는 한국 사회가 서구에서 단일한 틀로 해석되기 어려운 지점을 형성해왔다. 이 애매한 위치는 결함이 아니라, 경계를 횡단하며 새로운 방향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회이다. 한국의 예술은 이 모순적 층위를 드러내는 데서 힘을 얻을 수 있으며, 그 과정은 기존의 국제적 서사에 균열을 내고, 아시아 안에서 새로운 발화권을 확보하는 길이 된다. 질문은 더 이상 외부에서 주어지지 않는다. 한국 스스로 자기의 감각을 세계에 제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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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에는 이미 강력한 문화 허브들이 등장하고 있다. 두바이는 예술과 금융을 연결한 새로운 시장의 모델을 만들고 있으며, 샤르자는 남쪽 담론을 큐레이토리얼 전략으로 전면화했다. 방콕과 치앙마이는 지역 커뮤니티가 주도하는 예술 도시로 떠오르고, 자카르타와 타이난은 식민의 역사와 현대적 도시성을 재구성하며 고유한 균형을 찾아가고 있다. 이 도시들은 단순히 전시를 여는 공간이 아니라, 고유한 문제와 질문을 교섭하며 자신들의 목소리가 세계의 의제로 편입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한국이 이들과의 연결을 강화한다면 아시아 내부에서 서로의 관점과 제도가 조우하며 새로운 지형을 설계할 수 있다.

한국의 아시아 거점 전략이 효과를 가지려면 한 도시 중심의 구조에서는 한계가 있다. 서울은 국제 기관과 시장, 제도적 기반을 갖추고 있지만, 부산의 항만성과 광주의 역사, 제주와 군 단위 지역의 생태 기반은 서로 다른 예술적 장면을 생산한다. 이러한 다핵 도시 구조는 한국이 단일한 이미지를 고집하기보다 복수의 정체성을 품은 플랫폼으로 기능하게 만든다. 지역의 로컬성이 서로 충돌하며 새로운 창작 환경을 형성할 때, 한국은 아시아 예술 생태계를 모아낼 수 있는 다층적 매개지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서울로만 수렴되는 흐름이 아니라, 도시들 간의 연결성을 기반으로 한 전략이 필요하다.

기존 예술 생태계는 중심과 주변이라는 위계를 전제하며 발전해왔다. 한국은 그 구조 안에서 중심을 향해 이동하려는 전략을 선택해 왔으나, 지금은 주변이라는 위치가 오히려 새로운 시선과 실험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서구의 기준을 내면화하여 그것을 통과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을 때, 자유롭게 질문을 만들고 그 질문에 대한 장면을 구성할 수 있다. 예술은 언제나 그 시대가 미처 명명하지 못한 감각을 먼저 발견하는 영역이기에, 주변성이 지닌 유연함은 한국에게 중요한 자산이다. 이 자산을 기반으로 한국은 평가의 대상에서 발화의 주체로 이동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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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가진 도시적 특성이 아시아 거점 전략의 핵심이 된다. 부산의 산복 주거지, 공단, 철도 인프라, 광주의 기억을 담은 장소들, 항만과 섬으로 이루어진 서사들은 이미지로 소비되는 표면적 도시가 아니라, 생존과 이동, 노동이 축적된 장면들이다. 세계가 아직 공론화하지 못한 이러한 장소성은 아시아 예술의 문제의식을 선도할 수 있다. 익숙한 관광지가 아니라, 도시의 숨겨진 결을 보여주는 지점이 한국 예술의 발화 지점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지역 기반은 한국을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구분 짓는 차별적 정체성으로 작용한다.


아시아 예술의 흐름이 한국을 경유하게 만들려면 관계의 구조를 바꿔야 한다. 외부에서 들어와 보여주고 떠나는 방식이 아닌, 한국에서 시작해 다른 지역으로 이어지는 협업의 루트가 필요하다. 국제 학회, 공동 리서치, 아티스트 레지던시, 독립공간 간 교차 프로그램 등이 활성화될 때 한국은 자연스럽게 네트워크의 중심 축이 된다. 한국이 제안한 질문에 반응하기 위해 다른 이들이 찾아오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면, 거점이라는 개념은 자연스럽게 현실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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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 제도와 독립 공간이 한 축으로 결합하는 이중 엔진이 요구된다. 국공립 기관은 아카이브 구축, 담론 정리, 국제적 교류의 제도적 기반을 제공하고, 독립 공간과 커뮤니티는 현장성과 실험이라는 동력을 책임질 수 있다. 두 영역이 상호 보완적 관계를 형성할 때, 한국은 안정성과 창의성을 동시에 확보하게 된다. 장기적 지원과 자율성 보장이 함께 이루어질 때 한국 예술 생태계는 아시아의 흐름을 적극적으로 끌어당길 수 있는 구조를 완성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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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시장 역시 중요한 동반자가 된다. 항만, 호텔, 데이터센터, 영화, IT 산업과 연결되는 예술 프로젝트들은 한국만이 만들 수 있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다. 지역의 산업은 그 자체가 서사적 자원이며, 예술과 결합될 때 국제적 매력을 갖게 된다. 사우스 기반의 문화 비즈니스는 한국을 찾는 이유를 강화하며, 예술의 경제적 지속성을 보장하는 기반이 된다. 이러한 실천이 하나의 생태계를 형성할 때, 한국은 아시아 예술이 실제로 작동하는 무대가 된다.

한국이 아시아 예술 거점이 되는 일은 세계적 위상을 과시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다. 부산의 산복에 켜켜이 쌓인 삶의 흔적, 지방 도시의 기억, 농어촌의 신앙과 공동체의 힘 같은 지역 기반의 감각이 세계의 예술 언어 속에서 다시 살아나도록 만드는 과정이다. 한국에서 출발한 질문이 세계를 다시 바라보게 하는 지점이 생긴다면, 한국의 예술은 더 이상 주변에 머물지 않는다. 지역에서 시작해 세계로 확장되고, 다시 지역으로 돌아오는 순환 속에서 한국은 아시아 예술의 흐름을 연결하는 중심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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