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비서구 예술가들이 탈식민주의적인 주제를 어떤 전략으로 표현했는지 살펴봤다. 바스키아, 지미 더럼, 티라바니자, 린 야마모토까지 모두 서구 중심의 이념, 제도에 균열을 내는 미학적 실천이었다.
오늘날 현대 미술계에서 이러한 전략은 더욱 정교하고 다층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단순한 저항을 넘어 비서구의 감각 자체를 세계 보편 언어로 재구성하는 방식을 시도하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현재 세계 미술계에서 주목받는 한국 작가 중에서 양혜규와 이미래의 작업을 통해, 탈식민주의적 실천이 어떻게 구체적인 미학으로 작동하는지를 살펴보겠다. 두 작가는 서구 중심의 미학에 균열을 내고 비서구적·신체적 감각을 내세운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면서도, 그 방법론과 시각적 언어에서는 서로 대조되는 흥미로운 지점들을 보여준다.
양혜규(Haegue Yang, 1971-)
양혜규 작가는 서울과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현대미술 작가로, 빨래 건조대, 블라인드, 방울 등 일상적인 사물을 활용하여 설치, 조각, 콜라주 등 다양한 매체로 개인의 경험, 기억, 역사, 주체와 타자의 관계를 탐구하는 작품을 선보인다. 그의 작품은 일상 사물을 정교한 시스템 속에 배치하여 새로운 감각과 동시에 '보편적 영성'을 탐구한다.
여기서 '보편적 영성'이란 특정 종교나 신념 체계를 넘어, 모든 인간이 공통으로 공유하는 근원적인 정신성(존재의 의미, 내면적 탐구에 대한 갈망)이나 신비로운 초월적 연결감을 의미한다. 삶의 근본적인 시스템이나 운영체제처럼, 개인의 인식과 가치 부여의 바탕이 된다. 인공지능 시대의 인간 정체성 위기 속에서 인간다움을 탐색하는 중요한 열쇠로 주목받고 있는 개념이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보편적 영성은 서구의 근대 미학이 미신이나 비합리적이라며 배제했던 가치들을 다시 복원하는 탈식민적 도구로 바라볼 수도 있다.

«Leap Year(윤년)» 전시 전경, 런던 헤이워드 갤러리, 2024
( 작품 <중간유형>, <이모저모 토템> 일부 )
런던 헤이워드 갤러리의 서베이 전시 전체를 아우르는 제목으로, 그 의미는 시간의 흐름뿐 아니라 4년에 한 번인 윤년처럼 특별한 일을 뜻하며 뛰어든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양혜규의 2000년대 초반부터 현재까지 20여 년에 걸친 다층적인 작업세계를 총체적으로 조명하는 120개 작품을 선보였다.

<윤에 따른 엇갈린 랑데부 Star-Crossed Rendezvous after Yun>, 2024
이는 빨래 건조대, 전구, 나일론 방울, 손뜨개 실처럼 가정에서 친밀하게 접하는 사물을 가지고 일상에서 하는 여러 행위를 고찰하고 이를 미학적 관점에서 다루는 양혜규를 대표하는 블라인드 시리즈이다. 층을 이루며 기울어지는 가로형 날개들이 공간을 나누면서도 어슴푸레하게 보여주며, 무대조명과 음악으로 관객을 작품 공간으로 자연스럽게 이끈다.

<중간 유형 The Intermediates>, 2024
세계 각지의 고유한 직조 방식으로 짚을 엮어 만든 작품으로, 전통과 민속적 특성을 드러낸다. 세계 곳곳의 민속 설화에서 영감을 얻은 연작이며, 2015년부터 시작되었다. 양혜규의 인류학적 관심과 비서구권의 문화적 관례에 대한 경의를 느낄 수 있다.
양혜규의 예술은 서구적 이성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지워졌던 비서구권의 영성, 이주의 경험, 토착적 감각을 자신만의 언어로 다시 세우는 것이다. 그의 작업은 파편화된 이야기를 직조하여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구현하고 있다. 이러한 서사는 서구의 상징적인 공간(베를린, 뉴욕의 주요 미술관 등)에서 상영되거나 전시됨으로써, 그 의미가 더욱 강력하게 발현된다.
이미래(Mire Lee, 1988-)
이미래는 기계와 유기물을 결합하여 '날것의 생명력'과 '기괴한 아름다움'을 다룬다. 그는 자신의 작품 설명에서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싶게 만드는 힘"에 집중한다고 말했다. 2주차에서 언급한 반본질주의 전략과도 맥락이 연결된다. 예쁘고 매끈한 예술이 아니라, 만지면 축축할 것 같고 살아있는 것 같은 유동적인 물질과 기계장치의 결합을 통해, 마치 살아있는 유기적인 작품을 만든다. 그리고 관객에게 자신의 몸과 감각을 다시 자각하도록 한다.
2024 Hyundai Commission: Mire Lee: Open Wound, Installation View, Photo © Tate (Ben Fisher Photography)



사진 속 «이미래: 열린 상처 Mire Lee: Open Wound » 전시는 작가가 영국에서 선보이는 첫 번째 대규모 전시였다.
과거 화력 발전소였던 건물을 개조하여 탄생한 미술관인 테이트 모던에 깃든 영국 산업의 역사에 주목해, 전례 없는 규모의 설치 작업으로 아름다움과 기괴함이 공존하는 생산 현장으로 전시 공간인 터바인 홀을 재구성했다. 전시장 내부는 '피부(Skin)'라고 표현된 직물 조각 작품들이 49개의 금속 체인에 걸려 천장으로부터 늘어뜨려져 있으며, 터바인 홀 끝에는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재가동된 옛 크레인에 7미터 길이의 터빈이 매달려 있다. 과거 화력 발전소 심장부에 위치한 터빈 장치와 더불어 작가는 전시장을 가로지르며 홀 중앙을 연결하는 다리 겉면의 일부를 제거해 내부 구조를 드러냄으로써 공간이 가진 과거의 기억을 일깨우고자 했다.
- (https://www.hyundaimotorgroup.com/ko/news/CONT0000000000162157)
작품에 사용된 실리콘, 점토, 시멘트, 윤활유, PVC 튜브와 같은 소재는 인간의 내장, 점막, 혈액, 혹은 피부의 질감을 연상시킨다. 어떤 작품에는 장치를 통해 끈적한 액체가 끊임없이 순환하거나 떨어지게 함으로써, 먹고 소화하고 배설하는 생명체의 원초적인 본능을 시각화한다. 이미래의 예술은 바로 서구의 근대 미학이 추구해 온 '정돈되고 깨끗한 조각'을 거부이다. 그 '비이성적이고 신체적인 것'의 압도적인 생명력을 보여줌으로써, 서구적 기준이 정해놓은 미의 위계를 무너뜨린다. 그의 통제 불가능하고 본능적인 조형 언어가 탈식민적 저항의 형태가 된다.
결론적으로, 양혜규가 전 세계의 파편화된 이야기를 연결한다면, 이미래는 매끄러운 표면 아래 감춰진 질척이는 속내를 꺼내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멋진 두 여성..의 작품 내용과 형식 모두 흥미로웠다. 이러한 미학적 실천의 배경에는 '글로벌 사우스'라는 개념의 확장이 자리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미학적 실천들이 모여, 우리가 세상을 읽는 방식을 바꿔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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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협회 아이테르 [ AITHER ] 부산전시관
문화예술기획
아이테르 AITHER
부산 갤러리/전시관
- 문화예술기획업
주소: (48737)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로 65번길 21
주차: 진시장 공영주차장
서비스 운영시간: 월-토 10:00~18:00
연락처: 051-977-5272 | sck02145@naver.com | https://aither.kr/
팩스: 0504-322-2379
인스타그램: @aither.kr
유튜브: https://www.youtube.com/@AITHERART
[시설 안내]
4층, 전시 공간
5층, 라운지
6층, 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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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서 비서구 예술가들이 탈식민주의적인 주제를 어떤 전략으로 표현했는지 살펴봤다. 바스키아, 지미 더럼, 티라바니자, 린 야마모토까지 모두 서구 중심의 이념, 제도에 균열을 내는 미학적 실천이었다.
오늘날 현대 미술계에서 이러한 전략은 더욱 정교하고 다층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단순한 저항을 넘어 비서구의 감각 자체를 세계 보편 언어로 재구성하는 방식을 시도하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현재 세계 미술계에서 주목받는 한국 작가 중에서 양혜규와 이미래의 작업을 통해, 탈식민주의적 실천이 어떻게 구체적인 미학으로 작동하는지를 살펴보겠다. 두 작가는 서구 중심의 미학에 균열을 내고 비서구적·신체적 감각을 내세운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면서도, 그 방법론과 시각적 언어에서는 서로 대조되는 흥미로운 지점들을 보여준다.
양혜규(Haegue Yang, 1971-)
양혜규 작가는 서울과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현대미술 작가로, 빨래 건조대, 블라인드, 방울 등 일상적인 사물을 활용하여 설치, 조각, 콜라주 등 다양한 매체로 개인의 경험, 기억, 역사, 주체와 타자의 관계를 탐구하는 작품을 선보인다. 그의 작품은 일상 사물을 정교한 시스템 속에 배치하여 새로운 감각과 동시에 '보편적 영성'을 탐구한다.
여기서 '보편적 영성'이란 특정 종교나 신념 체계를 넘어, 모든 인간이 공통으로 공유하는 근원적인 정신성(존재의 의미, 내면적 탐구에 대한 갈망)이나 신비로운 초월적 연결감을 의미한다. 삶의 근본적인 시스템이나 운영체제처럼, 개인의 인식과 가치 부여의 바탕이 된다. 인공지능 시대의 인간 정체성 위기 속에서 인간다움을 탐색하는 중요한 열쇠로 주목받고 있는 개념이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보편적 영성은 서구의 근대 미학이 미신이나 비합리적이라며 배제했던 가치들을 다시 복원하는 탈식민적 도구로 바라볼 수도 있다.
«Leap Year(윤년)» 전시 전경, 런던 헤이워드 갤러리, 2024
( 작품 <중간유형>, <이모저모 토템> 일부 )
런던 헤이워드 갤러리의 서베이 전시 전체를 아우르는 제목으로, 그 의미는 시간의 흐름뿐 아니라 4년에 한 번인 윤년처럼 특별한 일을 뜻하며 뛰어든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양혜규의 2000년대 초반부터 현재까지 20여 년에 걸친 다층적인 작업세계를 총체적으로 조명하는 120개 작품을 선보였다.
<윤에 따른 엇갈린 랑데부 Star-Crossed Rendezvous after Yun>, 2024
이는 빨래 건조대, 전구, 나일론 방울, 손뜨개 실처럼 가정에서 친밀하게 접하는 사물을 가지고 일상에서 하는 여러 행위를 고찰하고 이를 미학적 관점에서 다루는 양혜규를 대표하는 블라인드 시리즈이다. 층을 이루며 기울어지는 가로형 날개들이 공간을 나누면서도 어슴푸레하게 보여주며, 무대조명과 음악으로 관객을 작품 공간으로 자연스럽게 이끈다.
<중간 유형 The Intermediates>, 2024
세계 각지의 고유한 직조 방식으로 짚을 엮어 만든 작품으로, 전통과 민속적 특성을 드러낸다. 세계 곳곳의 민속 설화에서 영감을 얻은 연작이며, 2015년부터 시작되었다. 양혜규의 인류학적 관심과 비서구권의 문화적 관례에 대한 경의를 느낄 수 있다.
양혜규의 예술은 서구적 이성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지워졌던 비서구권의 영성, 이주의 경험, 토착적 감각을 자신만의 언어로 다시 세우는 것이다. 그의 작업은 파편화된 이야기를 직조하여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구현하고 있다. 이러한 서사는 서구의 상징적인 공간(베를린, 뉴욕의 주요 미술관 등)에서 상영되거나 전시됨으로써, 그 의미가 더욱 강력하게 발현된다.
이미래(Mire Lee, 1988-)
이미래는 기계와 유기물을 결합하여 '날것의 생명력'과 '기괴한 아름다움'을 다룬다. 그는 자신의 작품 설명에서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싶게 만드는 힘"에 집중한다고 말했다. 2주차에서 언급한 반본질주의 전략과도 맥락이 연결된다. 예쁘고 매끈한 예술이 아니라, 만지면 축축할 것 같고 살아있는 것 같은 유동적인 물질과 기계장치의 결합을 통해, 마치 살아있는 유기적인 작품을 만든다. 그리고 관객에게 자신의 몸과 감각을 다시 자각하도록 한다.
2024 Hyundai Commission: Mire Lee: Open Wound, Installation View, Photo © Tate (Ben Fisher Photography)
사진 속 «이미래: 열린 상처 Mire Lee: Open Wound » 전시는 작가가 영국에서 선보이는 첫 번째 대규모 전시였다.
과거 화력 발전소였던 건물을 개조하여 탄생한 미술관인 테이트 모던에 깃든 영국 산업의 역사에 주목해, 전례 없는 규모의 설치 작업으로 아름다움과 기괴함이 공존하는 생산 현장으로 전시 공간인 터바인 홀을 재구성했다. 전시장 내부는 '피부(Skin)'라고 표현된 직물 조각 작품들이 49개의 금속 체인에 걸려 천장으로부터 늘어뜨려져 있으며, 터바인 홀 끝에는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재가동된 옛 크레인에 7미터 길이의 터빈이 매달려 있다. 과거 화력 발전소 심장부에 위치한 터빈 장치와 더불어 작가는 전시장을 가로지르며 홀 중앙을 연결하는 다리 겉면의 일부를 제거해 내부 구조를 드러냄으로써 공간이 가진 과거의 기억을 일깨우고자 했다.
- (https://www.hyundaimotorgroup.com/ko/news/CONT0000000000162157)
작품에 사용된 실리콘, 점토, 시멘트, 윤활유, PVC 튜브와 같은 소재는 인간의 내장, 점막, 혈액, 혹은 피부의 질감을 연상시킨다. 어떤 작품에는 장치를 통해 끈적한 액체가 끊임없이 순환하거나 떨어지게 함으로써, 먹고 소화하고 배설하는 생명체의 원초적인 본능을 시각화한다. 이미래의 예술은 바로 서구의 근대 미학이 추구해 온 '정돈되고 깨끗한 조각'을 거부이다. 그 '비이성적이고 신체적인 것'의 압도적인 생명력을 보여줌으로써, 서구적 기준이 정해놓은 미의 위계를 무너뜨린다. 그의 통제 불가능하고 본능적인 조형 언어가 탈식민적 저항의 형태가 된다.
결론적으로, 양혜규가 전 세계의 파편화된 이야기를 연결한다면, 이미래는 매끄러운 표면 아래 감춰진 질척이는 속내를 꺼내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멋진 두 여성..의 작품 내용과 형식 모두 흥미로웠다. 이러한 미학적 실천의 배경에는 '글로벌 사우스'라는 개념의 확장이 자리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미학적 실천들이 모여, 우리가 세상을 읽는 방식을 바꿔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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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협회 아이테르 [ AITHER ] 부산전시관
문화예술기획
아이테르 AITHER
부산 갤러리/전시관
- 문화예술기획업
주소: (48737)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로 65번길 21
주차: 진시장 공영주차장
서비스 운영시간: 월-토 10:00~18:00
연락처: 051-977-5272 | sck02145@naver.com | https://aither.kr/
팩스: 0504-322-2379
인스타그램: @aither.kr
유튜브: https://www.youtube.com/@AITHERART
[시설 안내]
4층, 전시 공간
5층, 라운지
6층, 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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