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된 낙원, 재구성된 열대: 열대를 둘러싼 식민주의적 상상력의 해체
Imagined Paradise, Reconfigured Tropics: Deconstructing Colonial Imaginaries of the Tropics
저자: 최지우
소속: 아이테르, 객원 연구자
초록
본 연구는 서구 근대 미술과 시각문화가 구축해 온 ‘열대(Tropics)’의 이미지가 어떠한 역사적·정치적 과정을 통해 형성되었는지 고찰하고, 2023–2024년 싱가포르 국립미술관에서 개최된 《Tropical: Stories from Southeast Asia and Latin America》 전시를 통해 그 재구성의 가능성을 분석한다. 특히 본 논문은 Okwui Enwezor가 제안한 새로운 지형의 글로벌 미술사 분석 언어와 Atreyee Gupta의 비동맹 미학(Non-Aligned Aesthetics) 및 남남 연대(South–South Solidarities) 개념을 이론적 토대로 삼아, 서구적 시선에서 열대의 환상으로 재현된 발리(Bali)와 타히티(Tahiti)를 어떻게 연결하고 재해석하는지 살펴본다. 본 연구는 열대를 자연적·지리적 범주가 아닌 식민주의적 상상력이 생산한 문화적 구성물(cultural construct)로 보고, 열대를 둘러싼 이국주의적 재현을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동남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 사이의 역사적·문화적 관계성을 가시화함으로써 남반구 중심의 새로운 미술사 서술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를 통해 본 연구는 열대성(Tropicality)이 지리적 위치에 기반한 본질적 정체성이 아닌, 권력 관계 속에서 생산된 시각적 담론임을 밝히고, 그 해체 과정이 탈식민적 미술사 실천과 연결되는 지점까지 확장해 논의하고자 한다.
키워드 > Tropicality, Colonial Gaze, Global Art History, Non-Aligned Aesthetics, South–South Solidarities, Bali, Tahiti
서론
열대는 흔히 적도 인근의 기후적·지리적 특성을 가리키는 자연환경적 범주로 이해된다. 그러나 문화사적 관점에서 열대는 단순한 지리 개념이 아니라 서구 근대가 생산한 상상적 공간에 가깝다. 유럽의 제국주의가 확장되던 18세기와 19세기를 거치며 열대는 풍요로운 자연, 원초적 순수성, 감각적 쾌락이 공존하는 ‘지상 낙원’으로 재현되었다. 이러한 이미지는 여행기, 식민지 기록물, 박람회, 회화, 사진 등 다양한 시각 매체를 통해 반복적으로 생산되었으며, 결과적으로 열대 지역은 역사와 정치가 제거된 채 소비 가능한 풍경으로 환원되었다.
이러한 재현 방식은 단순한 오해나 문화적 편견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고 제국주의적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작동한 시각적 통치 기술의 일부였다. 다시 말해 열대는 발견된 공간이 아니라 만들어진 공간이었다. 따라서 열대를 둘러싼 이미지를 분석하는 일은 특정 지역의 자연환경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권력 구조와 지식 생산 체계를 분석하는 작업이 된다.
최근 글로벌 미술사 연구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서구 중심의 미술사 서술을 재검토하고 비서구 지역 간의 관계성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특히 Okwui Enwezor는 현대 미술의 형성을 서구 내부의 발전 과정이 아니라 탈식민화와 세계적 이동의 역사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Atreyee Gupta는 비동맹운동과 남남 연대의 관점에서 새로운 미술사적 연결망을 제안하였다.
본 연구는 이러한 이론적 흐름 속에서 《Tropical: Stories from Southeast Asia and Latin America》 전시 담론을 분석 대상으로 삼는다. 특히 발리와 타히티라는 두 공간을 통해 열대의 이미지를 어떻게 재해석하는지 살펴보고, 열대성이 식민주의적 상상력에 의해 구성된 담론임을 밝히고자 한다. 나아가 전시가 제시하는 남남 연대의 관점이 글로벌 미술사의 새로운 가능성을 어떻게 열어주는지 논의하고자 한다.
열대성(Tropicality)과 식민주의적 상상력
열대에 대한 서구의 시각은 오랫동안 자연적 현실보다 상상적 욕망에 의해 규정되어 왔다. 역사학자 데이비드 아놀드(David Arnold)가 지적하듯, 열대는 유럽인의 시선 속에서 두 가지 상반된 이미지로 존재했다. 한편으로는 질병과 야만의 공간이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문명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낙원의 공간이었다.
이러한 이중적 이미지는 결국 열대를 유럽의 자기 정체성을 구성하는 타자로 기능하게 만들었다.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가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1978) 에서 설명했듯 식민주의는 타자를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하기 위해 상상한다. 열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서구는 열대를 현실의 장소가 아니라 욕망과 환상의 투사 공간으로 재구성하였다.
특히 미술은 이러한 상상력을 확산시키는 핵심 매체였다. 열대 풍경은 문명화되지 않은 자연의 순수성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소비되었고, 현지 주민들은 역사적 주체가 아닌 이국적 풍경의 일부로 재현되었다. 그 결과 식민주의가 야기한 폭력과 착취는 시야에서 사라지고, 열대는 아름다운 낙원이라는 이미지로 고정되었다.
따라서 열대성(Tropicality)은 단순한 기후적 특성이 아니라 특정한 시각 체계와 권력 관계가 만들어낸 담론적 범주로 이해되어야 한다.
열대의 재구성, 《Tropical: Stories from Southeast Asia and Latin America》 전시 담론 구조
이러한 맥락에서 《Tropical: Stories from Southeast Asia and Latin America》 전시는 열대를 둘러싼 서구의 시각 재현 작동 방식에 질문을 던진다. 전시는 동남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라는 서로 다른 지역을 하나의 비교적 지형 안에 배치함으로써 식민주의적 상상력의 결과로서 열대 이미지를 재조명한다.
특히 전시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발리(Bali)와 타히티(Tahiti)는 서구 시각문화 속에서 ‘낙원’의 이미지로 소비되어 온 대표적 사례이다. 그러나 전시는 이들을 단순한 관광지나 이국적 풍경이 아니라 식민주의, 해양 교역, 이주, 탈식민화의 역사가 중첩된 공간으로 재맥락화한다. 이를 통해 열대는 고정된 장소가 아니라 다양한 역사적 관계가 교차하는 접촉 지대로 이해된다.
전시의 중요한 성과는 ‘열대’라는 범주 자체를 문제화한다는 점이다. 관람자는 열대가 무엇인지를 묻기보다, 왜 특정 지역들이 열대로 명명되었는지를 질문하게 된다. 이러한 전환은 열대를 자연의 문제가 아닌 권력과 재현의 문제로 바라보게 만든다.
나아가 전시는 동남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를 동일한 서사 안에 배치함으로써 서구 중심의 비교 체계를 벗어나고자 한다. 이는 Atreyee Gupta가 제시한 남남 연대(South–South Solidarities)의 관점과 맞닿아 있으며, 열대를 둘러싼 식민주의적 상상력을 해체하는 동시에 향후 비서구 지역 간의 새로운 관계성을 논의하는 출발점이 된다.
발리와 타히티: 낙원의 정치학
전시에서 발리와 타히티는 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두 지역은 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를 지니고 있지만, 서구의 시선 속에서는 공통적으로 ‘열대 낙원’이라는 이미지로 소비되었다.
타히티는 고갱(Paul Gauguin)의 작품을 통해 가장 대표적인 열대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고갱이 그린 타히티는 산업화된 유럽 사회의 피로를 치유하는 원초적 세계로 제시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재현은 프랑스 식민지로서의 현실과 원주민 사회의 복잡한 역사적 맥락을 지워버렸다. 결과적으로 타히티는 실제 장소라기보다 유럽인의 욕망이 투영된 상상적 공간이 되었다.
발리 역시 비슷한 과정을 경험하였다. 네덜란드 식민 통치 시기 서구의 관광 산업과 문화 담론은 발리를 전통과 자연이 완벽하게 보존된 이상향으로 묘사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이미지는 식민 통치의 현실과 지역 사회의 변화를 의도적으로 배제한 결과였다.
전시는 이러한 두 사례를 병치함으로써 열대 낙원이라는 이미지가 특정 지역의 고유한 특성이 아니라 식민주의적 재현의 반복적 산물임을 보여준다. 발리와 타히티를 더 이상 자연 속 자유와 낭만을 품은 낙원이 아니라, 지배 위계 속에서 낙원의 이미지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질문하도록 한다.
Atreyee Gupta의 이론과 새로운 글로벌 미술사
전시가 제안하는 가장 중요한 전환은 열대를 둘러싼 시선을 서구에서 남반구 내부의 관계성으로 이동시키는 데 있다. 기존의 미술사는 비서구 지역을 유럽과의 관계 속에서만 설명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Atreyee Gupta가 제안한 남남 연대는 이러한 위계적 구조를 벗어나 서로 다른 비서구 지역들이 구축한 역사적 연결망에 주목한다.
《Tropical: Stories from Southeast Asia and Latin America》 전시는 바로 이러한 관점을 전시 형식으로 구현한다. 동남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는 더 이상 유럽의 주변부가 아니라 서로를 비추는 거울로 기능한다. 발리와 타히티의 사례는 서로 다른 지역이 어떻게 유사한 식민주의적 시각 체계 속에서 재현되었는지를 보여주며, 동시에 그 경험을 공유하는 새로운 연대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따라서 전시의 핵심은 단순히 식민주의를 비판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그것은 식민주의 이후의 세계에서 비서구 지역들이 어떤 방식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새로운 서사를 구성할 수 있는가를 탐색하는 데 있다. 이러한 시도는 Okwui Enwezor가 제안한 글로벌 미술사의 실천적 사례이자, Atreyee Gupta가 논의한 비동맹 미학의 동시대적 구현으로 이해될 수 있다.
결론
열대는 오랫동안 자연적 현실이 아니라 서구의 욕망과 권력이 만들어낸 상상적 공간으로 존재해 왔다. 발리와 타히티를 둘러싼 낙원의 이미지는 식민주의적 시선이 생산한 대표적 결과물이었으며, 이러한 재현은 열대 지역의 역사와 정치성을 지속적으로 은폐해 왔다.
《Tropical: Stories from Southeast Asia and Latin America》 전시는 이러한 식민주의적 상상력을 비판적으로 해체하면서 열대를 새로운 방식으로 재구성한다. 열대를 자연적 실체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구성된 담론적 범주로 제시한다. 전시는 발리와 타히티를 둘러싼 식민주의적 재현의 계보를 추적함으로써, 열대가 서구의 욕망과 상상력에 의해 생산된 공간임을 드러낸다. 결국 이 전시가 제안하는 것은 단순한 전시 서사가 아니라 새로운 미술사적 방법론이다. 즉, 서구 중심의 시각 체계를 넘어 비서구 지역들 사이의 연결과 연대를 중심으로 세계 미술사를 다시 서술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이러한 점에서 Tropical은 열대를 둘러싼 식민주의적 상상력의 해체를 넘어, 글로벌 미술사의 탈식민적 재구성을 실천하는 중요한 사례로 평가될 수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과거의 식민주의적 재현에 대한 비판에 머무르지 않는다. 열대를 둘러싼 시각정치학은 오늘날 관광 산업과 글로벌 자본주의 속에서도 새로운 형태로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후속 논문에서 아메리카스 소사이어티(Americas Society)의 《Tropical Is Political: Caribbean Art Under the Visitor Economy Regime》(2022) 전시를 참조해 열대를 둘러싼 식민주의적 상상력이 동시대에 어떠한 방식으로 재생산되고 있는지 살펴보고, 나아가 남남 연대(South–South Solidarities)의 관점에서 비서구 지역들이 이러한 지배적 서사를 어떻게 전복하고 재구성하는지 사례와 함께 고찰하고자 한다.
<참고자료>
Atreyee Gupta. <Non-Aligned: Art, Decolonization, and the Third World Project in India.> Yale University Press, 2025.
Okwui Enwezor and Atreyee Gupta (eds.). <Postwar Revisited: A Global Art History.> Yale University Press, 2025.
National Gallery Singapore. 《Tropical: Stories from Southeast Asia and Latin America》. Exhibition Catalogue, 2023.
Edward Said. 『Orientalism』. Pantheon Books, 1978.
David Arnold. <The Tropics and the Traveling Gaze>. University of Washington Press, 2006.
*싱가포르 국립미술관(National Gallery Singapore), 《Tropical: Stories from Southeast Asia and Latin America》 전시 (2023.11.18–2024.03.24)
*아메리카스 소사이어티(Americas Society), 《Tropical Is Political: Caribbean Art Under the Visitor Economy Regime》 전시 (2022.09.07–2022.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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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된 낙원, 재구성된 열대: 열대를 둘러싼 식민주의적 상상력의 해체
Imagined Paradise, Reconfigured Tropics: Deconstructing Colonial Imaginaries of the Tropics
저자: 최지우
소속: 아이테르, 객원 연구자
초록
본 연구는 서구 근대 미술과 시각문화가 구축해 온 ‘열대(Tropics)’의 이미지가 어떠한 역사적·정치적 과정을 통해 형성되었는지 고찰하고, 2023–2024년 싱가포르 국립미술관에서 개최된 《Tropical: Stories from Southeast Asia and Latin America》 전시를 통해 그 재구성의 가능성을 분석한다. 특히 본 논문은 Okwui Enwezor가 제안한 새로운 지형의 글로벌 미술사 분석 언어와 Atreyee Gupta의 비동맹 미학(Non-Aligned Aesthetics) 및 남남 연대(South–South Solidarities) 개념을 이론적 토대로 삼아, 서구적 시선에서 열대의 환상으로 재현된 발리(Bali)와 타히티(Tahiti)를 어떻게 연결하고 재해석하는지 살펴본다. 본 연구는 열대를 자연적·지리적 범주가 아닌 식민주의적 상상력이 생산한 문화적 구성물(cultural construct)로 보고, 열대를 둘러싼 이국주의적 재현을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동남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 사이의 역사적·문화적 관계성을 가시화함으로써 남반구 중심의 새로운 미술사 서술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를 통해 본 연구는 열대성(Tropicality)이 지리적 위치에 기반한 본질적 정체성이 아닌, 권력 관계 속에서 생산된 시각적 담론임을 밝히고, 그 해체 과정이 탈식민적 미술사 실천과 연결되는 지점까지 확장해 논의하고자 한다.
키워드 > Tropicality, Colonial Gaze, Global Art History, Non-Aligned Aesthetics, South–South Solidarities, Bali, Tahiti
서론
열대는 흔히 적도 인근의 기후적·지리적 특성을 가리키는 자연환경적 범주로 이해된다. 그러나 문화사적 관점에서 열대는 단순한 지리 개념이 아니라 서구 근대가 생산한 상상적 공간에 가깝다. 유럽의 제국주의가 확장되던 18세기와 19세기를 거치며 열대는 풍요로운 자연, 원초적 순수성, 감각적 쾌락이 공존하는 ‘지상 낙원’으로 재현되었다. 이러한 이미지는 여행기, 식민지 기록물, 박람회, 회화, 사진 등 다양한 시각 매체를 통해 반복적으로 생산되었으며, 결과적으로 열대 지역은 역사와 정치가 제거된 채 소비 가능한 풍경으로 환원되었다.
이러한 재현 방식은 단순한 오해나 문화적 편견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고 제국주의적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작동한 시각적 통치 기술의 일부였다. 다시 말해 열대는 발견된 공간이 아니라 만들어진 공간이었다. 따라서 열대를 둘러싼 이미지를 분석하는 일은 특정 지역의 자연환경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권력 구조와 지식 생산 체계를 분석하는 작업이 된다.
최근 글로벌 미술사 연구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서구 중심의 미술사 서술을 재검토하고 비서구 지역 간의 관계성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특히 Okwui Enwezor는 현대 미술의 형성을 서구 내부의 발전 과정이 아니라 탈식민화와 세계적 이동의 역사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Atreyee Gupta는 비동맹운동과 남남 연대의 관점에서 새로운 미술사적 연결망을 제안하였다.
본 연구는 이러한 이론적 흐름 속에서 《Tropical: Stories from Southeast Asia and Latin America》 전시 담론을 분석 대상으로 삼는다. 특히 발리와 타히티라는 두 공간을 통해 열대의 이미지를 어떻게 재해석하는지 살펴보고, 열대성이 식민주의적 상상력에 의해 구성된 담론임을 밝히고자 한다. 나아가 전시가 제시하는 남남 연대의 관점이 글로벌 미술사의 새로운 가능성을 어떻게 열어주는지 논의하고자 한다.
열대성(Tropicality)과 식민주의적 상상력
열대에 대한 서구의 시각은 오랫동안 자연적 현실보다 상상적 욕망에 의해 규정되어 왔다. 역사학자 데이비드 아놀드(David Arnold)가 지적하듯, 열대는 유럽인의 시선 속에서 두 가지 상반된 이미지로 존재했다. 한편으로는 질병과 야만의 공간이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문명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낙원의 공간이었다.
이러한 이중적 이미지는 결국 열대를 유럽의 자기 정체성을 구성하는 타자로 기능하게 만들었다.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가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1978) 에서 설명했듯 식민주의는 타자를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하기 위해 상상한다. 열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서구는 열대를 현실의 장소가 아니라 욕망과 환상의 투사 공간으로 재구성하였다.
특히 미술은 이러한 상상력을 확산시키는 핵심 매체였다. 열대 풍경은 문명화되지 않은 자연의 순수성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소비되었고, 현지 주민들은 역사적 주체가 아닌 이국적 풍경의 일부로 재현되었다. 그 결과 식민주의가 야기한 폭력과 착취는 시야에서 사라지고, 열대는 아름다운 낙원이라는 이미지로 고정되었다.
따라서 열대성(Tropicality)은 단순한 기후적 특성이 아니라 특정한 시각 체계와 권력 관계가 만들어낸 담론적 범주로 이해되어야 한다.
열대의 재구성, 《Tropical: Stories from Southeast Asia and Latin America》 전시 담론 구조
이러한 맥락에서 《Tropical: Stories from Southeast Asia and Latin America》 전시는 열대를 둘러싼 서구의 시각 재현 작동 방식에 질문을 던진다. 전시는 동남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라는 서로 다른 지역을 하나의 비교적 지형 안에 배치함으로써 식민주의적 상상력의 결과로서 열대 이미지를 재조명한다.
특히 전시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발리(Bali)와 타히티(Tahiti)는 서구 시각문화 속에서 ‘낙원’의 이미지로 소비되어 온 대표적 사례이다. 그러나 전시는 이들을 단순한 관광지나 이국적 풍경이 아니라 식민주의, 해양 교역, 이주, 탈식민화의 역사가 중첩된 공간으로 재맥락화한다. 이를 통해 열대는 고정된 장소가 아니라 다양한 역사적 관계가 교차하는 접촉 지대로 이해된다.
전시의 중요한 성과는 ‘열대’라는 범주 자체를 문제화한다는 점이다. 관람자는 열대가 무엇인지를 묻기보다, 왜 특정 지역들이 열대로 명명되었는지를 질문하게 된다. 이러한 전환은 열대를 자연의 문제가 아닌 권력과 재현의 문제로 바라보게 만든다.
나아가 전시는 동남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를 동일한 서사 안에 배치함으로써 서구 중심의 비교 체계를 벗어나고자 한다. 이는 Atreyee Gupta가 제시한 남남 연대(South–South Solidarities)의 관점과 맞닿아 있으며, 열대를 둘러싼 식민주의적 상상력을 해체하는 동시에 향후 비서구 지역 간의 새로운 관계성을 논의하는 출발점이 된다.
발리와 타히티: 낙원의 정치학
전시에서 발리와 타히티는 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두 지역은 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를 지니고 있지만, 서구의 시선 속에서는 공통적으로 ‘열대 낙원’이라는 이미지로 소비되었다.
타히티는 고갱(Paul Gauguin)의 작품을 통해 가장 대표적인 열대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고갱이 그린 타히티는 산업화된 유럽 사회의 피로를 치유하는 원초적 세계로 제시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재현은 프랑스 식민지로서의 현실과 원주민 사회의 복잡한 역사적 맥락을 지워버렸다. 결과적으로 타히티는 실제 장소라기보다 유럽인의 욕망이 투영된 상상적 공간이 되었다.
발리 역시 비슷한 과정을 경험하였다. 네덜란드 식민 통치 시기 서구의 관광 산업과 문화 담론은 발리를 전통과 자연이 완벽하게 보존된 이상향으로 묘사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이미지는 식민 통치의 현실과 지역 사회의 변화를 의도적으로 배제한 결과였다.
전시는 이러한 두 사례를 병치함으로써 열대 낙원이라는 이미지가 특정 지역의 고유한 특성이 아니라 식민주의적 재현의 반복적 산물임을 보여준다. 발리와 타히티를 더 이상 자연 속 자유와 낭만을 품은 낙원이 아니라, 지배 위계 속에서 낙원의 이미지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질문하도록 한다.
Atreyee Gupta의 이론과 새로운 글로벌 미술사
전시가 제안하는 가장 중요한 전환은 열대를 둘러싼 시선을 서구에서 남반구 내부의 관계성으로 이동시키는 데 있다. 기존의 미술사는 비서구 지역을 유럽과의 관계 속에서만 설명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Atreyee Gupta가 제안한 남남 연대는 이러한 위계적 구조를 벗어나 서로 다른 비서구 지역들이 구축한 역사적 연결망에 주목한다.
《Tropical: Stories from Southeast Asia and Latin America》 전시는 바로 이러한 관점을 전시 형식으로 구현한다. 동남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는 더 이상 유럽의 주변부가 아니라 서로를 비추는 거울로 기능한다. 발리와 타히티의 사례는 서로 다른 지역이 어떻게 유사한 식민주의적 시각 체계 속에서 재현되었는지를 보여주며, 동시에 그 경험을 공유하는 새로운 연대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따라서 전시의 핵심은 단순히 식민주의를 비판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그것은 식민주의 이후의 세계에서 비서구 지역들이 어떤 방식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새로운 서사를 구성할 수 있는가를 탐색하는 데 있다. 이러한 시도는 Okwui Enwezor가 제안한 글로벌 미술사의 실천적 사례이자, Atreyee Gupta가 논의한 비동맹 미학의 동시대적 구현으로 이해될 수 있다.
결론
열대는 오랫동안 자연적 현실이 아니라 서구의 욕망과 권력이 만들어낸 상상적 공간으로 존재해 왔다. 발리와 타히티를 둘러싼 낙원의 이미지는 식민주의적 시선이 생산한 대표적 결과물이었으며, 이러한 재현은 열대 지역의 역사와 정치성을 지속적으로 은폐해 왔다.
《Tropical: Stories from Southeast Asia and Latin America》 전시는 이러한 식민주의적 상상력을 비판적으로 해체하면서 열대를 새로운 방식으로 재구성한다. 열대를 자연적 실체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구성된 담론적 범주로 제시한다. 전시는 발리와 타히티를 둘러싼 식민주의적 재현의 계보를 추적함으로써, 열대가 서구의 욕망과 상상력에 의해 생산된 공간임을 드러낸다. 결국 이 전시가 제안하는 것은 단순한 전시 서사가 아니라 새로운 미술사적 방법론이다. 즉, 서구 중심의 시각 체계를 넘어 비서구 지역들 사이의 연결과 연대를 중심으로 세계 미술사를 다시 서술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이러한 점에서 Tropical은 열대를 둘러싼 식민주의적 상상력의 해체를 넘어, 글로벌 미술사의 탈식민적 재구성을 실천하는 중요한 사례로 평가될 수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과거의 식민주의적 재현에 대한 비판에 머무르지 않는다. 열대를 둘러싼 시각정치학은 오늘날 관광 산업과 글로벌 자본주의 속에서도 새로운 형태로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후속 논문에서 아메리카스 소사이어티(Americas Society)의 《Tropical Is Political: Caribbean Art Under the Visitor Economy Regime》(2022) 전시를 참조해 열대를 둘러싼 식민주의적 상상력이 동시대에 어떠한 방식으로 재생산되고 있는지 살펴보고, 나아가 남남 연대(South–South Solidarities)의 관점에서 비서구 지역들이 이러한 지배적 서사를 어떻게 전복하고 재구성하는지 사례와 함께 고찰하고자 한다.
<참고자료>
Atreyee Gupta. <Non-Aligned: Art, Decolonization, and the Third World Project in India.> Yale University Press, 2025.
Okwui Enwezor and Atreyee Gupta (eds.). <Postwar Revisited: A Global Art History.> Yale University Press, 2025.
National Gallery Singapore. 《Tropical: Stories from Southeast Asia and Latin America》. Exhibition Catalogue, 2023.
Edward Said. 『Orientalism』. Pantheon Books, 1978.
David Arnold. <The Tropics and the Traveling Gaze>. University of Washington Press, 2006.
*싱가포르 국립미술관(National Gallery Singapore), 《Tropical: Stories from Southeast Asia and Latin America》 전시 (2023.11.18–2024.03.24)
*아메리카스 소사이어티(Americas Society), 《Tropical Is Political: Caribbean Art Under the Visitor Economy Regime》 전시 (2022.09.07–2022.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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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용 가벽 렌탈 : https://aither.imweb.me/Home/?idx=168383314&bmod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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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F EXHIB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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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ACT. 051-977-5272 | SCK02145@NAVER.COM | https://aith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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