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되는 문화예산과 불안정한 예술생태계
: 2027년 문체부 예산안에 대한 비판적 검토
공명성 예술감독
2027년 문화체육관광부 예산안은 분명히 큰 숫자에서 시작한다. 문체부가 2026년 9월 4일 공개한 예산안의 총규모는 9조 6,345억 원이다. 2026년 본예산 7조 8,555억 원보다 1조 7,790억 원, 22.6% 증가한 규모이며 문체부 예산이 9조 원을 넘어선 것도 처음이다. 문화·예술 부문만 놓고 보면 변화는 더욱 크다. 3조 8,545억 원으로 전년보다 44.6% 증가했다. 정부 전체 총지출 증가율 12.8%와 비교해도 이례적인 확장이다. 정부가 문화를 주변적인 복지나 여가가 아니라 국가의 성장동력이자 전략적 투자 대상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는 평가할 만하다. 문화정책을 오랫동안 다뤄온 현장이라면 예산 확대 자체를 부정할 이유도 없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한다. 예산이 늘었다는 사실과 예술생태계가 건강해졌다는 사실은 동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산 총액은 정책의 의지를 보여줄 수 있지만, 예술가가 얼마나 안정적으로 창작할 수 있는지, 독립적인 공간이 얼마나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지, 기획자와 기술인력이 자신의 노동에 합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는지는 전혀 다른 지표다. 문화예산 9조 원 시대에 필요한 질문은 이제 “정부가 문화에 얼마나 많은 돈을 쓰는가”가 아니라 “그 돈이 누구에게, 어떤 경로를 통해, 어떤 조건으로 도달하는가”여야 한다.
정부가 이미 가지고 있는 통계는 이 질문이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문체부가 발표한 ‘2024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3년 예술인이 예술창작활동으로 벌어들인 개인 연소득은 평균 1,055만 원이었다. 3년 전보다 360만 원 증가했지만 여전히 창작활동만으로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하기에는 낮은 수준이다. 예술인 가구의 평균 총소득 역시 4,590만 원으로 같은 시기 국민 가구소득 평균 6,762만 원보다 2천만 원 이상 낮았다. 전체 예술인의 52.5%가 전업 예술인이었고, 그 가운데 61.7%는 자유계약자, 즉 프리랜서였다. 정부가 자신의 통계를 통해 확인한 현실은 명확하다. 한국의 예술생태계에서 가장 취약한 지점은 창작의 양이 부족한 것도, 문화소비가 부족한 것도 아니다. 지속 가능한 소득과 고용의 구조가 약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이상한 역설이 발생한다. 예술인의 낮은 소득과 불안정성을 정부가 통계를 통해 반복해서 확인하고 있음에도 문화정책의 상당 부분은 여전히 ‘사업을 하나 더 만드는 방식’, ‘공모를 하나 더 여는 방식’, ‘관객에게 소비할 수 있는 금액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예술가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한 번 더 작품을 만들 기회만이 아니다. 다음 작품을 준비하는 동안에도 예술가로 살아 있을 수 있는 시간이다.
2027년 예산안에서도 이 간극은 선명하게 드러난다. 정부는 예술인의 산재보험과 국민연금 보험료 지원, 건강검진 지원 등을 포함한 ‘예술인 기초생활보장 지원’을 311억 원으로 확대하고, 생활안정자금 융자도 생활자금 200억 원과 전세자금 400억 원 규모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정책은 필요하다. 예술인 사회보험의 사각지대를 줄이고 금융 접근성을 높이는 것은 분명 이전보다 나아진 방향이다. 그러나 ‘생활안정자금 융자’를 예술인의 생활 안정 자체와 동일시해서는 곤란하다. 융자는 결국 갚아야 할 돈이다. 낮은 소득이 문제인 사람에게 대출받을 기회를 확대하는 것은 유동성 지원일 수는 있어도 소득구조의 개선은 아니다. 오늘의 생존비용을 미래의 예술소득으로 상환하게 만드는 정책이 장기적으로 창작의 자유를 확대한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예술인의 평균 창작소득이 연 1천만 원 수준이라는 사실을 이미 정부가 알고 있다면, 정책의 중심은 빌릴 수 있는 돈을 늘리는 것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 사회보험의 사용자 부담 문제, 불규칙한 소득을 전제로 한 보험제도, 창작준비기간의 소득 공백, 장기적 경력 단절, 계약과 지급의 불안정성처럼 예술노동의 구조적 특성을 제도 자체가 받아들여야 한다. 예술가를 일반적인 자영업자나 단기 프로젝트 노동자로 간주한 상태에서 금융지원만 확대하는 방식으로는 창작안전망을 완성하기 어렵다.
더 주목할 부분은 문화예산 내부에서 ‘향유’와 ‘생산’이 차지하는 비중과 정책적 상상력의 차이다. 정부는 2027년 청년문화패스를 19세부터 34세까지 확대하면서 여기에 7,925억 원을 투입하고, 통합문화이용권에도 3,221억 원을 배정한다. 청년이 공연과 전시, 영화와 도서를 소비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취약계층의 문화 접근권을 확대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을 이유는 없다. 문화향유권은 당연히 공공정책의 중요한 영역이다. 그러나 관객에게 문화상품을 구매할 비용을 지급하는 정책과 예술가가 안정적으로 작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만드는 정책은 서로 다른 정책이다. 소비자에게 지급된 10만 원이 그대로 창작자에게 10만 원으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그 사이에는 플랫폼, 공연장, 유통회사, 제작사, 배급사, 티켓사업자, 공간 운영비와 수많은 중간구조가 존재한다. 결국 수요 측 보조금이 커진다고 해서 창작자의 협상력이 자동으로 강화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문화정책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문화를 소비했는가’를 중심으로 성과를 측정하기 시작하면 관객 수가 적고 시장성이 낮지만 문화적 가치가 큰 장르와 실험적인 작업은 더 주변으로 밀릴 수도 있다. 문화 소비를 확대하는 정책이 문화 생산정책을 대신할 수 없는 이유다. 7,925억 원 규모의 청년문화패스와 311억 원의 예술인 기초생활보장 지원을 단순히 같은 성격의 예산으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두 숫자가 보여주는 정책적 상상력의 차이는 검토할 필요가 있다. 국가는 관객이 무엇을 볼 수 있을지를 지원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직 관객을 만나지 못한 예술이 어떻게 태어날 수 있는지를 지원해야 한다.
지역문화정책에서도 비슷한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 정부는 지방자치단체가 신청하는 신진·유망 예술인 창작지원에 지방비를 연계한 215억 원 규모의 ‘지역예술활성화’ 사업을 신설하고, 지역축제와 연계한 공연·전시 프로그램에 171억 원을 투입하며 국립예술단체 8곳의 지역 순회공연도 175건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지역에 더 많은 공연과 전시가 열리는 것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지역에서 행사가 많아지는 것’과 ‘지역의 예술생태계가 성장하는 것’도 같은 말은 아니다. 중앙의 우수 콘텐츠를 지방으로 순회시키는 것은 문화 접근성 정책이지 지역 창작생태계 정책이 아니다. 지역축제를 하나 더 만들고 수도권의 공연을 한 번 더 내려보내는 방식으로는 부산의 작은 전시공간, 광주의 독립기획자, 대전의 공연단체, 전주의 젊은 작가가 10년 뒤에도 그 도시에서 활동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더욱이 지방비 매칭 방식은 재정력이 부족한 지역이나 행정조직이 작은 지자체에 오히려 불리하게 작동할 가능성도 있다. 지역문화의 핵심은 행사의 지역분산이 아니라 생산기반의 지역분산이어야 한다. 지역에서 기획자가 고용되고, 작가가 작업실을 유지하고, 독립공간이 임대료를 감당하며, 작품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지역문화정책의 성과지표도 공연 횟수나 관객 수에서 끝날 것이 아니라 지역 예술인의 지속활동률, 지역 기획조직의 생존기간, 지역에서 발생한 문화예술 소득과 고용, 지역 창작물이 다른 지역과 해외로 이동한 비율까지 확장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지역문화 활성화’는 지역을 새로운 행사 개최지로 사용하는 정책에 머무를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서 더 근본적인 문제가 나온다. 한국의 문화예술 지원은 오랫동안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설계되어 왔다. 전시 하나, 공연 하나, 축제 하나, 프로그램 하나를 만들어 신청하고 심사받고 집행하고 정산하는 구조다. 프로젝트 지원은 필요하다. 그러나 예술생태계를 프로젝트의 집합으로만 바라보면 프로젝트와 프로젝트 사이에 존재하는 시간이 사라진다. 전시를 준비하는 여섯 달, 연구하는 1년, 공간을 유지하는 시간, 새로운 작업을 실패해 보는 시간, 동료와 담론을 만드는 시간은 지원금의 항목 안에서 쉽게 측정되지 않는다. 예술가는 작품이 공개되는 순간에만 예술가인 것이 아니고, 기획자는 행사가 개최되는 날에만 기획자가 아니다. 그런데 지원정책은 계속 결과물의 제작과 발표를 중심으로 돈을 지급한다. 그 결과 예술인은 창작을 위해 지원금을 받는 동시에 지원금을 받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창작계획을 생산해야 하는 역설에 들어간다. 공모를 검색하고, 사업계획서를 쓰고, 예산서를 수정하고, 증빙자료를 모으고, 결과보고서를 제출하는 행정노동이 예술가의 일상적인 노동으로 편입된다. 국가 지원이 창작의 시간을 확보해주는 것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 창작자의 시간을 행정적으로 다시 점유하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예산 확대가 반드시 이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는다. 공모사업의 개수와 규모만 늘어난다면 예술생태계는 더 많은 돈을 받으면서 동시에 국가 지원체계에 더 깊게 의존하는 역설에 빠질 수도 있다.
따라서 2027년 문화예산을 평가하는 기준은 단순히 22.6%라는 증가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정부는 이제 총액의 정치에서 구조의 정치로 이동해야 한다. 예술인 사회보험 지원 확대와 함께 다년간 지속되는 기초창작지원, 소규모 예술조직과 독립공간에 대한 운영기반 지원, 창작 과정 자체에 대한 연구비, 계약과 보수지급의 실효성 있는 감독, 프리랜서 예술노동에 맞는 소득안전망, 지역의 독립적 문화생산 기반에 대한 장기투자가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매년 새로운 사업을 만들어 예술인을 다시 심사대 위에 세우는 방식보다, 이미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과 조직이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이는 예술가에게 무조건적인 특혜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부가 문화예술을 ‘국가의 미래 성장동력’이라고 선언했다면 그 산업과 문화적 성과를 실제로 생산하는 사람들의 노동조건을 국가전략의 핵심 지표로 다루라는 요구에 가깝다.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면서 반도체 생산기반을 정책에서 제외할 수 없듯이, K-컬처를 국가전략산업으로 이야기하면서 그것을 만들어내는 창작자의 생존을 주변적인 복지 문제로 남겨둘 수는 없다. 정부 역시 이번 예산안에서 K-컬처를 국가전략산업으로 규정하고 콘텐츠 정책금융과 연구개발 투자를 확대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K-컬처의 세계적 성공’이라는 결과를 이야기하는 것만큼 그 성공을 만들어내는 노동과 창작의 토대를 이야기해야 한다.
문화예산이 9조 원을 넘었다는 것은 하나의 기록이다. 그러나 10년 뒤 한국 문화정책을 평가할 때 더 중요한 기록은 다른 곳에 남을 것이다. 이 예산을 통해 몇 명의 예술가가 직업을 포기하지 않았는지, 몇 개의 독립적인 문화공간이 문을 닫지 않았는지, 몇 명의 기획자가 다른 업종으로 떠나지 않고 자신의 전문성을 축적했는지, 서울이 아닌 도시에서도 예술을 직업으로 선택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국가의 지원을 받으면서도 예술가가 국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있었는지가 결국 정책의 성패를 결정할 것이다. 예산의 증가는 출발점이지 성과가 아니다. 9조 6,345억 원이라는 숫자가 거대한 만큼 정부가 져야 할 설명의 책임도 커졌다. 이제 정부가 증명해야 할 것은 문화에 돈을 많이 썼다는 사실이 아니다. 그 돈이 실제로 예술을 만드는 사람의 삶을 얼마나 바꾸었는가 하는 것이다. 문화강국은 거대한 문화예산을 가진 나라가 아니라 예술가가 예술가로 살아남을 수 있는 나라에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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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장되는 문화예산과 불안정한 예술생태계
: 2027년 문체부 예산안에 대한 비판적 검토
공명성 예술감독
2027년 문화체육관광부 예산안은 분명히 큰 숫자에서 시작한다. 문체부가 2026년 9월 4일 공개한 예산안의 총규모는 9조 6,345억 원이다. 2026년 본예산 7조 8,555억 원보다 1조 7,790억 원, 22.6% 증가한 규모이며 문체부 예산이 9조 원을 넘어선 것도 처음이다. 문화·예술 부문만 놓고 보면 변화는 더욱 크다. 3조 8,545억 원으로 전년보다 44.6% 증가했다. 정부 전체 총지출 증가율 12.8%와 비교해도 이례적인 확장이다. 정부가 문화를 주변적인 복지나 여가가 아니라 국가의 성장동력이자 전략적 투자 대상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는 평가할 만하다. 문화정책을 오랫동안 다뤄온 현장이라면 예산 확대 자체를 부정할 이유도 없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한다. 예산이 늘었다는 사실과 예술생태계가 건강해졌다는 사실은 동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산 총액은 정책의 의지를 보여줄 수 있지만, 예술가가 얼마나 안정적으로 창작할 수 있는지, 독립적인 공간이 얼마나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지, 기획자와 기술인력이 자신의 노동에 합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는지는 전혀 다른 지표다. 문화예산 9조 원 시대에 필요한 질문은 이제 “정부가 문화에 얼마나 많은 돈을 쓰는가”가 아니라 “그 돈이 누구에게, 어떤 경로를 통해, 어떤 조건으로 도달하는가”여야 한다.
정부가 이미 가지고 있는 통계는 이 질문이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문체부가 발표한 ‘2024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3년 예술인이 예술창작활동으로 벌어들인 개인 연소득은 평균 1,055만 원이었다. 3년 전보다 360만 원 증가했지만 여전히 창작활동만으로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하기에는 낮은 수준이다. 예술인 가구의 평균 총소득 역시 4,590만 원으로 같은 시기 국민 가구소득 평균 6,762만 원보다 2천만 원 이상 낮았다. 전체 예술인의 52.5%가 전업 예술인이었고, 그 가운데 61.7%는 자유계약자, 즉 프리랜서였다. 정부가 자신의 통계를 통해 확인한 현실은 명확하다. 한국의 예술생태계에서 가장 취약한 지점은 창작의 양이 부족한 것도, 문화소비가 부족한 것도 아니다. 지속 가능한 소득과 고용의 구조가 약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이상한 역설이 발생한다. 예술인의 낮은 소득과 불안정성을 정부가 통계를 통해 반복해서 확인하고 있음에도 문화정책의 상당 부분은 여전히 ‘사업을 하나 더 만드는 방식’, ‘공모를 하나 더 여는 방식’, ‘관객에게 소비할 수 있는 금액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예술가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한 번 더 작품을 만들 기회만이 아니다. 다음 작품을 준비하는 동안에도 예술가로 살아 있을 수 있는 시간이다.
2027년 예산안에서도 이 간극은 선명하게 드러난다. 정부는 예술인의 산재보험과 국민연금 보험료 지원, 건강검진 지원 등을 포함한 ‘예술인 기초생활보장 지원’을 311억 원으로 확대하고, 생활안정자금 융자도 생활자금 200억 원과 전세자금 400억 원 규모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정책은 필요하다. 예술인 사회보험의 사각지대를 줄이고 금융 접근성을 높이는 것은 분명 이전보다 나아진 방향이다. 그러나 ‘생활안정자금 융자’를 예술인의 생활 안정 자체와 동일시해서는 곤란하다. 융자는 결국 갚아야 할 돈이다. 낮은 소득이 문제인 사람에게 대출받을 기회를 확대하는 것은 유동성 지원일 수는 있어도 소득구조의 개선은 아니다. 오늘의 생존비용을 미래의 예술소득으로 상환하게 만드는 정책이 장기적으로 창작의 자유를 확대한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예술인의 평균 창작소득이 연 1천만 원 수준이라는 사실을 이미 정부가 알고 있다면, 정책의 중심은 빌릴 수 있는 돈을 늘리는 것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 사회보험의 사용자 부담 문제, 불규칙한 소득을 전제로 한 보험제도, 창작준비기간의 소득 공백, 장기적 경력 단절, 계약과 지급의 불안정성처럼 예술노동의 구조적 특성을 제도 자체가 받아들여야 한다. 예술가를 일반적인 자영업자나 단기 프로젝트 노동자로 간주한 상태에서 금융지원만 확대하는 방식으로는 창작안전망을 완성하기 어렵다.
더 주목할 부분은 문화예산 내부에서 ‘향유’와 ‘생산’이 차지하는 비중과 정책적 상상력의 차이다. 정부는 2027년 청년문화패스를 19세부터 34세까지 확대하면서 여기에 7,925억 원을 투입하고, 통합문화이용권에도 3,221억 원을 배정한다. 청년이 공연과 전시, 영화와 도서를 소비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취약계층의 문화 접근권을 확대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을 이유는 없다. 문화향유권은 당연히 공공정책의 중요한 영역이다. 그러나 관객에게 문화상품을 구매할 비용을 지급하는 정책과 예술가가 안정적으로 작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만드는 정책은 서로 다른 정책이다. 소비자에게 지급된 10만 원이 그대로 창작자에게 10만 원으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그 사이에는 플랫폼, 공연장, 유통회사, 제작사, 배급사, 티켓사업자, 공간 운영비와 수많은 중간구조가 존재한다. 결국 수요 측 보조금이 커진다고 해서 창작자의 협상력이 자동으로 강화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문화정책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문화를 소비했는가’를 중심으로 성과를 측정하기 시작하면 관객 수가 적고 시장성이 낮지만 문화적 가치가 큰 장르와 실험적인 작업은 더 주변으로 밀릴 수도 있다. 문화 소비를 확대하는 정책이 문화 생산정책을 대신할 수 없는 이유다. 7,925억 원 규모의 청년문화패스와 311억 원의 예술인 기초생활보장 지원을 단순히 같은 성격의 예산으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두 숫자가 보여주는 정책적 상상력의 차이는 검토할 필요가 있다. 국가는 관객이 무엇을 볼 수 있을지를 지원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직 관객을 만나지 못한 예술이 어떻게 태어날 수 있는지를 지원해야 한다.
지역문화정책에서도 비슷한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 정부는 지방자치단체가 신청하는 신진·유망 예술인 창작지원에 지방비를 연계한 215억 원 규모의 ‘지역예술활성화’ 사업을 신설하고, 지역축제와 연계한 공연·전시 프로그램에 171억 원을 투입하며 국립예술단체 8곳의 지역 순회공연도 175건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지역에 더 많은 공연과 전시가 열리는 것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지역에서 행사가 많아지는 것’과 ‘지역의 예술생태계가 성장하는 것’도 같은 말은 아니다. 중앙의 우수 콘텐츠를 지방으로 순회시키는 것은 문화 접근성 정책이지 지역 창작생태계 정책이 아니다. 지역축제를 하나 더 만들고 수도권의 공연을 한 번 더 내려보내는 방식으로는 부산의 작은 전시공간, 광주의 독립기획자, 대전의 공연단체, 전주의 젊은 작가가 10년 뒤에도 그 도시에서 활동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더욱이 지방비 매칭 방식은 재정력이 부족한 지역이나 행정조직이 작은 지자체에 오히려 불리하게 작동할 가능성도 있다. 지역문화의 핵심은 행사의 지역분산이 아니라 생산기반의 지역분산이어야 한다. 지역에서 기획자가 고용되고, 작가가 작업실을 유지하고, 독립공간이 임대료를 감당하며, 작품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지역문화정책의 성과지표도 공연 횟수나 관객 수에서 끝날 것이 아니라 지역 예술인의 지속활동률, 지역 기획조직의 생존기간, 지역에서 발생한 문화예술 소득과 고용, 지역 창작물이 다른 지역과 해외로 이동한 비율까지 확장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지역문화 활성화’는 지역을 새로운 행사 개최지로 사용하는 정책에 머무를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서 더 근본적인 문제가 나온다. 한국의 문화예술 지원은 오랫동안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설계되어 왔다. 전시 하나, 공연 하나, 축제 하나, 프로그램 하나를 만들어 신청하고 심사받고 집행하고 정산하는 구조다. 프로젝트 지원은 필요하다. 그러나 예술생태계를 프로젝트의 집합으로만 바라보면 프로젝트와 프로젝트 사이에 존재하는 시간이 사라진다. 전시를 준비하는 여섯 달, 연구하는 1년, 공간을 유지하는 시간, 새로운 작업을 실패해 보는 시간, 동료와 담론을 만드는 시간은 지원금의 항목 안에서 쉽게 측정되지 않는다. 예술가는 작품이 공개되는 순간에만 예술가인 것이 아니고, 기획자는 행사가 개최되는 날에만 기획자가 아니다. 그런데 지원정책은 계속 결과물의 제작과 발표를 중심으로 돈을 지급한다. 그 결과 예술인은 창작을 위해 지원금을 받는 동시에 지원금을 받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창작계획을 생산해야 하는 역설에 들어간다. 공모를 검색하고, 사업계획서를 쓰고, 예산서를 수정하고, 증빙자료를 모으고, 결과보고서를 제출하는 행정노동이 예술가의 일상적인 노동으로 편입된다. 국가 지원이 창작의 시간을 확보해주는 것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 창작자의 시간을 행정적으로 다시 점유하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예산 확대가 반드시 이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는다. 공모사업의 개수와 규모만 늘어난다면 예술생태계는 더 많은 돈을 받으면서 동시에 국가 지원체계에 더 깊게 의존하는 역설에 빠질 수도 있다.
따라서 2027년 문화예산을 평가하는 기준은 단순히 22.6%라는 증가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정부는 이제 총액의 정치에서 구조의 정치로 이동해야 한다. 예술인 사회보험 지원 확대와 함께 다년간 지속되는 기초창작지원, 소규모 예술조직과 독립공간에 대한 운영기반 지원, 창작 과정 자체에 대한 연구비, 계약과 보수지급의 실효성 있는 감독, 프리랜서 예술노동에 맞는 소득안전망, 지역의 독립적 문화생산 기반에 대한 장기투자가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매년 새로운 사업을 만들어 예술인을 다시 심사대 위에 세우는 방식보다, 이미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과 조직이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이는 예술가에게 무조건적인 특혜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부가 문화예술을 ‘국가의 미래 성장동력’이라고 선언했다면 그 산업과 문화적 성과를 실제로 생산하는 사람들의 노동조건을 국가전략의 핵심 지표로 다루라는 요구에 가깝다.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면서 반도체 생산기반을 정책에서 제외할 수 없듯이, K-컬처를 국가전략산업으로 이야기하면서 그것을 만들어내는 창작자의 생존을 주변적인 복지 문제로 남겨둘 수는 없다. 정부 역시 이번 예산안에서 K-컬처를 국가전략산업으로 규정하고 콘텐츠 정책금융과 연구개발 투자를 확대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K-컬처의 세계적 성공’이라는 결과를 이야기하는 것만큼 그 성공을 만들어내는 노동과 창작의 토대를 이야기해야 한다.
문화예산이 9조 원을 넘었다는 것은 하나의 기록이다. 그러나 10년 뒤 한국 문화정책을 평가할 때 더 중요한 기록은 다른 곳에 남을 것이다. 이 예산을 통해 몇 명의 예술가가 직업을 포기하지 않았는지, 몇 개의 독립적인 문화공간이 문을 닫지 않았는지, 몇 명의 기획자가 다른 업종으로 떠나지 않고 자신의 전문성을 축적했는지, 서울이 아닌 도시에서도 예술을 직업으로 선택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국가의 지원을 받으면서도 예술가가 국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있었는지가 결국 정책의 성패를 결정할 것이다. 예산의 증가는 출발점이지 성과가 아니다. 9조 6,345억 원이라는 숫자가 거대한 만큼 정부가 져야 할 설명의 책임도 커졌다. 이제 정부가 증명해야 할 것은 문화에 돈을 많이 썼다는 사실이 아니다. 그 돈이 실제로 예술을 만드는 사람의 삶을 얼마나 바꾸었는가 하는 것이다. 문화강국은 거대한 문화예산을 가진 나라가 아니라 예술가가 예술가로 살아남을 수 있는 나라에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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