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테르 예술연구] 부산진성과 아이테르 범일가옥 : 경계의 도시가 축적한 시간

리자공
2026-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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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의 부산진성






부산진성과 아이테르 범일가옥

경계의 도시가 축적한 시간


공명성 예술감독





부산 동구 범일동의 역사는 하나의 시간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이곳에는 군사적 방어선, 대일 외교의 출발점, 항구와 철도, 방직산업, 시장과 패션 상권, 그리고 현재의 문화예술 활동이 여러 겹으로 축적되어 있다. 부산진성은 그 변화의 중심에 놓여 있었다. 현재 범일동에서 운영되는 아이테르 범일가옥 역시 이러한 장소의 긴 변형 과정 위에 자리한다. 부산진성과 범일가옥을 함께 바라보면 범일동은 오래된 유적을 품은 동네를 넘어, 시대마다 새로운 기능을 받아들이며 도시의 역할을 갱신해온 공간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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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명칭 : 부산포수군첨절제사진성(釜山浦水軍僉節制使鎭城) 


 

부산진성의 역사는 부산포의 지리적 조건에서 출발한다. 부산포는 대마도와 가까웠고 일본과의 왕래가 빈번했다. 교역이 이루어지는 동시에 왜구의 공격에도 직접적으로 노출되었다. 조선은 1407년 부산포를 개방하고 일본과의 무역을 허용했으며, 이후 부산진의 군사적 규모를 지속적으로 확대했다. 15세기 후반에는 목책 중심의 방어시설을 석성으로 보강하면서 부산진은 조선 남해안의 주요 수군기지로 자리 잡았다. 부산진성은 국방과 교역, 통제와 이동이 동시에 작동하는 국경시설이었다.


1592년 임진왜란은 부산진성의 공간구조를 크게 바꾸었다. 일본군이 부산포에 상륙하면서 부산진 전투가 벌어졌고, 부산진 첨사 정발을 비롯한 수비 병력이 전사했다. 기존 부산진성은 전쟁 과정에서 파괴되었으며 일본군은 증산 일대와 범일천 하구의 구릉을 이용해 부산포왜성과 자성대왜성을 구축했다. 이후 부산이라는 장소에는 조선의 수군진과 일본군의 군사시설이 시간차를 두고 중첩되었다.

전쟁 이후 조선은 자성대왜성의 구조를 활용해 부산진을 다시 운영했다. 부산진성의 공간에는 일본식 축성구조와 조선 수군진의 행정·군사체계가 함께 남게 되었다. 부산진성의 역사적 특성은 바로 이 전용과 재사용에서 선명하게 나타난다. 하나의 세력이 만든 구조를 다음 시대가 다시 점유하고, 새로운 기능을 부여하며, 다른 질서를 덧씌웠다. 현재 남아 있는 부산진성의 흔적은 완성된 한 시대의 형태보다 여러 시대가 남긴 변형의 결과에 가깝다. 제공 자료 역시 조선후기 부산진이 자성대왜성을 활용해 운영되었으며 이후에도 남쪽 국경의 군사적 거점으로 기능했다고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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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전란도』에 묘사된 조선전기 부산진성



부산진의 역할은 군사에 머물지 않았다. 부산은 일본과 가장 가까운 접경지역이었고, 그 지리적 조건은 외교와 교역의 통로를 만들었다. 두모포왜관과 초량왜관이 운영되었고 조선통신사가 일본으로 향하는 과정에서도 부산진은 중요한 거점이 되었다. 부산진성 서쪽의 영가대는 이러한 국제교류의 성격을 상징한다. 영가대는 부산진 선창 주변에 조성된 공간으로, 이후 일본으로 향하는 사행과 연결되었다. 부산진성의 서문에 남은 ‘남요인후(南徼咽喉)’라는 표현 역시 부산을 나라 남쪽의 핵심적인 통로로 인식했던 당시의 시선을 보여준다.

‘목구멍’이라는 비유는 부산진성의 장소성을 정확하게 보여준다. 목구멍은 외부와 내부가 만나는 통로다. 사람과 물자가 들어오고 나간다. 부산포에서는 군대가 들어왔고 사신이 떠났으며 상품이 이동했다. 부산진성의 경계는 차단과 이동이 동시에 발생하는 장치였다. 이러한 성격은 이후 범일동의 도시구조에도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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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비석 옆에서 기념 촬영을 한 미군



19세기 말 부산진이 폐지된 이후 범일동의 풍경은 급격히 변화했다. 경부선 철도가 놓이고 부산 전차가 지나가면서 성벽의 상당 부분이 철거되었다. 해안선 주변에서는 매립이 진행되었고 산업시설과 새로운 시가지가 들어섰다. 1940년대에 이르면 부산진성 외곽 성벽 대부분이 도시 속으로 흡수되었다.

이 변화 과정에서 주목할 지점은 성벽이 사라진 공간을 새로운 도시 인프라가 채웠다는 사실이다. 군사적 경계선이 있던 자리로 철도가 지나갔고, 바다가 있던 곳에는 육지가 만들어졌다. 이동을 통제하던 공간은 이동을 가속하는 공간으로 전환되었다. 부산진성의 공간적 역할은 형태를 바꾸면서 지속되었다.

조선후기 부산진성은 현재의 부산진시장과 조방 일대, 조선통신사역사관 주변까지 포함하는 넓은 규모의 수군진이었다. 자료에서는 당시 성곽의 둘레가 약 2.25km에 이르렀으며 현재 부산진시장과 조방 남부까지 역사적 범위가 이어졌다고 설명한다. 오늘날 공원에 남은 부산진성만 바라볼 경우 이 공간의 원래 규모를 파악하기 어렵다. 역사적 부산진의 범위는 현재 범일동의 생활권과 상당 부분 겹친다.

20세기 범일동을 규정한 핵심은 산업과 직물이었다. 조선방직을 중심으로 대규모 섬유산업이 형성되었고 노동자와 상인이 몰려들었다. 공장 주변에는 주거지와 상권이 확대되었다. 조선방직이 사라진 뒤에도 ‘조방앞’이라는 지명은 계속 사용되었다. 산업시설이 사라진 이후에도 장소의 기억은 언어 속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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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상각이 있었던 위치('하나패션' 간판 건물)


부산진시장 역시 범일동의 역사에서 중요한 층위를 형성한다. 부산진시장에는 원단, 한복, 의류, 혼수, 부자재를 중심으로 수많은 상점이 밀집했다. 직물의 생산과 유통, 재단과 판매가 하나의 지역 안에서 연결되었다. 부산포를 통해 사람이 이동하던 장소가 근대 이후에는 상품이 이동하는 장소가 되었다. 조선시대의 선창과 통신사, 근대의 철도와 방직공장, 현재의 시장과 상업망은 서로 다른 시대에 등장했지만 모두 ‘이동’이라는 공통된 구조를 가진다.


bbacdaa31f52f.png부산진시장, 『부산의 상공업 100년』, 부산상공회의소, 1989


범일동의 역사를 이 흐름으로 바라보면 직물은 중요한 연구 매개가 된다. 천은 생산되고 운반되고 재단되고 판매된다. 사람의 몸을 감싸며 다시 도시 밖으로 이동한다. 조선방직에서 부산진시장으로 이어진 섬유산업의 흔적은 범일동이 생산과 교환의 장소였음을 보여준다. 시장 주변의 오래된 상가와 패션거리, 골목의 봉제업과 원단점은 이러한 산업의 기억을 현재까지 전달한다.

아이테르 범일가옥은 바로 이 도시구조 속에 있다. 범일가옥을 부산진성의 역사와 연결하는 핵심도 물리적 성곽의 위치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더 중요한 지점은 부산진성에서 부산진시장, 조방과 범일동 상권으로 이어지는 장소의 변화다. 군사시설이었던 지역이 외교의 통로가 되었고, 산업시설과 시장이 들어섰으며, 현재는 전시와 문화활동이 이루어지는 공간까지 나타났다.

이러한 흐름에서 범일가옥은 범일동이 지속해온 공간 전환의 현재형으로 볼 수 있다. 시대마다 건물과 시설은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았다. 성곽은 군사기지가 되었고, 군사공간은 도시로 흡수되었으며, 산업지역은 상업지역으로 변화했다. 현재 범일가옥에서는 작품이 설치되고 작가와 기획자가 모이며 전시와 토론이 이루어진다. 장소를 사용하는 주체가 다시 바뀌고 있다.


89c4e7e797ec3.png구장루가 있었던 위치('통영숯불바다장어' 간판 건물 앞)


부산진성과 범일가옥을 연결하는 개념으로 ‘지층’이 중요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범일동에는 조선 수군의 경계, 임진왜란의 전쟁, 왜성의 점유, 조선통신사의 이동, 철도와 항만의 근대화, 조선방직의 산업노동, 부산진시장의 직물상업, 현재의 문화예술 활동이 차례로 축적되어 있다. 각각의 시대는 이전 시대를 완전히 지우지 못했다. 흔적은 지명과 도로, 시장, 건물, 사람들의 기억 속에 다른 형태로 남았다.

제공 자료 역시 부산진성의 가치를 수군진이라는 군사적 기능과 함께 조선통신사의 기착점, 매축지 마을, 조선방직, 부산항과 연결되는 장소에서 찾는다. 부산의 중심이 동래에서 부산포 방향으로 이동하는 도시 변화를 한 지역에서 관찰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한 연구 가치로 제시된다.

따라서 부산진성과 아이테르 범일가옥을 연결하는 연구는 성곽 연구에서 도시 연구로 확장될 수 있다. 전쟁과 국경, 외교와 이주, 산업과 노동, 직물과 시장, 매립과 재개발, 기억과 예술을 하나의 장소 안에서 연결하는 방식이다. 범일가옥은 이 긴 시간의 가장 최근 지층에 놓인다.

범일동의 특징은 오래된 형태를 그대로 보존하는 데서 발견되기보다 변화를 수용하는 방식에서 드러난다. 바다가 육지가 되었고 성벽이 도로와 철도로 바뀌었으며 공장의 자리는 시장과 상업지로 전환되었다. 그 과정에서도 ‘부산진’, ‘진시장’, ‘조방앞’ 같은 이름은 남았다. 물리적 공간이 바뀐 뒤에도 장소의 기억이 언어와 생활 속에서 계속 작동한다.


87136374c0376.png아이테르 범일가옥 전시장 내부


아이테르 범일가옥에서 이루어지는 동시대미술 역시 이러한 장소의 기억과 연결될 수 있다. 작품은 범일동의 과거를 재현하는 장치에 머무르지 않고, 지금 이 도시가 어떤 방식으로 변하고 있는지를 기록하는 새로운 층이 될 수 있다. 부산진성이 군사와 외교의 경계였다면, 조선방직과 부산진시장은 산업과 노동의 경계였고, 현재 범일가옥은 지역과 외부의 예술가,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창작이 만나는 문화적 접점으로 기능한다.


부산진성에서 아이테르 범일가옥까지 이어지는 약 500년의 시간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모인다.


한 장소는 얼마나 많은 시대를 품을 수 있는가.


범일동에서는 그 답을 건물 하나보다 도시 전체에서 찾을 수 있다. 성벽이 있던 자리, 매립된 해안, 사라진 공장, 남아 있는 시장, 오래된 골목, 그리고 그 안에서 새롭게 운영되는 예술공간까지 모두 같은 장소의 서로 다른 시간이다. 아이테르 범일가옥은 그 시간 위에 놓인 현재의 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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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명성(작성자), 「큐레토리얼 피라미드의 하류에서」(글제목), 아이테르 범일가옥,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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