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테르 예술연구] 국가는 어떻게 전시되는가

리자공
2026-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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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어떻게 전시되는가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30년(1995–2026)으로 읽는 한국 국가성의 변전


공명성 예술감독



서론: 마지막 국가관이라는 조건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은 태생부터 역설을 안고 있다. 1993년 백남준이 독일관 대표작가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것을 지렛대 삼아, 건축가 김석철이 프랑코 만쿠조와 공동설계한 한국관은 1995년 자르디니(카스텔로 공원)의 26번째이자 사실상 마지막 국가관으로 건립되었다(최근 카타르관 건립 발표 이전까지 이 지위는 30년간 유지되었다). 비엔날레 재단은 원래 국가관을 25개로 마감할 예정이었다. 즉 한국관은 국가관이라는 제도가 역사적 정당성을 잃어가던 바로 그 시점에, 그 제도의 막차를 탄 공간이다.

이 조건은 결정적이다. 영국관이나 프랑스관이 제국의 유산으로서 국가관을 '물려받은' 반면, 한국은 국가관을 '욕망하고 쟁취'했다. 따라서 한국관에서 국가성은 한 번도 자명한 배경이었던 적이 없다. 그것은 언제나 증명해야 할 과제였고, 이후에는 상대화해야 할 부채였으며, 최근에는 해체하고 재구성해야 할 재료가 되었다. 본고는 1995년부터 2026년까지 열여섯 번의 미술전을 네 국면으로 나누어, '국가를 전시한다'는 행위의 문법이 어떻게 변전해왔는지를 추적한다. 미리 말하자면 그 궤적은 단선적 진보가 아니라 진자 운동이다 — 그리고 그 진자 운동 자체가 한국이라는 후발 국민국가가 세계 무대에서 자신을 설명해온 방식의 축도다.


1국면 (1995–1999): 증명의 국가 — 문화적 자기증명과 수상의 정치


1995: 개관, 혹은 국가의 데뷔 무대

제46회 비엔날레(1995)는 비엔날레 100주년이자 한국관 개관의 해였다. 커미셔너 이일은 곽훈, 김인겸, 윤형근, 전수천 네 명을 선정했다. 이 라인업 자체가 하나의 국가 전략이었다. 단색화의 원로 윤형근(정신성·전통), 설치의 곽훈(샤머니즘적 의례), 조각의 김인겸(모더니즘 형식), 그리고 매체 설치의 전수천(동시대성) — 요컨대 '한국 미술의 대표 단면도'를 한 공간에 압축한 백화점식 구성이다. 곽훈의 《겁/소리 – 마르코 폴로가 가져오지 못한 것》은 개막식에서 비구니 스님들의 대금 연주 퍼포먼스를 동반했다. 마르코 폴로가 서양에 가져가지 못한 것, 즉 서구가 아직 소유하지 못한 동양적 정신을 '수출품'으로 제시하는 이 제스처는, 국가성이 문화적 본질주의의 언어로 수행되던 시대의 전형이다.

결과는 즉각적 보상이었다. 전수천이 산업폐기물, TV모니터, 경주에서 구워낸 토우를 결합한 《방황하는 혹성들 속의 토우 – 그 한국인의 정신》으로 특별상을 수상했다. 작품 제목에 '한국인의 정신'이 명기되어 있다는 사실은 징후적이다. 이 시기 한국관에서 작가 개인과 국가는 분리되지 않았고, 분리될 필요도 없었다. 수상은 작가의 성취인 동시에 국가의 성취로 즉각 번역되었다 — 전수천이 개막 후 유럽 16개 방송국과 인터뷰했다는 기록이 국가 기관의 공식 아카이브에 자랑스럽게 남아 있는 이유다.


1997–1999: 수상 기계로서의 국가관

1997년 커미셔너 오광수는 1995년의 4인 체제가 협소한 공간에 무리였다고 판단, 강익중과 이형우 2인으로 압축했다. 당시 37세의 강익중을 내세운 것은 원로 중심의 국내 미술계 관행에 비추면 파격이었으나, 이는 비엔날레 전체의 트렌드를 읽은 전략적 선택이었고 강익중의 특별상 수상으로 적중했다. 1999년 커미셔너 송미숙은 이불과 노상균을 선정했고, 이불이 다시 특별상을 받았다(이불은 같은 해 하랄트 제만의 본전시에도 참여했다).

3회 연속 특별상. 이 기록은 이후 수십 년간 한국관 담론의 원점이자 족쇄가 된다. 주목할 것은 이 시기 국가성의 작동 방식이다. 올림픽 메달 집계와 구조적으로 동일한 이 '수상의 정치'에서, 미술은 국가 간 경쟁의 종목이고 비엔날레는 그 경기장이다. 1988년 올림픽과 1995년 한국관 개관 사이의 거리는 생각보다 가깝다. 둘 다 후발 국민국가가 국제 무대의 공인된 형식을 빌려 자신의 근대화를 인증받는 의례였다. 다만 이불의 사이보그와 몬스터 연작이 이미 이 국면 내부에서 균열을 내고 있었다는 점은 기억할 만하다. '한국 여성 작가'로 호명되면서도 그 호명이 요구하는 전통·규방·한의 서사를 정면으로 배반하는 신체를 내놓았기 때문이다. 1국면의 끝에서 이미 2국면이 예고되고 있었다.


전사(前史)의 그림자

덧붙이면, 한국의 베니스 참가는 1995년이 원년이 아니다. 1986년부터 1993년까지 한국은 이탈리아관 지하의 협소한 공간을 빌려 참가했다(1986 고영훈·하동철, 1988 박서보, 1990 조성묵·홍명섭, 1993 하종현). 이 '셋방살이' 시기의 기억 — 자기 공간 없이 세계 무대의 곁방에서 전시하던 경험 — 이야말로 1995년 국가관 건립의 욕망을 추동한 원체험이며, 한국관의 국가성이 유독 '공간의 소유'와 결부되는 이유다.


2국면 (2001–2009): 번역의 국가 — 이산, 혼종, 그리고 대표성의 상대화


2001: 서도호와 마이클 주, 등식의 파열

2001년 커미셔너 박경미의 선택은 한국관 역사의 첫 번째 구조적 단절이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서도호와, 미국에서 나고 자란 한국계 미국인 마이클 주. '한국 국적, 한국 거주, 한국어 사용'이라는 암묵적 삼위일체가 이 순간 공식적으로 폐기되었다. 마이클 주의 선정은 특히 논쟁적이었다 ,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가, 아니면 한국이라는 기표를 '경유'하는가?

서도호의 작업이 이 질문에 대한 가장 우아한 응답이었다. 천으로 지은 한옥, 짐가방에 접어 넣을 수 있는 집. 그의 유명한 명제 < 집을 통째로 가지고 다닌다는 발상 > 에서 국가성은 뿌리가 아니라 휴대품이 된다. 본질에서 번역으로, 영토에서 이동으로. 《Some/One》의 군번줄 갑옷이 보여주듯, 국가가 개인을 호명하는 방식(징병, 국적) 자체가 작업의 재료가 되었다. 국가는 더 이상 전시의 주어가 아니라 목적어였다.


2003–2005: 큐레이토리얼 전환과 공간의 자의식

2003년 커미셔너 김홍희의 《차이들의 풍경》(박이소, 정서영, 황인기)은 또 다른 전환을 만든다. 이전 전시들이 한국관의 악명 높은 공간적 한계 — 유리 벽, 협소함, 기형적 동선 — 를 가벽과 코팅으로 '극복'하려 했다면, 김홍희는 건물의 원형을 복구하고 그 공간 자체를 사유의 대상으로 삼았다. 박이소의 《베니스비엔날레》 — 자르디니의 모든 국가관을 초라한 모형으로 축소해 대야에 띄운 작업 — 는 비엔날레라는 제도 전체를 향한 야유였다. 국가관 안에서 국가관 제도를 조롱하는 이 자기지시적 유머는, 한국관이 '증명'의 강박에서 벗어나 제도 자체를 메타적으로 다룰 만큼 성숙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2005년 김선정의 《문 밖의 비밀들》은 15인의 작가(김범, 김홍석, 최정화, 정연두, 박이소 등)를 투입한 역대 최대 규모 전시로, '대표작가' 모델 자체를 해체했다. 한 명의 영웅적 작가가 국가를 짊어지는 대신, 동시대 한국 미술의 '장면(scene)'을 통째로 이식하는 전략. 국가성은 단수의 정수(essence)가 아니라 복수의 생태계로 재정의되었다.


2007–2009: 개인전 체제와 국가의 괄호치기

2007년 안소연 커미셔너가 이형구 단독 개인전으로 전환한 이래, 한국관은 개인전 체제로 이행한다. 2009년 커미셔너 주은지(Eungie Joo)가 선택한 양혜규의 《응결》은 이 국면의 정점이다. 베를린과 서울을 오가는 양혜규는 김포공항 근처의 낡은 주택을 다룬 《살림》 등에서 국가 서사가 아닌 사적이고 가정적인 것의 정치성을 전시했다. 블라인드, 가습기, 향 분사기 — 국가를 재현하는 대신 감각의 조건을 조율하는 이 어휘는, 훗날 2024년 구정아의 향 작업을 예비하는 계보이기도 하다. 이 시기 국가성은 지워진 것이 아니라 괄호 쳐졌다. '한국관에서 열리는 국제적 작가의 개인전'이라는 형식 안에서, 국가는 전시의 내용이 아니라 전시의 주소로 물러났다.


3국면 (2011–2019): 반성의 국가 — 제도 비판과 국가 서사의 심문


2011–2013: 분단의 스펙터클에서 비움의 급진성으로

2011년 윤재갑 커미셔너와 이용백의 《사랑은 갔지만 상처는 곧 아물겠지요》는 흥미로운 반동처럼 보인다. 꽃무늬 위장복의 군인이 등장하는 《엔젤 솔저》, 분단과 군사주의의 도상들. 국가의 상처를 정면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1국면으로의 회귀 같지만, 결정적 차이가 있다. 1995년의 국가가 자랑할 전통이었다면 2011년의 국가는 치유되지 않은 외상이다. 국가성은 이제 긍정의 대상이 아니라 증상으로 전시된다.


2013년 커미셔너 김승덕과 김수자의 《호흡: 보따리》는 한국관 역사상 가장 급진적인 제스처였다. 유리 외벽에 회절격자 필름을 붙이고 내부를 비워, 빛의 스펙트럼과 작가의 숨소리만으로 공간을 채웠다. 무엇을 채워 국가를 보여줄 것인가라는 질문에 '아무것도 채우지 않는다'로 답한 것이다. 한국관 건물 자체를 하나의 보따리 — 김수자의 평생 화두인, 싸고 풀고 이동하는 유목적 오브제 — 로 재해석함으로써, 국가관은 고정된 영토가 아니라 접을 수 있는 천이 되었다. 앤에코이크 룸(무향실)의 어둠과 침묵까지 포함하면, 이 전시는 국가 재현의 제로 지점이다.


2015–2017: 종말론적 사변과 국가 키치

2015년 이숙경 커미셔너와 문경원·전준호의 《축지법과 비행술》은 미술이 소멸한 미래를 사변하는 영상 설치로, 국가가 아니라 미술 제도 자체의 존속을 질문했다. 홍수에 잠긴 미래의 한국관에서 홀로 실험을 수행하는 인물(배우 임수정) — 국가관이 폐허가 된 이후를 국가관 안에서 상영하는 이 구조는, 3국면의 자기반성적 문법을 압축한다.


2017년 이대형 예술감독의 《카운터밸런스: 돌과 산》(코디 최, 이완)은 이 국면에서 가장 노골적인 국가성 심문이다. 코디 최의 《베네치아 랩소디》 — 한국관 지붕에 올린 카지노·모텔풍 네온사인 — 는 라스베이거스와 마카오의 짝퉁 미학으로 베니스비엔날레의 욕망 경제를 겨냥했다. 국가관들이 벌이는 인정 투쟁이 실은 카지노의 도박과 다르지 않다는 것. 1990년대 뉴욕에서 서구 문화를 '소화불량'으로 앓았던 코디 최의 이력(소화제 펩토비스몰과 화장지로 빚은 《생각하는 사람》 연작)과, 아버지·국가·시간의 표준화를 다룬 이완의 《고유시》가 결합하면서, 한국관은 처음으로 국가성을 콤플렉스와 키치의 구조물로 정면 해부했다. 30년 전 '한국인의 정신'을 자랑하던 바로 그 자리에서.


2019: 국가 서사의 젠더적 해부

2019년 김현진 예술감독의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남화연, 정은영, 제인 진 카이젠)는 3국면의 마지막이자 가장 정치적인 장이다. 전시 제목은 한국 최초의 근대 여성 무용가 최승희의 삶을 경유한다. 남화연은 최승희를, 정은영은 여성국극의 남역 배우를, 제인 진 카이젠은 바리설화와 이산의 여성들을 다뤘다. 세 작업의 공통 구조는 명확하다. 국가의 공식 서사(근대화, 민족, 전통)가 기입되기 위해 지워야 했던 젠더화된 신체들을 국가관 안으로 소환하는 것.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의 '우리'는 국민이 아니라 국민 서사의 잔여들이다. 국가성은 이제 해체의 대상을 넘어, 그 구성적 배제를 심문받는 피고석에 앉았다.


4국면 (2022–2026): 감각의 국가 — 비물질화, 탈영토화, 그리고 회귀의 긴장


2022: 국가 지시성의 소거

2022년 이영철 예술감독과 김윤철의 《나선(Gyre)》은 국가 기표를 거의 완전히 소거한 전시였다. 길이 50미터의 파라메트릭 구조물 《채도 V》, 382개의 폴리머 셀이 명멸하는 표면, 유체와 나노 물질의 우주론. 아트뉴스페이퍼가 '꼭 봐야 할 7개 국가관'으로 꼽은 이 전시에서 '한국'을 지시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물질 자체의 자격으로 우주·공간·관객과 연결된다는 작가의 언명은, 국가라는 매개 없이 곧바로 행성적 스케일로 도약하겠다는 선언이다. 다만 이 소거가 해방인지 회피인지는 물어야 한다. 국가성을 다루지 않는 것과 국가성을 넘어서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2024: 향으로 그린 한반도, 혹은 확장된 국가

2024년은 4국면의 이론적 정점이다. 한국관 최초의 공동 예술감독 체제(이설희·야콥 파브리시우스)로 치러진 구정아의 《오도라마 시티》는, 전 세계로부터 '한국 도시와 고향에 얽힌 향의 기억'을 오픈콜로 수집해 — 600여 건의 사연 중 17개의 향을 조향해 — '한반도의 초상'을 후각으로 그려냈다. 유리 외벽에 아무것도 붙이지 않고, 천창으로 아드리아해의 빛이 쏟아지는 개방된 공간에서, 향 디퓨저를 내장한 뫼비우스적 브론즈 조각 《KANGSE SpSt》가 부유했다.


구정아의 발언은 이 전시의 이론적 핵심을 정확히 짚는다. "한국의 자화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다루어야 할 도시들이 한반도에만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다" — 그래서 '확장된 국가관'. 여기서 국가는 세 겹으로 탈구축된다. 첫째, 영토에서 기억으로(한반도가 아니라 한반도에 대한 전 지구적 기억의 네트워크). 둘째, 시각에서 후각으로(국기·지도·기념비의 시각 체제에서 가장 사적이고 비자발적인 감각으로). 셋째, 재현에서 참여로(작가가 국가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익명의 수백 명이 국가를 '냄새 맡는' 것). 뫼비우스의 띠라는 형상이 말해주듯, 안과 밖 — 국민과 이산, 본토와 해외 — 의 구분 자체가 무효화된다.


같은 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몰타기사단 수도원에서 연 30주년 특별전 《모든 섬은 산이다》(역대 참여작가 36인/팀, 82점)와, 개막일에 출간된 아카이브북 『마지막 국가관(The Last Pavilion)』은 이 탈국가적 자의식의 제도적 공인이다. 국가 기관이 스스로 자신의 국가관을 '마지막 국가관'으로 역사화하는 것 — 이보다 더 완결된 4국면의 자기서술은 없다. 모든 섬은 산이다, 즉 고립된 것처럼 보이는 각 국가관도 수면 아래에서는 하나의 지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제목의 은유까지 포함해서.


2026: 요새와 둥지, 혹은 국가 서사로의 회귀

2026년 5월 9일 개막한 제61회 비엔날레에서 최빛나 예술감독의 《해방공간: 요새와 둥지》(2026.5.9–11.22)는 이 매끄러운 탈국가 서사에 제동을 건다. 최고은('요새')과 노혜리('둥지')가 참여하고, 소설가 한강, 작가 겸 가수 이랑, 농부 김후주, 사진가 황예지, 크리스티앙 니얌페타가 펠로우로 결합한 이 전시는, 분열과 혼란의 시대에 연결·연대·회복력을 감각하는 기념비로서의 한국관을 표방하지만, 그 재료는 명백히 한국 근현대사의 공간 서사다. '해방 공간'이라는 용어 자체가 1945–1948년의 역사적 시공간을 직접 지시하며, 요새(전쟁·분단·검열·감시의 방어 구조)와 둥지(탈출과 공동체적 회복)의 이항은 닫힘과 열림, 불안과 회복이라는 한국사의 반복 리듬을 공간 언어로 치환한 것이다. 다만 최빛나와 두 작가는 한국관을 '끊임없이 형성되어 가는 국가의 체현'으로 규정하고 요새와 둥지라는 양가적 상태를 넘어서는 기념비를 제안한다 — 기획 스스로 국가성을 완결태가 아닌 형성 중의 과정으로 명시한다는 점에서, 이 회귀는 자의식적이다.


이 회귀가 놓인 무대의 조건도 기록해야 한다. 제61회 비엔날레는 총감독 코요 쿠오 — 비엔날레 역사상 최초의 아프리카 출신 여성 총감독 — 가 2025년 5월 준비 도중 별세하면서, 그가 남긴 주제 'In Minor Keys(단조로)'를 유작 기획으로 실행한 초유의 에디션이다. 여기에 이란의 불참, 러시아·이스라엘 참여를 둘러싼 국제심사위원단 전원 사퇴, 황금사자상 폐지와 관객상 대체까지 겹치며 국가관 제도 자체가 정치적 시험대에 올랐다. 국제전에서 국가와 작가를 어디까지 분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비엔날레 전체의 화두가 된 해에, 한국관이 '국가의 체현'을 정면 주제로 내걸었다는 사실은 우연이라기엔 너무 정확한 병치다.


2024년의 '확장된 국가관' 직후에 도착한 이 기획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두 가지 독해가 가능하다. 퇴행으로 읽는다면: 탈국가의 수사가 정점에 달한 순간 국가 서사로 복귀하는 것은, 한국관이 결국 '세계에 자신을 설명하는 장치'라는 제도적 조건 — 로컬의 정서적 알레고리를 공급하라는 비엔날레 경제의 수요 — 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변증법으로 읽는다면: 30년의 해체 작업을 통과한 뒤의 국가 서사는 1995년의 그것과 같을 수 없으며, '요새'가 한국관 건축 자체의 폐쇄성(벽으로 둘러싸인 구조, 제한된 입구, 일방향 동선)에 대한 자기지시를 포함하고 '형성 중의 국가'라는 언명이 본질주의를 선제적으로 차단하는 한, 이것은 회귀가 아니라 나선 — 공교롭게도 2022년의 전시 제목 — 이다. 확실한 것은 이 진동 자체가 한국관 국가성의 최종 형태라는 점이다.


결론: 버릴 수도 완성할 수도 없는 형식

30년의 궤적을 요약하면 이렇다. 증명(1995–1999)에서 국가는 전시의 주어였고, 번역(2001–2009)에서 목적어가 되었으며, 반성(2011–2019)에서 피고가 되었고, 감각(2022–2024)에서 냄새가 되었다가, 2026년에 '형성 중의 국가'라는 자의식적 서사로 돌아왔다.


이 궤적에서 세 가지 구조적 관찰이 가능하다.

첫째, 한국관의 국가성 변전은 한국 사회의 자기이해 변화와 정확히 동기화되어 있다. 세계화 원년의 문화 수출 드라이브(1995), IMF 이후 디아스포라적 유연성의 발견(2001), 촛불과 페미니즘 리부트 시대의 국가 심문(2017–2019), K-컬처가 이미 전 지구적 상식이 된 시대의 여유로운 탈영토화(2024). 한국관은 한국 미술의 쇼케이스이기 이전에, 한국이 '한국'이라는 기표를 다루는 방식의 지진계였다.

둘째, 탈국가화의 역설. 한국관이 국가성을 해체하면 할수록, 그 해체는 '한국관에서' 수행된다는 조건에 의해 다시 국가화된다. 김수자의 비움도, 구정아의 향도, 결국 '한국관 전시'로 기록되고 국가 기관의 성과로 집계된다. 국가관이라는 형식 안에서의 탈국가 선언은 구조적으로 자기 자신을 배반한다 — 『마지막 국가관』이라는 책이 국가 기관에 의해 출간되는 아이러니처럼. 이것이 비엔날레 국가관 제도의 근본 문법이며, 어떤 급진적 기획도 이 문법 바깥에서 발화될 수 없다.

셋째, 그럼에도 이 형식은 폐기되지 않는다. 국가관 무용론이 사반세기째 반복되지만, 자르디니의 부동산은 여전히 세계 미술의 가장 비싼 상징 자본이고, 한국관 3회 연속 특별상의 기억은 여전히 담론의 참조점이다. 한국관의 국가성은 버릴 수도 완성할 수도 없는 형식으로서 지속된다. 어쩌면 그것이 정답이다. 후발 국민국가의 국가성이란 애초에 완성태가 아니라, 증명과 해체 사이를 영원히 진동하는 운동 그 자체이므로. 1995년 곽훈의 대금 소리와 2024년 구정아의 향 사이의 거리 — 그것이 한국이 지난 30년간 이동한 거리이며, 2026년의 요새와 둥지는 그 이동이 직선이 아니라 나선이었음을 증언한다.


부록: 역대 한국관 미술전 개요 (1995–2026)


연도 커미셔너/예술감독 작가 전시/비고

1995이일곽훈, 김인겸, 윤형근, 전수천개관전. 전수천 특별상
1997오광수강익중, 이형우강익중 특별상
1999송미숙이불, 노상균이불 특별상(3회 연속)
2001박경미서도호, 마이클 주이산·혼종 정체성
2003김홍희박이소, 정서영, 황인기《차이들의 풍경》
2005김선정김범, 최정화, 정연두 등 15인《문 밖의 비밀들》, 최대 규모
2007안소연이형구개인전 체제 시작
2009주은지양혜규《응결》
2011윤재갑이용백분단·군사주의
2013김승덕김수자《호흡: 보따리》, 빈 공간
2015이숙경문경원·전준호《축지법과 비행술》
2017이대형코디 최, 이완《카운터밸런스》
2019김현진남화연, 정은영, 제인 진 카이젠《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2022이영철김윤철《나선(Gyre)》
2024이설희·야콥 파브리시우스구정아《오도라마 시티》. 30주년 특별전 《모든 섬은 산이다》 병행
2026최빛나최고은, 노혜리 (펠로우: 한강, 이랑, 김후주, 황예지, 크리스티앙 니얌페타)《해방공간: 요새와 둥지》(5.9–11.22). 총감독 코요 쿠오 유작 에디션 'In Minor Keys'


참고: 

1986–1993년 이탈리아관 내 참가(고영훈·하동철, 박서보, 조성묵·홍명섭, 하종현), 

1993년 백남준 독일관 황금사자상, 2014년 건축전 조민석 황금사자상은 본문 맥락에 한해 언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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