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AI, 우리는 편리함을 얻고 무엇을 넘겨주는가
공명성 예술감독
2026년 9월 4일 정부와 SK텔레콤, KT, 카카오가 내놓은 ‘모두의 AI’는 표면적으로 보면 전 국민에게 인공지능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기술 보급 정책에 가깝지만,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것은 단순히 사람들이 무료로 AI를 사용할 수 있게 되는 사건이 아니라 검색과 추천, 예약과 신청, 결제와 행정처리처럼 지금까지 서로 다른 플랫폼과 서비스에 흩어져 있던 일상의 행위를 하나의 대화형 인터페이스 안으로 통합하려는 시도에 가깝다. 지금까지 우리는 병원을 찾기 위해 검색했고, 식당을 예약하기 위해 별도의 앱을 열었고, 민원을 처리하기 위해 정부 사이트에 접속했으며, 전시를 보기 위해 포털과 SNS, 미술관 홈페이지를 오가야 했다.
그러나 실행형 AI가 일상에 정착하면 사용자는 더 이상 이 여러 과정을 직접 수행하지 않아도 된다. “이번 주말 서울에서 볼 만한 전시를 찾아서 예약해줘”, “부모님이 갈 만한 병원을 찾아서 가능한 시간에 예약해줘”, “내가 지난달에 자주 산 물건을 비교해서 가장 저렴한 곳에서 주문해줘”와 같은 한두 문장의 요청만으로 검색과 비교, 판단과 실행이 연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SK텔레콤이 구상하는 실행형 AI, KT가 여러 서비스와 모델을 연결하려는 플랫폼 구조, 카카오가 카카오톡이라는 국민적 인터페이스를 기반으로 구축하려는 에이전트 시스템은 서로 방식은 다르지만 결국 하나의 방향을 향하고 있다. 인간이 여러 정보를 직접 찾아보고 비교한 뒤 행동하던 구조에서 AI가 정보를 선별하고 우선순위를 정하고 행동까지 대신 수행하는 구조로 이동하는 것이다. 이 변화가 편리하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바로 그 편리함 때문에 우리가 무엇을 AI에게 넘겨주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필요해진다. 인간은 정보를 찾는 수고만 덜어내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볼 것인지, 무엇을 비교할 것인지, 무엇을 신뢰할 것인지,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에 관한 판단의 일부까지 AI에게 위임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변화는 문화예술 영역에서 특히 흥미롭다. 지금 서울에서 500개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기존의 검색 환경에서는 관객이 포털이나 SNS에서 전시를 검색하면서 적어도 수십 개의 전시 제목과 이미지, 작가 이름과 공간 이름을 지나가게 된다. 실제로 선택하지 않은 전시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한 번이라도 보게 되고, 우연한 발견이 발생하며, 검색 과정 자체가 하나의 문화적 경험이 된다. 반면 AI에게 “오늘 볼 만한 전시 하나 추천해줘”라고 요청하면 500개의 전시는 순식간에 몇 개의 후보로 압축된다. 사용자는 편해지지만 수백 개의 전시는 사용자의 시야에 나타날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여기에서 앞으로의 문화생태계를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권력이 생긴다. 과거 플랫폼의 권력이 무엇을 화면 상단에 보여줄 것인가를 결정하는 힘이었다면, 에이전트 AI의 권력은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를 넘어 무엇을 대신 선택하고 실행할 것인가에까지 확장된다. 그렇다면 AI는 어떤 전시를 추천할 것인가. 국립미술관의 전시를 먼저 추천할 것인가, 대형 갤러리의 전시를 추천할 것인가, 언론 보도가 많은 전시를 추천할 것인가, 광고비를 지불한 공간을 추천할 것인가, 사용자가 과거에 좋아했던 것과 비슷한 것만 반복해서 보여줄 것인가, 아니면 아직 알려지지 않은 작가와 독립공간까지 발견해낼 것인가. 이 질문은 단순히 알고리즘의 기술적 정확성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앞으로 문화가 어떤 방식으로 유통되고 어떤 작품이 발견되며 어떤 작가가 생존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문제다. 검색 시대에는 작은 갤러리나 독립공간도 웹사이트를 만들고 전시 정보를 꾸준히 발행하고 SNS에서 콘텐츠가 확산되면 관객과 연결될 가능성이 존재했다. 하지만 AI 에이전트가 사람의 검색을 대신하는 시대에는 작품이나 전시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AI가 그 존재를 찾을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어야 하며, 신뢰할 수 있는 정보라고 판단해야 하고, 수많은 후보 중에서 추천할 만한 대상으로 분류할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 미술관과 갤러리의 경쟁 상대는 다른 미술관과 갤러리만이 아닐 수 있다. AI가 읽을 수 있는 정보 구조를 얼마나 갖추고 있는가, 작가와 전시의 기록이 얼마나 축적되어 있는가, 기관의 활동이 온라인에서 얼마나 신뢰 가능한 데이터로 존재하는가가 새로운 문화 유통의 조건이 될 수 있다.
작가에게도 동일한 문제가 발생한다. 지금까지 작가는 작품을 제작하고 전시하고 자신의 작업을 SNS나 홈페이지에 기록하며 비평과 언론 보도를 통해 서사를 축적해왔다. 앞으로 AI가 작가를 추천하는 시대에는 이러한 모든 기록이 하나의 데이터 집합으로 읽힐 가능성이 높다. 작가의 전시 이력, 참여 기관, 작품 이미지, 비평문, 판매 기록, 언론 기사, 수상 이력, 소셜미디어에서의 반응이 AI가 특정 작가를 판단하는 재료가 될 수 있다. 이때 중요한 문제는 AI가 예술적 가치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느냐가 아니다. 애초에 예술적 가치를 하나의 객관적 숫자로 계산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데이터가 존재하고 어떤 데이터가 존재하지 않는가이다. 기록이 많은 작가는 더 많이 학습되고, 이미 알려진 기관은 더 높은 신뢰도를 가질 수 있으며, 검색이 많이 되는 작가는 다시 추천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자기강화 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 유명한 것은 더 유명해지고, 기록되지 않은 것은 더 보이지 않게 되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지역의 작은 공간, 짧게 운영되는 프로젝트, 비상업적 활동, 온라인 기록이 부족한 중견·원로 작가, 특정 공동체 안에서만 의미를 갖는 문화적 실천들은 처음부터 추천 시스템의 바깥으로 밀려날 위험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의 AI’라는 이름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단어는 역설적으로 AI가 아니라 ‘모두’일 수 있다. 모든 국민에게 AI를 제공한다는 접근성의 평등과 모든 문화적 존재가 AI 안에서 동등하게 발견될 수 있다는 가시성의 평등은 전혀 다른 문제다. 누구나 AI를 사용할 수 있다고 해서 누구나 AI의 추천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며, AI가 무료로 제공된다고 해서 정보 권력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검색과 추천과 실행이 하나의 인터페이스로 통합될수록 그 인터페이스가 세계를 어떤 방식으로 정리하고 우선순위를 부여하는지가 더욱 중요해진다.
따라서 앞으로 AI 정책을 논의할 때 우리는 기술의 국산화나 서비스 접근성만큼이나 추천 구조의 투명성, 데이터의 다양성, 공공성과 상업성의 경계에 대해서도 질문해야 한다. 어떤 정보가 학습되고 어떤 정보가 제외되는지, 추천 순위는 어떤 원리로 만들어지는지, 광고와 일반 추천은 어떻게 구분되는지, 특정 기업이나 플랫폼과 연결된 서비스가 우선적으로 노출되지는 않는지, AI가 내린 잘못된 선택에 대해서는 누가 책임지는지 같은 문제가 중요해질 것이다. 특히 문화예술에서는 더욱 복잡하다. 가장 많이 본 전시가 가장 중요한 전시는 아니고, 가장 많은 작품을 판매한 작가가 반드시 가장 주목해야 할 작가도 아니며, 가장 많은 언론 보도를 받은 공간이 가장 실험적인 공간이라는 보장도 없다. 문화는 효율적으로 정답을 고르는 시스템이 아니라 때때로 낯선 것과 마주치고, 이해되지 않는 것을 오래 바라보고, 우연히 발견한 것을 통해 자신의 취향과 사고를 확장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AI가 사용자의 취향을 정확히 파악할수록 오히려 사용자는 이미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비슷한 것만 반복해서 추천받을 가능성이 있고, 문화적 경험은 편리해지는 동시에 좁아질 수도 있다. 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언제나 가장 정확한 추천만이 아니다. 잘못 들어간 전시장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작품을 발견하는 경험, 유명하지 않은 작가의 작업 앞에서 오래 머무는 시간,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작업을 다시 생각하게 되는 과정 역시 문화 경험의 핵심이다. AI가 이러한 우연성과 실패와 편차까지 허용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는 앞으로 상당히 중요한 문화정책의 질문이 될 것이다.
결국 AI가 인간을 대체할 것인가라는 질문보다 더 현실적인 질문은 AI가 인간 대신 무엇을 먼저 보고 무엇을 보지 않게 만들 것인가이다. ‘모두의 AI’가 정말 모두를 위한 AI가 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국민 모두가 무료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작은 문화기관도 발견될 수 있어야 하고, 유명하지 않은 작가도 검색될 수 있어야 하며, 시장성이 낮더라도 사회적으로 중요한 문화적 실천이 추천 체계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야 한다. 정부가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방식 역시 창작지원금이나 전시지원에 머물러서는 부족해질 수 있다. 앞으로는 어떤 예술이 만들어지는가뿐 아니라 어떤 예술이 데이터로 기록되고, 검색되고, AI에 의해 이해되고, 다시 사회에 추천되는가까지 문화정책의 영역으로 들어올 가능성이 크다. 디지털 아카이브, 메타데이터, 기관 기록, 작가 데이터베이스 같은 다소 행정적으로 보였던 요소들이 사실은 미래의 문화적 가시성을 좌우하는 핵심 인프라가 될 수 있다. 모두에게 AI가 주어지는 시대에는 AI를 가지고 있는가가 더 이상 중요한 차이가 아니다. 그 AI가 무엇을 알고 있는가, 무엇을 발견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AI가 누구를 보고 누구를 지나치는가가 더 중요한 문제가 된다. 우리가 편리함을 얻는 대신 넘겨주는 것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다. 무엇을 볼 것인지 결정하는 과정의 일부다. 그래서 ‘모두의 AI’ 이후 문화예술계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질문은 AI가 예술을 만들 수 있는가가 아니라, 앞으로 AI가 어떤 예술을 우리 앞에 가져다 놓을 것인가이다.
발행인 공명성
기획·편집 아이테르
발행처 아이테르 범일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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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AI, 우리는 편리함을 얻고 무엇을 넘겨주는가
공명성 예술감독
2026년 9월 4일 정부와 SK텔레콤, KT, 카카오가 내놓은 ‘모두의 AI’는 표면적으로 보면 전 국민에게 인공지능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기술 보급 정책에 가깝지만,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것은 단순히 사람들이 무료로 AI를 사용할 수 있게 되는 사건이 아니라 검색과 추천, 예약과 신청, 결제와 행정처리처럼 지금까지 서로 다른 플랫폼과 서비스에 흩어져 있던 일상의 행위를 하나의 대화형 인터페이스 안으로 통합하려는 시도에 가깝다. 지금까지 우리는 병원을 찾기 위해 검색했고, 식당을 예약하기 위해 별도의 앱을 열었고, 민원을 처리하기 위해 정부 사이트에 접속했으며, 전시를 보기 위해 포털과 SNS, 미술관 홈페이지를 오가야 했다.
그러나 실행형 AI가 일상에 정착하면 사용자는 더 이상 이 여러 과정을 직접 수행하지 않아도 된다. “이번 주말 서울에서 볼 만한 전시를 찾아서 예약해줘”, “부모님이 갈 만한 병원을 찾아서 가능한 시간에 예약해줘”, “내가 지난달에 자주 산 물건을 비교해서 가장 저렴한 곳에서 주문해줘”와 같은 한두 문장의 요청만으로 검색과 비교, 판단과 실행이 연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SK텔레콤이 구상하는 실행형 AI, KT가 여러 서비스와 모델을 연결하려는 플랫폼 구조, 카카오가 카카오톡이라는 국민적 인터페이스를 기반으로 구축하려는 에이전트 시스템은 서로 방식은 다르지만 결국 하나의 방향을 향하고 있다. 인간이 여러 정보를 직접 찾아보고 비교한 뒤 행동하던 구조에서 AI가 정보를 선별하고 우선순위를 정하고 행동까지 대신 수행하는 구조로 이동하는 것이다. 이 변화가 편리하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바로 그 편리함 때문에 우리가 무엇을 AI에게 넘겨주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필요해진다. 인간은 정보를 찾는 수고만 덜어내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볼 것인지, 무엇을 비교할 것인지, 무엇을 신뢰할 것인지,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에 관한 판단의 일부까지 AI에게 위임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변화는 문화예술 영역에서 특히 흥미롭다. 지금 서울에서 500개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기존의 검색 환경에서는 관객이 포털이나 SNS에서 전시를 검색하면서 적어도 수십 개의 전시 제목과 이미지, 작가 이름과 공간 이름을 지나가게 된다. 실제로 선택하지 않은 전시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한 번이라도 보게 되고, 우연한 발견이 발생하며, 검색 과정 자체가 하나의 문화적 경험이 된다. 반면 AI에게 “오늘 볼 만한 전시 하나 추천해줘”라고 요청하면 500개의 전시는 순식간에 몇 개의 후보로 압축된다. 사용자는 편해지지만 수백 개의 전시는 사용자의 시야에 나타날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여기에서 앞으로의 문화생태계를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권력이 생긴다. 과거 플랫폼의 권력이 무엇을 화면 상단에 보여줄 것인가를 결정하는 힘이었다면, 에이전트 AI의 권력은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를 넘어 무엇을 대신 선택하고 실행할 것인가에까지 확장된다. 그렇다면 AI는 어떤 전시를 추천할 것인가. 국립미술관의 전시를 먼저 추천할 것인가, 대형 갤러리의 전시를 추천할 것인가, 언론 보도가 많은 전시를 추천할 것인가, 광고비를 지불한 공간을 추천할 것인가, 사용자가 과거에 좋아했던 것과 비슷한 것만 반복해서 보여줄 것인가, 아니면 아직 알려지지 않은 작가와 독립공간까지 발견해낼 것인가. 이 질문은 단순히 알고리즘의 기술적 정확성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앞으로 문화가 어떤 방식으로 유통되고 어떤 작품이 발견되며 어떤 작가가 생존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문제다. 검색 시대에는 작은 갤러리나 독립공간도 웹사이트를 만들고 전시 정보를 꾸준히 발행하고 SNS에서 콘텐츠가 확산되면 관객과 연결될 가능성이 존재했다. 하지만 AI 에이전트가 사람의 검색을 대신하는 시대에는 작품이나 전시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AI가 그 존재를 찾을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어야 하며, 신뢰할 수 있는 정보라고 판단해야 하고, 수많은 후보 중에서 추천할 만한 대상으로 분류할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 미술관과 갤러리의 경쟁 상대는 다른 미술관과 갤러리만이 아닐 수 있다. AI가 읽을 수 있는 정보 구조를 얼마나 갖추고 있는가, 작가와 전시의 기록이 얼마나 축적되어 있는가, 기관의 활동이 온라인에서 얼마나 신뢰 가능한 데이터로 존재하는가가 새로운 문화 유통의 조건이 될 수 있다.
작가에게도 동일한 문제가 발생한다. 지금까지 작가는 작품을 제작하고 전시하고 자신의 작업을 SNS나 홈페이지에 기록하며 비평과 언론 보도를 통해 서사를 축적해왔다. 앞으로 AI가 작가를 추천하는 시대에는 이러한 모든 기록이 하나의 데이터 집합으로 읽힐 가능성이 높다. 작가의 전시 이력, 참여 기관, 작품 이미지, 비평문, 판매 기록, 언론 기사, 수상 이력, 소셜미디어에서의 반응이 AI가 특정 작가를 판단하는 재료가 될 수 있다. 이때 중요한 문제는 AI가 예술적 가치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느냐가 아니다. 애초에 예술적 가치를 하나의 객관적 숫자로 계산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데이터가 존재하고 어떤 데이터가 존재하지 않는가이다. 기록이 많은 작가는 더 많이 학습되고, 이미 알려진 기관은 더 높은 신뢰도를 가질 수 있으며, 검색이 많이 되는 작가는 다시 추천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자기강화 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 유명한 것은 더 유명해지고, 기록되지 않은 것은 더 보이지 않게 되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지역의 작은 공간, 짧게 운영되는 프로젝트, 비상업적 활동, 온라인 기록이 부족한 중견·원로 작가, 특정 공동체 안에서만 의미를 갖는 문화적 실천들은 처음부터 추천 시스템의 바깥으로 밀려날 위험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의 AI’라는 이름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단어는 역설적으로 AI가 아니라 ‘모두’일 수 있다. 모든 국민에게 AI를 제공한다는 접근성의 평등과 모든 문화적 존재가 AI 안에서 동등하게 발견될 수 있다는 가시성의 평등은 전혀 다른 문제다. 누구나 AI를 사용할 수 있다고 해서 누구나 AI의 추천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며, AI가 무료로 제공된다고 해서 정보 권력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검색과 추천과 실행이 하나의 인터페이스로 통합될수록 그 인터페이스가 세계를 어떤 방식으로 정리하고 우선순위를 부여하는지가 더욱 중요해진다.
따라서 앞으로 AI 정책을 논의할 때 우리는 기술의 국산화나 서비스 접근성만큼이나 추천 구조의 투명성, 데이터의 다양성, 공공성과 상업성의 경계에 대해서도 질문해야 한다. 어떤 정보가 학습되고 어떤 정보가 제외되는지, 추천 순위는 어떤 원리로 만들어지는지, 광고와 일반 추천은 어떻게 구분되는지, 특정 기업이나 플랫폼과 연결된 서비스가 우선적으로 노출되지는 않는지, AI가 내린 잘못된 선택에 대해서는 누가 책임지는지 같은 문제가 중요해질 것이다. 특히 문화예술에서는 더욱 복잡하다. 가장 많이 본 전시가 가장 중요한 전시는 아니고, 가장 많은 작품을 판매한 작가가 반드시 가장 주목해야 할 작가도 아니며, 가장 많은 언론 보도를 받은 공간이 가장 실험적인 공간이라는 보장도 없다. 문화는 효율적으로 정답을 고르는 시스템이 아니라 때때로 낯선 것과 마주치고, 이해되지 않는 것을 오래 바라보고, 우연히 발견한 것을 통해 자신의 취향과 사고를 확장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AI가 사용자의 취향을 정확히 파악할수록 오히려 사용자는 이미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비슷한 것만 반복해서 추천받을 가능성이 있고, 문화적 경험은 편리해지는 동시에 좁아질 수도 있다. 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언제나 가장 정확한 추천만이 아니다. 잘못 들어간 전시장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작품을 발견하는 경험, 유명하지 않은 작가의 작업 앞에서 오래 머무는 시간,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작업을 다시 생각하게 되는 과정 역시 문화 경험의 핵심이다. AI가 이러한 우연성과 실패와 편차까지 허용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는 앞으로 상당히 중요한 문화정책의 질문이 될 것이다.
결국 AI가 인간을 대체할 것인가라는 질문보다 더 현실적인 질문은 AI가 인간 대신 무엇을 먼저 보고 무엇을 보지 않게 만들 것인가이다. ‘모두의 AI’가 정말 모두를 위한 AI가 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국민 모두가 무료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작은 문화기관도 발견될 수 있어야 하고, 유명하지 않은 작가도 검색될 수 있어야 하며, 시장성이 낮더라도 사회적으로 중요한 문화적 실천이 추천 체계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야 한다. 정부가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방식 역시 창작지원금이나 전시지원에 머물러서는 부족해질 수 있다. 앞으로는 어떤 예술이 만들어지는가뿐 아니라 어떤 예술이 데이터로 기록되고, 검색되고, AI에 의해 이해되고, 다시 사회에 추천되는가까지 문화정책의 영역으로 들어올 가능성이 크다. 디지털 아카이브, 메타데이터, 기관 기록, 작가 데이터베이스 같은 다소 행정적으로 보였던 요소들이 사실은 미래의 문화적 가시성을 좌우하는 핵심 인프라가 될 수 있다. 모두에게 AI가 주어지는 시대에는 AI를 가지고 있는가가 더 이상 중요한 차이가 아니다. 그 AI가 무엇을 알고 있는가, 무엇을 발견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AI가 누구를 보고 누구를 지나치는가가 더 중요한 문제가 된다. 우리가 편리함을 얻는 대신 넘겨주는 것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다. 무엇을 볼 것인지 결정하는 과정의 일부다. 그래서 ‘모두의 AI’ 이후 문화예술계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질문은 AI가 예술을 만들 수 있는가가 아니라, 앞으로 AI가 어떤 예술을 우리 앞에 가져다 놓을 것인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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