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zine)은 흔히 형식과 주제의 제약 없이 개인의 취향과 사고를 담아내는 종이 매거진으로 설명된다. 그러나 이 글에서 진은 하나의 장르라기보다, 만들어지고 유통되며 사라지는 방식을 드러내는 출판 형식으로 다뤄진다. 그것은 예술과 관련된 것일 수도 있고, 개인적이거나 사회적인 맥락을 가질 수도 있다.
내가 진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드래곤힐 프린트샵이라는 카페에서였다. 그것이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다른 매체에 비해 접근성이 낮다는 점이 진이 가진 하나의 특징처럼 느껴진다. 몇 장 되지 않은 페이지 속 투박하고 오밀조밀한 조각의 행렬은, 내게 있어 진이라는 매체가 유난히 흥미로워진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들어 다양한 경로를 통해 진을 접하며 형태와 내용 면에서 각기 다른 다양한 진들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경우가 늘고 있지만, 한국에서 진은 아직 그리 활성화가 되어있는 문화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DIY 마니아들의 안식처였던 드래곤힐 프린트샵이 최근 영업을 종료하면서 흩어진 궤적으로서 존재하는 진을 앞으로 어떤 경로로 만나게 될 것인지 고민해볼 필요가 생겼다. 온라인에서는 e-zine의 형태로 진을 접할 수 있지만, 그것 역시 분산된 경로를 따라가야 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발품을 요구하는 매체다.

Black Zine Fair, Powerhouse Arts, New York City, 2024. Photo: Nadia O’Hara. Courtesy Black Zine Fair
반면 최근 미국 전역에서는 진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뉴욕에서는 지난해 파워하우스 아츠에서 열린 블랙 진 박람회에 천 명이 넘는 관람객들이 모였다. 민간 기업이 통제하는 온라인 플랫폼인 소셜 미디어 플랫폼들이 점점 더 수익 중심의 감시와 검열에 사용자를 노출시키면서, 진이 오프라인 정보 공유의 중요한 수단으로 기능하게 된 것이다. 글로벌 사우스를 하나의 지역으로 상정하기보다 가시성과 발화의 관점에서 이해할 때, 진은 그 주변부에서 작동해온 출판 형식 중 하나로 읽힐 수 있다. 이 관점에서 진은 특정 정치 이슈를 대표하기보다는 제도적 플랫폼 바깥에서 목소리가 유통되는 방식을 보여주는 매체로 기능한다. 이를테면 미국에서 이민관세청 ICE으로부터 서로를 보호하는 방법을 담긴 진이 배포되거나, 텍사스에서 한 예술가가 진이 담긴 상자를 운반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기소된 사례를 통해 진이 오프라인 공간에서 수행하는 역할을 짐작할 수 있다.
역사학자 숀 러빗(Sean Lovitt)은 이러한 현상의 이유에 대해 ‘상징적 불복종 행위’와 연관지어 이야기 한다. 시위를 포함하여, 이런 행위를 예행연습할 수 있는 대안적 공간에 대한 집단적 갈망이 이러한 출판 형식을 다시 호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진의 성격은 안티밈(antimeme)이라는 개념과 유사한 형태를 띄고있다. 한 입 크기의 가볍고 간결한 형식으로 민첩하게 확산되는 밈과 달리, 안티밈은 쉽게 퍼지지 않는다. 밈이 우리가 즉시 퍼뜨리고 싶어하는 바이럴 이미지나 슬로건이라면, 안티밈은 제한된 맥락 안에서만 읽히는 틈새 기사에 가깝다. 반복 노출을 통해 각인된 밈과 달리 안티밈은 초기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휴면 상태로 접어들거나 쉽게 잊힌다.
예컨대 시위 현장에서의 아이디어는 대체로 밈적이다. 구호는 리드미컬하고 기억에 남으며 효율적으로 확산된다. 반면 진의 아이디어는 톤과 주제가 고르지 않고, 매우 특정하고 고맥락적이다. 그 결과 진은 안티밈적 매체가 된다.

Resurgence 3, July 1965. Courtesy Abigail Susik and Jonathan Leake
이러한 맥락에서 진의 역사에 잠시 발을 담가볼 수 있다.
1960년대, 톰킨스 스퀘어 파크를 중심으로 형성된 좌파 친화 집단들의 환경 속에서 업 어게인스트 더 월 마더퍼커(Up Against the Wall Motherfucker)와 ESSO(East Side Service Organization) 같은 그룹들이 활동했다. 이들과 나란히 활동하던 10대 아나키스트 집단 ‘리서전스 유스 무브먼트’(RYM)는 Resurgence라는 진을 제작했다.
반란적 사유와 도발적인 수작업 드로잉이 결합된 추진력 있는 구성 덕분에, 전성기 시절 Resurgence는 “젊은 전투적 활동가들을 새롭게 떠오르는 정치적 흐름으로 이끄는 등대”였다고 러빗은 말한다. 그럼에도 1967년 공동창립자 월터 코히(Walter Caughey)의 요절 이후 이 진은 종간되었고, 또 하나의 ‘잊힌 출판물’로 남게 되었다.
이를 보존하고자 하는 애호가나 아키비스트, 역사가들의 바람과 달리 Resurgence 같은 역사적 진의 내용은 오늘날 읽히자마자, 혹은 아예 읽히지 않은 채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는 애도할 일이라기보다 진이라는 출판 형식이 전제하고 있는 조건에 가깝다.
진은 오래 남기기 위해 만들어진 출판물이 아니다. 빠르게 확산되거나 반복 인용되기보다는 특정한 맥락과 독자 사이에서 잠시 머물렀다 사라지는 형식에 더 가까울 것이다. 작은 지면 안에 오밀조밀하게 배치된 문장과 이미지는 읽는 이를 설득하기보다는 각자의 속도로 통과되고 싶어한다.
창작자와 독자의 경계가 느슨한 이 구조 속에서 진은 완결된 메시지가 아니라 하나의 소통 방식으로 존재한다. 어쩌면 진이 지금도 만들어지는 이유는 정리되지 않고 부유하는 산출물로서 존재하기 위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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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협회 아이테르 [ AITHER ] 부산전시관
문화예술기획
아이테르 AITHER
부산 갤러리/전시관
- 문화예술기획업
주소: (48737)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로 65번길 21
주차: 진시장 공영주차장
서비스 운영시간: 월-토 10:00~18:00
연락처: 051-977-5272 | sck02145@naver.com | https://aither.kr/
팩스: 0504-322-2379
인스타그램: @aither.kr
유튜브: https://www.youtube.com/@AITHERART
[시설 안내]
4층, 전시 공간
5층, 라운지
6층, 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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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zine)은 흔히 형식과 주제의 제약 없이 개인의 취향과 사고를 담아내는 종이 매거진으로 설명된다. 그러나 이 글에서 진은 하나의 장르라기보다, 만들어지고 유통되며 사라지는 방식을 드러내는 출판 형식으로 다뤄진다. 그것은 예술과 관련된 것일 수도 있고, 개인적이거나 사회적인 맥락을 가질 수도 있다.
내가 진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드래곤힐 프린트샵이라는 카페에서였다. 그것이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다른 매체에 비해 접근성이 낮다는 점이 진이 가진 하나의 특징처럼 느껴진다. 몇 장 되지 않은 페이지 속 투박하고 오밀조밀한 조각의 행렬은, 내게 있어 진이라는 매체가 유난히 흥미로워진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들어 다양한 경로를 통해 진을 접하며 형태와 내용 면에서 각기 다른 다양한 진들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경우가 늘고 있지만, 한국에서 진은 아직 그리 활성화가 되어있는 문화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DIY 마니아들의 안식처였던 드래곤힐 프린트샵이 최근 영업을 종료하면서 흩어진 궤적으로서 존재하는 진을 앞으로 어떤 경로로 만나게 될 것인지 고민해볼 필요가 생겼다. 온라인에서는 e-zine의 형태로 진을 접할 수 있지만, 그것 역시 분산된 경로를 따라가야 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발품을 요구하는 매체다.
Black Zine Fair, Powerhouse Arts, New York City, 2024. Photo: Nadia O’Hara. Courtesy Black Zine Fair
반면 최근 미국 전역에서는 진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뉴욕에서는 지난해 파워하우스 아츠에서 열린 블랙 진 박람회에 천 명이 넘는 관람객들이 모였다. 민간 기업이 통제하는 온라인 플랫폼인 소셜 미디어 플랫폼들이 점점 더 수익 중심의 감시와 검열에 사용자를 노출시키면서, 진이 오프라인 정보 공유의 중요한 수단으로 기능하게 된 것이다. 글로벌 사우스를 하나의 지역으로 상정하기보다 가시성과 발화의 관점에서 이해할 때, 진은 그 주변부에서 작동해온 출판 형식 중 하나로 읽힐 수 있다. 이 관점에서 진은 특정 정치 이슈를 대표하기보다는 제도적 플랫폼 바깥에서 목소리가 유통되는 방식을 보여주는 매체로 기능한다. 이를테면 미국에서 이민관세청 ICE으로부터 서로를 보호하는 방법을 담긴 진이 배포되거나, 텍사스에서 한 예술가가 진이 담긴 상자를 운반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기소된 사례를 통해 진이 오프라인 공간에서 수행하는 역할을 짐작할 수 있다.
역사학자 숀 러빗(Sean Lovitt)은 이러한 현상의 이유에 대해 ‘상징적 불복종 행위’와 연관지어 이야기 한다. 시위를 포함하여, 이런 행위를 예행연습할 수 있는 대안적 공간에 대한 집단적 갈망이 이러한 출판 형식을 다시 호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진의 성격은 안티밈(antimeme)이라는 개념과 유사한 형태를 띄고있다. 한 입 크기의 가볍고 간결한 형식으로 민첩하게 확산되는 밈과 달리, 안티밈은 쉽게 퍼지지 않는다. 밈이 우리가 즉시 퍼뜨리고 싶어하는 바이럴 이미지나 슬로건이라면, 안티밈은 제한된 맥락 안에서만 읽히는 틈새 기사에 가깝다. 반복 노출을 통해 각인된 밈과 달리 안티밈은 초기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휴면 상태로 접어들거나 쉽게 잊힌다.
예컨대 시위 현장에서의 아이디어는 대체로 밈적이다. 구호는 리드미컬하고 기억에 남으며 효율적으로 확산된다. 반면 진의 아이디어는 톤과 주제가 고르지 않고, 매우 특정하고 고맥락적이다. 그 결과 진은 안티밈적 매체가 된다.
Resurgence 3, July 1965. Courtesy Abigail Susik and Jonathan Leake
이러한 맥락에서 진의 역사에 잠시 발을 담가볼 수 있다.
1960년대, 톰킨스 스퀘어 파크를 중심으로 형성된 좌파 친화 집단들의 환경 속에서 업 어게인스트 더 월 마더퍼커(Up Against the Wall Motherfucker)와 ESSO(East Side Service Organization) 같은 그룹들이 활동했다. 이들과 나란히 활동하던 10대 아나키스트 집단 ‘리서전스 유스 무브먼트’(RYM)는 Resurgence라는 진을 제작했다.
반란적 사유와 도발적인 수작업 드로잉이 결합된 추진력 있는 구성 덕분에, 전성기 시절 Resurgence는 “젊은 전투적 활동가들을 새롭게 떠오르는 정치적 흐름으로 이끄는 등대”였다고 러빗은 말한다. 그럼에도 1967년 공동창립자 월터 코히(Walter Caughey)의 요절 이후 이 진은 종간되었고, 또 하나의 ‘잊힌 출판물’로 남게 되었다.
이를 보존하고자 하는 애호가나 아키비스트, 역사가들의 바람과 달리 Resurgence 같은 역사적 진의 내용은 오늘날 읽히자마자, 혹은 아예 읽히지 않은 채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는 애도할 일이라기보다 진이라는 출판 형식이 전제하고 있는 조건에 가깝다.
진은 오래 남기기 위해 만들어진 출판물이 아니다. 빠르게 확산되거나 반복 인용되기보다는 특정한 맥락과 독자 사이에서 잠시 머물렀다 사라지는 형식에 더 가까울 것이다. 작은 지면 안에 오밀조밀하게 배치된 문장과 이미지는 읽는 이를 설득하기보다는 각자의 속도로 통과되고 싶어한다.
창작자와 독자의 경계가 느슨한 이 구조 속에서 진은 완결된 메시지가 아니라 하나의 소통 방식으로 존재한다. 어쩌면 진이 지금도 만들어지는 이유는 정리되지 않고 부유하는 산출물로서 존재하기 위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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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협회 아이테르 [ AITHER ] 부산전시관
문화예술기획
아이테르 AITHER
부산 갤러리/전시관
- 문화예술기획업
주소: (48737)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로 65번길 21
주차: 진시장 공영주차장
서비스 운영시간: 월-토 10:00~18:00
연락처: 051-977-5272 | sck02145@naver.com | https://aither.kr/
팩스: 0504-322-2379
인스타그램: @aither.kr
유튜브: https://www.youtube.com/@AITHERART
[시설 안내]
4층, 전시 공간
5층, 라운지
6층, 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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