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사우스] 되돌아가는 것: 소멸과 순환의 전시

심선용
2026-02-10
조회수 366

녹지 않는 눈사람이 있을까. 눈사람은 반드시 녹는다.


국립현대미술관을 산책하다, 계속되는 풀 덩이들을 만난다. 동글동글 빚어진 풀사람들은 어른어른 계속 눈에 띈다. 집으로 돌아가서야 그것이 작품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소멸의 시학: 삭는 미술에 대하여》는 자연스럽게 돌아가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되돌아가는 것. 이는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가장 근본적인 문제일지도 모른다. 사람이 태어나고 죽듯이, 작품도 만들어지고 폐기된다. 사람은 계속 창조해내고, 작품은 계속 태어난다. 그렇다면 작품이 죽은 자리에는 무엇이 지나가게 되는가. 그 이후에 남는 생명, 혹은 흔적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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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드 라자, 〈흡수〉, 2020, 《지구로 내려오기: 기후 예술 담론 언플러그드》(그로피우스 바우, 베를린, 2020) 전시 전경. 작가 및 베를리너 페스트슈필레/이머전 제공. 사진: 아이케 발켄호르스트.

아사드 라자의 〈흡수〉는 현지에서 나온 폐기물과 재료를 뒤섞어 비옥한 토양을 만들고 원하는 이들에게 분배하는 작품이다.[1] 이러한 경험을 통해 관람자는 흙과 공명하며 새로운 공동체의 경험을 간접적으로 감각한다. 작품이 관람자에게 어떠한 의미를 생성하는 순간은, 그것이 온전한 상태로 존재할 때에만 국한될까? 사라져가는, 변화하고 썩어가는, 삭아가는 과정까지도 보여주어야 하는지, 혹은 그러한 과정을 보여주지 않을 자유. 그리고 그 죽어가는 것으로부터 우리가 느끼는 것.

  

최근 한 생태 보존 센터에서 박제된 동물들을 보았다. 가짜 박제였지만, 자세히 보기 전까지만 해도, 그것들이 가짜 박제인지 알지 못했다. 선명한 새가 날아갈 때, 나는 그것들이 살아있음을 확신했지만, 전시장 옆에 서 있던 소나무가 진짜인지는 자세히 보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다. 역동적인 동물들이 굳어져 있을 때 그 모습은 그토록 이질적일 수가 없다. 나무가 유연하게 꺾어 움직이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삭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삭다’라는 우리말에는 ‘썩은 것처럼 되다’, ‘생기를 잃다’, ‘소화되다’, ‘발효되어 맛이 들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2] 삭아가는 것은 소멸과 생성이 동시에 담긴 말이다.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적군의 언어》는 이러한 의미를 전시장 안으로 끌어온다. 약 반년 동안 유기물로 구성된 작품들은 작가의 의도에 따라 썩고, 시들고, 곰팡이가 피는 과정을 그대로 두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러나 전시 초반과 전시가 끝날 때의 작품은 극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 천장에 거꾸로 매달린 죽은 나무는 여름을 지나 겨울에 뻣뻣하게 날 서 있는 뾰족뾰족한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구조물 위에 놓인 한 작은 낙엽과 얽힌 것들의 주름. 모든 것이 거의 온전하게 있었다. 

미술관에서의 작품은 대체로 보호되는 보존을 전제로 한다. 작가와 큐레이터의 의도에 따라 정해진 위치와 형태로 놓이고, 그 상태는 유지된다. 관람자가 이를 임의로 바꾸는 순간, 전시는 큰 혼란이 생길 것이다. 회화 작품을 갑자기 다른 벽에 옮겨 거는 일이 쉽게 허용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보존은 미술관의 중요한 역할이지만, 동시에 시간의 흐름을 멈추게 만드는 장치이기도 하다.

김방주의 《그냥 생긴 기억》은 이를 전복시킨다. 관람자는 자유롭게 전시 공간의 물건을 가져갈 수 있다. 만져 보고, 다시 둘 수 있다. 이는 전시에 있어서 소유와 그 위계를 느슨하게 만든다. 아버지로부터 떠맡게 된 집 한 채 분량의 물건들을, 김방주는 사람들에게 돌려보낸다. 이는 폐기될 수도 있었던 물건이 다시 누군가에게 돌아가고, 또 다시 누군가에게 향할 가능성을 제공하는 통로의 역할을 한다. 되돌아간다는 것은, 그것이 왔던 정확한 복귀가 아니라 다른 순환으로 진입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향한 움직임으로 작동한다.

 전시 공간의 중앙에는 오래된 전기난로가 켜져 있다. 오래된 사물들이 모인 공간, 그리고 난로의 온기. 할머니댁의 향이 난다. 추억 속에서의 기억이 떠오른다. 이 공간은 나의 것이 된다. 이처럼 전시는 작가의 개인적인 기억에서 출발하지만, 관람자 각자의 기억을 불러온다. 공간은 작품의 배경이라기보다, 잠시 머물다 지나가는 장소가 된다. 마음에 드는 물건을 가지게 된 관람자의 소유는, 작가의 비워냄을 불러일으키고, 의미는 고정되지 않고, 각자의 경험 속으로 흩어진다.

 그렇다면 다시 되돌아가는 것이 화이트 큐브 속에서 이루어질 때, 어떠한 모습과 의미를 지니는가? 세월의 흐름, 다 낡은 가방, 오래된 집. 마루의 반질반질함. 이것을 미술관으로 가져올 수 있을까. 혹은 미술관은 그러한 시간의 축적을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을까. 《소멸의 시학》, 《적군의 언어》, 《그냥 생긴 기억》은 예술이 무엇을 더 보존할 것인가보다, 무엇을 기꺼이 놓아줄 수 있는가를 묻는 전시이다.

 


 


 


  

[1] 《소멸의 시학: 삭는 미술에 대하여》 브로슈어, p. 10.

[2] 《소멸의 시학: 삭는 미술에 대하여》 브로슈어, p.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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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협회 아이테르 [ AITHER ] 부산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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