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기계적 매체다. 셔터가 눌리는 순간, 빛은 필름이나 센서 위에 물리적으로 각인된다. 그 과정은 계산 가능하고 반복 가능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우리는 사진을 감정의 매체로 경험한다. 어떤 시절에 즐겨듣던 음악을 우연히라도 다시 듣게 되었을 때 과거의 향수가 떠오르듯, 사진도 시간과 감정을 불러온다. 언어 없이도 읽히는 이미지라는 형식은 기억을 환기하는 감각적 장치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장롱 속 먼지 먹은 오래된 아날로그 카메라를 다시 꺼내어보면, 부모님이 찍어준 어린 시절의 나를 마주한다. 부유하는 시간 속에서 그 이미지는 유일하게 변함없이 고유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혹은 특정 시기 나의 시선이 멈춰있을지도 모른다. 색이 바랜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흔들리기만 했던 것 같은 지난 시간이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 시절의 나는 지금의 나와 다른 존재가 아니다. 더 굳건하게 자라날 수 있는 기저를 이루는 뿌리로서 존재했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사진은 과거를 보존하기보다는 다시금 과거의 향수를 불러오고, 이로써 재향유된다.


Inuuteq Storch, 2019, photograph. © the artist. Courtesy the artist and Wilson Saplana Gallery, Copenhagen
Inuuteq Storch의 작업은 이러한 사진의 속성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그는 고향 카일라잇 누나트를 떠나 뉴욕에서 공부하던 시절, 새삼 뿌리 없는 존재가 된 듯한 감각을 경험했다. 《Flesh》(2019)는 그 시기를 담는다. 지하철 벤치, 크리스마스 장식, 길고양이, 장난기 많은 친구들. 낯선 도시에서 익숙함을 찾으려던 그 시도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에서 비롯된다. 이때 사진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작가의 문화적 정체성을 마주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2024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선보인 《Rise of the Sunken Sun》과 뉴욕 MoMA PS1에서 열린 《Soon Will Summer Be Over》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수백 장의 이미지 속에서 그는 개인과 공동체, 그리고 거대한 자연 환경과의 관계를 드러낸다. 그러나 그의 사진은 장엄함을 과시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이웃이 담배를 나누는 소박한 일상의 장면을 포착한다. 신비롭게 여겨져 온 그린란드를 평범한 삶의 온도로 되돌려 놓는 것이다.


From the series Soon Will Summer Be Over, 2023, photograph, 165 × 110 cm. Courtesy the artist and Wilson Saplana Gallery, Copenhagen
이 지점에서 사진은 또 하나의 기능을 수행한다. 바로 신화를 해제하는 것이다. 작가의 고향 그린란드는 오랫동안 외부의 힘에 의해 유지되었다. 그곳은 1814년부터 1953년까지 덴마크의 식민지였고, 이후에도 아동 강제 입양, 여성 강제 불임 시술 등의 어두운 역사를 겪었다. 그러나 그의 사진은 피해의 서사나 이국적 풍경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대신 가족, 친구, 거리, 사소한 풍경을 통해 한 공동체의 현재를 보여줄 뿐이다. 거대한 담론을 설명하기보다 그 사이에서 살아가는 개개인의 시간을 녹여내는 것이다.
작가는 사진은 서구에서 발명된 매체이지만 이야기 전통을 가진 칼라알릿 문화와도 자연스럽게 맞닿는다고 여긴다. 글로 기록된 역사보다 이야기로 전해진 기억이 더 오래 남는 공동체에서 언어 없이 읽히는 이미지는 또 다른 서사의 장이 된다. 사진은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보는 이의 경험과 만나며 더욱 확장된다.

From the series, Porcelain Souls, 2018, photograph. © the artist. Courtesy the artist and Wilson Saplana Gallery, Copenhagen
결국 storch의 작업은 한 작가의 고향 서사를 넘어 사진이라는 매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사라질 수 있는 시간을 붙잡고 현재의 시선으로 기억을 재배열한다. 기계적 장치로 시작된 매체가 감정을 저장하고 불러낼 수 있는데에는 시간과 감정, 관계와 장소라는 하나의 서사가 응축되어 있는 행성적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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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협회 아이테르 [ AITHER ] 부산전시관
문화예술기획
아이테르 AITHER
부산 갤러리/전시관
- 문화예술기획업
주소: (48737)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로 65번길 21
주차: 진시장 공영주차장
서비스 운영시간: 월-토 10:00~18:00
연락처: 051-977-5272 | sck02145@naver.com | https://aither.kr/
팩스: 0504-322-2379
인스타그램: @aither.kr
유튜브: https://www.youtube.com/@AITHERART
[시설 안내]
4층, 전시 공간
5층, 라운지
6층, 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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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기계적 매체다. 셔터가 눌리는 순간, 빛은 필름이나 센서 위에 물리적으로 각인된다. 그 과정은 계산 가능하고 반복 가능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우리는 사진을 감정의 매체로 경험한다. 어떤 시절에 즐겨듣던 음악을 우연히라도 다시 듣게 되었을 때 과거의 향수가 떠오르듯, 사진도 시간과 감정을 불러온다. 언어 없이도 읽히는 이미지라는 형식은 기억을 환기하는 감각적 장치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장롱 속 먼지 먹은 오래된 아날로그 카메라를 다시 꺼내어보면, 부모님이 찍어준 어린 시절의 나를 마주한다. 부유하는 시간 속에서 그 이미지는 유일하게 변함없이 고유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혹은 특정 시기 나의 시선이 멈춰있을지도 모른다. 색이 바랜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흔들리기만 했던 것 같은 지난 시간이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 시절의 나는 지금의 나와 다른 존재가 아니다. 더 굳건하게 자라날 수 있는 기저를 이루는 뿌리로서 존재했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사진은 과거를 보존하기보다는 다시금 과거의 향수를 불러오고, 이로써 재향유된다.
Inuuteq Storch, 2019, photograph. © the artist. Courtesy the artist and Wilson Saplana Gallery, Copenhagen
Inuuteq Storch의 작업은 이러한 사진의 속성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그는 고향 카일라잇 누나트를 떠나 뉴욕에서 공부하던 시절, 새삼 뿌리 없는 존재가 된 듯한 감각을 경험했다. 《Flesh》(2019)는 그 시기를 담는다. 지하철 벤치, 크리스마스 장식, 길고양이, 장난기 많은 친구들. 낯선 도시에서 익숙함을 찾으려던 그 시도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에서 비롯된다. 이때 사진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작가의 문화적 정체성을 마주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2024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선보인 《Rise of the Sunken Sun》과 뉴욕 MoMA PS1에서 열린 《Soon Will Summer Be Over》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수백 장의 이미지 속에서 그는 개인과 공동체, 그리고 거대한 자연 환경과의 관계를 드러낸다. 그러나 그의 사진은 장엄함을 과시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이웃이 담배를 나누는 소박한 일상의 장면을 포착한다. 신비롭게 여겨져 온 그린란드를 평범한 삶의 온도로 되돌려 놓는 것이다.
From the series Soon Will Summer Be Over, 2023, photograph, 165 × 110 cm. Courtesy the artist and Wilson Saplana Gallery, Copenhagen
이 지점에서 사진은 또 하나의 기능을 수행한다. 바로 신화를 해제하는 것이다. 작가의 고향 그린란드는 오랫동안 외부의 힘에 의해 유지되었다. 그곳은 1814년부터 1953년까지 덴마크의 식민지였고, 이후에도 아동 강제 입양, 여성 강제 불임 시술 등의 어두운 역사를 겪었다. 그러나 그의 사진은 피해의 서사나 이국적 풍경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대신 가족, 친구, 거리, 사소한 풍경을 통해 한 공동체의 현재를 보여줄 뿐이다. 거대한 담론을 설명하기보다 그 사이에서 살아가는 개개인의 시간을 녹여내는 것이다.
작가는 사진은 서구에서 발명된 매체이지만 이야기 전통을 가진 칼라알릿 문화와도 자연스럽게 맞닿는다고 여긴다. 글로 기록된 역사보다 이야기로 전해진 기억이 더 오래 남는 공동체에서 언어 없이 읽히는 이미지는 또 다른 서사의 장이 된다. 사진은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보는 이의 경험과 만나며 더욱 확장된다.
From the series, Porcelain Souls, 2018, photograph. © the artist. Courtesy the artist and Wilson Saplana Gallery, Copenhagen
결국 storch의 작업은 한 작가의 고향 서사를 넘어 사진이라는 매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사라질 수 있는 시간을 붙잡고 현재의 시선으로 기억을 재배열한다. 기계적 장치로 시작된 매체가 감정을 저장하고 불러낼 수 있는데에는 시간과 감정, 관계와 장소라는 하나의 서사가 응축되어 있는 행성적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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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협회 아이테르 [ AITHER ] 부산전시관
문화예술기획
아이테르 AITHER
부산 갤러리/전시관
- 문화예술기획업
주소: (48737)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로 65번길 21
주차: 진시장 공영주차장
서비스 운영시간: 월-토 10:00~18:00
연락처: 051-977-5272 | sck02145@naver.com | https://aither.kr/
팩스: 0504-322-2379
인스타그램: @aither.kr
유튜브: https://www.youtube.com/@AITHERART
[시설 안내]
4층, 전시 공간
5층, 라운지
6층, 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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