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üneş Terkol, Epipe, installation view, 2026. Courtesy of e-flux.
최근 전시장에서는 기록, 증언, 인터뷰, 문서, 데이터처럼 아카이브의 형식을 전면에 내세운 작업을 어렵지 않게 만난다. 튀르키예 Salt Galata에서 열린 귀네슈 테르콜의 《Epipe》와 오누르 괴크멘의 《Subsoil》도 그런 흐름 안에 있다. 하나는 가족의 구술사와 이주 서사를 직물, 드로잉, 영상으로 엮고, 다른 하나는 체르노빌 이후 방사능 오염 사건을 과학 보고서와 언론 이미지의 관점 속에서 다시 구성한다. 두 전시는 모두 자료를 모으고, 증언을 기록하고, 그것들을 한 공간 안에 배열한다. 하지만 이런 아카이빙식의 전시들은 그것은 단순한 보관에 그치기보다 배열의 방식으로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려는 시도에 가깝다.
여기서 중요한 건 자료의 양이 얼마나 많은가가 아니라, 그것을 누가 어떤 관점으로 엮는가이다. 아카이브는 더 이상 중립적인 저장소가 아니다. 이미 선택과 배치, 강조와 생략이 개입된 하나의 서사 장치다. 관객은 자료를 차례로 읽어가며 정보를 이해한다기보다, 그 배열 속에서 어떤 질문을 떠올리게 된다. 의미는 자료들 사이에서 자동으로 생겨난다기보다, 그것을 조직한 예술가의 문제의식이 관객의 생각을 건드리는 순간에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형식을 충분히 비판적으로 보고 있을까. 아니면 이미 자연스럽게 ‘요즘 예술은 이런가보다’ 하고 받아들이고 있는 걸까. 아카이빙 전시는 종종 역사적 중요성이나 윤리적 당위성을 앞세운다. 그래서 ‘기록한다’는 행위는 쉽게 의심받지 않는다. 하지만 기록이 곧 예술이 되는 지점은 어디일까?


박현기, 도시를 통과하다, 1981. Courtesy of e-flux.
1981년 박현기의 작업 《도시를 통과하다》는 이 질문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보여준다. 그는 비디오를 사용했지만, 그것을 단순한 기록 장치로 두지 않았다. 《도시를 통과하다》에서 거울을 붙인 인공 돌은 도시를 비추면서 동시에 그것을 낯설게 만든다. 사람들이 그 오브제와 마주하고, 만지고, 둘러싸는 장면은 갤러리에서 실시간으로 송출되었다. 그 화면 속에는 학생, 직장인, 운전기사 같은 도시의 구성원들이 그대로 드러난다. 중요한 건 이것이 단순한 시각적 효과가 아니라는 점이다.
1980년 광주 이후 군사정권이 집권하던 시기, 텔레비전은 국가가 통제하는 이미지의 통로였다. 서로 다른 사건들은 뉴스 화면 안에서 비슷한 톤으로 배열되며, 정치적 폭력과 일상적 장면이 같은 형식으로 소비되었다. 텔레비전은 복잡한 현실을 하나의 연속된 흐름으로 정리하며 감각을 무디게 만들었다. 반면 박현기의 거울-스크린은 그 흐름을 교란한다. 그것은 통제된 방송이 아니라, 현재-여기의 도시를 즉각적으로 반사한다. 사람들은 단순한 관람자가 아니라 화면 안으로 들어오는 존재가 된다. 현장에서 그 돌을 마주했던 이들에게 그것은 하나의 이미지가 아니라, 자신의 몸이 개입된 사건이었다.
하지만 2025년 11월 뉴욕 갤러리 현대에서 전시된 그의 같은 전시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그 사건의 기록 영상과 사진이다. 이 자료들은 ‘화이트 큐브’라 불리는 전시 공간 안에 놓인다. 창문 없이 흰 벽으로 둘러싸인 이 공간은 외부의 사회적 맥락을 지운 채 작품을 고립시킨다. 그 안에서 《도시를 통과하다》는 하나의 역사적 사례, 혹은 한국 비디오아트의 중요한 장면으로 읽힌다. 우리는 화면 속 사람들과 물리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실시간으로 송출되던 피드백의 긴장감 대신, 이미 끝난 사건을 되돌아보는 시점에 서게 된다.
이 차이는 단순히 시간의 거리만이 아니다. 당시의 관객은 예기치 못한 장소에서 그 돌을 마주했고, 자신의 몸이 화면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을 경험했다. 지금의 관객은 편집된 기록을 통해 그 상황을 이해한다. 하나는 사건 속에 포함되는 경험에 가깝고, 다른 하나는 사건을 해석하는 위치에 가깝다. 군사정권 아래에서 실시간으로 증식하던 얼굴들의 이미지가 잠재적으로 품고 있었던 정치적 긴장은, 이제 아카이브 안에서 미술사적 의미로 정리된다. 급진성은 설명 가능한 과거가 되고, 현장의 감각은 분석의 대상이 된다. 그 당시의 시대상과 현재의 시간을 무대로 했던 전시가 시간적 무대가 바뀌는 것으로 변화되는 것을 보게된다.
귀네슈 테르콜 과오누르 괴크멘의 두 전시도 이 지점과 겹친다. 이주, 환경, 제도, 집단 기억처럼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문제를 다루지만, 그것은 잘 편집된 아카이브의 형식 안에 정리되어 있다. 우리는 그 앞에서 당사자가 되기보다, 자료를 읽는 관람자가 된다. 분명 생각하게 만들지만, 그 생각은 어느 정도 안전한 거리 위에서 이루어진다.
그럼에도 이런 형식이 무의미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것은 예술이 무엇인지 다시 묻게 만든다. 예술은 완전히 새로운 형식을 발명해야 하는가. 아니면 이미 존재하는 기록을 다른 방식으로 배열하는 것도 창작인가. 분명한 건, 우리는 이제 기록을 예술로 읽는 데 꽤 익숙해졌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아카이빙은 하나의 장르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장르가 되는 순간, 그것은 또 다른 관습이 된다. 우리는 아카이빙을 예술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아니면 그 과정속에 있는걸까.
<References>
¹ “Güneş Terkol: Epipe / Onur Gökmen: Subsoil,” e-flux Announcements, accessed February 11, 2026, https://www.e-flux.com/announcements/6785449/g-ne-terkolepipeonur-g-kmensubsoil
² “Park Hyunki’s Pass Through the City,” e-flux Criticism, accessed February 11, 2026, https://www.e-flux.com/criticism/6782379/park-hyunki-s-pass-through-the-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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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협회 아이테르 [ AITHER ] 부산전시관
문화예술기획
아이테르 AITHER
부산 갤러리/전시관
- 문화예술기획업
주소: (48737)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로 65번길 21
주차: 진시장 공영주차장
서비스 운영시간: 월-토 10:00~18:00
연락처: 051-977-5272 | sck02145@naver.com | https://aither.kr/
팩스: 0504-322-2379
인스타그램: @aither.kr
유튜브: https://www.youtube.com/@AITHERART
[시설 안내]
4층, 전시 공간
5층, 라운지
6층, 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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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전시장에서는 기록, 증언, 인터뷰, 문서, 데이터처럼 아카이브의 형식을 전면에 내세운 작업을 어렵지 않게 만난다. 튀르키예 Salt Galata에서 열린 귀네슈 테르콜의 《Epipe》와 오누르 괴크멘의 《Subsoil》도 그런 흐름 안에 있다. 하나는 가족의 구술사와 이주 서사를 직물, 드로잉, 영상으로 엮고, 다른 하나는 체르노빌 이후 방사능 오염 사건을 과학 보고서와 언론 이미지의 관점 속에서 다시 구성한다. 두 전시는 모두 자료를 모으고, 증언을 기록하고, 그것들을 한 공간 안에 배열한다. 하지만 이런 아카이빙식의 전시들은 그것은 단순한 보관에 그치기보다 배열의 방식으로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려는 시도에 가깝다.
여기서 중요한 건 자료의 양이 얼마나 많은가가 아니라, 그것을 누가 어떤 관점으로 엮는가이다. 아카이브는 더 이상 중립적인 저장소가 아니다. 이미 선택과 배치, 강조와 생략이 개입된 하나의 서사 장치다. 관객은 자료를 차례로 읽어가며 정보를 이해한다기보다, 그 배열 속에서 어떤 질문을 떠올리게 된다. 의미는 자료들 사이에서 자동으로 생겨난다기보다, 그것을 조직한 예술가의 문제의식이 관객의 생각을 건드리는 순간에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형식을 충분히 비판적으로 보고 있을까. 아니면 이미 자연스럽게 ‘요즘 예술은 이런가보다’ 하고 받아들이고 있는 걸까. 아카이빙 전시는 종종 역사적 중요성이나 윤리적 당위성을 앞세운다. 그래서 ‘기록한다’는 행위는 쉽게 의심받지 않는다. 하지만 기록이 곧 예술이 되는 지점은 어디일까?
1981년 박현기의 작업 《도시를 통과하다》는 이 질문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보여준다. 그는 비디오를 사용했지만, 그것을 단순한 기록 장치로 두지 않았다. 《도시를 통과하다》에서 거울을 붙인 인공 돌은 도시를 비추면서 동시에 그것을 낯설게 만든다. 사람들이 그 오브제와 마주하고, 만지고, 둘러싸는 장면은 갤러리에서 실시간으로 송출되었다. 그 화면 속에는 학생, 직장인, 운전기사 같은 도시의 구성원들이 그대로 드러난다. 중요한 건 이것이 단순한 시각적 효과가 아니라는 점이다.
1980년 광주 이후 군사정권이 집권하던 시기, 텔레비전은 국가가 통제하는 이미지의 통로였다. 서로 다른 사건들은 뉴스 화면 안에서 비슷한 톤으로 배열되며, 정치적 폭력과 일상적 장면이 같은 형식으로 소비되었다. 텔레비전은 복잡한 현실을 하나의 연속된 흐름으로 정리하며 감각을 무디게 만들었다. 반면 박현기의 거울-스크린은 그 흐름을 교란한다. 그것은 통제된 방송이 아니라, 현재-여기의 도시를 즉각적으로 반사한다. 사람들은 단순한 관람자가 아니라 화면 안으로 들어오는 존재가 된다. 현장에서 그 돌을 마주했던 이들에게 그것은 하나의 이미지가 아니라, 자신의 몸이 개입된 사건이었다.
하지만 2025년 11월 뉴욕 갤러리 현대에서 전시된 그의 같은 전시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그 사건의 기록 영상과 사진이다. 이 자료들은 ‘화이트 큐브’라 불리는 전시 공간 안에 놓인다. 창문 없이 흰 벽으로 둘러싸인 이 공간은 외부의 사회적 맥락을 지운 채 작품을 고립시킨다. 그 안에서 《도시를 통과하다》는 하나의 역사적 사례, 혹은 한국 비디오아트의 중요한 장면으로 읽힌다. 우리는 화면 속 사람들과 물리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실시간으로 송출되던 피드백의 긴장감 대신, 이미 끝난 사건을 되돌아보는 시점에 서게 된다.
이 차이는 단순히 시간의 거리만이 아니다. 당시의 관객은 예기치 못한 장소에서 그 돌을 마주했고, 자신의 몸이 화면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을 경험했다. 지금의 관객은 편집된 기록을 통해 그 상황을 이해한다. 하나는 사건 속에 포함되는 경험에 가깝고, 다른 하나는 사건을 해석하는 위치에 가깝다. 군사정권 아래에서 실시간으로 증식하던 얼굴들의 이미지가 잠재적으로 품고 있었던 정치적 긴장은, 이제 아카이브 안에서 미술사적 의미로 정리된다. 급진성은 설명 가능한 과거가 되고, 현장의 감각은 분석의 대상이 된다. 그 당시의 시대상과 현재의 시간을 무대로 했던 전시가 시간적 무대가 바뀌는 것으로 변화되는 것을 보게된다.
귀네슈 테르콜 과오누르 괴크멘의 두 전시도 이 지점과 겹친다. 이주, 환경, 제도, 집단 기억처럼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문제를 다루지만, 그것은 잘 편집된 아카이브의 형식 안에 정리되어 있다. 우리는 그 앞에서 당사자가 되기보다, 자료를 읽는 관람자가 된다. 분명 생각하게 만들지만, 그 생각은 어느 정도 안전한 거리 위에서 이루어진다.
그럼에도 이런 형식이 무의미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것은 예술이 무엇인지 다시 묻게 만든다. 예술은 완전히 새로운 형식을 발명해야 하는가. 아니면 이미 존재하는 기록을 다른 방식으로 배열하는 것도 창작인가. 분명한 건, 우리는 이제 기록을 예술로 읽는 데 꽤 익숙해졌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아카이빙은 하나의 장르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장르가 되는 순간, 그것은 또 다른 관습이 된다. 우리는 아카이빙을 예술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아니면 그 과정속에 있는걸까.
<References>
¹ “Güneş Terkol: Epipe / Onur Gökmen: Subsoil,” e-flux Announcements, accessed February 11, 2026, https://www.e-flux.com/announcements/6785449/g-ne-terkolepipeonur-g-kmensubsoil
² “Park Hyunki’s Pass Through the City,” e-flux Criticism, accessed February 11, 2026, https://www.e-flux.com/criticism/6782379/park-hyunki-s-pass-through-the-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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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협회 아이테르 [ AITHER ] 부산전시관
문화예술기획
아이테르 AITHER
부산 갤러리/전시관
- 문화예술기획업
주소: (48737)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로 65번길 21
주차: 진시장 공영주차장
서비스 운영시간: 월-토 10:00~18:00
연락처: 051-977-5272 | sck02145@naver.com | https://aither.kr/
팩스: 0504-322-2379
인스타그램: @aither.kr
유튜브: https://www.youtube.com/@AITHERART
[시설 안내]
4층, 전시 공간
5층, 라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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