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사우스] 글로벌 사우스 이후: 누가 다음 담론을 설계하는가

Renée Z
2026-04-29
조회수 266

포용은 언제부터 구조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을까.

더 많은 대표성, 더 많은 참여, 더 많은 인정. 이 언어들은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포용의제스처가 구조를 건드리지 않은 채 불평등의 가시성만 관리할 때, 그것은 불평등을 해소하는 기술인가, 아님불평등을 보이지 않게 만드는 기술인가. 글로벌 사우스 담론이 오늘날 직면할 한계는 바로 이 지점이다. 담론은 포용을 요청해왔고, 제도는 그 요청에 응답해왔다. 그런데 응답이 누적될수록 구조 자체를 문제로삼는 목소리는 오히려 줄어든다. 이미 충분히 포용적이지 않느냐는 반문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I. “글로벌 사우스”는 누구의 언어인가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라는 용어는 중립적으로 들린다. 지리적 위치도, 경제적 지표도 아닌, 역사적주변화의 경험을 공유하는 집합적 정체성의 표현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용어가 국제 문화정책 담론에서본격적으로 유통되기 시작한 경로를 추적해보면, 그 출발점은 상당 부분 UNESCO를 비롯한 서구 주도국제기구들의 문서 언어에 있다.

Park(2023)은 UNESCO 문화정책 프레임워크에 내재한 모호성이 전략적으로 가능한다고 분석한다. 193개회원국의 동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포용적이고 해석의 여지를 남기는 언어가 선택된다는 것이다. 이 분석을글로벌 사우스 담론에 적용하면 불편한 질문이 남는다. 글로벌 사우스를 하나의 담론으로 구성하는 프레임자체가 이미 특정한 권력 위치에서 설계된 것이라면, 그 담혼 안에서의 “대표성” 강화는 진정한자기결정인가, 아니면 이미 설정된 질서 안에서의 관리된 참여인가.

UNESCO(2022)의 《창의성을 위한 정책 재형성》이 문화를 글로벌 공공재로 규정할 때, 그 공공재의 기준을누가 정의하는가. “창의성”, “지속가능성”, “디지털 전환”이라는 언어가 보편적 프레임으로 제시될 때, 그것이특정 문화적 계보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명시되는가. 글로벌 사우스 담론의 핵심 한계는 바로여기서 시작된다. 그것은 기존 프레임의 포용 대상이지, 프레임의 설계자가 아니었다.


II. 포용의 역설: 가시성 관리로서의 대표성

그렇다면 포용은 무엇을 하는가.

국제 미술 기관들이 의도적으로 글로벌 사우스 작가들에게 더 많은 전시 기회를 부여하거나, 심사 과정에서지역적 다양성을 할당 기준으로 삼을 때, 표면적으로는 평등을 향한 움직임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 할당의기준을 누가 정하는가. 어떤 작업이 “글로벌 사우스의 목소리”로 선별되는가를 결정하는 심미적 언어는여전히 기존 제도의 언어다. 선별된 작가는 제도 안으로 진입하지만, 제도의 언어는 바뀌지 않는다.

K-콘텐츠의 사례는 이 역설을 다른 각도에서 보여준다. BTS와 봉준호 이후 국제 문화 기관들이 한국 작품에주목하기 시작했을 때, 그 주목은 한국 문화의 가치를 재발견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주목의 상당부분은 이미 대중적으로 검증된 것을 사후적으로 인정하는 것이었다. 제도가 흐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흐름이 제도를 끌어당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주목이 제도화되는 순간, 즉 “한국 작품을 더포함해야 한다”는 당위가 할당의 형태로 굳어지는 순간, 그것은 새로운 비대칭을 만든다. 한국이라는카테고리로 선별된 작업은 그 카테고리의 대표성을 수행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고, 카테고리에 포함되지 못한작업은 이중으로 배제된다.

이것이 포용의 역설이다. 포용은 구조를 바꾸지 않는다. 포용은 구조 안에 자리를 만든다. 그리고 그 자리의수가 늘어날수록, 구조 자체를 문제로 삼는 목소리는 오히려 줄어든다.


III. 이미 일어나고 있는 것들

그러나 지금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이 구조가 다른 방식으로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나이지리아의 아프로비트는 아프리카 문화를 “보존”해야 한다는 UNESCO식 담론의 언어 없이 전 세계스트리밍 차트를 점령했다. 버나 보이, 위즈키드의 음악은 국제 기관의 인정을 기다리지 않았다. K-콘텐츠도마찬가지다. 흐름이 먼저 만들어졌고, 제도가 뒤따랐다. Rosetia(2026)가 창의적 플레이스메이킹 연구의 지리적편향을 지식의 공백으로 지적하지만, 그 공백은 단순히 연구가 덜 된 것이 아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와라틴아메리카의 도시들은 서구 이론의 검증을 기다리지 않고 이미 작동하고 있다.

이 균열들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들이 포용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정을 요청하지 않았다. 그냥작동했다.


IV. 다음 담론의 윤곽

균열은 이미 존재한다. 질문은 그 균열이 어디로 이어질 것인가가 아니라, 어디로 이어져야 하는 것이다.

첫 번째로 제안하고 싶은 방향은 “포용”에서 “설계”로의 이동이다. 포용을 요청하는 행위는 이미 포용하는주체의 권위를 전제한다. 다음 담론은 이 전제 자체를 거부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더 많은 자리를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자리를 만드는 방식 자체를 설계하는 위치로 이동하는 것. 2023년 인도의 G20 의장국수임 당시 문화를 외교의 핵심 의제로 설정한 방식, 한국이 ODA를 통해 자국의 문화정책 모델을아시아·아프리카 국가들에 전수하는 방식은 완전한 답이 아니다. 글로벌 사우스 내부에서 또 다른 중심이 또다른 주변을 만드는 구조의 반복 가능성을 이 시도들도 품고 있다. 그러나 포용을 기다리는 것보다 설계를시도하는 것이 더 정직한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SDGs 연계 압력에 저항하는 방향이다. UNESCO(2022)와 UNESCO(2024) 모두 문화와 SDGs의연계를 강조하지만, 이 연계가 문화를 다른 목표의 수단으로 환원하는 방향으로 작동할 때 문화의 내재적가치는 지워진다. Park(2023)이 지적하듯 프레임워크의 모호성은 권력을 가진 행위자가 자신에게 유리한방향으로 해석하는 공간으로 허용한다. 지표화는 중요한 것을 측정하기보다 측정 가능한 것을 중요하게만드는 역설을 초래한다. 다음 담론은 측정되지 않는 것의 가치를 주장하는 언어를 개발해야 한다. 이것은단순한 반발이 아니라 서구적 실증주의 인식론 자체에 대한 문화적 도전이 될 수 있다.

세 번째는 단일한 “글로벌 사우스”라는 범주를 내부에서 해체하는 방향이다. 나이지리아와 한국은 같은글로벌 사우스인가. 브라질과 방글라데시는 같은 문화적 위치에 있는가. 이 범주의 동질화 자체가 중심부의시선이다. 주변부는 멀리서 보면 하나의 덩어리로 보인다. 글로벌 사우스가 다음 담론의 주체가 되려면, 스스로를 단일한 범주로 묶는 언어부터 의심해야 한다. ASEAN 문화정책 네트워크, 아프리카 연합의 문화아젠다, 라틴아메리카의 이베로아메리카나 협력 체계처럼 구체적인 지역성과 역사성을 가진 복수의담론들로 분화하는 것이 담론의 약화가 아니라 담론의 정교화라고 생각한다.


V. 다음 담론의 실제 조건

그렇다면 “글로벌 사우스” 그 이후의 담론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그것은 더 이상 대표성의 확대만으로는 이변화를 설명하기 어렵다. 핵심은 누가 더 많이 등장하는가가 아니라, 누가 제도를 설계하고 기준을 만들며해석의 언어를 갖는가에 있다.

UNESCO(2022)가 문화를 글로벌 공공재로 규정하며 문화 거버넌스, 창의경제, 디지털 환경, 지속가능성을하나의 정책 틀로 제시한 것은 문화가 상징의 영역을 넘어 운영과 관리의 대상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UNESCO(2024)가 문화예술교육을 권리 기반의 통합 체계로 제시한 것 역시 같은 흐름에 있다. 문화는 무엇을보여줄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구조 속에서 지속될 것인가의 문제로 옮겨가고 있다.

이 변화는 글로벌 사우스 담론에도 직접 연결된다. 기존 담론이 제도 바깥의 주체들을 안으로 들이는 데집중했다면, 다음 단계의 쟁점은 진입 이후의 조건이다. 누군가를 초대하는 것과 초대의 방식을 바꾸는 것은다르다. 전자가 대표성을 확대라면, 후자는 권력 구조의 조정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담론은 포함의 숫자보다포함이 작동하는 규칙 자체를 더 중요하게 다룰 가능성이 크다.

특히 중요한 것은 측정의 문제다. Park(2023)이 지적하듯 UNESCO 문화정책 프레임워크는 개념적, 규범적,실행적 모호성을 함께 가진다. 이 모호성은 각국이 자국 상황에 맞게 정책을 수용하도록 돕지만, 동시에성과와 책임의 기준을 흐리게 만든다. 글로벌 사우스 담론도 비슷한 한계를 반복해왔다. 무엇이 실제 구조변화인지, 무엇이 단순한 가시성 확대인지 구분하는 기준이 충분히 정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음담론은 더 많은 참여를 요구하는 수준을 넘어, 어떤 변화가 구조를 바꾸는지 판단하는 언어를 필요로 한다.

이 지점에서 번역은 핵심 문제가 된다. 번역은 단순한 언어 전달이 아니다. 국제기구의 추상적 규범을 지역현실에 적용하고, 지역의 경험을 다시 제도 언어로 자꾸는 과정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는 언제나 선택과삭제가 따른다. 포용, 다양성, 지속가능성 같은 개념은 보편적 가치처럼 보이지만, 실제 집행 과정에서는 각지역의 행정 구조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갖는다. 어떤 곳에서는 문화정책이 교육정책이되고, 다른 곳에서는 관광정책이나 도시재생 정책의 하위 범주가 된다. 이 과정에서 누가 의미를 유지하고누가 의미를 잃는지가 드러난다.

따라서 다음 담론은 번역을 중립적 기술이 아니라 권력 관계의 문제로 다룰 가능성이 크다. 번역권을 가진행위자가 해석권도 갖기 때문이다. 글로벌 사우스가 담론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가 되려면, 외부에서 제시된언어를 수용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언어 자체를 수정하고 재배치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유지의 문제도 중요하다. 문화정책은 종종 혁신, 창의, 전환 같은 어휘를 앞세우지만, 많은 지역 공동체가실제로 필요로 하는 것은 급진적 혁신보다 지속 가능한 유지다. UNESCO(2024)가 문화예술교육에서 학교, 지역사회, 예술가, 공공기관의 협력을 강조한 것은 문화가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장기적 재생산 구조임을보여준다. 글로벌 사우스 이후의 담론 역시 화려한 상징보다 공동체를 지탱하는 최소한 문화 인프라에 더 큰비중을 둘 가능성이 높다.


VI. 결론: 글로벌 사우스는 종료되는가, 재구성되는가

“글로벌 사우스 이후”라는 표현은 이 개념의 소멸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글로벌 사우스가 더 이상 피해서사나 대표성 정치만으로 유지되기 어려운 단계에 들어섰음을 뜻한다. 이제 핵심은 더 많은 자리를 얻는것이 아니라, 그 자리가 어떤 규칙 속에서 배치되는가에 있다. 더 많은 가시성이 아니라 해석 권한과 제도설계 권한의 분배가 중심 문제가 된다.

본 논의가 제시하는 바는, 글로벌 사우스 담론의 다음 단계는 서구 중심성 비판의 반복에 머물지 않는다. 누가 문화 정책의 기준을 정하는가, 누가 공공재의 의미를 정의하는가, 누가 성과를 측정하는가, 누가 지역경험을 번역하는가를 묻는 단계로 이동한다. UNESCO의 최근 프레임워크가 문화를 공공재로, 교육을 권리로, 다양성을 정책 목표로 제시하는 동안에도, Park(2023)이 분석했듯, 그 언어의 모호성은 여전히 권력 있는행위자에게 넓은 해석 공간을 제공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다음 담론의 필요성이 생긴다.

따라서 글로벌 사우스 이후의 담론은 세 가지 이동으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포용에서 설계로의 이동. 둘째, 대표성에서 인프라로의 이동. 셋째, 보편 언어에서 번역 권력으로의 이동. 이는 따로 떨어진 변화가 아닌하나의 구조적 전환이다. 제도가 누구를 보이게 하는가를 넘어, 누구를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가를 묻는 순간담론의 방향은 달라진다. 결국 글로벌 사우스의 다음 담론은 특정 지역이 새로운 중심이 되는 문제보다도, 그중심이 만들어지는 방식 자체를 다시 묻는 문제에 가깝다. 이 전환이 본격화될 때, 글로벌 사우스는 지리적범주를 넘어 세계 문화 질서를 읽는 핵심 개념으로 다시 정의될 것이다.

 

참고문헌

Berger, John. Ways of Seeing. London: Penguin Books, 1972.

Park, Soojeong. "The Ambivalence in the Ambiguity of UNESCO's Cultural Policy Framework." International Journal of Cultural Policy 29, no. 5 (2023): 673–688.

Ramli, Nor Atiqah, and Norsidah Ujang. "An Overview of Creative Placemaking as an Enabler for Sustainable Urban Regeneration." IOP Conference Series: Earth and Environmental Science 409 (2020): 012019.

Rosetia, Arindya. "A Systematic Literature Review of Creative Placemaking." Journal of Architectural Research and Design Studies 5, no. 1 (2026): 45–60.

Tan, Soo Kee. "A Creative Place-Making Framework: Story Creation Approach." Sustainable Development 31, no. 4 (2023): 2105–2117.

UNESCO. Re|Shaping Policies for Creativity: Addressing Culture as a Global Public Good. Paris: UNESCO Publishing, 2022.

UNESCO. Framework for Culture and Arts Education. Paris: UNESCO,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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