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사우스] 상자 그리고 벌어진 틈과 빛...

이소연
2026-04-29
조회수 266

- 상자의 안과 밖 그리고 벌어진 틈과 빛...

어두운 상자 안, 벌어진 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 빛은 우리에게 처음 색감이란 것을 인식하게 했다. 우린 그제야 주변을 다시 바라보기 시작한다. 흑백으로 인식되던 세계는, 실은 수 많은 색으로 뒤덮여 있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색으로 물들여져 가는 주변을 마주한 순간, 이 갑작스러운 다채로움은 마치 일종의 감각적 혼란, 혹은 환각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 빛은 머릿수에 비해 지나치게 부족하다. 제한된 틈으로 들어온 빛은 상자 전체를 환하게 비추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 결핍은 우리를 자연스럽게 틈 바깥으로 향하게 만든다. 그 너머의 세계는 다소 낯설지만 매혹적이며, 동시에 소유하고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더 나아가 그것은 ‘가져올 수 있는 것’, ‘가져도 되는 것’으로 전환된다. 틈은 점점 넓어지고, 우리는 상자 밖의 것들을 하나둘 내부로 끌어들인다.

그러나 이미 채워진 상자는 터질 생각이 없다. 오히려 더 많은 것으로 채워질 뿐이다. 그렇다면 의문이 남겨진다. 이 미어터지는 공간 속에서, 과연 누가 그 아래에 깔려 죽어나가고 있는가. 그리고 대체 누가 그 위에서 압도하고 있는가.

어쩌면 문제는 ‘가져오는 방식’ 뿐만아니라,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구조 자체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상자 밖의 것을 끌어들이는 대신, 애초에 그 상자를 찢어버리는 것이 더 근본적인 선택은 아니었는가?


- 글로벌 사우스, 틈에서 시작된 시선

글로벌 사우스 담론은 바로 이‘틈’에서 시작된 시선이었다. 그것은 기존의 단일한 세계 인식에 균열을 내고, 그동안 보이지 않던 다양한 역사와 경험을 드러내는 역할을 했다. 이 그럴듯한 개념은 식민주의와 자본주의, 그리고 지식 권력 구조 속에서 주변화된 위치를 가리킨다. 다시 말해, 글로벌 사우스는 ‘어디에 있는가’가 아닌 ‘어떤 조건 속에 놓여 있는가’를 설명하는 언어였다. 이러한 점에서 글로벌 사우스는 세계를 다시 보게 만드는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그것은 기존의 중심 중심적인 시선을 흔들고, 주변으로 밀려났던 목소리들을 가시화했다. 그러나 동시에, 이 담론은 또 다른 방식으로 구조 안에 가두기 시작한다.


- 소비되는 타자, 반복되는 구조

글로벌 사우스는 차이를 드러내기 위한 개념이었지만, 점차 차이를 소비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서로 다른 역사와 맥락을 가진 지역들은 하나의 범주로 묶이며, ‘비서구’, ‘주변’, ‘타자’라는 이미지로 재구성된다. 이는 마치 특정한 전형을 상정해 놓고 그것에 맞는 존재를 찾으려는 시도와 닮아 있다. 이 과정에서 다양성은 강조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일정한 틀 안에서 반복된다. 글로벌 사우스는 더 이상 단순히 설명의 언어가 아니라, 전시되고 소비되는 대상이 된다. 예술과 학문, 미디어 속에서 이 개념은 종종 ‘새로운 것’, ‘이국적인 것’으로 포장되며, 기존 구조를 위협하기보다 오히려 강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비엔날레도 이제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기보다 억압받는 존재들을 ‘시각적 소비’ 대상으로 전유한다. 결국 우리는 작품을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도 없고, 압력에 짖눌린 채로 작품을 외우게 되는 것이다. 결국 문제는 명확해진다. 우리는 상자 밖의 것을 가져오고 있었지만, 그 상자 자체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구조는 변하지 않은 채, 내용만 교체되고 있었던 것이다.


- 글로벌 사우스 이후, 범주에서 관계로

이 지점에서 다음 질문이 등장한다. 글로벌 사우스 이후, 우리는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

앞으로의 담론은 범주화 자체를 의심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크다. 세계를 중심과 주변으로 나누는 대신, 그것들 사이의 관계와 흐름에 주목하는 방식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위치가 아니라 연결이다. 한 개인은 동시에 여러 구조 속에 놓이며, 하나의 정체성으로 고정될 수 없다. 또한 ‘다중 중심’이라는 개념 역시 중요한 대안이 된다. 하나의 중심이 존재하고 나머지가 그 주변에 위치하는 구조는 주변을 주변으로 남겨두기 마련이다. 이 대신, 다양한 중심들이 동시에 존재하며 서로 교차하고 충돌하는 세계를 인정해야한다. 이 구조 안에서는 더 이상 ‘주변’이라는 개념이 고정되지 않아야 한다.

예술의 영역에서도 이러한 변화는 분명하게 나타날 것이다. 미래의 전시는 더 이상 국가나 지역을 기준으로 구성되지 않고, 특정한 경험과 사건, 감각을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이주, 노동, 신체, 기후와 같은 문제들은 특정 지역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위치에서 반복되는 공통의 조건으로 다뤄질 것이다.


- 상자를 찢는다는 것

글로벌 사우스는 분명 중요한 시도였다. 그것은 세계를 다시 보게 만든 하나의 틈이었고, 기존 질서에 균열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그 틈은 완전한 전환으로 이어지지 못한 채, 또 다른 방식으로 흡수되고 반복되었다.

이제 중요한 것은 더 많은 것을 끌어들이는 일이 아니라, 그 구조 자체를 다시 질문하는 일이다. 더 이상 어디에 속하는가를 묻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연결되고 작동하는가를 묻는 방향으로의 전환이 요구된다.

그렇다면 상자를 찢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단순히 새로운 범주를 만드는 일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우리는 그 이후를 아직 명확히 알지 못한다. 상자가 사라진 자리에는 또 다른 질서가 생겨날 수도 있고, 혹은 이전과 전혀 다른 방식의 관계들이 형성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결과를 미리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하나의 틀로 세계를 고정하지 않으려는 태도일 것이다. 결국 글로벌 사우스 이후의 담론은 어떤 이름으로 정의되기보다, 끊임없이 재구성되고 흔들리는 상태로 존재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 빌어먹을 상자를 없앨 것인가? 아님 그것 조차 부여잡아야 하나?어쩌면 우리는 지금, 새로운 세계를 설명할 언어를 찾고 있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하나의 언어로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과 마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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