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사우스] 국가 큐레토리얼을 거부하는 기관 - 탈국가 수행이라는 가장 정치적인 몸짓에 대하여

리자공
2026-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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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큐레토리얼을 거부하는 기관

- 탈국가 수행이라는 가장 정치적인 몸짓에 대하여



비평 에세이 ①



1. 거부 : 국립현대미술관의 중립 수행

2013년 서울관 개관과 함께 국립현대미술관(MMCA)이 공식적으로 표방한 정체성은 선명하다. "글로벌 동시대 미술의 플랫폼." 이 문구는 하나의 존재 선언에 가깝다. 서울관은 국립기관이되 "국가"의 냄새를 최대한 지우는 방향으로 설계되었다. 건축적으로는 경복궁과 북촌 사이의 역사 지층 위에 자리하면서도, 프로그램적으로는 그 지층을 가능한 한 직접 호출하지 않으려 했다. 


해외 작가 초대전의 비중이 높아졌고, 전시 제목은 점점 더 영어와 추상 개념으로 채워졌다. 학예사들은 한국 현대미술의 역사를 연구하면서도, 공식 전시에서는 그것을 "한국적"이라는 언어로 직접 프레이밍하는 것을 회피했다.


이 회피가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님은 금방 드러난다. 기관이 코리안 큐레토리얼을 정면으로 선택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역사가 이미 보여주었다. 


1995년 광주비엔날레 1회가 "Beyond the Borders"를 표방하면서 동시에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 정책과 완벽하게 일치했을 때, 비판자들은 즉각 이를 국가 아젠다에 패배한  예술적 번역이라고 읽었다. 특히 예술 비평가 Lawrence Chua는 프리즈 기고에서 "국경을 넘자고 외친 비엔날레가 실은 국경을 더 정교하게 그어놓았다"고 썼다. 기관이 내셔널리티를 수행하는 순간, 그것은 국가의 연장으로 읽힌다. 그 독해를 피하고 싶다면 내셔널리티 자체를 무대에서 지워야 한다. 이것이 거부의 첫 번째 논리다.

그러나 여기에 이미 함정이 있다. 내셔널리티를 지우는 행위 자체가 정치적 선택이다. 무엇을 전시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 어떤 언어를 쓰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 어떤 것을 배경 안으로 밀어넣기로 결정하는 것, 이 모든 부재는 적극적인 의미 생산의 행위다. 권력은 억압이 아닌 생산을 휘두른다. 정확히 이 지점이다. 반복하여 선택 하지 않은 부분만 오히려 강하게 발화된다. MMCA가 "우리는 동시대 미술을 위한 기관"이라고 말하는 순간, 그 발화는 "한국 미술"이라는 범주를 오히려 더 선명하게 소환한다. 거부는 부재를 통해 대상을 가시화하는 역설적 수행이다.


2. 이중 구속의 구조: 국가와 국제 사이

공공 미술기관이 처한 이중 구속은 재정적·제도적 생존 조건 자체에 내장된 구조다. MMCA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국립기관이다. 예산은 국가에서 나온다. 관장은 장관급 인사의 제청을 받아 임명된다. 기관의 물적 토대가 국가에 묶여 있다는 것은, 그 기관이 아무리 탈국가적 언어를 구사하더라도 국가의 자원으로 운영되는 기관임을 부정할 수 없다는 뜻이다.

동시에 기관은 국제적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 CIMAM(국제 현대미술관 협의회) 회원권, 해외 기관과의 협력 전시, 국제 비평 네트워크에서의 인용 가능성. 이 모든 것이 기관의 자본이다. 그런데 국제 아트월드에서 국립기관이 노골적인 국가주의 아젠다를 구사하면 즉각 신뢰를 잃는다. 2010년대 터키의 국립기관들이 에르도안 정권의 이슬람-민족주의 아젠다를 수행하면서 국제 네트워크에서 배제된 사례는 그 위험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의 공공기관들은 이 사례를 의식한다. 국가를 위해 일하되, 국가의 종처럼 보이면 안 된다는 역설이 모든 프로그래밍 결정에 작동한다.

이 구조를 가장 날카롭게 드러낸 사건이 2014년 광주비엔날레의 홍성담 작품 검열이다. 홍성담의 <세월 오월>은 세월호 참사와 5·18 민주화운동을 연결하는 회화였다. 광주비엔날레 집행부는 이 작품을 위성전시 <단 이슬-1980 이후>에서 철거했다. 비엔날레 재단의 공식 입장은 "작품이 정치적으로 특정 방향에 편향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5·18 민주항쟁을 기원으로 삼는 비엔날레가 국가폭력 비판을 검열했다는 사실은, 탈정치 수행이 얼마나 즉각적으로 정치적 행위가 되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기관이 "우리는 정치적이지 않다"고 말하는 바로 그 순간, 기관은 가장 정치적인 선택을 하고 있다.


3. 단색화 효과: 내셔널리티를 미학으로 번역하는 전략

공공기관이 코리안 큐레토리얼을 직접 수행하지 않으면서도 그 효과를 누리는 방식 중 가장 정교한 것이 이른바 "단색화 효과"다. 단색화의 국제화 과정은 이 전략의 원형을 보여준다.

단색화는 1970년대 한국 미술 현장에서 형성된 운동이다. 그 계보에 속하는 작가들  < 박서보, 정상화, 이우환, 하종현, 윤형근 > 은 수십 년 동안 국내에서 "한국적 추상"으로 논의되었지만, 이 범주화는 늘 긴장을 동반했다. "한국적"이라는 수식어는 지역주의의 낙인처럼 작동할 수 있었고, 작가들 스스로도 그 규정을 불편해했다. 이우환은 일본의 모노파(もの派)와의 연결을 강조했고, 박서보는 자신의 작업을 세계 미술의 맥락에서 위치 짓고자 했다.

단색화가 글로벌 아트마켓에서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10년대 초반, 갤러리현대, 학고재, PKM 등 민간 갤러리들이 해외 아트페어와 경매에 공격적으로 이 작품들을 내놓으면서부터였다. 국공립기관이 먼저 나선 것이 아니었다. 민간이 먼저 "코리안 미니멀리즘"이라는 언어로 포장해 국제 시장에 던졌고, 가격이 형성되고 비평적 관심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서야 MMCA를 비롯한 국공립기관이 단색화 관련 학술 세미나와 전시를 기획했다. 순서가 반대였다. 기관은 생산하지 않았다. 인준했다.

이 순서의 역전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기관이 내셔널리티를 직접 생산하지 않고 사후적으로 정전화(canonization)하는 방식으로 위험을 회피하면서도 효과를 취하는 전략이다. 기관은 "우리가 단색화를 한국 미술로 규정했다"고 말하지 않는 대신 "이미 국제적으로 평가받은 한국 작가들의 성취를 아카이브하고 연구한다"는 언어를 쓴다. 내셔널리티의 생산은 민간에게 위임하고, 기관은 그것을 학문적·역사적 언어로 번역해 수용한다. 이 과정에서 코리안 큐레토리얼의 낙인 리스크는 민간이 흡수하고, 기관은 그 결과물의 정당성만 취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전략이 내셔널리티를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한다는 점이다. 기관이 직접 "이것이 한국 미술이다"라고 외치는 것보다, 국제 시장과 비평 네트워크를 거쳐 걸러진 뒤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한국 미술"로 귀환하는 것이 훨씬 더 강력한 내셔널리티의 생산이다. 세계가 먼저 코리안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우리도 코리안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논리다. 이것은 식민지 엘리트의 자기 정체성 형성을 분석할 때 지적한 구조와 유사하다. 타자의 시선을 통해 자기를 발견한다는 역설.


4. 세계화 언어의 채택: 탈국가를 수행하는 국가

광주비엔날레의 역사는 이 역설의 가장 정교한 표본이다. 비엔날레는 1995년 출발할 때부터 탈국가적 언어를 전면에 내세웠다. "아시아 최초의 국제 현대미술 비엔날레"라는 수식어는 지역 정체성과 글로벌 야망을 동시에 담고 있었다. 그러나 이 야망이 실현된 맥락은 국가 정책의 맥락이었다. 김영삼 대통령의 1995년 신년사는 "세계화는 21세기 일류 국가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선언했고, 광주비엔날레는 이 세계화 기획의 문화적 날개였다.

탈국가를 수행하는 국가. 이것이 광주비엔날레가 구조적으로 처한 위치다. 비엔날레는 국가 파빌리온 시스템이라는 낡은 국제 전시 질서에 도전한다고 표방했다. 베니스 비엔날레의 국가관 체계를 비판하면서, 광주는 국가를 넘어서는 큐레토리얼 실천의 가능성을 실험했다. 그러나 그 실험의 재원은 광주시와 전라남도의 예산에서 나왔고, 비엔날레 재단의 이사장직은 광주시장이 맡았다. 탈국가는 국가 자원으로 수행되었다.

2018년 이후 김선정 예술감독 체제에서 이 구조는 더욱 복잡해졌다. 광주비엔날레 파빌리온 네트워크는 2023년 9개 기관에서 2024년 31개로 급팽창했다. 이 네트워크는 국제 기관들과의 연대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광주라는 지명이 국제 아트 네트워크의 노드로 기능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광주가 글로벌 아트 네트워크 안에서 의미를 가질수록, 그 의미는 한국의 민주화 역사와 광주 5·18이라는 내셔널 서사에 기대고 있다. 탈국가의 네트워크는 내셔널 서사 위에 부유한다.

2024년 15회 광주비엔날레는 니콜라스 부리오가 "판소리"를 테마로 기획했다. 판소리는 한국의 전통 음악극 형식이다. 서구 스타 큐레이터가 한국 전통 예술 형식을 글로벌 동시대 미술의 언어로 번역하는 이 선택은 표면적으로는 탈국가적 실천처럼 보인다. 외국인 큐레이터가 로컬 형식을 다루었으니 오리엔탈리즘의 혐의가 있지 않냐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선택은 정확히 기관이 원하는 것을 달성했다. 코리안 큐레토리얼의 낙인 없이, 한국적 내용이 국제 무대에서 발화된 것이다. 기관은 직접 "우리는 한국적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서구 큐레이터의 입을 빌려 "판소리는 21세기의 보편 언어"라고 말하게 했다. 이것이 가장 세련된 형태의 내셔널리티 수행이다.


5. 학예사의 몸은 기관 안에서 균열한다.

기관의 거부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종종 기관을 단일한 주체로 상정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그러나 기관은 균질하지 않다. 그 안에는 서로 다른 욕망과 판단을 가진 개인들이 있다. 학예사들은 그 균열의 지점이다.

MMCA의 학예사들은 대개 한국 현대미술사를 전공한 연구자들이다. 그들은 한국 미술의 역사를 발굴하고 재구성하는 것을 자신의 소명으로 여긴다. 그러나 기관의 공식 프로그래밍 방향은 "글로벌 동시대 미술"이다. 학예사들은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기관이 내보내야 한다고 판단하는 것 사이의 간극 속에서 일한다. 이 간극이 표면화되는 것이 학예 보고서와 실제 전시 사이의 거리, 연구 아카이브와 전시 프로그램 사이의 비대칭이다.

전 MMCA 학예연구관 출신의 박미화가 퇴직 후 민간 미술공간(글로벌세아 아트스페이스)에서 "한국현대회화 하이라이트: 모더니즘과 도전"을 기획한 것은 이 역설의 한 단면이다. 기관은 '한국 현대회화'를 전시할 수 있지만, 그것을 동시대적·비판적 기획언어로 전면화하기는 어렵다. 상설전의 형식을 빌리거나, 소장품 연대기 서술이라는 역사화의 틀 안에서만 '한국성'이 등장한다. 기관 밖, 민간 공간에서야 비로소 그 작업이 가능해진다. 학예사의 욕망은 기관의 경계를 넘어 민간으로 흘러나간다. 기관이 거부한 코리안 큐레토리얼은 그렇게 민간 공간에서 실현된다.

이 흐름은 일방적이지 않다. 민간에서 코리안 큐레토리얼을 실험하고 성과를 낸 학예사들은, 그 경력을 바탕으로 다시 기관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또는 기관의 외부 자문 역할을 맡아 기관의 프로그래밍에 영향을 미친다. 기관과 민간 사이의 인적 순환은 코리안 큐레토리얼이 기관 안으로 스며드는 또 다른 경로다. 직접적인 선언 없이, 사람을 통해.

기관 안의 또 다른 균열은 컬렉션이다. 기관이 수집한 작품들은 기관의 큐레토리얼 판단을 가장 직접적으로 표현한다. 그런데 MMCA의 컬렉션을 들여다보면, 기관이 전시 언어에서는 회피하는 "한국성"이 수집 판단에서는 분명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민중미술 작품들이 수집되고, 한국 근현대사의 맥락을 담은 작업들이 아카이브된다. 전시 언어와 수집 논리 사이의 이 비대칭이, 기관이 코리안 큐레토리얼을 완전히 거부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또 다른 증거다. 거부는 발화의 차원에서만 일어난다. 실천의 차원에서는 미묘하게 다른 일이 진행된다.


6. 블랙리스트와 역설: 거부가 개입을 부르는 구조

기관이 탈정치를 선언할수록 국가의 개입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역설은 박근혜 정부 시기의 블랙리스트 사태에서 가장 극적으로 드러났다. 블랙리스트는 2016년 말 폭로되었지만, 그 작동 기간은 2014년부터 2017년까지였다. 문화예술위원회, 영화진흥위원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 국가 문화 기관들이 정권에 비판적인 예술인들의 지원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이 목록에는 약 9,000명의 예술인과 단체가 포함되었다.

블랙리스트 사태가 드러낸 것은, 기관이 탈정치를 자처하는 동안 국가가 그 중립의 껍데기를 통해 정치적 개입을 실행했다는 사실이다. 기관의 학예사들은 지원 심사에서 정치적 기준이 개입하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많은 경우 조직의 논리에 따라 그것을 공개적으로 문제 삼지 않았다. 기관이 정치와의 거리를 강조할수록,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정치적 개입에 대한 저항 언어는 오히려 약해진다. "우리는 탈정치적 기관"이라는 명제는 내부 비판의 언어를 조직 문화 밖으로 밀어낸다.

블랙리스트 이후 문재인 정부는 "예술의 자유"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문화 정책을 전환했다. 그러나 이 전환 자체도 정치적 판단이었다. 기관의 자율성을 확대하는 것처럼 보이는 정책이 실은 다른 방향의 정치적 개입이었다. 기관은 어느 정권하에서도 완전한 자율성을 가진 적이 없다. 자율성의 확대와 축소 모두 정치적 결정이다. 거부의 언어가 가장 순수하게 들릴 때조차, 그 언어는 특정 정치적 조건 위에서 발화된다.

이 구조적 취약성이 기관으로 하여금 코리안 큐레토리얼을 더욱 조심스럽게 다루게 만든다. 내셔널리티를 전면화하면 정치적 도구로 동원될 위험이 있고, 내셔널리티를 회피하면 그 중립성 뒤에서 국가가 개입할 공간이 생긴다. 기관은 어느 방향을 선택해도 정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이것이 거부의 더 깊은 구조다. 거부를  통한 탈출은 실패하고  다른 방식으로 연루된다.


7. MMCA의 국제화 전략과 내셔널리티의 귀환

2024년 한국 헤럴드와의 인터뷰에서 MMCA 관장 김성희는 말했다. "한국 미술을 글로벌하게 알릴 전략이 필요하다." 이 발언은 기관의 거부가 완전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기관은 "코리안 큐레토리얼"이라는 언어를 쓰지 않으면서도, "한국 미술의 글로벌화"라는 아젠다를 수행한다. 두 언어의 차이는 표면적이다. 실질적으로는 같은 욕망을 담고 있다.

MMCA의 국제화 전략은 몇 가지 방향으로 전개된다. 첫째, 해외 주요 기관과의 순회전 협력이다. 뉴욕 구겐하임, 런던 테이트, 파리 퐁피두와의 협력 전시는 MMCA를 국제 미술 네트워크 안에 위치시킨다. 둘째, 해외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통한 한국 작가 지원이다. 셋째, 영문 카탈로그와 연구 출판물의 확대다. 이 전략들은 모두 "한국 미술"을 국제 무대에 소개하는 방향으로 수렴한다.

그런데 이 국제화 전략에서 흥미로운 선택이 나타난다. 기관이 해외에 소개하는 "한국 미술"은 어떤 것인가. 단색화, 민중미술, 백남준, 이불, 서도호. 이 이름들이 반복된다. 그 중 일부는 한국적 역사성을 담고 있고, 일부는 글로벌 동시대 미술의 문법으로 편입된 작가들이다. 기관은 "한국 미술"이라는 레이블을 직접 쓰는 것을 조심하면서도, 해외에서는 "Korean Art"라는 범주 안에 이 작가들을 배치한다. 국내용 언어와 해외용 언어의 분리가 발생한다.

이 분리는 기관이 내셔널리티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관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거부는 전략적 용어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국내에서는 "동시대 미술"을 말하고, 해외에서는 "Korean"을 말한다. 내셔널리티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이중 언어 구조 속에서 전략적으로 활성화되고 비활성화된다. 이것이 기관의 코리안 큐레토리얼 거부가 실은 정교한 관리임을 드러내는 지점이다.


8. 거부가 생산하는 “빈자리의 정치”

기관이 코리안 큐레토리얼을 거부할 때 생성되는 가장 중요한 효과는 빈자리다. 기관이 직접 다루지 않는 영역, 말하지 않는 언어, 가시화하지 않는 역사. 이 빈자리들이 민간 공간과 독립 큐레이터들에게 열려있는 가능성의 지대를 형성한다.

민중미술의 경우를 보자. MMCA는 민중미술을 수집하고 아카이브한다. 그러나 민중미술을 한국 미술의 핵심 흐름으로 적극적으로 전시하고 담론화하는 작업은 오랫동안 민간의 몫이었다. 학고재, 아트스페이스풀, 그리고 여러 대안공간들이 민중미술의 맥락을 현재와 연결하는 기획을 진행해왔다. 기관의 빈자리가 민간의 공간을 만든 것이다.

퀴어 아트와 페미니즘 미술의 경우도 유사하다. 기관이 이 영역을 완전히 외면하지는 않지만, 그것을 전면화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위험하다는 판단이 늘 작동한다. 그 결과 국내 퀴어 아트의 가시화는 오랫동안 독립 공간과 커뮤니티 기반 기획의 영역이었다. 기관은 이 영역이 민간에서 충분히 성장하고 국제적 가시성을 확보한 뒤에야, 조심스럽게 관련 작가들을 수집하고 전시에 포함시킨다. 다시 한번, 인준의 논리다.

이 인준의 논리가 낳는 구조적 결과는 무엇인가. 민간은 기관이 못 하거나 안 하는 것을 먼저 한다. 그 과정에서 위험을 감수하고, 담론을 개척하고, 국제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기관은 그 성과를 사후적으로 흡수한다. 민간은 선구자이되, 그 선구의 역사적 자리는 기관에 의해 재서술된다. 이것이 거부가 생산하는 착취의 구조다. 기관은 거부를 통해 민간을 실험실로 만들고, 실험의 성과를 기관의 이름으로 정전화한다.

그러나 이 구조를 착취로만 읽을 수 없다. 기관의 거부는 동시에 민간에게 자율성의 공간을 준다. 기관이 코리안 큐레토리얼을 완전히 장악하면, 민간은 그 장악된 내셔널리티의 하위 실행자가 된다. 기관의 거부가 만드는 빈자리는 민간이 스스로의 언어와 논리로 코리안 큐레토리얼을 발명하고 실험할 수 있는 여지이기도 하다. 착취의 구조와 자율성의 가능성이 같은 빈자리에서 동시에 발생한다. 이것이 거부의 복잡성이다.


9. 새로운 언어의 가능성

기관의 코리안 큐레토리얼 거부는 근본적으로 언어의 문제다. "코리안 큐레토리얼"이라는 범주 자체가 의심받아야 한다. 이 범주는 무엇을 한국적이라고 규정할 것인가의 문제를 내포한다. 단색화만 한국적인가. 민중미술만 한국적인가. 한국에서 활동하는 외국 작가의 작업은 한국적인가. 한국 출신이지만 해외에서 주로 활동하는 작가의 작업은 한국적인가. 이 질문들에 쉬운 답이 없다는 사실이, 기관이 코리안 큐레토리얼이라는 범주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거부가 이 어려움을 해결하는 방식은 아니다. 거부는 질문을 미루는 것이다. 기관이 코리안 큐레토리얼을 거부하는 동안, 시장은 그 빈자리를 채운다. K-아트라는 개념이 K-팝, K-드라마의 논리로 포장되어 유통될 때, 기관이 담론의 장을 비워두었다는 사실이 뼈아프게 드러난다. 시장이 정의한 한국성은 기관이 기피한 한국성보다 훨씬 더 단순하고 소비 가능한 형태를 갖는다.

기관에게 필요한 것은 거부도 수용도 아닌, 코리안 큐레토리얼이라는 개념 자체를 정치적으로 심문하는 실천이다. 무엇이 한국적인가를 묻는 것이 아니라, 왜 그 질문이 특정 방식으로 제기되는가를 묻는 것. 어떤 이해관계들이 그 범주를 필요로 하는가를 해부하는 것. 이것은 기관이 민간과 다른 방식으로 수행할 수 있는 작업이다. 왜냐하면 기관은 역사 아카이브, 연구 인프라, 국제 네트워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자원들을 동원해 코리안 큐레토리얼이라는 범주 자체를 역사화하고 비판하는 것, 이것이 거부를 넘어서는 기관의 가능성이다.

김선정이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으로 재임하며 "비엔날레 파빌리온" 네트워크를 아시아·남반구 기관들과 함께 확장한 것은 이 방향의 실험이었다. "코리안"을 넘어 "아시아", "글로벌 사우스"로 문제 틀을 이동시키는 것. 그 이동이 실제로 코리안 큐레토리얼의 해체를 가능케 했는가, 아니면 새로운 형태의 내셔널리티를 더 넓은 지리적 범위로 확장했을 뿐인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열려 있다. 그러나 이 실험이 기관의 거부와 민간의 갈망 사이의 어딘가에서, 새로운 언어를 찾으려는 시도였다는 것은 분명하다.


거부는 완성되지 않는다

기관의 코리안 큐레토리얼 거부는 완성될 수 없다. 기관이 국가 예산으로 운영되고, 국가가 임명한 기관장이 이끌고, 한국 미술의 역사를 아카이브하는 한, 내셔널리티는 기관의 물적·제도적 토대에 새겨져 있다. 거부는 이 새겨짐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발화하지 않기로 선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 자체가 가장 정치적인 행위라는 역설은 기관이 아무리 탈정치를 수행해도 벗어날 수 없는 구조적 조건이다.

그 조건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기관은 내셔널리티를 피할 수 없다. 피할 수 있는 것은 내셔널리티를 어떤 방식으로 다루는가이다. 국가의 아젠다를 무비판적으로 수행할 것인가, 시장이 정의한 한국성을 사후적으로 인준할 것인가, 아니면 코리안 큐레토리얼이라는 범주 자체를 비판적으로 해부하는 작업의 장소가 될 것인가. 이 세 번째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기관이 거부의 언어를 버리고, 내셔널리티와의 불편한 관계를 공개적으로 다루는 용기가 필요하다.

민간이 갈망하는 코리안 큐레토리얼은 기관이 비워둔 자리에서 자란다. 그 자람이 건강하려면, 기관의 빈자리가 단순한 방기가 아니라 의식적인 양도여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기관의 거부는 대부분 방기였다. 위험을 민간에게 넘기고, 성과를 기관이 흡수하는 비대칭적 교환 구조 위에서 작동해왔다. 이 구조를 바꾸는 것, 기관과 민간이 코리안 큐레토리얼이라는 어려운 질문을 함께 다루는 방식을 발명하는 것 — 이것이 거부를 넘어서는 과제다. 그리고 그 과제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주요 참고 문헌 및 사례

Jung, Eunsil, and Youngmin Choe. “Korea’s Blacklist Scandal: Governmentality, Culture, and Creativity.” Culture, Theory and Critique 59권 2호 (2018), 81–96쪽. https://doi.org/10.1080/14735784.2018.1446837.

Enwezor, Okwui. “The Politics of Spectacle: The Gwangju Biennale and the Asian Century.” In_Visible Culture: An Electronic Journal for Visual Culture 15호 (2011). 원 수록: Annual Report: A Year in Exhibitions — 제7회 광주비엔날레 전시 도록. 광주: 광주비엔날레 재단, 2008. https://www.invisibleculturejournal.com/pub/politics-of-spectacle-the-gwangju-biennale-and-the-asian-century/.

Irwin, Michael. “The Generic Totality of the Gwangju Biennale [제15회 광주비엔날레 리뷰].” Frieze, 2024년 10월 4일. https://www.frieze.com/article/15-gwangju-biennale-pansori-2024-review.

김장언. “1990년대 이후 한국 동시대미술에서 문화번역으로서 기획 실천: 제2회·제4회 광주비엔날레를 중심으로.” 한국근현대미술사학 56호 (2024), 109–134쪽. https://doi.org/10.17057/kahoma.2022..51.005.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 인터뷰. “국현 관장 ‘한국 미술의 기초 체력 키우겠다’.” 한국경제, 2024.

Lawrence Chua. “Kwangju Biennale.” Frieze 30호 (1996년 9–10월). https://www.frieze.com/article/kwangju-biennale.

Tina Kim Gallery. “Tina Kim on Dansaekhwa, Diplomacy and Effective Canon Building.” Tina Kim Gallery News, 2025년 5월 7일. https://tinakimgallery.com/news/486-tina-kim-on-dansaekhwa-diplomacy-and-effective-canon-observer/.

월간미술 편집부. 《한국근현대미술 Ⅰ·Ⅱ》·《한국현대미술 하이라이트》 전시 비평. 월간미술, 2025. https://monthlyart.com/portfolio-item/한국근현대미술/.

국립현대미술관(MMCA). 한국현대미술 하이라이트 전시 도록.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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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큐레토리얼을 거부하는 기관

탈국가 수행이라는 가장 정치적인 몸짓에 대하여

비평 에세이 ①

1. 거부 : 국립현대미술관의 중립 수행

2013년 서울관 개관과 함께 국립현대미술관(MMCA)이 공식적으로 표방한 정체성은 선명하다. "글로벌 동시대 미술의 플랫폼." 이 문구는 하나의 존재 선언에 가깝다. 서울관은 국립기관이되 "국가"의 냄새를 최대한 지우는 방향으로 설계되었다. 건축적으로는 경복궁과 북촌 사이의 역사 지층 위에 자리하면서도, 프로그램적으로는 그 지층을 가능한 한 직접 호출하지 않으려 했다. 


해외 작가 초대전의 비중이 높아졌고, 전시 제목은 점점 더 영어와 추상 개념으로 채워졌다. 학예사들은 한국 현대미술의 역사를 연구하면서도, 공식 전시에서는 그것을 "한국적"이라는 언어로 직접 프레이밍하는 것을 회피했다.


이 회피가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님은 금방 드러난다. 기관이 코리안 큐레토리얼을 정면으로 선택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역사가 이미 보여주었다. 


1995년 광주비엔날레 1회가 "Beyond the Borders"를 표방하면서 동시에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 정책과 완벽하게 일치했을 때, 비판자들은 즉각 이를 국가 아젠다에 패배한  예술적 번역이라고 읽었다. 특히 예술 비평가 Lawrence Chua는 프리즈 기고에서 "국경을 넘자고 외친 비엔날레가 실은 국경을 더 정교하게 그어놓았다"고 썼다. 기관이 내셔널리티를 수행하는 순간, 그것은 국가의 연장으로 읽힌다. 그 독해를 피하고 싶다면 내셔널리티 자체를 무대에서 지워야 한다. 이것이 거부의 첫 번째 논리다.

그러나 여기에 이미 함정이 있다. 내셔널리티를 지우는 행위 자체가 정치적 선택이다. 무엇을 전시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 어떤 언어를 쓰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 어떤 것을 배경 안으로 밀어넣기로 결정하는 것, 이 모든 부재는 적극적인 의미 생산의 행위다. 권력은 억압이 아닌 생산을 휘두른다. 정확히 이 지점이다. 반복하여 선택 하지 않은 부분만 오히려 강하게 발화된다. MMCA가 "우리는 동시대 미술을 위한 기관"이라고 말하는 순간, 그 발화는 "한국 미술"이라는 범주를 오히려 더 선명하게 소환한다. 거부는 부재를 통해 대상을 가시화하는 역설적 수행이다.


2. 이중 구속의 구조: 국가와 국제 사이

공공 미술기관이 처한 이중 구속은 재정적·제도적 생존 조건 자체에 내장된 구조다. MMCA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국립기관이다. 예산은 국가에서 나온다. 관장은 장관급 인사의 제청을 받아 임명된다. 기관의 물적 토대가 국가에 묶여 있다는 것은, 그 기관이 아무리 탈국가적 언어를 구사하더라도 국가의 자원으로 운영되는 기관임을 부정할 수 없다는 뜻이다.

동시에 기관은 국제적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 CIMAM(국제 현대미술관 협의회) 회원권, 해외 기관과의 협력 전시, 국제 비평 네트워크에서의 인용 가능성. 이 모든 것이 기관의 자본이다. 그런데 국제 아트월드에서 국립기관이 노골적인 국가주의 아젠다를 구사하면 즉각 신뢰를 잃는다. 2010년대 터키의 국립기관들이 에르도안 정권의 이슬람-민족주의 아젠다를 수행하면서 국제 네트워크에서 배제된 사례는 그 위험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의 공공기관들은 이 사례를 의식한다. 국가를 위해 일하되, 국가의 종처럼 보이면 안 된다는 역설이 모든 프로그래밍 결정에 작동한다.

이 이중 구속은 인사 구조에서도 반복된다. 기관장은 정권 교체에 따라 교체되어왔다. 박근혜 정부 시절 MMCA 관장이었던 김종덕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올라갔고, 이후 블랙리스트 사태의 핵심 당사자가 되었다. 기관이 정치와 거리를 두려 할수록, 정치는 기관의 내부로 들어온다. 탈정치의 수행은 역설적으로 정치적 개입의 통로를 열어두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기관이 중립을 자처하면, 국가는 그 중립의 껍데기를 자신의 도구로 채울 기회를 얻는다.

이 구조를 가장 날카롭게 드러낸 사건이 2014년 광주비엔날레의 홍성담 작품 검열이다. 홍성담의 <세월 오월>은 세월호 참사와 5·18 민주화운동을 연결하는 회화였다. 광주비엔날레 집행부는 이 작품을 위성전시 <단 이슬-1980 이후>에서 철거했다. 비엔날레 재단의 공식 입장은 "작품이 정치적으로 특정 방향에 편향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5·18 민주항쟁을 기원으로 삼는 비엔날레가 국가폭력 비판을 검열했다는 사실은, 탈정치 수행이 얼마나 즉각적으로 정치적 행위가 되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기관이 "우리는 정치적이지 않다"고 말하는 바로 그 순간, 기관은 가장 정치적인 선택을 하고 있다.


3. 단색화 효과: 내셔널리티를 미학으로 번역하는 전략

공공기관이 코리안 큐레토리얼을 직접 수행하지 않으면서도 그 효과를 누리는 방식 중 가장 정교한 것이 이른바 "단색화 효과"다. 단색화의 국제화 과정은 이 전략의 원형을 보여준다.

단색화는 1970년대 한국 미술 현장에서 형성된 운동이다. 그 계보에 속하는 작가들  < 박서보, 정상화, 이우환, 하종현, 윤형근 > 은 수십 년 동안 국내에서 "한국적 추상"으로 논의되었지만, 이 범주화는 늘 긴장을 동반했다. "한국적"이라는 수식어는 지역주의의 낙인처럼 작동할 수 있었고, 작가들 스스로도 그 규정을 불편해했다. 이우환은 일본의 모노파(もの派)와의 연결을 강조했고, 박서보는 자신의 작업을 세계 미술의 맥락에서 위치 짓고자 했다.

단색화가 글로벌 아트마켓에서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10년대 초반, 갤러리현대, 학고재, PKM 등 민간 갤러리들이 해외 아트페어와 경매에 공격적으로 이 작품들을 내놓으면서부터였다. 국공립기관이 먼저 나선 것이 아니었다. 민간이 먼저 "코리안 미니멀리즘"이라는 언어로 포장해 국제 시장에 던졌고, 가격이 형성되고 비평적 관심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서야 MMCA를 비롯한 국공립기관이 단색화 관련 학술 세미나와 전시를 기획했다. 순서가 반대였다. 기관은 생산하지 않았다. 인준했다.

이 순서의 역전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기관이 내셔널리티를 직접 생산하지 않고 사후적으로 정전화(canonization)하는 방식으로 위험을 회피하면서도 효과를 취하는 전략이다. 기관은 "우리가 단색화를 한국 미술로 규정했다"고 말하지 않는 대신 "이미 국제적으로 평가받은 한국 작가들의 성취를 아카이브하고 연구한다"는 언어를 쓴다. 내셔널리티의 생산은 민간에게 위임하고, 기관은 그것을 학문적·역사적 언어로 번역해 수용한다. 이 과정에서 코리안 큐레토리얼의 낙인 리스크는 민간이 흡수하고, 기관은 그 결과물의 정당성만 취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전략이 내셔널리티를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한다는 점이다. 기관이 직접 "이것이 한국 미술이다"라고 외치는 것보다, 국제 시장과 비평 네트워크를 거쳐 걸러진 뒤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한국 미술"로 귀환하는 것이 훨씬 더 강력한 내셔널리티의 생산이다. 세계가 먼저 코리안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우리도 코리안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논리다. 이것은 식민지 엘리트의 자기 정체성 형성을 분석할 때 지적한 구조와 유사하다. 타자의 시선을 통해 자기를 발견한다는 역설.


4. 세계화 언어의 채택: 탈국가를 수행하는 국가

광주비엔날레의 역사는 이 역설의 가장 정교한 표본이다. 비엔날레는 1995년 출발할 때부터 탈국가적 언어를 전면에 내세웠다. "아시아 최초의 국제 현대미술 비엔날레"라는 수식어는 지역 정체성과 글로벌 야망을 동시에 담고 있었다. 그러나 이 야망이 실현된 맥락은 국가 정책의 맥락이었다. 김영삼 대통령의 1995년 신년사는 "세계화는 21세기 일류 국가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선언했고, 광주비엔날레는 이 세계화 기획의 문화적 날개였다.

탈국가를 수행하는 국가. 이것이 광주비엔날레가 구조적으로 처한 위치다. 비엔날레는 국가 파빌리온 시스템이라는 낡은 국제 전시 질서에 도전한다고 표방했다. 베니스 비엔날레의 국가관 체계를 비판하면서, 광주는 국가를 넘어서는 큐레토리얼 실천의 가능성을 실험했다. 그러나 그 실험의 재원은 광주시와 전라남도의 예산에서 나왔고, 비엔날레 재단의 이사장직은 광주시장이 맡았다. 탈국가는 국가 자원으로 수행되었다.

2018년 이후 김선정 예술감독 체제에서 이 구조는 더욱 복잡해졌다. 광주비엔날레 파빌리온 네트워크는 2023년 9개 기관에서 2024년 31개로 급팽창했다. 이 네트워크는 국제 기관들과의 연대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광주라는 지명이 국제 아트 네트워크의 노드로 기능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광주가 글로벌 아트 네트워크 안에서 의미를 가질수록, 그 의미는 한국의 민주화 역사와 광주 5·18이라는 내셔널 서사에 기대고 있다. 탈국가의 네트워크는 내셔널 서사 위에 부유한다.

2024년 15회 광주비엔날레는 니콜라스 부리오가 "판소리"를 테마로 기획했다. 판소리는 한국의 전통 음악극 형식이다. 서구 스타 큐레이터가 한국 전통 예술 형식을 글로벌 동시대 미술의 언어로 번역하는 이 선택은 표면적으로는 탈국가적 실천처럼 보인다. 외국인 큐레이터가 로컬 형식을 다루었으니 오리엔탈리즘의 혐의가 있지 않냐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선택은 정확히 기관이 원하는 것을 달성했다. 코리안 큐레토리얼의 낙인 없이, 한국적 내용이 국제 무대에서 발화된 것이다. 기관은 직접 "우리는 한국적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서구 큐레이터의 입을 빌려 "판소리는 21세기의 보편 언어"라고 말하게 했다. 이것이 가장 세련된 형태의 내셔널리티 수행이다.


5. 학예사의 몸은 기관 안에서 균열한다.

기관의 거부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종종 기관을 단일한 주체로 상정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그러나 기관은 균질하지 않다. 그 안에는 서로 다른 욕망과 판단을 가진 개인들이 있다. 학예사들은 그 균열의 지점이다.

MMCA의 학예사들은 대개 한국 현대미술사를 전공한 연구자들이다. 그들은 한국 미술의 역사를 발굴하고 재구성하는 것을 자신의 소명으로 여긴다. 그러나 기관의 공식 프로그래밍 방향은 "글로벌 동시대 미술"이다. 학예사들은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기관이 내보내야 한다고 판단하는 것 사이의 간극 속에서 일한다. 이 간극이 표면화되는 것이 학예 보고서와 실제 전시 사이의 거리, 연구 아카이브와 전시 프로그램 사이의 비대칭이다.

전 MMCA 학예연구관 출신의 박미화가 퇴직 후 민간 미술공간(글로벌세아 아트스페이스)에서 "한국현대회화 하이라이트: 모더니즘과 도전"을 기획한 것은 이 역설의 한 단면이다. 기관은 '한국 현대회화'를 전시할 수 있지만, 그것을 동시대적·비판적 기획언어로 전면화하기는 어렵다. 상설전의 형식을 빌리거나, 소장품 연대기 서술이라는 역사화의 틀 안에서만 '한국성'이 등장한다. 기관 밖, 민간 공간에서야 비로소 그 작업이 가능해진다. 학예사의 욕망은 기관의 경계를 넘어 민간으로 흘러나간다. 기관이 거부한 코리안 큐레토리얼은 그렇게 민간 공간에서 실현된다.

이 흐름은 일방적이지 않다. 민간에서 코리안 큐레토리얼을 실험하고 성과를 낸 학예사들은, 그 경력을 바탕으로 다시 기관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또는 기관의 외부 자문 역할을 맡아 기관의 프로그래밍에 영향을 미친다. 기관과 민간 사이의 인적 순환은 코리안 큐레토리얼이 기관 안으로 스며드는 또 다른 경로다. 직접적인 선언 없이, 사람을 통해.

기관 안의 또 다른 균열은 컬렉션이다. 기관이 수집한 작품들은 기관의 큐레토리얼 판단을 가장 직접적으로 표현한다. 그런데 MMCA의 컬렉션을 들여다보면, 기관이 전시 언어에서는 회피하는 "한국성"이 수집 판단에서는 분명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민중미술 작품들이 수집되고, 한국 근현대사의 맥락을 담은 작업들이 아카이브된다. 전시 언어와 수집 논리 사이의 이 비대칭이, 기관이 코리안 큐레토리얼을 완전히 거부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또 다른 증거다. 거부는 발화의 차원에서만 일어난다. 실천의 차원에서는 미묘하게 다른 일이 진행된다.


6. 블랙리스트와 역설: 거부가 개입을 부르는 구조

기관이 탈정치를 선언할수록 국가의 개입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역설은 박근혜 정부 시기의 블랙리스트 사태에서 가장 극적으로 드러났다. 블랙리스트는 2016년 말 폭로되었지만, 그 작동 기간은 2014년부터 2017년까지였다. 문화예술위원회, 영화진흥위원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 국가 문화 기관들이 정권에 비판적인 예술인들의 지원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이 목록에는 약 9,000명의 예술인과 단체가 포함되었다.

블랙리스트 사태가 드러낸 것은, 기관이 탈정치를 자처하는 동안 국가가 그 중립의 껍데기를 통해 정치적 개입을 실행했다는 사실이다. 기관의 학예사들은 지원 심사에서 정치적 기준이 개입하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많은 경우 조직의 논리에 따라 그것을 공개적으로 문제 삼지 않았다. 기관이 정치와의 거리를 강조할수록,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정치적 개입에 대한 저항 언어는 오히려 약해진다. "우리는 탈정치적 기관"이라는 명제는 내부 비판의 언어를 조직 문화 밖으로 밀어낸다.

블랙리스트 이후 문재인 정부는 "예술의 자유"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문화 정책을 전환했다. 그러나 이 전환 자체도 정치적 판단이었다. 기관의 자율성을 확대하는 것처럼 보이는 정책이 실은 다른 방향의 정치적 개입이었다. 기관은 어느 정권하에서도 완전한 자율성을 가진 적이 없다. 자율성의 확대와 축소 모두 정치적 결정이다. 거부의 언어가 가장 순수하게 들릴 때조차, 그 언어는 특정 정치적 조건 위에서 발화된다.

이 구조적 취약성이 기관으로 하여금 코리안 큐레토리얼을 더욱 조심스럽게 다루게 만든다. 내셔널리티를 전면화하면 정치적 도구로 동원될 위험이 있고, 내셔널리티를 회피하면 그 중립성 뒤에서 국가가 개입할 공간이 생긴다. 기관은 어느 방향을 선택해도 정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이것이 거부의 더 깊은 구조다. 거부를  통한 탈출은 실패하고  다른 방식으로 연루된다.


7. MMCA의 국제화 전략과 내셔널리티의 귀환

2024년 한국 헤럴드와의 인터뷰에서 MMCA 관장 김성희는 말했다. "한국 미술을 글로벌하게 알릴 전략이 필요하다." 이 발언은 기관의 거부가 완전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기관은 "코리안 큐레토리얼"이라는 언어를 쓰지 않으면서도, "한국 미술의 글로벌화"라는 아젠다를 수행한다. 두 언어의 차이는 표면적이다. 실질적으로는 같은 욕망을 담고 있다.

MMCA의 국제화 전략은 몇 가지 방향으로 전개된다. 첫째, 해외 주요 기관과의 순회전 협력이다. 뉴욕 구겐하임, 런던 테이트, 파리 퐁피두와의 협력 전시는 MMCA를 국제 미술 네트워크 안에 위치시킨다. 둘째, 해외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통한 한국 작가 지원이다. 셋째, 영문 카탈로그와 연구 출판물의 확대다. 이 전략들은 모두 "한국 미술"을 국제 무대에 소개하는 방향으로 수렴한다.

그런데 이 국제화 전략에서 흥미로운 선택이 나타난다. 기관이 해외에 소개하는 "한국 미술"은 어떤 것인가. 단색화, 민중미술, 백남준, 이불, 서도호. 이 이름들이 반복된다. 그 중 일부는 한국적 역사성을 담고 있고, 일부는 글로벌 동시대 미술의 문법으로 편입된 작가들이다. 기관은 "한국 미술"이라는 레이블을 직접 쓰는 것을 조심하면서도, 해외에서는 "Korean Art"라는 범주 안에 이 작가들을 배치한다. 국내용 언어와 해외용 언어의 분리가 발생한다.

이 분리는 기관이 내셔널리티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관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거부는 전략적 용어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국내에서는 "동시대 미술"을 말하고, 해외에서는 "Korean"을 말한다. 내셔널리티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이중 언어 구조 속에서 전략적으로 활성화되고 비활성화된다. 이것이 기관의 코리안 큐레토리얼 거부가 실은 정교한 관리임을 드러내는 지점이다.


8. 거부가 생산하는 “빈자리의 정치”

기관이 코리안 큐레토리얼을 거부할 때 생성되는 가장 중요한 효과는 빈자리다. 기관이 직접 다루지 않는 영역, 말하지 않는 언어, 가시화하지 않는 역사. 이 빈자리들이 민간 공간과 독립 큐레이터들에게 열려있는 가능성의 지대를 형성한다.

민중미술의 경우를 보자. MMCA는 민중미술을 수집하고 아카이브한다. 그러나 민중미술을 한국 미술의 핵심 흐름으로 적극적으로 전시하고 담론화하는 작업은 오랫동안 민간의 몫이었다. 학고재, 아트스페이스풀, 그리고 여러 대안공간들이 민중미술의 맥락을 현재와 연결하는 기획을 진행해왔다. 기관의 빈자리가 민간의 공간을 만든 것이다.

퀴어 아트와 페미니즘 미술의 경우도 유사하다. 기관이 이 영역을 완전히 외면하지는 않지만, 그것을 전면화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위험하다는 판단이 늘 작동한다. 그 결과 국내 퀴어 아트의 가시화는 오랫동안 독립 공간과 커뮤니티 기반 기획의 영역이었다. 기관은 이 영역이 민간에서 충분히 성장하고 국제적 가시성을 확보한 뒤에야, 조심스럽게 관련 작가들을 수집하고 전시에 포함시킨다. 다시 한번, 인준의 논리다.

이 인준의 논리가 낳는 구조적 결과는 무엇인가. 민간은 기관이 못 하거나 안 하는 것을 먼저 한다. 그 과정에서 위험을 감수하고, 담론을 개척하고, 국제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기관은 그 성과를 사후적으로 흡수한다. 민간은 선구자이되, 그 선구의 역사적 자리는 기관에 의해 재서술된다. 이것이 거부가 생산하는 착취의 구조다. 기관은 거부를 통해 민간을 실험실로 만들고, 실험의 성과를 기관의 이름으로 정전화한다.

그러나 이 구조를 착취로만 읽을 수 없다. 기관의 거부는 동시에 민간에게 자율성의 공간을 준다. 기관이 코리안 큐레토리얼을 완전히 장악하면, 민간은 그 장악된 내셔널리티의 하위 실행자가 된다. 기관의 거부가 만드는 빈자리는 민간이 스스로의 언어와 논리로 코리안 큐레토리얼을 발명하고 실험할 수 있는 여지이기도 하다. 착취의 구조와 자율성의 가능성이 같은 빈자리에서 동시에 발생한다. 이것이 거부의 복잡성이다.


9. 새로운 언어의 가능성

기관의 코리안 큐레토리얼 거부는 근본적으로 언어의 문제다. "코리안 큐레토리얼"이라는 범주 자체가 의심받아야 한다. 이 범주는 무엇을 한국적이라고 규정할 것인가의 문제를 내포한다. 단색화만 한국적인가. 민중미술만 한국적인가. 한국에서 활동하는 외국 작가의 작업은 한국적인가. 한국 출신이지만 해외에서 주로 활동하는 작가의 작업은 한국적인가. 이 질문들에 쉬운 답이 없다는 사실이, 기관이 코리안 큐레토리얼이라는 범주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거부가 이 어려움을 해결하는 방식은 아니다. 거부는 질문을 미루는 것이다. 기관이 코리안 큐레토리얼을 거부하는 동안, 시장은 그 빈자리를 채운다. K-아트라는 개념이 K-팝, K-드라마의 논리로 포장되어 유통될 때, 기관이 담론의 장을 비워두었다는 사실이 뼈아프게 드러난다. 시장이 정의한 한국성은 기관이 기피한 한국성보다 훨씬 더 단순하고 소비 가능한 형태를 갖는다.

기관에게 필요한 것은 거부도 수용도 아닌, 코리안 큐레토리얼이라는 개념 자체를 정치적으로 심문하는 실천이다. 무엇이 한국적인가를 묻는 것이 아니라, 왜 그 질문이 특정 방식으로 제기되는가를 묻는 것. 어떤 이해관계들이 그 범주를 필요로 하는가를 해부하는 것. 이것은 기관이 민간과 다른 방식으로 수행할 수 있는 작업이다. 왜냐하면 기관은 역사 아카이브, 연구 인프라, 국제 네트워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자원들을 동원해 코리안 큐레토리얼이라는 범주 자체를 역사화하고 비판하는 것, 이것이 거부를 넘어서는 기관의 가능성이다.

김선정이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으로 재임하며 "비엔날레 파빌리온" 네트워크를 아시아·남반구 기관들과 함께 확장한 것은 이 방향의 실험이었다. "코리안"을 넘어 "아시아", "글로벌 사우스"로 문제 틀을 이동시키는 것. 그 이동이 실제로 코리안 큐레토리얼의 해체를 가능케 했는가, 아니면 새로운 형태의 내셔널리티를 더 넓은 지리적 범위로 확장했을 뿐인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열려 있다. 그러나 이 실험이 기관의 거부와 민간의 갈망 사이의 어딘가에서, 새로운 언어를 찾으려는 시도였다는 것은 분명하다.


거부는 완성되지 않는다

기관의 코리안 큐레토리얼 거부는 완성될 수 없다. 기관이 국가 예산으로 운영되고, 국가가 임명한 기관장이 이끌고, 한국 미술의 역사를 아카이브하는 한, 내셔널리티는 기관의 물적·제도적 토대에 새겨져 있다. 거부는 이 새겨짐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발화하지 않기로 선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 자체가 가장 정치적인 행위라는 역설은 기관이 아무리 탈정치를 수행해도 벗어날 수 없는 구조적 조건이다.

그 조건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기관은 내셔널리티를 피할 수 없다. 피할 수 있는 것은 내셔널리티를 어떤 방식으로 다루는가이다. 국가의 아젠다를 무비판적으로 수행할 것인가, 시장이 정의한 한국성을 사후적으로 인준할 것인가, 아니면 코리안 큐레토리얼이라는 범주 자체를 비판적으로 해부하는 작업의 장소가 될 것인가. 이 세 번째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기관이 거부의 언어를 버리고, 내셔널리티와의 불편한 관계를 공개적으로 다루는 용기가 필요하다.

민간이 갈망하는 코리안 큐레토리얼은 기관이 비워둔 자리에서 자란다. 그 자람이 건강하려면, 기관의 빈자리가 단순한 방기가 아니라 의식적인 양도여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기관의 거부는 대부분 방기였다. 위험을 민간에게 넘기고, 성과를 기관이 흡수하는 비대칭적 교환 구조 위에서 작동해왔다. 이 구조를 바꾸는 것, 기관과 민간이 코리안 큐레토리얼이라는 어려운 질문을 함께 다루는 방식을 발명하는 것 — 이것이 거부를 넘어서는 과제다. 그리고 그 과제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주요 참고 문헌 및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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