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자료: [커뮤니티 아트, 제도에서 플랫폼으로 - 박소현, 주현수, 원대로]
지난 글에서 커뮤니티 아트의 본질적인 개념과 현재 마주한 구조적 문제점,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적 실천들을 살펴보았다. 커뮤니티 아트는 본래 엘리트 중심의 예술 향유를 넘어 모든 시민이 주체가 되는 '문화민주주의'적 관점을 지향한다. 이러한 지향점이 한국이라는 특수한 사회적·정치적 토양 위에서 어떻게 발아하고 분화되었는지를 추적하는 일은, 단순히 과거를 기록하는 것을 넘어 현재 우리 예술이 처한 제도적 고착 상태를 타개할 실마리를 찾는 과정이기도 하다.
한국의 커뮤니티 아트는 서구적 근대화에 대한 반작용과 민주화를 향한 갈망 속에서 그 독특한 맥락을 형성해 왔다. 70년대 전통문화에 대한 자각에서 시작된 공동체적 감각은 80년대 민중미술운동이라는 거대한 저항의 미학으로 분출되었으며, 이는 다시 90년대와 2000년대를 거치며 '운동'의 틀을 벗어나 일상과 제도로 스며드는 파란만장한 궤적을 그려왔다.
본 글에서는 한국 전쟁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 커뮤니티 아트가 거쳐온 일곱 단계의 변천사를 다루고자 한다. 민중이 주체가 되었던 폭발적인 에너지의 시기부터, 국가 정책과 예산의 틀 안에서 예술이 행정 서비스로 변모해가는 과정을 비판적으로 검토함으로써, 우리가 회복해야 할 커뮤니티 아트의 진정한 생명력이 어디에 있는지 고찰해 보고자 한다.
1. 커뮤니티 아트의 맹아
한국 전쟁 이후 맹목적으로 지속된 서구 근대화의 추종은 한국 문화의 지형도를 급격히 변화시켰다. 이 과정에서 사회비판적 성향을 지녔던 예술가들은 월북이나 전향 등으로 자취를 감추었으며, 그 빈자리를 심미주의적 미학이 채우며 예술은 특정 특권층만이 향유하는 순수 예술 중심으로 고착되었다. 그러나 60~70년대의 급진적 서구화는 역설적으로 외세에 저항하는 민족주의를 부상시켰고, 이는 대학가를 중심으로 한 탈춤과 마당극 열풍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민족문화에 대한 자각은 농촌 전통 공동체와 사실주의 미학에 대한 탐구로 구체화되었다. 특히 1969년 오윤 등이 주도한 '현실동인'은 [현실동인 제1선언]을 통해 당시의 추상미술과 모더니즘적 해프닝을 강하게 비판하며 실천적 예술의 비전을 제시하였으며, 이는 80년대 본격적인 미술운동을 태동시킨 사상적 모태가 되었다.

'리얼리즘소고' 게재면, 대학신문, 1970.10.19, 서울대 발행.
<현실동인 제1선언문>은 당시 서울미대 재학생이었던 오윤, 임세택 등 3인의 그룹전 <현실동인전> 카탈로그에 수록된 것으로써, 당대의 한국미술 속에서 창궐하고 있던 형식주의와 자연주의의 오류를 비판하고 '예술은 현실의 반영이다'는 점을 분명한 어조로 공표하였다. 교수들과 관계기관에 의해 오윤의 그림은 압수당하고 찢겨져 없어져 버렸고 전시회는 취소되었지만 <현실동인 제1선언문>은 현실주의 미학'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메니페스토이자 한국민중미술의 출현을 감지한 진원지였다···.
- 민족미술인협회 前史 중 , https://www.daljin.com/blog/15755
2. 커뮤니티 아트의 형성
민중문화운동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분수령으로 삼아 본격적인 체계성을 갖추기 시작한다. 격변하는 시국 속에서 미술계는 현실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담은 사회비판적 리얼리즘을 대두시켰으며, 80년대 전반기의 민중미술은 체제 저항적 성격의 공동체 기반 예술로서 그 맥락을 형성하였다. 이는 대학가 중심의 장외 활동과 야외라는 물리적 공간성을 획득하며 한국 공공미술과 연계된 커뮤니티 아트의 실질적인 시초가 되었다. 특히 1983년 출범한 '두렁'은 미술이 아닌 문화운동 집단임을 명하며 판화라는 매체를 통해 민중교육운동을 전개했고, 이를 농촌과 노동 현장으로까지 확대하였다. 이러한 행보는 대중의 참여와 공동 작업, 그리고 예술과 교육의 결합이라는 측면에서 현재 공동체 지향적 커뮤니티 아트가 추구하는 핵심적 가치들을 선제적으로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다.


두렁 엽서 / 창작탈굿 연희_문화 아수라판 공연 사진
https://memory.library.kr/konan-search
3. 커뮤니티 아트의 분화
민중미술운동은 1987년 6월 항쟁을 기점으로 커다란 전환점을 맞이하며 분화하기 시작한다. 이 시기 이후 진보적 지식인 중심의 주류 운동은 점차 쇠퇴한 반면, 여성미술운동 등 다양한 부문별 운동이 세분화되어 나타났다. 또한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까지는 청년 활동가들을 주축으로 한 현장미술이 부흥하며 시민사회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특히 이 과정에서 권력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민주주의 운동은 '공동체 운동'이라는 새로운 흐름을 생성시켰다. 이는 자본주의적 생존 논리에서 벗어나 사람과 사람, 그리고 인간과 자연 사이의 새로운 관계를 공동체적으로 형성하려는 실천적 시도였다. 이러한 흐름은 비록 주류는 아니었으나, 민주주의의 의미를 정치 제도를 넘어 개인의 내면과 일상까지 확장시켰다는 점에서 민주화 운동의 질적 심화 과정으로 평가할 수 있다.

4. 민중미술운동의 해체
1990년대 초반, 국내 민주화 정권의 수립과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 등 국제적인 이데올로기 대립의 완화는 국내 미술운동 내부에도 큰 파고를 일으켰다. 집단적 이념에 기반한 활동은 급격히 약화된 반면, 젊은 작가들의 개별적이고 파편화된 창작 활동이 왕성해지기 시작했다. 이는 민중이라는 거대 담론이 일상성을 중시하는 '대중'으로 치환되었음을 의미하며, 대중의 욕구 또한 투쟁보다는 정착된 삶의 향유로 변화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민중미술을 이끌던 소그룹들은 경영난과 목적의식의 사멸로 인해 해체의 길을 걸었으며, 활동가들은 노동운동이나 공동체 운동으로 합류하거나 귀농을 택하는 등 미술 현장을 대거 이탈하게 되었다.
5. 운동의 탈운동화
1993년 문민정부 출범 이후 전개된 민주개혁의 바람은 역설적으로 기존 문화운동의 존립 근거를 약화시켰다. 1994년 국립현대미술관의 <민중미술 15년> 전시는 민중미술의 제도권 입성이라는 상징적 성과를 거두었으나, 동시에 운동으로서의 생명력을 다했다는 '장례식'적 평가를 동시에 받았다. 이후 90년대 후반 'Forum A'와 같은 진보적 모임들은 단절된 미술과 정치의 고리를 재연결하려는 시도를 보였고, 이는 비판적·행동주의적 미술의 부활을 예고했다. 이 시기 '엠조형', '오아시스', '유알아트' 등은 민중미술의 운동성을 시민운동과 결합하며 새로운 공동체 기반 미술로 진화시켰으며, 이러한 흐름은 2000년대 '퍼포먼스 반지하', '석수시장 프로젝트' 등으로 연속적 혹은 불연속적으로 계승되며 운동의 탈운동화 경향을 보였다.


민중미술 15년, 국립현대미술관
6. 커뮤니티 아트의 제도권 진입
90년대 후반 IMF 외환위기 이후, 밀레니엄 시대에 대한 기대와 문화 가치 인식의 제고로 문화 재정과 지원금이 대폭 증가하며 커뮤니티 아트의 제도권 편입이 가속화되었다. 특히 2003년 참여정부의 등장은 '자율·참여·분권'을 기치로 지역 활성화와 삶의 질을 강조하는 정책적 변화를 가져왔다. 이로 인해 민중미술운동은 정부 예산 지원 아래 주류 흐름으로 자리 잡게 되었으나, 이는 동시에 자생적 대안 공간들까지 정책 체계 내로 복속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2005년 이후 <아트 인 시티>나 <마을미술프로젝트> 같은 대규모 관 주도 프로젝트가 본격화되면서 커뮤니티 아트는 공공미술의 한 분야로 완벽히 제도화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업들은 예술을 공동체 속에 자생시키기보다 소외 지역의 환경 개선이라는 복지적 차원의 '플롭아트(Plop Art)'를 양산하는 데 머물렀다는 비판적 평가를 받기도 한다.



공공미술의 자장들-제도, 시장, 커뮤니티
https://www.publicart.or.kr/oldPublicart/HTML/data/column_view.do?menuId=28&column_seq=33
7. 커뮤니티 아트의 재인식
커뮤니티 아트가 제도권에 안착한 이후, 예술계 내부에서는 정치성이 증발하고 행정 서비스만 남겨진 '착한 예술' 프레임에 대한 성찰이 시작되었다. 현재 커뮤니티 아트가 직면한 근본적인 한계는 비민주적 권력에 저항하던 민주주의의 매개체가 제도화의 과정에서 스스로 비민주적 구조에 고착되어 버린 지점에 있다. 따라서 지속 가능한 커뮤니티 아트를 위해서는 70~80년대 민중미술운동이 지녔던 사회 변화의 매개체적 성격을 현대적 맥락에서 재정립하는 시각의 전환이 절실하다. 이는 소수 엘리트가 문화를 시혜적으로 제공하는 '문화의 민주화'를 넘어, 다수의 대중이 삶의 주체로서 문화를 직접 창조하고 삶을 개선해 나가는 '문화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함을 시사한다.
문화예술기획 : https://aither.imweb.me/Directing_service
전시용 가벽 렌탈 : https://aither.imweb.me/Home/?idx=168383314&bmod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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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커뮤니티 아트, 제도에서 플랫폼으로 - 박소현, 주현수, 원대로]
지난 글에서 커뮤니티 아트의 본질적인 개념과 현재 마주한 구조적 문제점,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적 실천들을 살펴보았다. 커뮤니티 아트는 본래 엘리트 중심의 예술 향유를 넘어 모든 시민이 주체가 되는 '문화민주주의'적 관점을 지향한다. 이러한 지향점이 한국이라는 특수한 사회적·정치적 토양 위에서 어떻게 발아하고 분화되었는지를 추적하는 일은, 단순히 과거를 기록하는 것을 넘어 현재 우리 예술이 처한 제도적 고착 상태를 타개할 실마리를 찾는 과정이기도 하다.
한국의 커뮤니티 아트는 서구적 근대화에 대한 반작용과 민주화를 향한 갈망 속에서 그 독특한 맥락을 형성해 왔다. 70년대 전통문화에 대한 자각에서 시작된 공동체적 감각은 80년대 민중미술운동이라는 거대한 저항의 미학으로 분출되었으며, 이는 다시 90년대와 2000년대를 거치며 '운동'의 틀을 벗어나 일상과 제도로 스며드는 파란만장한 궤적을 그려왔다.
본 글에서는 한국 전쟁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 커뮤니티 아트가 거쳐온 일곱 단계의 변천사를 다루고자 한다. 민중이 주체가 되었던 폭발적인 에너지의 시기부터, 국가 정책과 예산의 틀 안에서 예술이 행정 서비스로 변모해가는 과정을 비판적으로 검토함으로써, 우리가 회복해야 할 커뮤니티 아트의 진정한 생명력이 어디에 있는지 고찰해 보고자 한다.
1. 커뮤니티 아트의 맹아
한국 전쟁 이후 맹목적으로 지속된 서구 근대화의 추종은 한국 문화의 지형도를 급격히 변화시켰다. 이 과정에서 사회비판적 성향을 지녔던 예술가들은 월북이나 전향 등으로 자취를 감추었으며, 그 빈자리를 심미주의적 미학이 채우며 예술은 특정 특권층만이 향유하는 순수 예술 중심으로 고착되었다. 그러나 60~70년대의 급진적 서구화는 역설적으로 외세에 저항하는 민족주의를 부상시켰고, 이는 대학가를 중심으로 한 탈춤과 마당극 열풍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민족문화에 대한 자각은 농촌 전통 공동체와 사실주의 미학에 대한 탐구로 구체화되었다. 특히 1969년 오윤 등이 주도한 '현실동인'은 [현실동인 제1선언]을 통해 당시의 추상미술과 모더니즘적 해프닝을 강하게 비판하며 실천적 예술의 비전을 제시하였으며, 이는 80년대 본격적인 미술운동을 태동시킨 사상적 모태가 되었다.
'리얼리즘소고' 게재면, 대학신문, 1970.10.19, 서울대 발행.
2. 커뮤니티 아트의 형성
민중문화운동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분수령으로 삼아 본격적인 체계성을 갖추기 시작한다. 격변하는 시국 속에서 미술계는 현실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담은 사회비판적 리얼리즘을 대두시켰으며, 80년대 전반기의 민중미술은 체제 저항적 성격의 공동체 기반 예술로서 그 맥락을 형성하였다. 이는 대학가 중심의 장외 활동과 야외라는 물리적 공간성을 획득하며 한국 공공미술과 연계된 커뮤니티 아트의 실질적인 시초가 되었다. 특히 1983년 출범한 '두렁'은 미술이 아닌 문화운동 집단임을 명하며 판화라는 매체를 통해 민중교육운동을 전개했고, 이를 농촌과 노동 현장으로까지 확대하였다. 이러한 행보는 대중의 참여와 공동 작업, 그리고 예술과 교육의 결합이라는 측면에서 현재 공동체 지향적 커뮤니티 아트가 추구하는 핵심적 가치들을 선제적으로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다.
두렁 엽서 / 창작탈굿 연희_문화 아수라판 공연 사진
https://memory.library.kr/konan-search
3. 커뮤니티 아트의 분화
민중미술운동은 1987년 6월 항쟁을 기점으로 커다란 전환점을 맞이하며 분화하기 시작한다. 이 시기 이후 진보적 지식인 중심의 주류 운동은 점차 쇠퇴한 반면, 여성미술운동 등 다양한 부문별 운동이 세분화되어 나타났다. 또한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까지는 청년 활동가들을 주축으로 한 현장미술이 부흥하며 시민사회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특히 이 과정에서 권력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민주주의 운동은 '공동체 운동'이라는 새로운 흐름을 생성시켰다. 이는 자본주의적 생존 논리에서 벗어나 사람과 사람, 그리고 인간과 자연 사이의 새로운 관계를 공동체적으로 형성하려는 실천적 시도였다. 이러한 흐름은 비록 주류는 아니었으나, 민주주의의 의미를 정치 제도를 넘어 개인의 내면과 일상까지 확장시켰다는 점에서 민주화 운동의 질적 심화 과정으로 평가할 수 있다.
4. 민중미술운동의 해체
1990년대 초반, 국내 민주화 정권의 수립과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 등 국제적인 이데올로기 대립의 완화는 국내 미술운동 내부에도 큰 파고를 일으켰다. 집단적 이념에 기반한 활동은 급격히 약화된 반면, 젊은 작가들의 개별적이고 파편화된 창작 활동이 왕성해지기 시작했다. 이는 민중이라는 거대 담론이 일상성을 중시하는 '대중'으로 치환되었음을 의미하며, 대중의 욕구 또한 투쟁보다는 정착된 삶의 향유로 변화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민중미술을 이끌던 소그룹들은 경영난과 목적의식의 사멸로 인해 해체의 길을 걸었으며, 활동가들은 노동운동이나 공동체 운동으로 합류하거나 귀농을 택하는 등 미술 현장을 대거 이탈하게 되었다.
5. 운동의 탈운동화
1993년 문민정부 출범 이후 전개된 민주개혁의 바람은 역설적으로 기존 문화운동의 존립 근거를 약화시켰다. 1994년 국립현대미술관의 <민중미술 15년> 전시는 민중미술의 제도권 입성이라는 상징적 성과를 거두었으나, 동시에 운동으로서의 생명력을 다했다는 '장례식'적 평가를 동시에 받았다. 이후 90년대 후반 'Forum A'와 같은 진보적 모임들은 단절된 미술과 정치의 고리를 재연결하려는 시도를 보였고, 이는 비판적·행동주의적 미술의 부활을 예고했다. 이 시기 '엠조형', '오아시스', '유알아트' 등은 민중미술의 운동성을 시민운동과 결합하며 새로운 공동체 기반 미술로 진화시켰으며, 이러한 흐름은 2000년대 '퍼포먼스 반지하', '석수시장 프로젝트' 등으로 연속적 혹은 불연속적으로 계승되며 운동의 탈운동화 경향을 보였다.
민중미술 15년, 국립현대미술관
6. 커뮤니티 아트의 제도권 진입
90년대 후반 IMF 외환위기 이후, 밀레니엄 시대에 대한 기대와 문화 가치 인식의 제고로 문화 재정과 지원금이 대폭 증가하며 커뮤니티 아트의 제도권 편입이 가속화되었다. 특히 2003년 참여정부의 등장은 '자율·참여·분권'을 기치로 지역 활성화와 삶의 질을 강조하는 정책적 변화를 가져왔다. 이로 인해 민중미술운동은 정부 예산 지원 아래 주류 흐름으로 자리 잡게 되었으나, 이는 동시에 자생적 대안 공간들까지 정책 체계 내로 복속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2005년 이후 <아트 인 시티>나 <마을미술프로젝트> 같은 대규모 관 주도 프로젝트가 본격화되면서 커뮤니티 아트는 공공미술의 한 분야로 완벽히 제도화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업들은 예술을 공동체 속에 자생시키기보다 소외 지역의 환경 개선이라는 복지적 차원의 '플롭아트(Plop Art)'를 양산하는 데 머물렀다는 비판적 평가를 받기도 한다.
공공미술의 자장들-제도, 시장, 커뮤니티
https://www.publicart.or.kr/oldPublicart/HTML/data/column_view.do?menuId=28&column_seq=33
7. 커뮤니티 아트의 재인식
커뮤니티 아트가 제도권에 안착한 이후, 예술계 내부에서는 정치성이 증발하고 행정 서비스만 남겨진 '착한 예술' 프레임에 대한 성찰이 시작되었다. 현재 커뮤니티 아트가 직면한 근본적인 한계는 비민주적 권력에 저항하던 민주주의의 매개체가 제도화의 과정에서 스스로 비민주적 구조에 고착되어 버린 지점에 있다. 따라서 지속 가능한 커뮤니티 아트를 위해서는 70~80년대 민중미술운동이 지녔던 사회 변화의 매개체적 성격을 현대적 맥락에서 재정립하는 시각의 전환이 절실하다. 이는 소수 엘리트가 문화를 시혜적으로 제공하는 '문화의 민주화'를 넘어, 다수의 대중이 삶의 주체로서 문화를 직접 창조하고 삶을 개선해 나가는 '문화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함을 시사한다.
문화예술기획 : https://aither.imweb.me/Directing_service
전시용 가벽 렌탈 : https://aither.imweb.me/Home/?idx=168383314&bmod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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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RECTOR. GONG MYEONGS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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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ACT. 051-977-5272 | SCK02145@NAVER.COM | https://aither.kr/
INSTA. @aither.kr | YOUTUBE. [www.youtube.com/@AITHERART](http://www.youtube.com/@AITHER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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