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사우스] 2026 베니스 비엔날레 《In Minor Keys》, 저음으로 조율된 예술의 다성적 집합체

신영주
2026-02-26
조회수 567

오늘날 생산되는 예술은 종종 정의의 장이자 서사의 교정, 역사주의에 대한 도전의 공간을 자처한다. 그러나 제61회 베니스 국제미술전은 고(故) 코요 쿠오(Koyo Kouoh)가 기획한 《In Minor Keys》라는 제목 아래, 다른 방향을 제안한다. 그녀가 남긴 큐레토리얼 텍스트에 따르면 이번 전시는 세계 사건에 대한 장황한 논평을 나열하거나 중첩된 위기로부터 도피하려는 태도에 머물지 않는다. 대신 예술의 “자연스러운 서식지”로의 급진적 재연결, 즉 감정적인 것, 시각적인 것, 감각적인 것, 정동적인 것, 주관적인 것과 다시 만나는 공간이 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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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요 쿠오(Koyo Kouoh), Zeitz MOCAA, 케이프타운, 2023. 사진: Marco Longari/AFP via Getty Images, 출처: CNN


Koyo Kouoh와 그 이후

코요 쿠오는 2024년 10월, 베니스 비엔날레의 초청을 받아 제61회 국제미술전의 큐레이터로 임명되었다. 2025년 5월 초까지 그녀는 전시의 이론적 틀을 확정하고 참여 작가를 선정했으며, 작품 방향, 도록 필진, 그래픽 아이덴티티, 전시 건축 설계까지 모두 구체화한 상태였다. 그러나 2025년 5월 10일 갑작스럽게 별세하면서, 5월 20일로 예정되어 있던 공식 발표를 앞두고 세상을 떠났다. 이후 베니스 비엔날레는 유가족의 동의와 지지 아래, 그녀가 설계한 계획을 유지한 채 전시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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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25일 기자회견에서 발표된 개념적 모티프, 사진: La Biennale di Venezia


소음의 시대, 저음의 주파수

《In Minor Keys》는 음악 용어 단조(Minor Key)에서 뜻을 빌려, 속도를 늦추고 낮은 주파수에 귀를 기울이자는 제안에서 출발한다. 현재 세계를 뒤덮고 있는 혼란과 소음 속에서도 음악은 계속되며, 비극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이들의 노래와 폐허에서 회복하는 이들의 선율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쿠오는 썼다. 마이너 키는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과시나 군사 행진곡의 규율을 거부하고 낮은 음역과 속삭임 속에서 살아난다. 음악에서 마이너 키가 낯섦과 우울, 슬픔을 의미한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기쁨과 위안이 새로운 의미로 자리잡는다. 

쿠오의 비전은 예술가들에 대한 깊은 신뢰에 기반한다. 그녀는 예술가를 사회적·정신적 조건을 해석하는 핵심적인 존재이자 새로운 관계와 가능성을 촉발하는 촉매로 바라보았다. 이번 국제전에는 서로 다른 지리적, 지역적 배경을 지닌 105명의 작가 및 콜렉티브와 6개의 작가 주도 기관, 총 111개의 참여 주체가 포함된다. 지리적 거리보다 공명, 실천 간의 잠재적 수렴 가능성에 주목해 이들을 선정했다. 특히 G.A.S. Foundation, blaxTARLINES KUMASI, Denniston Hill 등 이른바 ‘Schools’로 언급된 공간들은 단순한 교육 기관이 아니라, 작가들에 의해 구축되고 지속되어온 핵심 생태계이자 네트워크를 가리킨다. 이는 지역성과 초국가성이 생성적 공생 관계 속에서 공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구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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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skoj e Rosal, Cortina di ferro (철의 커튼), 1977 ('비엔날레 오브 디센트' 미술 섹션 설치 보기, 1977, 베니스). 출처: 베네치아 비엔날레 역사 아카이브, ASAC


악보 위 다섯 개의 화음

코요 쿠오는 이번 비엔날레를 예술의 다성적 집합체에 비유한다. 하나의 목소리가 아니라 여러 음역이 공존하는 구조. 즉흥적인 재즈 연주처럼 예측 불가능한 흐름 속에서도 서로의 리듬을 감지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예술 또한 경쟁이 아닌 공유된 생태계 안에서 존재할 수 있다고 상상한다. 전시는 전통적인 섹션 구분 대신, Shrines(성소), Procession(행렬), Schools(학교), Rest(휴식), Performances(퍼포먼스)라는 흐름적 우선순위를 따라 구성된다. 이는 추상적으로 설정된 주제가 아니다. 정신과 영혼에 깊이 작용하는 예술 저장소에서 길어 올린 것이다. Shrines에서 Performances에 이르는 다섯 개의 모티프는 하나의 공통된 방향을 가리킨다. 성소는 기억과 헌정의 밀도를 높이고 행렬은 참여를 요청하며, 휴식은 속도를 낮춘다. 학교는 예술가 중심의 자율적 네트워크를 의미하며, 고립된 섬처럼 보이는 개별 세계들이 실은 느슨한 관계망 속에서 연결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이 요소들은 전시 공간을 가로지르며 교차되고 중첩되면서 위계가 아닌 관계를 중심에 두는 하나의 집합적 생태계를 형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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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세날레 전경, 출처: 월간미술


한편 이번 비엔날레는 코로나19 이후 가속화된 세계적 우경화, 관광 산업과 기후 위기 속에 놓인 베니스의 도시 조건, 불안정해지는 국제 질서라는 지정학적 배경 위에서 열릴 수밖에 없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19세기 제국주의적 만국박람회 형식을 계승한 제도로, 국가관 체계를 중심으로 세계를 배열해왔다. 국제적이라는 이름 아래 작동해온 이 구조는 오랫동안 유럽과 북미를 중심으로 생산해왔으며, 탈식민과 다성성을 표방하는 오늘날에도 그 근간은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이렇듯 비엔날레라는 제도 자체가 식민주의와 서구 중심성, 미국 패권 질서와 맞물려 형성된 국제주의 프로젝트였음을 상기할 때, 《In Minor Keys》는 의도적으로 정치적 논평을 전면화하지 않더라도 이러한 균열을 비추는 무대가 될 가능성을 지닌다. 코요가 전통적 섹션 구분 대신 다섯 개의 관계적 네트워크로 전시를 구성한 것에도 이러한 저류가 있었을 것이라 예측한다.

제61회 베니스 비엔날레는 2026년 5월 9일부터 11월 22일까지 개최된다. 코요 쿠오가 남긴 기획은 이제 그녀가 부재한 상태에서 실현된다. 어쩌면 이번 전시는 낮은 음역에서 울리는 지속적인 진동을 통해 오늘의 세계를 감지하려는 하나의 시도가 될지도 모른다.

 


 베니스 비엔날레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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