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사우스] 사적 자본과 공공성 사이: 마야 호프만(Maja Hoffmann) 모델의 구조와 한계

리자공
2026-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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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Arles, France, 1986Photographs: Christian Kryl


Maja Hoffmann의 생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녀 개인의 취향이나 후원 이력보다, 먼저 그녀가 놓인 경제적·사회적 조건을 분석해야 한다. 그녀는 스위스 제약기업 로슈(Roche) 가문의 일원으로 태어났다. 로슈는 20세기 제약 산업을 이끈 글로벌 기업으로, 막대한 연구개발 자본과 국제적 네트워크를 축적해왔다. 이 배경은 단순한 ‘부의 출발점’이 아니라, 과학·연구·장기 투자라는 사고방식을 체화하는 환경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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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che Tower in Basel

4dd5e5265551e.pngBasel, Switzerland Old Town at Blue Hour

바젤이라는 도시 역시 중요하다. 바젤은 스위스 금융·제약 산업의 중심지이자, 동시에 아트 바젤을 통해 세계 미술 시장과 연결된 도시다. 산업 자본과 문화 자본이 결합된 공간에서 성장했다는 점은 우연이 아니다. 이 도시는 예술을 사적 취향의 영역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제도와 구조 속에서 작동하도록 만드는 전통을 지닌다. 호프만의 감각 역시 이 환경 속에서 형성되었다.

그녀의 초기 활동은 단순 컬렉팅이 아니었다. 1990년대부터 환경·생태 프로젝트, 인권 및 사회적 의제를 다루는 예술 활동을 지원했다. 이 시기 그녀의 관심은 생태학과 예술을 연결하는 지점에 있었다. 이는 훗날 LUMA 프로젝트가 도시 재생, 환경, 디자인, 연구를 포괄하는 복합 플랫폼으로 확장되는 토대가 된다. 다시 말해, 초기부터 그녀의 문제의식은 “어떤 작품을 소장할 것인가”가 아니라 “예술이 사회 구조 안에서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가까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본의 운용 방식이다. 일반적 컬렉터 모델은 작품 매입과 전시, 후원을 중심으로 작동한다. 반면 호프만은 연구와 장기적 인프라 구축에 자본을 투입했다. 이는 제약 산업의 연구 투자 구조와 유사하다. 장기간의 자본 투입, 즉각적 수익을 기대하지 않는 모델, 복합적 파트너십 구조. 이 산업적 사고방식은 그녀의 문화 프로젝트에도 그대로 이식된다.

또한 그녀는 예술을 ‘시장 상품’으로 접근하기보다, 생태적·사회적 맥락 속에서 위치시키는 태도를 취했다. 이 점은 동시대 컬렉터 중에서도 구별되는 지점이다. 단기적 트렌드에 반응하기보다, 도시와 장소를 기반으로 한 장기 프로젝트를 설계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는 후에 아를(Arles) 프로젝트로 구체화된다.

형성기의 또 다른 특징은 네트워크 구축이다. 그녀는 예술가, 건축가, 학자, 환경 운동가 등 다양한 분야와 교류했다. 이는 단일 장르 중심의 후원 구조를 넘어서, 다학제적 플랫폼을 설계하는 감각으로 이어진다. 훗날 프랭크 게리와 협업하고, 국제적 큐레이터들과 긴밀히 연결되는 기반 역시 이 시기에 다져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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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아를의 Parc des Ateliers는 본래 19세기 후반 SNCF(프랑스 국영철도)의 기관차 정비·제작 공장이었다. 광대한 철제 구조물, 벽돌 공장동, 레일이 교차하는 야적장, 녹슨 철골 트러스가 이곳의 풍경을 이루었다. 이 부지는 약 11헥타르 규모로, 한때 지역 산업 경제의 핵심 기반이었다.

산업 쇠퇴 이후 이 공간은 점차 기능을 잃었고, 거대한 창고와 작업장은 비어 있는 상태로 남았다. 건물들은 역사적 산업 건축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었지만, 유지·보수 없이 방치되면서 구조적 노후가 진행되었다. 바로 이 시점에서 LUMA Foundation이 개입한다.

중요한 점은 ‘철거’가 아니라 ‘전환’이었다. 일부 건물은 보존·리노베이션 되었고, 새로운 프로그램이 삽입되었다. 이는 산업 유산을 문화 자산으로 재정의하는 전략이었다. 기존의 벽돌 공장동은 전시장과 스튜디오로, 야적장은 공공 광장으로 재구성되었다.

이전 사진을 보면 현재의 유려한 Frank Gehry 타워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다. 수평적이고 거친 산업 공간, 기능 중심의 구조물, 장식 없는 벽면. 이 대비는 LUMA 프로젝트의 본질을 드러낸다. 미학적 오브제가 삽입된 것이 아니라, 산업 구조 전체가 문화 생산의 기반으로 재설계된 것이다.1d9b3a52eb9d8.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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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MA Foundation은 마야 호프만 생애의 분기점이다. 프랑스 남부 아를의 옛 철도 정비 부지 ‘Parc des Ateliers’를 문화 복합 단지로 재구성하는 장기 도시 재생 프로젝트다. 약 11헥타르 규모의 산업 유산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이는 컬렉터의 사적 미술관과 구조적으로 다르다. 도시와 토지, 건축, 프로그램이 결합된 총체적 설계다.

건축은 상징적 역할을 한다. 중심 타워는 Frank Gehry가 설계했다. 반짝이는 금속 패널이 층층이 중첩된 이 건물은 전통적 미술관의 수직적 위계를 해체한 듯한 형태를 취한다. 그러나 이 상징성은 단지 시각적 랜드마크를 넘어선다. 타워는 연구, 전시, 회의, 아카이브, 레지던시가 교차하는 복합적 공간으로 작동한다. 즉, 외관은 조형적 파편처럼 보이지만, 내부는 다층적 프로그램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

아를 프로젝트의 핵심은 “면적의 확장”이 아니라 “기능의 확장”이다. 전시만 열리는 공간이 아니라, 교육 프로그램, 워크숍, 레지던시, 출판, 학제 간 연구를 동시에 수행한다. 이 점에서 LUMA는 미술관과 대학, 연구소, 커뮤니티 센터의 기능을 혼합한다. 호프만은 자본을 ‘건물’에 투자한 것이 아니라 ‘플랫폼’에 투자한 셈이다.f8384d7657d27.png

9bc04c28eff50.png이 공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 전시는 LUMA의 운영 방식을 보여준다. Tino Sehgal은 컬렉션을 재구성하며 시간성과 관계성을 탐구하는 전시를 선보였고, Koo Jeong A는 조각과 후각 설치, 인광 회화를 통해 감각의 층위를 확장했다. 동시에 Ho Tzu Nyen과 Wael Shawky가 큐레이터로 참여하는 등, 작가-큐레이터 경계를 넘나드는 실험이 이루어졌다.

이 구조는 전통적 기관 모델과 다르다. 일반적인 미술관은 연간 몇 개의 대형 기획전에 집중한다. 반면 LUMA는 여러 전시가 병행되며, 서로 다른 담론이 동시에 충돌하고 공존한다. 이는 프로그램의 ‘집중’이 아니라 ‘분산’ 전략이다. 관객은 단일 서사 대신 복수의 담론 환경 속을 이동하게 된다.

아를이라는 도시의 맥락도 중요하다. 아를은 로마 유적과 사진 페스티벌로 알려진 역사적 도시다. 여기에 현대 건축과 실험적 전시가 들어서면서 과거와 현재가 병치된다. 산업 부지가 문화 공간으로 전환되는 과정은 유럽 도시 재생의 전형적 사례이기도 하다. 그러나 LUMA는 공공 예산 기반이 아니라 사적 자본 중심으로 추진되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이는 민간 자본이 도시 구조에 개입하는 방식에 대한 논쟁을 동반한다.



Maja Hoffmann(마야 호프만)은 이제 한 도시의 문화 플랫폼 운영자를 넘어 국제 미술 제도 네트워크의 핵심 참여자로 이동한다.


1. Fondation Beyeler (퐁다시옹 베이엘러)

Fondation Beyeler(퐁다시옹 베이엘러)는 스위스 바젤 인근 리엔(Riehen)에 위치한 대표적 사립 미술관이다. 이 기관은 20세기 모더니즘과 동시대 미술을 아우르는 컬렉션으로 알려져 있다.

호프만은 바젤이라는 도시 기반에서 이 기관과 긴밀히 연결되며, 컬렉션 교류 및 기획 네트워크를 확장했다. 이는 단순 협업이 아니라, 스위스 사적 재단 모델이 어떻게 국제 미술 제도와 맞물리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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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Serpentine Galleries (서펜타인 갤러리)

Serpentine Galleries(서펜타인 갤러리, 런던)는 매년 파빌리온 프로젝트와 동시대 작가 전시로 국제 담론을 생산하는 기관이다.

이사회 참여는 단순 후원이 아니다. 기관의 방향성, 프로그램 전략, 글로벌 파트너십에 대한 구조적 논의에 개입하는 자리다. 즉, 전시 한 편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의 설계 과정에 참여하는 행위다.80502ca563272.png42fa63a24be36.png4beb47f3c0e99.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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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Kunsthalle Zürich (쿤스트할레 취리히)

Kunsthalle Zürich(쿤스트할레 취리히)는 실험적 전시와 동시대 담론 중심 프로그램으로 알려진 기관이다.

이곳은 상설 컬렉션보다 기획 중심 구조를 가진다. 호프만의 참여는 상업 시장 중심이 아닌 실험적 큐레이션 환경에도 자본이 개입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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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CCS Bard (Center for Curatorial Studies, Bard College)

(CCS 바드, 바드 대학 큐레토리얼 스터디스 센터)

CCS Bard는 뉴욕주 애넌데일온허드슨(Annandale-on-Hudson)에 위치한 큐레이터 교육 및 연구 기관이다.

이 기관은 차세대 큐레이터 담론 형성의 핵심 공간으로 평가된다. 호프만의 참여는 전시 지원을 넘어 교육과 연구 구조에 대한 장기적 개입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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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ja Hoffmann(마야 호프만)의 문화 프로젝트는 동시대 사적 자본이 예술 제도와 결합하는 방식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LUMA Foundation(루마 재단)을 통해 프랑스 아를(Arles)의 산업 유산을 문화 인프라로 전환한 전략은 장기적 투자와 구조 설계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그 확장이 모든 맥락에서 동일한 공공성을 확보하는 것은 아니다. Elevation 1049(엘리베이션 1049)이 열리는 스위스 그슈타트(Gstaad)는 국제적 부유층이 모이는 고급 알프스 리조트다. 이 장소적 조건은 프로젝트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규정한다.

루마 재단(LUMA Foundation)이 자리한 아를은 탈산업화 이후의 공백 위에 구축된 도시 재생의 장이다. 옛 철도 부지를 문화 플랫폼으로 전환하는 과정은 산업 노동의 장소를 예술 생산의 장소로 재정의하는 행위였다. 반면 그슈타트에서 열리는 엘리베이션 1049(Elevation 1049)는 이미 자본이 응집된 관광지 위에서 작동한다. 전자는 결핍의 공간을 재구성하는 전략이고, 후자는 과잉의 공간을 문화적으로 재코딩하는 전략이다. 두 모델은 동일한 사적 재단 구조에서 출발하지만, 사회적 의미는 다르게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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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ug Aitken, Mirage Gstaad (rendering), 2019. Courtesy of Doug Aitken Workshop.






Stefanie Hessler(슈테파니 헤슬러)가 큐레이션을 맡았던 해를 보면, 프로그램은 해양 생태와 환경 위기 등 동시대적 문제의식을 다뤘다. 내용은 비판적이고 실험적이었다. 그러나 비판적 담론이 배치되는 장소가 엘리트 관광지일 때, 그 담론은 다른 층위의 긴장을 동반한다. 접근성은 제한적이고, 관객은 이미 선별된 집단일 가능성이 높다. 문화 민주화라는 이상은 공간의 조건 앞에서 재검토될 수밖에 없다.

마야 호프만(Maja Hoffmann, 마야 호프만)은 Fondation Beyeler(퐁다시옹 베이엘러), Serpentine Galleries(서펜타인 갤러리), CCS Bard(CCS 바드, 바드 대학 큐레토리얼 스터디스 센터) 등과 연결되며 국제 문화 네트워크를 형성해왔다. 이러한 이사회 참여는 전시 한 편을 후원하는 차원이 아니다. 기관의 방향성과 전략, 장기적 비전을 논의하는 의사결정 구조에 개입하는 행위다. 이는 안정성과 영향력을 동시에 확보한다. 동시에 문화 권력이 특정 네트워크 안에서 순환하는 구조를 강화하기도 한다.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 피에르 부르디외)의 문화 자본 이론을 적용하면, 엘리베이션 1049(Elevation 1049)는 상징 자본이 응축되는 장치로 해석할 수 있다. 고급 리조트라는 장소, 국제 큐레이터, 비판적 담론, 사적 재단 자본이 결합하면서 프로젝트는 위상을 획득한다. 예술은 사회적 의제를 다루는 동시에, 문화적 위계를 생산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마야 호프만의 모델은 단정적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그녀의 프로젝트는 장기적이고 인프라 중심이며 교육과 연구를 포함한다. 그러나 그 출발점은 사적 자본이다. 질문은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사적 자본이 구축한 문화 인프라는 어디까지 공공성을 확장할 수 있는가. 산업 유산을 재생하는 전략과 이미 부유한 공간을 문화적으로 강화하는 전략은 동일한 가치 체계를 공유하는가.

이 긴장 속에서 그녀의 행보는 개인 전기를 넘어선다. 그것은 동시대 문화 자본이 작동하는 구조, 그리고 그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드러내는 사례로 읽힌다.

사적 자본이 구축한 문화 인프라는 공공성을 지향할 수 있지만, 완전히 공공적인 제도로 전환되기는 어렵다. 민주화는 프로그램 차원에서 시도될 수 있으나, 소유와 통제의 구조는 여전히 사적이다.

결국 그녀의 프로젝트는 동시대 문화 자본의 가능성과 제약을 동시에 드러낸다. 산업 유산을 문화로 전환하는 상상력, 국제 네트워크를 조직하는 역량은 분명 강력하다. 그러나 그 모든 구조는 특정 계층의 자본과 연결되어 있다.

질문은 남는다. 사적 재단 모델은 공공 미술관의 대안이 될 수 있는가, 아니면 또 다른 엘리트 문화 장치로 남는가. 그녀의 생애는 그 물음 위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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