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사우스] 기술과 자연의 일원론적 세계

박시연
2026-02-24
조회수 201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 적군의 언어>가 지난 1일 막을 내렸다. 미술관 건물을 모두 사용하여 하나의 조각적 생태계로 전환하는 시도로, 대규모 장소/환경 특정적 프로젝트다. 비야르 로하스는 인류가 직면한 현재와 미래 위기 속에서 다양한 생명체와 그들이 맺는 복잡한 관계를 탐구해왔다. 외계 존재와 지구의 조우를 구현한 듯한 전시는 흙, 불, 식물 등 가공되지 않은 자연 요소를 미술관으로 끌어들여 내부와 외부, 제도적 공간과 지구 생태 사이의 경계를 흐릿하게 한다. 호모 사피엔스는 상징체계를 홀로 발명한 것이 아니다.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 등 다른 인류와 함께 진화했다. 전시는 바로 이러한 역설을 보여준다. 인류의 적이자 협력자였던 자연선택의 과정을 상징적 사고의 첫 시작으로 보았다. ‘적’이라는 타자성은 위협적이면서도 자기 자신을 인식하게 하는 시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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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선재센터 전시 전경


 전시장 지하엔 거대한 엔진으로 추정되는 기계 덩어리가 나무줄기에 엉켜 매달려 있다. 기술의 최전선으로 읽히는 이 덩어리는 자연물에 이질적인 존재로 보인다. 어딘가 익숙하기도 한 이 장면은 영화 ‘아바타’의 세계를 연상시킨다. 지구의 에너지 고갈로 인해 대체자원을 채굴 하고자 인간은 행성 ‘판도라’를 침입한다. 행성을 지키기 위한 사투가 끝난 뒤 인간이 남긴 무기, 컨테이너와 같은 잔해 위로 자라난 자연의 자생적 가능성을 상상하게끔 했다. 판도라의 종족들은 기술에 반대하며 무력으로 의사를 표명한다. 전쟁은 그들의 신 '에이와'가 금지한 행위이지만, 수많은 생명들이 죽고 노예화 될 위기에 처하게 된다. 지킬 수 있는 대상이 없어지는 시대를 막기 위해 그들은 전쟁에 참여한다. 여기서 이미 기술과 자연은 결합을 이루며 새로운 객체로 등장한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전쟁 옹호가 아니다. 사랑하는 대상이 사라지는 미래가 도래하지 않도록 지금 현재에 맞게 변화해나가는 태도가 필요하다. 중심을 잡아야 한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자연은 기술에 대응하는 존재로 위치하게 된다. 이러한 종래의 이원론적 관점에 의문이 생긴다. 왜 우리는 자연을 기술에 대응하는 존재로만 인식해왔을까? 


 기술이 고도화 될수록 기술이 인간을 지배할 것이란 두려움도 확산된다. 우리는 왜 타자에게 왜 삶의 일부를 내어줄 수 없냐는 질문으로도 이어진다. 나는 이것이 긍정적인 상호경험이 부재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인간이 기술에 지배를 받게 된다는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지배 경험에서 비롯된다. 지금까지 지배는 폭력을 수반했다. 지배는 아름다운 배치를 위한 자의식을 강요한다. 지배자들은 자신들의 권위와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타자를 열등함으로 규정하고 우월감을 확보했다. 이는 서구에서 동양인에 대한 차별, 오리엔탈리즘에서도 드러난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동양이란 사실상 유럽인들의 머릿속에서 조작된 것”으로 보고 오리엔탈리즘을 인식론적 폭력으로 규정했다. 열등한 ‘타자화’는 실체가 없다. 우월성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날 것의 자연에서 인간은 무력하다. 기술을 인간의 도구로 사용할 수 없을 때, 자연의 인체는 기술에 대응할 능력이 없다. 우리가 기술을 지배(도구화)하려고 했기에 지배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타자에게 행했던 지배의 문법이 우리에게 되돌아올 것을 직감하기 때문이다. 타자화는 사소한 일상의 장면에서 거듭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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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자 드러눕고, 바닥 뚫고, 비둘기 정모의 장 된 파격의 미술관" 김금영 기자, 문화경제


 한국에서 ㅇㅇ(동물 종)맘이라는 댓글은 동물이 주제인 영상에서 자주 보인다. 길고양이에게 밥과 보금자리를 제공하는 중년 여성들 이른바 ‘캣맘’에서 확장되어 야생동물과 관련된 영상에서 빠짐없이 등장하고 있다. 그중 ‘비둘기맘’이란 단어는 유해동물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 타당하냐는 질문으로도 이어졌다. 맹자는 측은지심이 인간의 본성이라 하였는데, 불쌍함을 느끼는 것이 조롱의 대상이 된다면, 감정은 구조와 맥락 속에서 등장하는 계산으로 전락하고 만다. 감정은 분류체계에 속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감정 또한 실체가 없다. 감정이 선행되었기에 이름이 붙인 것이다. 유해동물에게 불쌍한 감정을 느끼면 안 된다는 주장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본다.

 무엇보다도 유해동물 지정에 대한 근원적 물음을 피할 수 없다. 누구에게 유해한 것인가? 유해하다는 기준은 인간 사회에서 결정된다. 대상을 감독하고 조절하면서 생태계라는 이름을 붙인다. 자연을 자연답게 연출하기 위해 생명은 조율된다. 도시생활에 적절하게 배치된 균형을 만든다. 욕망은 질서라는 이름으로 나타난다. 타자성에 대한 재고를 통해, 대상을 분리하고 규정짓던 과거에서 벗어나 서로 교감하고 상호의지적인 관계를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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