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판 1. Francis Alÿs, 《Ricochets》, Barbican Centre, London. ArtReview (Anna Parker 리뷰) 게재 이미지.
런던 Barbican Centre에서 열린 <Ricochets>는 벨기에 출신 작가 Francis Alÿs가 오랫동안 탐구해온 사회적 권력 역학, 공공 공간의 상업화, 시민 공동체의 침식이라는 문제의식을 배경에 둔다. 전시장 곳곳에 설치된 약 40편의 영상은 15개국 이상에서 촬영되었으며, 그중 상당수는 지정학적 갈등이 지속되는 지역이다. 콩고민주공화국, 우크라이나 하르키우, 중동과 남미의 여러 도시들이 느슨하게 연결되며 하나의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이러한 작업 태도는 작가가 던진 질문과 맞닿아 있다. “님루드와 팔미라가 파괴되는 동안 예술을 만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물음은, 갈등의 한복판에서 이미지를 생산하는 행위 자체의 윤리적 조건을 전시의 전제로 제시한다.
영상 속에서 아이들은 의자 뺏기, 말타기, 사방치기 같은 익숙한 놀이를 반복하거나 변주한다. 어떤 장면에서는 군사 검문을 흉내 내고, 다른 장면에서는 보이지 않는 경계를 설정하며 차례를 정한다. 콩고민주공화국의 소녀가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다 화면이 암전되고 다시 시작되는 구조, 하르키우의 소년들이 나무 소총을 들고 통과 의례처럼 검문을 수행하는 장면은 놀이가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환경을 조직하는 방식임을 드러낸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공간을 분할하고 규칙을 설정하며, 통제와 협상의 감각을 학습한다. 동시에 환상의 장치를 빌려 평시와 전시를 가로지르는 감정—불안, 긴장, 기대, 공포—을 간접적으로 처리한다. 작가는 이러한 장면들을 두고 자신의 회화와 드로잉을 “내가 살고 있는 순간과 일치하려는 시도”라고 말한 바 있다. 놀이의 기록은 단순한 관찰이 아니라, 동시대의 조건과 나란히 서 있으려는 태도로 읽힌다.
전시는 이러한 장면을 설명 없이 병치한다. 내레이션은 최소화되고 사건의 정치적 배경은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는다. 대신 반복과 리듬이 강조된다. 서로 다른 국가에서 촬영된 영상들은 ‘놀이’라는 공통의 형식 안에서 공명하며, 지역적 특수성은 잠시 뒤로 물러난다. 그 결과 관객은 특정 사건의 기록을 보는 대신, 놀이가 권력의 형식을 모방하고 재구성하는 방식을 관찰하게 된다. 관객은 주어진 장면을 해석하기 위해 스스로 맥락을 추정해야 한다. 갈등은 직접적으로 진술되지 않고, 반복과 몸짓이라는 형식 안에 머문다.
이 모호함은 단순한 결핍이 아니라 전략처럼 보인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촬영된 장면들은 특정한 역사적 사건 대신 ‘놀이’라는 보편적 틀 안에 병치된다. 전쟁은 배경으로 물러나고, 권력은 모방의 제스처로 전면화된다. 아이들의 몸은 군인, 검문, 통제의 형식을 흉내 내지만, 폭력의 실제는 화면 밖에 남는다. 이로써 관객은 충격을 직접적으로 마주하기보다, 장면의 구조적 유사성을 읽어내는 위치에 선다. 반복되는 영상은 서사를 최소화하고 리듬을 강조하며, 갈등의 현실을 감각적 패턴으로 전환한다. 그 결과 우리는 사건의 증인이라기보다 의미의 조합자가 된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문제가 생긴다. 맥락을 생략하는 방식은 관객에게 해석의 자유를 주지만, 동시에 현실의 구체적인 상황을 흐리게 만들 위험도 있다. 갈등이 벌어지는 장소와 조건이 분명히 드러나지 않을수록, 전쟁은 추상적인 개념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정치적 현실은 살아 있는 현재의 문제라기보다, 하나의 문화적 장면이나 관찰 대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관객은 스스로 생각하고 해석하지만, 그 과정은 전시장이라는 안전한 공간 안에서 이루어진다. 우리는 질문을 떠올리게 되지만, 그 질문이 실제 세계의 행동이나 책임으로 이어지도록 이끄는 장치는 충분히 제시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예술이 보다 분명한 가치와 방향을 제시했다면 다른 결과가 가능했을까. 만약 전시가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명시적으로 선언했다면, 관객은 해석의 주체라기보다 동의하거나 반대하는 위치로 이동했을 가능성이 있다. 메시지가 선명해질수록 작품은 사유의 공간을 일부 닫고, 하나의 입장을 전달하는 장치로 기능할 수 있다. 이는 윤리적 용기로 읽힐 수 있지만, 동시에 미학적 복수성을 축소하는 선택이기도 하다.
결국 문제는 모호함과 명료함 중 어느 쪽이 옳은가에 있지 않다. 이 전시는 모호함을 통해 관객에게 해석의 권한을 넘기며, 갈등을 보편적 형식 속에서 사유하도록 유도한다. 그러나 그 권한은 안전한 거리 위에서 행사된다. 반대로 명확한 메시지는 실천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지만, 감상의 다층성을 제한할 수 있다. 예술가는 이 두 위험 사이에서 어디까지 말하고 어디에서 멈출 것인지를 선택한다. 작가가 던진 질문—파괴가 진행 중인 세계에서 예술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은 이 선택의 윤리적 무게를 끝까지 환기한다. 중요한 것은 방향의 유무가 아니라, 그 형식이 관객에게 어떤 위치를 부여하고 어떤 책임을 요청하는가이다.
<References>
1. Anna Parker, “Francis Alÿs: Ricochets, Barbican Centre, London,” ArtReview, https://artreview.com/francis-alys-ricochets-barbican-centre-london-review-anna-parker/
2. Image reproduced from Anna Parker, “Francis Alÿs: Ricochets, Barbican Centre, London,” ArtReview, https://artreview.com/francis-alys-ricochets-barbican-centre-london-review-anna-parker/
3. “Francis Alÿs: Exhibition Guide,” Barbican Centre, https://www.barbican.org.uk/exhibition-guides/francis-alys-exhibition-guide
문화예술기획 : https://aither.imweb.me/Directing_service
전시용 가벽 렌탈 : https://aither.imweb.me/Home/?idx=168383314&bmod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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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Barbican Centre에서 열린 <Ricochets>는 벨기에 출신 작가 Francis Alÿs가 오랫동안 탐구해온 사회적 권력 역학, 공공 공간의 상업화, 시민 공동체의 침식이라는 문제의식을 배경에 둔다. 전시장 곳곳에 설치된 약 40편의 영상은 15개국 이상에서 촬영되었으며, 그중 상당수는 지정학적 갈등이 지속되는 지역이다. 콩고민주공화국, 우크라이나 하르키우, 중동과 남미의 여러 도시들이 느슨하게 연결되며 하나의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이러한 작업 태도는 작가가 던진 질문과 맞닿아 있다. “님루드와 팔미라가 파괴되는 동안 예술을 만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물음은, 갈등의 한복판에서 이미지를 생산하는 행위 자체의 윤리적 조건을 전시의 전제로 제시한다.
영상 속에서 아이들은 의자 뺏기, 말타기, 사방치기 같은 익숙한 놀이를 반복하거나 변주한다. 어떤 장면에서는 군사 검문을 흉내 내고, 다른 장면에서는 보이지 않는 경계를 설정하며 차례를 정한다. 콩고민주공화국의 소녀가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다 화면이 암전되고 다시 시작되는 구조, 하르키우의 소년들이 나무 소총을 들고 통과 의례처럼 검문을 수행하는 장면은 놀이가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환경을 조직하는 방식임을 드러낸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공간을 분할하고 규칙을 설정하며, 통제와 협상의 감각을 학습한다. 동시에 환상의 장치를 빌려 평시와 전시를 가로지르는 감정—불안, 긴장, 기대, 공포—을 간접적으로 처리한다. 작가는 이러한 장면들을 두고 자신의 회화와 드로잉을 “내가 살고 있는 순간과 일치하려는 시도”라고 말한 바 있다. 놀이의 기록은 단순한 관찰이 아니라, 동시대의 조건과 나란히 서 있으려는 태도로 읽힌다.
전시는 이러한 장면을 설명 없이 병치한다. 내레이션은 최소화되고 사건의 정치적 배경은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는다. 대신 반복과 리듬이 강조된다. 서로 다른 국가에서 촬영된 영상들은 ‘놀이’라는 공통의 형식 안에서 공명하며, 지역적 특수성은 잠시 뒤로 물러난다. 그 결과 관객은 특정 사건의 기록을 보는 대신, 놀이가 권력의 형식을 모방하고 재구성하는 방식을 관찰하게 된다. 관객은 주어진 장면을 해석하기 위해 스스로 맥락을 추정해야 한다. 갈등은 직접적으로 진술되지 않고, 반복과 몸짓이라는 형식 안에 머문다.
이 모호함은 단순한 결핍이 아니라 전략처럼 보인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촬영된 장면들은 특정한 역사적 사건 대신 ‘놀이’라는 보편적 틀 안에 병치된다. 전쟁은 배경으로 물러나고, 권력은 모방의 제스처로 전면화된다. 아이들의 몸은 군인, 검문, 통제의 형식을 흉내 내지만, 폭력의 실제는 화면 밖에 남는다. 이로써 관객은 충격을 직접적으로 마주하기보다, 장면의 구조적 유사성을 읽어내는 위치에 선다. 반복되는 영상은 서사를 최소화하고 리듬을 강조하며, 갈등의 현실을 감각적 패턴으로 전환한다. 그 결과 우리는 사건의 증인이라기보다 의미의 조합자가 된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문제가 생긴다. 맥락을 생략하는 방식은 관객에게 해석의 자유를 주지만, 동시에 현실의 구체적인 상황을 흐리게 만들 위험도 있다. 갈등이 벌어지는 장소와 조건이 분명히 드러나지 않을수록, 전쟁은 추상적인 개념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정치적 현실은 살아 있는 현재의 문제라기보다, 하나의 문화적 장면이나 관찰 대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관객은 스스로 생각하고 해석하지만, 그 과정은 전시장이라는 안전한 공간 안에서 이루어진다. 우리는 질문을 떠올리게 되지만, 그 질문이 실제 세계의 행동이나 책임으로 이어지도록 이끄는 장치는 충분히 제시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예술이 보다 분명한 가치와 방향을 제시했다면 다른 결과가 가능했을까. 만약 전시가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명시적으로 선언했다면, 관객은 해석의 주체라기보다 동의하거나 반대하는 위치로 이동했을 가능성이 있다. 메시지가 선명해질수록 작품은 사유의 공간을 일부 닫고, 하나의 입장을 전달하는 장치로 기능할 수 있다. 이는 윤리적 용기로 읽힐 수 있지만, 동시에 미학적 복수성을 축소하는 선택이기도 하다.
결국 문제는 모호함과 명료함 중 어느 쪽이 옳은가에 있지 않다. 이 전시는 모호함을 통해 관객에게 해석의 권한을 넘기며, 갈등을 보편적 형식 속에서 사유하도록 유도한다. 그러나 그 권한은 안전한 거리 위에서 행사된다. 반대로 명확한 메시지는 실천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지만, 감상의 다층성을 제한할 수 있다. 예술가는 이 두 위험 사이에서 어디까지 말하고 어디에서 멈출 것인지를 선택한다. 작가가 던진 질문—파괴가 진행 중인 세계에서 예술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은 이 선택의 윤리적 무게를 끝까지 환기한다. 중요한 것은 방향의 유무가 아니라, 그 형식이 관객에게 어떤 위치를 부여하고 어떤 책임을 요청하는가이다.
<References>
1. Anna Parker, “Francis Alÿs: Ricochets, Barbican Centre, London,” ArtReview, https://artreview.com/francis-alys-ricochets-barbican-centre-london-review-anna-parker/
2. Image reproduced from Anna Parker, “Francis Alÿs: Ricochets, Barbican Centre, London,” ArtReview, https://artreview.com/francis-alys-ricochets-barbican-centre-london-review-anna-parker/
3. “Francis Alÿs: Exhibition Guide,” Barbican Centre, https://www.barbican.org.uk/exhibition-guides/francis-alys-exhibition-guide
문화예술기획 : https://aither.imweb.me/Directing_service
전시용 가벽 렌탈 : https://aither.imweb.me/Home/?idx=168383314&bmod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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