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mmon〉 전시 전경, 케이프타운, 2023. 사진 제공: e-flux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A4 Arts Foundation에서 열린 전시 “Common”은 식민 권력의 상징인 Castle of Good Hope와 불과 300미터 떨어진 장소에서, ‘공유지(commons)’가 어떻게 파괴되고 또 어떻게 재구성될 수 있는지를 탐구한 전시다. 큐레이터 Khanya Mashabela는 식민주의와 아파르트헤이트, 그리고 오늘날까지 지속되는 구조적 불평등 속에서 예술이 공동체의 해체에 어떤 방식으로 응답해왔는지를 묻는다. Sue Williamson의 디스트릭트 식스 철거 직전 가족의 삶을 기록한 사진을 시작으로, 감시 장치와 경계를 다루는 작업들, 전시장에 설치된 도서관, 일상의 장면을 포착한 회화와 사진, 그리고 저항의 역사를 담은 아카이브 티셔츠까지, 전시는 공유지를 토지의 문제에 한정하지 않고 사회적 관계 전반으로 확장한다.
전시가 이 장소에서 출발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Castle of Good Hope는 17세기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세운 케이프타운에서 가장 오래된 식민 건축물로, 토지 수탈과 자본 축적, 인종적 지배와 환경 착취가 교차한 식민 관계의 상징으로 제시된다. 오각형의 보루와 높은 석벽, 주둔지와 감옥으로 이루어진 건축 구조는 공유지를 지배하고 통제하기 위한 전략을 물리적으로 구현한다. 전시는 이 성곽을 단순한 역사적 유산이 아니라, 식민주의에서 아파르트헤이트를 거쳐 오늘날까지 구조적으로 지속되는 권력의 형식으로 호출한다. 따라서 “Common”은 경계 짓고, 배제하고, 소유하는 성곽의 논리와 다른 관계 맺기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시도로 읽힌다.
국가 권력은 공유지를 조직하고 관리하는 주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것을 제한하거나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작동해 왔다. 식민주의와 아파르트헤이트는 토지를 수탈했고, 현대 국가는 감시와 데이터화를 통해 사회적 관계를 체계화한다. 경계선과 철조망, 기록과 아카이브의 체계는 질서와 안전을 도모하는 장치이지만, 그 과정에서 삶을 분절하고 경험을 정보로 환원하기도 한다. 전시 속 감시 장치와 경계의 이미지들은 이러한 관리의 양면성을 시각화한다. 과학과 기술, 편리함이 높은 가치로 평가되는 시대에 공동체는 점점 제도적 관리의 틀 안에서 이해되고, 공유의 의미 역시 소유와 통제의 언어 속에서 다시 규정된다.
그러나 이러한 관리의 논리를 따라가다 보니 또 다른 질문이 생긴다. 제도와 기술의 언어로 재편된 시대에, 공유는 여전히 가능한가. 만약 토지와 제도가 공유의 의미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다시 ‘함께’의 감각을 경험할 수 있을까. 나는 이 질문 앞에서 잠시 멈추게 되었다. “Common”은 바로 그 지점에서 공유를 다른 차원으로 이동시킨다. 전시는 성곽의 물리적 경계와 국가의 관리 체계를 드러내는 데서 멈추지 않고, 감시 장치, 기록물, 일상의 장면, 아카이브 티셔츠를 통해 관계와 기억, 감정의 층위로 시선을 옮긴다. 공유는 더 이상 단지 점유할 수 있는 토지가 아니라, 경험되고 전염되는 어떤 감각의 영역으로 확장된다. 이때 비로소 예술의 역할이 선명해진다.
이 전시는 오늘날 기술의 진보와 효율성이 높은 가치로 평가되는 사회 속에서 왜 여전히 예술이 사회적 논의의 중심에 놓이는지를 되묻게 한다. 시각적 기교나 미적 완성도는 더 이상 예술의 핵심 가치로 기능하지 않는다. 대신 예술은 사회에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전면에 등장한다. Leo Tolstoy는 『예술이란 무엇인가』에서 예술을 감정의 전달, 곧 감염이라 정의한다. 언어가 생각을 전달한다면 예술은 감정을 전염시켜 사람들을 결합시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Common”의 작품들은 파괴된 공유지를 복구하지는 못하더라도, 상실과 분노, 연대의 감정을 공유하게 함으로써 또 다른 차원의 공유를 생성한다. 사진 속 벽에 남겨진 문장, 집회의 장면, 일상의 제스처는 동일한 감정을 매개로 타인과 연결되는 경험을 만든다.
예술은 토지를 되돌려주지 못한다. 무너진 집을 다시 세우지도 못한다. 그러나 감정을 공유하게 함으로써 공동체를 다시 상상하게 만든다. 성곽이 물리적 경계를 세워 배제를 조직한다면, 예술은 보이지 않는 감정의 경로를 통해 결합을 조직한다. 그래서 과학과 기술의 시대에도 예술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효율을 넘어, 우리가 함께 느낄 수 있는 가능성을 복원하는 장이기 때문이다.
<References>
1. “Common,” e-flux Criticism, https://www.e-flux.com/criticism/547122/common
2. 레프 톨스토이, 『예술이란 무엇인가』, 이강은 옮김 (바다출판사, 2023), 5장.
문화예술기획 : https://aither.imweb.me/Directing_service
전시용 가벽 렌탈 : https://aither.imweb.me/Home/?idx=168383314&bmod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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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RECTOR. GONG MYEONGSEONG.
ADDRESS. (48737) 21, BEOMIL-RO 65BEON-GIL, DONG-GU, BUSAN, REPUBLIC OF KOREA.
PARKING : Jin Market public parking lot
4F EXHIBITION.
5F LOUNGE.
6F WAREHOUSE.
ONLINE CS. MON TO SAT 10:00-18:00.
CONTACT. 051-977-5272 | SCK02145@NAVER.COM | https://aither.kr/
INSTA. @aither.kr | YOUTUBE. [www.youtube.com/@AITHERART](http://www.youtube.com/@AITHERART)
FAX. 0504-322-2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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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 공화국의 A4 Arts Foundation에서 열린 전시 “Common”은 식민 권력의 상징인 Castle of Good Hope와 불과 300미터 떨어진 장소에서, ‘공유지(commons)’가 어떻게 파괴되고 또 어떻게 재구성될 수 있는지를 탐구한 전시다. 큐레이터 Khanya Mashabela는 식민주의와 아파르트헤이트, 그리고 오늘날까지 지속되는 구조적 불평등 속에서 예술이 공동체의 해체에 어떤 방식으로 응답해왔는지를 묻는다. Sue Williamson의 디스트릭트 식스 철거 직전 가족의 삶을 기록한 사진을 시작으로, 감시 장치와 경계를 다루는 작업들, 전시장에 설치된 도서관, 일상의 장면을 포착한 회화와 사진, 그리고 저항의 역사를 담은 아카이브 티셔츠까지, 전시는 공유지를 토지의 문제에 한정하지 않고 사회적 관계 전반으로 확장한다.
전시가 이 장소에서 출발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Castle of Good Hope는 17세기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세운 케이프타운에서 가장 오래된 식민 건축물로, 토지 수탈과 자본 축적, 인종적 지배와 환경 착취가 교차한 식민 관계의 상징으로 제시된다. 오각형의 보루와 높은 석벽, 주둔지와 감옥으로 이루어진 건축 구조는 공유지를 지배하고 통제하기 위한 전략을 물리적으로 구현한다. 전시는 이 성곽을 단순한 역사적 유산이 아니라, 식민주의에서 아파르트헤이트를 거쳐 오늘날까지 구조적으로 지속되는 권력의 형식으로 호출한다. 따라서 “Common”은 경계 짓고, 배제하고, 소유하는 성곽의 논리와 다른 관계 맺기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시도로 읽힌다.
국가 권력은 공유지를 조직하고 관리하는 주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것을 제한하거나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작동해 왔다. 식민주의와 아파르트헤이트는 토지를 수탈했고, 현대 국가는 감시와 데이터화를 통해 사회적 관계를 체계화한다. 경계선과 철조망, 기록과 아카이브의 체계는 질서와 안전을 도모하는 장치이지만, 그 과정에서 삶을 분절하고 경험을 정보로 환원하기도 한다. 전시 속 감시 장치와 경계의 이미지들은 이러한 관리의 양면성을 시각화한다. 과학과 기술, 편리함이 높은 가치로 평가되는 시대에 공동체는 점점 제도적 관리의 틀 안에서 이해되고, 공유의 의미 역시 소유와 통제의 언어 속에서 다시 규정된다.
그러나 이러한 관리의 논리를 따라가다 보니 또 다른 질문이 생긴다. 제도와 기술의 언어로 재편된 시대에, 공유는 여전히 가능한가. 만약 토지와 제도가 공유의 의미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다시 ‘함께’의 감각을 경험할 수 있을까. 나는 이 질문 앞에서 잠시 멈추게 되었다. “Common”은 바로 그 지점에서 공유를 다른 차원으로 이동시킨다. 전시는 성곽의 물리적 경계와 국가의 관리 체계를 드러내는 데서 멈추지 않고, 감시 장치, 기록물, 일상의 장면, 아카이브 티셔츠를 통해 관계와 기억, 감정의 층위로 시선을 옮긴다. 공유는 더 이상 단지 점유할 수 있는 토지가 아니라, 경험되고 전염되는 어떤 감각의 영역으로 확장된다. 이때 비로소 예술의 역할이 선명해진다.
이 전시는 오늘날 기술의 진보와 효율성이 높은 가치로 평가되는 사회 속에서 왜 여전히 예술이 사회적 논의의 중심에 놓이는지를 되묻게 한다. 시각적 기교나 미적 완성도는 더 이상 예술의 핵심 가치로 기능하지 않는다. 대신 예술은 사회에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전면에 등장한다. Leo Tolstoy는 『예술이란 무엇인가』에서 예술을 감정의 전달, 곧 감염이라 정의한다. 언어가 생각을 전달한다면 예술은 감정을 전염시켜 사람들을 결합시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Common”의 작품들은 파괴된 공유지를 복구하지는 못하더라도, 상실과 분노, 연대의 감정을 공유하게 함으로써 또 다른 차원의 공유를 생성한다. 사진 속 벽에 남겨진 문장, 집회의 장면, 일상의 제스처는 동일한 감정을 매개로 타인과 연결되는 경험을 만든다.
예술은 토지를 되돌려주지 못한다. 무너진 집을 다시 세우지도 못한다. 그러나 감정을 공유하게 함으로써 공동체를 다시 상상하게 만든다. 성곽이 물리적 경계를 세워 배제를 조직한다면, 예술은 보이지 않는 감정의 경로를 통해 결합을 조직한다. 그래서 과학과 기술의 시대에도 예술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효율을 넘어, 우리가 함께 느낄 수 있는 가능성을 복원하는 장이기 때문이다.
<References>
1. “Common,” e-flux Criticism, https://www.e-flux.com/criticism/547122/common
2. 레프 톨스토이, 『예술이란 무엇인가』, 이강은 옮김 (바다출판사, 2023), 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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