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사우스] 의복과 문양의 결합: 서술성과 시대 조명 (MAO, Haori)

신영주
2026-02-23
조회수 281

일본의 의복 문화에 대한 소비에서, 여성의 기모노는 관광 산업과 미디어 이미지 속에서 반복적으로 재현되며 일본을 상징하는 대표적 아이콘으로 자리 잡아왔다. 평면적이고 단조로운 패턴 위에 덧입혀진 강렬한 문양은 여행객들로 하여금 기모노를 체험하게 만드는 하나의 요소이기도 했다. 꽃, 파도, 학, 용과 같은 상징적 이미지와 다채로운 색상, 일직선의 실루엣이 가장 즉각적인 기모노의 인상이다. 반면 남성의 의복은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아왔다. 특히 하오리는, 대체적으로 외관은 단정하되 안쪽에 화려한 그림이 숨겨지는 경우가 많다. 드러내되 과시하지 않고 암시하되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일본의 문화가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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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전경, Museo d’Arte Orientale (MAO), 토리노, 2025. 사진 제공: Museo d’Arte Orientale.


하오리, 20세기 초 남성복이 들려주는 일본의 이야기

지난 해, 이탈리아 토리노에 위치한 MAO (Asian Art Museum)에서 열린 《Haori. Men’s Clothing from the Early Twentieth Century Tells the Story of Japan》는 그동안 그늘에 머물러있던 남성복의 세계를 조명했다. 하오리와 주반을 통해 남성 기모노의 절제 속에 내포된 정교함과 복합적인 상징 세계를 드러낸다. 

약 50점의 하오리(남성 기모노 위에 입는 겉옷)와 주반(기모노 안에 입는 속옷), 그리고 마나벨로(Manavello) 컬렉션을 중심으로 구성된 이 전시는, 하오리와 주반을 장식하는 이미지를 통해 급속한 근대화와 제국주의적 긴장 속에서 격변하던 20세기 초 일본 사회를 드러낸다. 동시에 전시에 포함된 동시대 작가들의 작업을 병치함으로서 관람객으로 하여금 일본, 중국, 한국 간의 복합적인 역사적 관계를 성찰하도록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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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전경, Museo d’Arte Orientale (MAO), 토리노, 2025. 사진 제공: Museo d’Arte Orient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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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묘: 국보 아스카 다카마쓰즈카 무덤 (壁畵古墳 國寶飛鳥高松塚) (Kyoto: Benrido, 2000, Fig.) 3)

 

서구와 일본, 오리엔탈리즘의 재고

하오리와 주반에 그려진 문양들은 결코 장식에 그치지 않는다. 일본이 근대 국가로 도약하던 시기의 욕망을 응축한다. 이러한 자기 연출 전략은 일본 역사 속에서 반복되어 왔다. 아스카 시대의 고분 벽화 속에는 일본을 방문한 사신들과 궁정 인물들이 묘사되어 있다. 야마토 정권 당시 일본은 실제 국제 정서 속에서 중국과 동등한 위치가 아니었음에도, 벽화를 통해 자신들을 중심 국가처럼 표현한다. 이러한 기록을 통해 우리는 당시 일본이 무엇을 갈망했는지 읽을 수 있다.  중화 질서 속에의 편입을 바라면서도, 동시에 독자적 천화관을 만들고 싶어했다. 이는 《일본서기》의 서술 방식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의상에 새겨진 이미지 역시 외부의 시선과 민족적 자긍심이라는 반대 서사의 간극을 드러낸다. 문양들은 서구와의 양가적인 관계를 드러낸다. 유럽과 미국의 화려함과 신화를 찬미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군사력, 기술 발전, 일본 정체성의 수호를 강조하며 민족적 자긍심을 고양한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전후 근대 일본의 비전에서 핵심적 요소였다. 이러한 서사는 과거에 머무르지 않는다. 일본 제국주의적 역학에 연루되었던 아시아 국가들에서 여전히 남아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전시에 포함된 동시대 작품들은, 단순히 서사를 풍부하게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재를 비판적으로 조망한다. 20세기의 긴장과 유산이 오늘날 세계를 어떻게 형성하고 있는지를 분명히 드러낸다. 이는 동시대 미술과의 대화를 통해 과거와 현재 사이의 역동적 관계를 형성하려는 시도와도 이어진다. 선정된 작품들은 정체성, 기억, 권력, 이주라는 주제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층위를 제시한다. 한국 작가 김수자의 영상 〈A Needle Woman〉과 조각 연작 〈Bottari〉는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탐구하며 문화적 혼종성과 유목성에 대해 성찰한다. 독일 작가 토비아스 레베르거는 〈Kotatsu (J. Stempel)〉를 통해 일본과 유럽 전통을 결합하며 변형과 죽음의 개념을 사유한다. 

이처럼 역사적 의복과 동시대적 시각을 병치함으로써 서구에서 여전히 낭만적이고 전통적인 이미지로 고정되어 있는 오리엔탈리즘적 시선을 재고한다. 서구가 오랫동안 소비해온 일본은 게이샤와 벚꽃의 부드러운 이미지에 가까웠다면, 이 전시는 남성복을 통해 근대 국가로서의 일본, 권력과 기술, 제국적 욕망이 내재된 또 다른 일본을 조명한다. 

겉으로는 절제된 미감을 유지하면서도 내부에는 국가적 서사를 품고 있는 하오리는 일본이 스스로를 어떻게 연출해왔는지 보여주는 매개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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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n’s informal overkimono (haori) jacket with ship leaving a dock, 1920–1940, 110 × 130 × 52.5 cm. 사진 제공: Alessandro Muner.


의복 위 문양이 가지는 서술성

의복을 장식하는 문양은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말한다. 고전 문학, 병법, 자연, 신적 영역에 대한 참조까지 폭넓게 확장되며,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를 형성한다. 옷 안쪽에만 보이는 이미지들은 은밀한 메시지처럼 작동하면서도, 동시에 분명한 이데올로기적 내용을 전달한다.

인쇄와 문양를 통해 우리는 더욱 다층적인 의복의 역할을 경험할 수 있다. 의복이 단순한 기능적 장치를 넘어 하나의 매체가 되는 순간을 목격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전시는 의복을 입는 것에서 읽는 것으로 전환한다. 문양은 장식에서 그치지 않고, 한 시대 속에서 욕망과 권력이 교차한 지점을 묘사한다. 의복에서의 문양은 무언가를 서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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