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사우스] 반란의 언어와 카니발(carnival)

신영주
2026-02-13
조회수 253

8ddc9eb2f10b5.jpg

James Gillray, A sphere, projecting against a plane (William Pitt; Albinia, Countess of Buckinghamshire), 1792. Courtesy National Portrait Gallery, London


카니발과 그로테스크: 전복의 미학

중세의 카니발은 단순한 축제가 아니었다. 권위의 위계가 일시적으로 해체되는 공간이었다. 사순절과 함께 종교적 금욕에 들어가기 앞서 과잉과 정화를 통해 질서를 회복하는 하나의 이벤트인 셈이었다. 축제가 열리는 동안 왕과 농민, 성직자와 평민은 구분이 흐려졌고 권위는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러시아 문학이론가 미하일 바흐친은 이를 카니발적(carnivalesque)이라 명명하며 사회적 질서를 전복하는 집단적 웃음의 장으로 해석한다. 이 공간에서는 몸과 물질, 과장과 왜곡이 중심이 된다. 

그로테스크는 고대 로마에서 하나의 양식으로 등장함과 동시에 무의미하고 비논리적인 것으로 치부된다. 1480년경 로마의 미완성 궁전 ‘도무스 아우레아 (Domus Aurea)’ 에서 발견된 장식 프리즈가 grottesche (동굴에서 온 것)으로 불렸고, 이는 그로테스크라는 용어의 기원이 된다. 추상과 형상, 찬사와 비난이라는 양가적 시선을 등에 업은 채 삽화와 장식으로 확산된다. 19세기 프랑스 화가이자 풍자가 ‘오노레 도미에’는 과장된 시각 언어를 통해 정치와 부패를 풍자함으로써 그로테스크를 정치적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그 외에도 20세기 초 아르누보를 비롯한 여러 시대의 작가들로하여금 그로테스크는 하나의 도구로써 지속적으로 사용된다. 오늘날 그로테스크는 기이하고 괴기한 것, 극도로 부자연스럽고 우스꽝스러운 것을 담는 반란의 언어로 작동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로테스크는 카니발적 정신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방식이다. 과장된 몸과 뒤틀린 비례, 유머는 단순히 기괴함이 아니라 위계를 해체하는 전략인 셈이다. 그가 말한 ‘그로테스크한 몸’은 먹고 배설하며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몸이다. 이 몸은 고상한 이상과 균형 잡힌 형식을 무너뜨리며 권위라는 명목을 낮은 차원으로 끌어내리며 새로운 질서를 상상한다. 

당대의 디지털 공간에서의 밈과 정치 풍자, 과장된 이미지들은 또 하나의 카니발적 장을 형성한다. 카니발의 장소가 인터넷이라는 매체로 이동한 것이다. AI로 재구성되는 가자지구 이미지, 밈의 무한 복제. 현실이 이미 과장과 스펙터클로 구성된 시대에 그로테스크는 단순한 유머를 넘어 하나의 인식 전략으로 작동한다. 

 

ec35c79415318.jpg

Marc Kokopeli, Now We Are On Easy Street, 2025 (installation view). Photo: © Graysc. Courtesy the artist and Galerie Isabella Bortolozzi, Berlin.


사우스 파크와 마르크 코코펠리 

최근 시즌의 사우스 파크는 이제 익숙해진 설정을 따른다. 백악관 이스트 윙을 파괴하기 위한 미국 대통령의 폭주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엉덩이 아기”를 살해하려는 음모로 중단된다. 또 다른 서브플롯에서 아이들은 마음의 도덕적 타락을 슬퍼하거나 한탄하는 디지털 커뮤니티를 만들고 “South Park Sucks Now Bitcoin”이라는 디지털 화폐를 출시한다. 현실은 일그러진 카니발 거울에 비친 듯 반사된다. 그로테스크 풍자는 사우스 파크에서 일상적이다. 

이 지점에서 마르크 코코펠리의 전시 《Now We Are On Easy Streett》가 등장한다. 베를린 갈레리 이사벨라 보르톨로치에서 열린 이 전시는 미국 시트콤을 순수미술의 어휘 속으로 끌어들인다. 영원히 어린 모습으로 남아 있는 사우스 파크의 캐릭터들은 이곳에서 상징적인 원색 겨울옷을 벗겨낸 채 풍자의 골격만을 드러낸다. 작가는 이 캐릭터들의 표정 변화와 연극적 배경을 LCD 화면에 재생하고, 네 개의 유리 진열장 안에 가두듯 놓아둔다. 유리 뒤에 갇힌 캐릭터들은 원래의 외설적 언어 대신 작가의 이전 영상작업에서 차용된 어색하고 단조로운 대사만을 반복한다. 대중 이미지 속 캐릭터들을 기존의 역할과 분리한 채 새로운 대본을 부여한 것이다. 카니발은 유동과 흐름의 느낌에 가깝지만, 유리 진열장은 고정된 채 굳어있다. 이로써 그들은 또 하나의 조롱 대상으로 전락한다. 

 

a1ba364c42fad.jpg

Saint Lucia Carnival, 2023, Photo: Lara Red/Shutterstock.com


카니발은 더이상 축제가 아니다

<사우스 파크>는 1997년 시작되어 밈 이전의 미디어를 선점했고, 동시에 밈을 능가한다. 정치적 양가성 속에서 쇼는 계속해서 방향을 바꿔왔다. 제작자는 “우리가 정치화된 게 아니라 정치가 팝 컬처가 된 것”이라 말한다. 이제 더 많은 만화적이고 그로테스크한 형상들이 인간 희극을 패러디한다. 왜 그로테스크는 이렇게 끈질기게 되돌아오는가? 이 용어는 삶과 예술의 부조리 현상에 대해 무엇을 설명하는가? 이 시점에서는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이전에는 광장에서 벌어진 카니발이 이제는 인터넷과 밈, 유튜브를 통해 벌어지고 있다. 새로운 카니발의 장이 열린 것이다. 정치가들은 밈이 되고, 권위는 유머로 분해되고, 과장된 이미지가 부유한다. 일시적 전복에서 그쳤던 카니발이 현재는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1795280f23841.jpg

Marc Kokopeli, Now We Are On Easy Street, 2025 (installation view). Photo: © Graysc. Courtesy the artist and Galerie Isabella Bortolozzi, Berlin.


희화화를 통해 경계를 유지하기

그로테스크는 오랫동안 권위를 낮추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권력은 스스로를 희화화하고 과장하며 스펙터클을 생산한다. 전복은 더 이상 예외가 아니라 일상의 이미지가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로테스크는 여전히 반란의 언어로서의 힘을 지니는가, 아니면 이미 흡수되어 하나의 상태로 전락한 전략인가. 그로테스크적 카니발이 상시화된 시대에 전복은 무엇을 향해 작동할 수 있는가. 

그럼에도 그로테스크적 유머는 여전히 우리에게 또 하나의 놀이의 장이 된다. 권위에 경계성을 부여하고, 예술이 자유로움을 갖도록 지지한다. 

 





















-





-

예술협회 아이테르 [ AITHER ] 부산전시관


문화예술기획


아이테르 AITHER 


부산 갤러리/전시관

- 문화예술기획업


주소: (48737)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로 65번길 21

주차: 진시장 공영주차장

서비스 운영시간: 월-토 10:00~18:00

연락처: 051-977-5272 | sck02145@naver.com | https://aither.kr/

팩스: 0504-322-2379

인스타그램: @aither.kr

유튜브: https://www.youtube.com/@AITHERART


[시설 안내]

4층, 전시 공간

5층, 라운지

6층, 창고



#신진 #작가 #art #artist #artwork #daily #미술 #painting #drawing #작품 #예술 #전시 #아트 #exhibition #일러스트 #서울 #전시회 #contemporaryart #현대미술 #그림 #아티스트 #seoul #조각 #oilpainting #예술가 #설치미술 #gallery #드로잉 #작가추천

b358ae65c6ca8.png


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