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것에서 다시 삶을 시작하는 사람 : 이승(Seung Lee)의 예술과 삶

리자공
2026-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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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것에서 다시 삶을 시작하는 사람


이승(Seung Lee)의 예술과 삶


공명성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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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을 존경한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높은 자리에 올랐는지를 확인하는 일과는 다르다. 더 오래 들여다봐야 하는 것은 그 사람이 자신의 시간을 어떻게 견뎌왔는가, 실패와 상실을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였는가,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경험을 다른 사람과 사회에 어떤 형태로 되돌려주었는가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승의 삶과 예술은 천천히 살펴볼 가치가 있다. 그는 한국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이주했고, 낯선 언어와 문화 속에서 예술을 자신의 언어로 삼았다. 두 번의 화재로 삶의 흔적과 작품을 잃었고, 생계를 위해 뉴욕의 택시를 몰았으며, 이후 수십 년 동안 작가이자 교육자로 살아왔다. 그의 작업을 관통하는 나무와 뿌리, 폐목재, 버려진 사물, 오래된 그림과 대나무는 서로 다른 소재처럼 보이지만 하나의 태도로 연결되어 있다. 이미 끝났다고 여겨지는 것에서 다시 시작할 가능성을 발견하는 태도다.

이승은 1960년 경기도 청평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었고, 1975년 열다섯 살 무렵 가족과 함께 미국 볼티모어로 이주했다. 미국에 도착했을 당시 영어는 익숙하지 않았고 문화 역시 낯설었다. 말로 자신의 생각을 온전히 전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미술은 그가 세상과 관계를 맺는 하나의 언어가 되었다. 이후 Maryland Institute College of Art에서 드로잉을 공부하고 Pratt Institute에서 회화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학업 과정 중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공부하며 또 한 번 낯선 언어와 문화 속에 놓였고, 이러한 경험은 예술과 삶을 분리해서 생각하기 어렵다는 인식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그가 오랫동안 이야기해온 “Art is life, life is art”라는 문장은 이런 배경에서 읽을 필요가 있다. 작품을 만드는 시간과 살아가는 시간이 분리되어 있지 않았고, 이민자로서 경험한 불안과 적응, 노동과 기억은 자연스럽게 작업의 일부가 되었다.


그의 삶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사건 가운데 하나는 상실이다. 1980년대 그는 브루클린의 거주 공간과 작업실에서 각각 화재를 경험했다. 개인적인 물건과 작품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일을 두 차례 경험하면서 사물을 바라보는 태도 역시 달라졌다. 대학원을 졸업한 뒤에는 생계를 위해 여러 해 동안 뉴욕에서 택시를 운전했다. 이 시기 강도를 경험하는 등 위험한 순간도 있었다. 이러한 경험을 그는 자신의 경력을 장식하는 극적인 서사로 소비하지 않았다. 오히려 삶의 불안정성을 물질을 바라보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길거리에 버려진 목재와 오래된 가구, 병과 그릇, 바퀴와 각종 폐기물을 수집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사용가치를 잃었다고 판단한 사물에서 시간이 남긴 흔적을 발견했다. 이미 버려진 물건을 다시 작품의 일부로 사용하는 것은 이후 그의 작업을 관통하는 중요한 방법론이 된다. 무엇을 새로 만들 것인가보다 이미 존재하는 것에서 무엇을 다시 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그의 작업 안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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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발표한 《Bottled Memories》는 이러한 생각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작업이다. 그는 과거 자신이 제작했던 회화와 드로잉을 잘라 오래된 유리병 속에 넣었다. 과거의 작품을 훼손하면서 동시에 보존하고, 한때 완성된 작품이었던 것을 다시 하나의 재료로 돌려놓았다. 과거를 없애는 대신 형태를 바꾸어 현재 안에 남겨두는 방식이었다. 이 작업에서 기억은 아름답게 보존되는 대상이라기보다 계속 변형되고 다시 해석되는 물질에 가깝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그의 교육 현장에서 나타난 태도다. 그는 학생들이 실패했다고 판단해 버린 캔버스를 다시 가져와 그 위에 자신의 작업을 이어가기도 했다. 학생이 실패한 그림을 개인의 부족함으로만 보지 않고, 가르치는 사람 역시 그 과정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 버려진 캔버스를 다시 그리고 고쳐 새로운 작업으로 만드는 행위는 그의 작품 세계와 교육 철학이 만나는 지점이다. 실패한 것을 제거하는 대신 실패까지 자신의 역사 안으로 가져오는 태도다.


이승은 오랜 시간 작가와 교육자의 역할을 함께 수행해왔다. Long Island University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학생들을 가르쳤고 Fine Arts 프로그램을 이끄는 역할을 맡았다. 동시에 미국과 한국, 유럽과 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개인전과 단체전에 참여하며 자신의 작업을 지속했다. 수십 년 동안 교육과 창작을 병행한다는 것은 단순한 직업적 병행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자신의 작업 세계를 구축하는 데 집중하면서도 다른 세대의 작가가 성장하는 과정에 시간을 내어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지역 미술기관과 전시, 공모 심사에도 지속적으로 참여했다. 예술가로서 자신의 이름을 만드는 일과 예술 생태계를 유지하는 일을 별개의 문제로 두지 않았다. 미술은 개인의 성취만으로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오랜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던 사람의 선택에 가깝다.


그의 작업에서 자연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도 이러한 삶의 태도와 연결된다. 나무는 오래전부터 이승의 작업에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나무의 줄기와 뿌리, 갈라진 표면은 인간의 몸과 시간의 흔적을 연상시킨다. 그는 사람의 표정이나 성격을 관찰한 뒤 그것을 상상의 나무로 옮기기도 했다. 인간의 모습을 직접 그리지 않고 나무의 형태를 통해 한 사람의 존재를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자연은 이승에게 풍경을 구성하는 배경이기보다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관찰의 대상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나면서 이러한 관심은 대나무로 이어졌다. 롱아일랜드의 작업실 주변에서 자라는 대나무를 오랫동안 바라보고 관리하면서 그는 대나무가 가진 생존 방식에 주목했다. 눈의 무게에 눌려 휘어졌다가도 다시 일어나고, 강한 바람을 정면으로 거스르기보다 몸을 휘어 견디며, 새로운 땅에서도 빠르게 뿌리를 내린다. 대나무를 바라보면서 그는 자신의 이민 경험을 떠올렸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옮겨와 새로운 언어와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동안 자신 역시 부러지지 않기 위해 변화하고 적응해야 했다. 그의 대나무가 단순한 동양적 상징에 머물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승의 작업에서 대나무는 이주한 사람의 신체이며, 환경에 적응하는 방법이고, 오랜 시간 생존한 사람의 모습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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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그의 대나무 작업에서는 구체적인 식물의 형상이 점차 선과 구조로 변해간다. 줄기는 화면을 가로지르는 선이 되고, 수직과 사선이 반복되면서 건축적 구조와 추상적 공간을 만든다. 회화와 설치가 결합된 작업에서는 관람객이 하나의 숲 안으로 들어가듯 작품 사이를 이동하게 된다. 《Bamboo Forest》와 《Transplanted Forest》 같은 작업에서 중요한 것은 대나무를 얼마나 사실적으로 묘사했는가가 아니다. 관람객이 그 공간 안에 머무르면서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잠시 생각하게 만드는 데 있다. 그의 작품에서 자연은 감상의 대상에서 삶을 성찰하게 만드는 구조로 이동한다.


이승의 작업을 오래 바라보면 몇 가지 단어가 반복해서 남는다. 기억, 순환, 이주, 노동, 실패, 회복 그리고 지속이다. 이 단어들은 서로 떨어져 있지 않다. 두 번의 화재 이후 버려진 물건을 다시 작품으로 가져온 행위와 과거의 그림을 잘라 병 속에 보관한 행위, 학생들이 버린 캔버스를 다시 그린 행위, 그리고 대나무가 쓰러졌다 다시 일어나는 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본 행위는 같은 방향을 향한다. 이미 지나간 시간을 삭제하지 않고 그 시간을 다음 삶의 재료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승에게서 존경할 만한 지점을 찾는다면 그것은 어떤 한 번의 성공보다 오랜 지속에 있다. 예술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몇 번의 좋은 전시를 만드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계속 작업해야 하고, 변화하는 시대와 환경을 견뎌야 하며, 자신의 경험을 다시 의심하고 다음 세대와 관계를 맺어야 한다. 이승은 수십 년 동안 그 과정을 반복해왔다.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성장한 이민자의 경험을 숨기지 않았고, 서구 현대미술의 언어를 배우면서도 자신의 기억과 문화적 배경을 지우지 않았다. 화재와 노동, 실패와 상실 역시 작업 바깥으로 밀어내지 않았다.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예술을 생각하는 하나의 재료로 받아들였다.


그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예술가에게 필요한 힘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단단하게 버티는 힘만으로 오랜 시간을 통과하기는 어렵다. 때로는 자신의 방향을 바꾸고, 과거의 실패를 받아들이며,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이승이 대나무에서 발견한 강인함과 유연함은 결국 그의 삶을 설명하는 가장 적절한 언어인지도 모른다. 대나무는 바람이 불 때 휘어지고, 겨울을 통과한 뒤 다시 일어난다. 뿌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서로 연결되고 새로운 땅으로 확장된다.


이승 역시 그렇게 살아왔다. 한곳에 자신의 이름을 크게 새기는 대신 여러 장소를 지나며 작업을 이어왔고, 자신이 얻은 경험을 학생들에게 나누었으며, 버려진 것과 실패한 것에서 다시 가능성을 발견해왔다. 그의 작품에서 회복은 과거를 잊는 일이 아니다. 기억을 가지고 계속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가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예술가의 삶을 넘어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서도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무엇을 얻었는가보다 무엇을 버리지 않았는가. 얼마나 높이 올라갔는가보다 얼마나 오래 자신의 자리를 지켰는가. 그리고 자신이 살아남은 뒤 다른 사람에게 어떤 공간을 내어주었는가.


이승의 예술과 삶이 오래 기억될 이유는 바로 그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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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명성(작성자), 「큐레토리얼 피라미드의 하류에서」(글제목), 아이테르 범일가옥,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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