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증의 재보관 : 미술 전시의 대항아카이브와 글쓰기의 증언적 기능

리자공
2026-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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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증(採證)의 재보관(再保管)

미술 전시의 대항아카이브와 글쓰기의 증언적 기능



국문초록

채증(採證)은 경찰이 집회·시위 현장에서 범죄수사를 목적으로 촬영·녹화·녹음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제도적 방법이다. 이 글은 채증을 '이미지의 문제'가 아니라 '보관(custody)의 문제'로 재정식화한다. 법과학적으로 증거의 효력은 이미지 내부의 진실이 아니라, 채취·보관·분석의 전 과정에서 동일성과 무결성이 유지되었음을 입증하는 연쇄보관성(chain of custody)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미술 전시가 채증을 아카이브로 전유할 때 관건이 되는 것은 따라서 무엇이 찍혔는가가 아니라 누가 그 기록의 동일성을 보증하는가, 즉 보관의 권한이다. 이 글은 전시장을 증거가 다시 심리되는 대안적 '포럼(forum)'으로, 그리고 기획텍스트·캡션·증언의 문장화를 그 포럼에서 보관의 사슬을 다시 잇는 규범적·수행적 장치로 규정한다. 사진 자체에는 고정된 의미가 없으며 그 증거적 힘은 담론적 틀이 부여한다는 사진 이론의 통찰에 기대어, 이 글은 미술 전시에서 '글로 표현되는 것'이 이미지의 부속 설명이 아니라 채증 이미지를 국가의 증거에서 시민의 대항증언으로 전환시키는 핵심 기제임을 논증한다.


주제어: 채증, 대항아카이브, 연쇄보관성, 포럼, 대항기억, 사진과 증언, 큐레토리얼 글쓰기




1. 들어가며: 채증이 전시가 될 때

경찰청 예규 「채증활동규칙」은 채증을 집회 등 현장에서 범죄수사를 목적으로 촬영·녹화·녹음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그것은 사진촬영·동영상촬영·신변보호원 3인을 1개조로 편성하고, 20분 이상 계속되는 경우 20분마다 채증 중임을 고지하며, 수집된 자료를 '채증판독프로그램'에 입력해 대상자의 인적사항을 확인하는 일련의 표준절차를 갖춘 방법이다.


주목할 사실은 이 방법이 이미 한 차례 '전시'가 된 적이 있다는 점이다. 2011년, 경찰이 채증사진을 잘 찍은 경찰관을 선정해 포상하고 서울지방경찰청 내부에서 채증사진 전시회를 연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되었다. 권력은 채증을 미학적 성취로 전시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학생·작가·시민의 채증을 아카이브로 삼는 전시는 이 앞선 전시와 무엇이 다른가.


이 물음에 이미지의 층위에서 답할 수는 없다. 같은 카메라, 같은 현장, 종종 같은 피사체이기 때문이다. 차이는 이미지가 아니라 그 이미지를 증거이게 하는 조건 — 누가 기록을 보관하고, 누가 그 동일성을 보증하며, 어떤 서사가 이미지에 부착되는가 — 에서 발생한다. 이 글은 그 조건을 '보관의 권한'이라 부르고, 미술 전시가 채증을 전유한다는 것은 이 보관의 권한을 국가로부터 시민의 포럼으로 이관하는 일이며, 그 이관을 완성하는 것이 다름 아닌 '글'임을 논증한다.



2. 채증의 방법론: 이미지가 아니라 연쇄보관성

증거로서의 사진이 갖는 힘의 출처를 방법론적으로 살피면, 그것이 이미지의 지시성이 아니라 절차의 사슬에 있음이 드러난다. 법과학 증거가 재판에서 증거능력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시료의 채취·보관·분석 전 과정에서 동일성이 인정되고 인위적 조작·훼손·첨가가 없었음이 담보되어야 하며, 각 단계마다 정확한 인수·인계 절차의 기록이 유지되어야 한다. 이 요건이 이른바 연쇄보관성(chain of custody)이다. 디지털 증거의 영역에서도 사정은 같아서, 형체 없는 자료가 '진본'으로 성립하기 위한 선결요건은 원본성·무결성·신뢰성으로 정식화된다. 요컨대 증거의 진리효과는 이미지 안이 아니라 이미지를 둘러싼 관리의 연쇄 안에 있다.


「채증활동규칙」의 절차들 — 조 편성, 시간 고지, 판독프로그램을 통한 인적사항 입력 — 은 바로 이 연쇄를 현장에서 구축하는 장치다. 채증은 단순한 촬영이 아니라, 촬영된 신체를 아카이브에 기입하고 그것을 특정 개인으로 판독 가능하게 만드는 통치의 방법이다. 앨런 세큘라(Allan Sekula)가 「신체와 아카이브(The Body and the Archive)」에서 분석했듯, 19세기 말 알퐁스 베르티용의 범죄자 식별 체계는 기록사진을 비광학적·계산적 문서기계 안으로 편입시킴으로써 사진을 신체 관리의 도구로 전환시켰다. 이 계보에서 채증이란, 신체를 아카이브화하여 통치 가능하게 만드는 근대적 기술의 동시대적 연장이다. 따라서 채증을 전유한다는 것은 이 아카이브 기계의 보관 사슬에 개입하는 일이다.



3. 전시장이라는 대안 포럼

채증의 사슬에 개입하는 장소로서 미술 전시가 갖는 위상은 '포럼(forum)' 개념을 통해 이론화할 수 있다. 에얄 와이즈만(Eyal Weizman)이 이끄는 포렌식 아키텍처(Forensic Architecture)는, 범죄현장 접근권·자원·증거규칙 설정권과 같은 국가의 포렌식 특권을 갖지 못한 조건에서 '포렌식의 시선'을 국가의 행위 쪽으로 되돌리는 대항포렌식(counter-forensics)을 수행한다. 결정적으로 이 실천은 의회와 법정만이 아니라 박물관·미술관·시민법정·미디어를 포함한 복수의 포럼에서 작동한다. 여기서 전시장은 장식이 아니라, 국가 사법이 종결하거나 누락한 증거가 다시 제출되고 심리되는 대안적 심급이 된다.


한국의 맥락에서 이 구조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용산참사의 기록화다. 이경래·이광석은 권력에 의해 발생한 사회사적 사건에서 피해자의 기억을 담은 기록이 누락되거나 방기되는 상황에 맞서, 당사자와 예술가·시민활동가가 연대하여 대항기억(counter-memory)을 생성한 과정을 분석한다. 이들은 철거세입자·유가족을 '1차 기억주체'로, 현장의 문화활동가와 예술가를 '2차 기억주체'로 구분하고, 그 연대에 기록학적 의미를 부여한다. 이 논의가 호명하는 작업들 — 참사 당일 망루의 모습을 분 단위로 촬영해 기록한 노순택의 〈그날의 남일당〉, 권윤덕의 〈용산참사 기록도〉, 김일란의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 — 은 공적 기록의 부재를 예술행동으로 메운 시민 대항기록의 사례들이다. 특히 망루를 분 단위로 촬영·고정한 노순택의 작업은, 경찰 채증이 수행하는 시간적 감시의 문법을 정확히 되받아치는 대항채증의 형식을 취한다.


전시가 이러한 대항기록을 아카이브로 조직할 때, 관람의 성격 자체가 변한다. 동시대 아카이브 아트에 관한 논의가 지적하듯, 아카이브를 전시 큐레이팅에 직접 접목하는 실천 속에서 관람객은 작품을 바라보는 수동적 주체에서 벗어나 아카이빙 작품의 해석자로, 즉 전시라는 창조 활동의 공동 참여자로 전환된다. 대안 포럼으로서의 전시는 이렇게 관람자를 심리의 배심(陪審)으로 초대한다.



4. 글로 표현되는 것: 사슬을 다시 잇는 문장

그렇다면 이 대안 포럼에서 보관의 권한을 실제로 이관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글은 그것이 '글'이라고 주장한다. 사진 이론의 오랜 통찰에 따르면, 사진은 그 자체로 고정된 정체성이나 의미를 갖지 않는다. 존 태그(John Tagg)가 『재현의 부담(The Burden of Representation)』에서 논했듯, 사진의 의미와 증거적 힘은 이미지 내부가 아니라 그것을 배치하는 제도적·담론적 틀이 부여하며, 아카이브란 사진이 비로소 의미를 얻는 담론적 공간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글쓰기의 기능이 결정적으로 부상한다. 채증 이미지를 '증거'로 만드는 것도, 그것을 '대항증언'으로 전환시키는 것도 결국 이미지에 부착되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국가의 채증에서 이 언어적 작업을 담당하는 것은 판독프로그램이다. 그것은 익명의 신체에 인적사항이라는 서사를 부착해 피사체를 '혐의자'로 확정한다. 미술 전시의 글 — 기획텍스트, 캡션, 문장화된 증언 — 은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같은 작업을 수행한다. 그것은 채증 대상으로 익명화되었던 신체를 증언하는 시민-주체로 재기입하고, 낱장의 이미지에 채취·전달·보존의 서사를 부여함으로써 전시가 자체의 연쇄보관성을 구성하도록 만든다. 다시 말해 미술 전시에서 글로 표현되는 것은 이미지에 대한 해설이 아니라, 증거의 보관자를 국가에서 전시의 포럼으로 재지정하는 규범적 행위다.


이 재지정은 관람자를 향한 호명이기도 하다. 아리엘라 아줄라이(Ariella Azoulay)는 사진을 통해 타인에게 말을 걸거나 사진의 수신자가 되는 누구나 '사진의 시민권(citizenry of photography)'의 일원이 될 수 있으며, 관람은 수동적 소비가 아니라 시민적 의무라고 논한다. 전시의 글은 이 시민적 계약을 언어로 실행하는 장치다. 그것은 관람자에게 "당신은 이 증거의 증인"이라고 말을 걸어, 보는 행위를 판단하고 책임지는 시민적 행위로 전환시킨다. 채증이 신체를 아카이브의 대상으로 고정한다면, 전시의 글은 관람자를 아카이브의 주체로 세운다. 글로 표현되는 것의 의미는 여기에 있다. 그것은 이미지의 진위를 설명하는 데 있지 않고, 누가 증거를 보관하고 누가 그것을 증언하는가라는 권한의 배치를 다시 쓰는 데 있다.



5. 나가며: 순수성의 회복이 아니라 보관권의 이동

이상의 논의는 하나의 윤리적 경계를 요구하며 끝맺어야 한다. 대항채증을 "얼룩진 순수성을 되찾기 위한" 정화의 기획으로 서술하려는 유혹이 있다. 그러나 순수성의 회복이라는 수사는 무결점의 심판대를 전제하며, 채증이 본래 유죄를 전제로 증거를 축적하는 행위라는 점을 상기하면, 대항기록이 스스로 심판자의 자리를 자임하게 되는 역설로 이어질 수 있다. 국가의 채증 사슬을 비판하며 출발한 전시가, 자신의 사슬을 또 하나의 판독 권력으로 굳힐 위험이다.


이 위험을 피하는 길은 전시의 과제를 '순수성의 판정'이 아니라 '보관권의 민주적 이동'으로 재설정하는 데 있다. 미술 전시의 채증 아카이브가 겨냥해야 할 것은 누가 유죄인가를 판결하는 대항법정이 아니라, 증거의 보관과 증언의 권한을 국가의 독점에서 시민의 포럼으로 개방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개방을 수행하는 언어, 즉 판결하지 않으면서 증언을 가능하게 하는 글쓰기가 이 전시의 방법론적 핵심이다. 채증이 신체의 시민권을 정지시키는 기술이었다면, 전시의 글은 그 시민권을 회복시키는 계약의 언어다. 미술 전시에서 글로 표현되는 것의 궁극적 의미는, 증거를 다시 보관한다는 것 — 그리고 그 보관의 권한을 나누어 갖는다는 것 — 에 있다.




참고문헌


이론 문헌

  • Azoulay, Ariella. The Civil Contract of Photography. New York: Zone Books, 2008.

  • Mann, Steve. "'Sousveillance': Inverse Surveillance in Multimedia Imaging." Proceedings of the ACM International Conference on Multimedia (2004): 620–627.

  • Sekula, Allan. "The Body and the Archive." October 39 (Winter 1986): 3–64.

  • Tagg, John. The Burden of Representation: Essays on Photographies and Histories.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88.

  • Weizman, Eyal. Forensic Architecture: Violence at the Threshold of Detectability. New York: Zone Books, 2017.

국내 문헌

  • 강미영. 「디지털 증거의 증거능력」. 『외법논집』 43(3) (2019): 149–167.

  • 이경래·이광석. 「동시대 '대항기억'의 기록화: 용산참사 사례를 중심으로」. 『기록학연구』 53 (2017): 45–77. (DOI: 10.20923/kjas.2017.53.045)

  • 이권일. 「집회 및 시위현장에서의 경찰의 채증활동에 대한 헌법적 정당화에 대한 고찰 — 법률유보원칙과 비례성원칙을 중심으로」. 『공법학연구』 (2019).

제도·실무 자료

  • 경찰청 예규 「채증활동규칙」.

  • 헌법재판소 2018. 8. 30. 선고 2014헌마843 전원재판부 결정.

서지 확인 필요 (제목·소장정보 확인됨, 저자/연도 재확인 요망)

  • 「'아카이브 아트(archival art)'의 동시대 기록학적 함의 연구」. 『기록학연구』. (KCI: ART002583949)

  • 「법과학 증거의 수집절차와 증명력 판단」. (KCI: ART001553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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