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진화하고 있는가
현대인의 자기 가축화
공명성 예술감독
인간은 문명의 발전을 폭력의 감소, 법과 제도의 정착, 교육의 확산, 도시화, 협력 체계의 고도화로 설명해왔다. 이 과정에서 인간의 행동은 점점 더 정교하게 조절되었고, 충동과 공격성은 사회적 규범 안에서 관리되었다. 현대의 인간은 생물학적 진화와 별개로 자신이 만든 사회적 환경에 적응하며 행동 양식을 지속적으로 바꾸고 있다.
이 현상을 자기 가축화라는 관점에서 볼 수 있다.
리처드 랭엄은 인간 진화 과정에서 반응적 공격성이 감소해왔다는 점에 주목한다. 집단 내에서 충동을 억제하고 협력할 수 있는 개체가 생존과 번식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면서 인간의 행동적 특성에도 선택압이 작동했다는 주장이다. 브라이언 헤어 역시 인간의 높은 사회적 인지능력과 친사회성을 진화적 경쟁력으로 본다. 인간의 성공은 물리적 힘만으로 설명하기 어렵고, 협력·의사소통·관계 유지 능력이 중요한 조건으로 작동했다.
이러한 자기 가축화는 인간 사회의 규모를 확장시키는 데 기여했다. 낯선 사람과 협력하고 집단의 규칙을 따르며 충동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은 대규모 공동체의 유지에 적합하다. 그러나 적응 능력의 향상이 곧 자유의 확장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에 효율적으로 적응하는 능력과 사회가 요구하는 행동을 내면화하는 능력은 상당 부분 겹친다.
노르베르트 엘리아스의 『문명화 과정』은 이 문제를 역사적으로 추적한다. 근대사회가 형성되는 동안 식사, 배설, 성, 폭력, 감정 표현과 관련된 행동 규칙은 점차 세분화되었다. 외부에서 가해지던 강제는 장기간에 걸쳐 자기통제의 형태로 내면화되었다. 사람들은 직접적인 감시가 없어도 행동을 조절하기 시작했다.
문명화는 외부 규율이 내부의 습관으로 전환되는 과정이었다.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권력의 기술이라는 차원에서 분석된다. 근대 권력은 신체를 지속적으로 처벌하기보다 시간과 공간을 조직하고, 사람을 분류하고, 행동을 기록하며, 성과를 비교하는 방식을 발전시켰다. 학교, 군대, 병원, 공장, 감옥은 서로 다른 기관이지만 인간을 관찰하고 측정하며 정상화한다는 점에서는 유사한 구조를 가진다.
푸코가 말한 ‘유순한 신체’는 통제에 저항하지 않는 신체만을 뜻하지 않는다. 훈련을 통해 더 유용하고 계산 가능하며 예측 가능한 신체를 의미한다.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인간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시간에 맞춰 움직이고, 자신의 성과를 확인하며, 평가 기준에 맞춰 행동을 수정한다.
이 구조는 현대에 들어 더욱 내부화되었다.
직장인은 별도의 감독이 없어도 업무 시간을 관리한다. 학생은 자신의 성적과 자격을 지속적으로 점검한다. 개인은 운동량, 수면시간, 체중, 소비, 생산성을 숫자로 기록한다. 소셜미디어 이용자는 게시물의 조회수와 좋아요, 팔로워 증감을 확인하며 자신의 표현 방식을 수정한다.
통제의 주체와 대상이 같은 사람이 된 것이다.
한병철이 성과사회라는 개념으로 분석한 지점도 여기에 있다. 규율사회가 금지와 명령을 중심으로 움직였다면 성과사회는 가능성과 자기계발을 강조한다. 사람은 명령받기보다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자신의 성과를 끌어올린다. 이 구조에서는 외부 강제가 줄어든 것처럼 보이지만 자기착취의 강도는 오히려 높아질 수 있다.
성과사회가 만들어낸 인간은 자신의 관리자이자 감독자이고 노동자다.
현대의 자기 가축화는 수치화와도 긴밀하게 연결된다.
연봉, 학점, 매출, 몸무게, 체지방률, 조회수, 팔로워 수, 별점, 신용점수, 성과평가 같은 지표는 개인의 상태를 빠르게 비교할 수 있도록 만든다. 지표는 복잡한 인간 행동을 관리 가능한 정보로 변환한다. 동시에 인간은 높은 평가를 받기 위해 자신의 행동을 지표에 맞추기 시작한다.
측정은 행동을 기록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측정 자체가 행동을 생산한다.
조회수가 중요해지면 콘텐츠는 조회수를 얻기 좋은 형태로 바뀐다. 성과평가가 중요해지면 노동자는 평가 항목에 맞는 업무를 우선한다. 대학 입시가 특정 능력을 측정하면 학생은 그 능력을 중심으로 학습한다. 숫자가 현실을 설명하는 도구에서 현실을 조직하는 기준으로 이동한다.
이 과정에서 측정하기 어려운 능력은 상대적으로 밀려난다. 오랜 시간에 걸친 사유, 즉각적인 결과를 만들지 않는 연구, 시장가격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예술, 목적 없는 놀이와 휴식은 생산성이 낮은 활동으로 처리되기 쉽다.
플랫폼 사회는 이러한 경향을 더욱 정교하게 만든다.
과거의 권력은 행동을 금지하거나 명령했다. 플랫폼은 행동 가능한 환경을 배열한다. 검색 결과의 순서, 추천 영상, 뉴스피드, 상품 추천, 자동재생, 알림은 사용자의 선택을 직접 금지하지 않으면서 행동의 방향을 조정한다.
추천 시스템은 사용자의 과거 행동을 학습한다. 사용자는 다시 추천 시스템의 작동 방식을 학습한다. 콘텐츠 생산자는 더 많은 노출을 얻기 위해 제목, 이미지, 영상 길이, 업로드 시간과 표현 방식을 수정한다. 사용자는 알고리즘을 이용하는 동시에 알고리즘이 선호하는 행동 형식에 적응한다.
여기에는 뚜렷한 비대칭성이 존재한다.
플랫폼은 수백만 명 또는 수억 명의 행동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지만 개인은 자신에게 제공된 화면만 경험한다. 따라서 행동 조정은 강압의 형태보다 환경 설계의 형태로 진행된다. 통제받고 있다는 감각이 약한 상태에서도 행동은 지속적으로 수정된다.
현대인은 역사적으로 많은 선택지를 가진 인간이지만 선택지가 많다는 사실과 자율성이 크다는 사실은 동일하지 않다. 대부분의 선택은 이미 설계된 환경 안에서 이루어진다. 어떤 영상을 볼지, 어떤 상품을 살지, 어떤 계정을 팔로우할지는 선택할 수 있지만 그 선택지를 배열하는 구조 자체에는 개인이 거의 개입하지 못한다.
노동시장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현대의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만 판매하지 않는다. 경력, 네트워크, 이미지, 전문성, 소셜미디어 활동, 자격증, 자기소개까지 관리해야 한다. 개인 전체가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되는 하나의 포트폴리오처럼 취급된다.
이 과정에서 자기계발은 생활의 특정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을 넘어 자기 자신을 지속적으로 시장에 맞추는 운영 방식으로 변한다.
산업사회가 정확한 시간에 출근하고 반복적인 업무를 수행할 인간을 필요로 했다면, 플랫폼 중심의 경제는 빠르게 반응하고 변화에 적응하며 자신을 지속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인간을 요구한다. 연결 상태를 유지하고, 데이터를 생산하며, 성과를 가시화하는 능력이 중요한 자질로 평가된다.
이러한 인간형은 높은 적응력을 가진다.
그러나 진화생물학에서 진화는 향상이나 진보를 의미하지 않는다. 특정 환경에서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특성이 선택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따라서 현대인이 현재의 시스템에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인간이 더 나은 상태로 발전했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현대사회의 자기 가축화라는 개념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간은 자신이 만든 환경에 적응하면서 동시에 그 환경을 강화한다. 생산성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개인은 스스로 생산성을 높인다. 가시성을 요구하는 플랫폼에서 개인은 자신을 더 자주 노출한다. 경쟁적인 노동시장에서 개인은 자신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더 많은 시간과 자원을 투자한다.
환경이 인간을 바꾸고, 변화한 인간이 다시 환경을 유지한다.
이 순환은 외부의 강제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현대적 통제의 특징은 규칙이 인간 내부에서 작동한다는 데 있다. 사람은 자신의 성과를 감시하고 스스로 부족함을 판단하며 행동을 수정한다. 제도는 모든 사람을 직접 감시할 필요가 없다. 평가 기준과 경쟁 구조를 제공하는 것만으로 상당한 자기조절을 만들어낼 수 있다.
자기 가축화의 문제를 단순히 억압의 문제로 처리해서는 안 된다. 충동 조절, 협력, 규칙의 준수는 복잡한 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능력이기도 하다. 문제는 어떤 수준의 자기통제가 공동생활을 위한 조건이고 어떤 수준부터 체제에 대한 과잉 적응으로 바뀌는가에 있다.
현대사회에서는 이 경계가 점점 흐려지고 있다.
생산성 향상과 자기착취, 자기관리와 자기감시, 사회적 협력과 순응, 자율적 선택과 알고리즘적 유도의 구분이 쉽지 않다.
따라서 현대인의 자기 가축화는 자유가 사라졌다는 선언으로 설명하기보다 자유가 작동하는 방식이 변했다는 문제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강압적 권력은 행동을 제한한다.
현대적 권력은 행동의 조건을 설계한다.
사람은 그 안에서 자유롭게 움직이지만 선택 가능한 범위와 선택의 우선순위는 이미 상당 부분 조직되어 있다.
이 지점에서 ‘당신은 진화하고 있는가’라는 제목은 자기계발의 문구와 반대 방향으로 작동한다.
현대인이 더 생산적이고, 더 연결되어 있고, 더 빠르게 적응한다는 사실만으로 인간의 진화를 평가할 수 없다. 인간이 어떤 환경에 적응하고 있는지, 그 환경이 어떤 인간형을 선호하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능력이 강화되고 어떤 능력이 사라지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
현대인은 매우 높은 적응 능력을 가진 존재가 되었다.
동시에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측정하고 수정하며 사회가 요구하는 형태에 맞추는 데에도 매우 능숙해졌다.
여기서 진화와 가축화는 분리된 현상이 아니다.
같은 변화가 어느 관점에서는 적응으로 보이고, 다른 관점에서는 길들여짐으로 보일 수 있다.
현대인의 자기 가축화는 인간이 퇴화했다는 주장이 아니다.
인간이 어떤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는지를 결정하는 힘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를 묻기 위한 개념이다.
오늘날 그 힘은 국가나 제도 한 곳에 집중되어 있지 않다. 시장, 플랫폼, 조직, 평가 시스템, 사회적 평판, 개인의 자기관리 안으로 분산되어 있다.
가축화의 울타리도 그만큼 알아보기 어려워졌다.
현대인은 울타리 안에 갇힌 존재라기보다 울타리를 자신의 행동 속에서 반복해서 재생산하는 존재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 상태를 진화라고 부를 것인지, 적응이라고 부를 것인지, 자기 가축화라고 부를 것인지는 인간이 무엇을 발전의 기준으로 삼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발행인 공명성
기획·편집 아이테르
발행처 아이테르 범일가옥
국립중앙도서관 발행자번호 (979-11) 999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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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진화하고 있는가
현대인의 자기 가축화
공명성 예술감독
인간은 문명의 발전을 폭력의 감소, 법과 제도의 정착, 교육의 확산, 도시화, 협력 체계의 고도화로 설명해왔다. 이 과정에서 인간의 행동은 점점 더 정교하게 조절되었고, 충동과 공격성은 사회적 규범 안에서 관리되었다. 현대의 인간은 생물학적 진화와 별개로 자신이 만든 사회적 환경에 적응하며 행동 양식을 지속적으로 바꾸고 있다.
이 현상을 자기 가축화라는 관점에서 볼 수 있다.
리처드 랭엄은 인간 진화 과정에서 반응적 공격성이 감소해왔다는 점에 주목한다. 집단 내에서 충동을 억제하고 협력할 수 있는 개체가 생존과 번식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면서 인간의 행동적 특성에도 선택압이 작동했다는 주장이다. 브라이언 헤어 역시 인간의 높은 사회적 인지능력과 친사회성을 진화적 경쟁력으로 본다. 인간의 성공은 물리적 힘만으로 설명하기 어렵고, 협력·의사소통·관계 유지 능력이 중요한 조건으로 작동했다.
이러한 자기 가축화는 인간 사회의 규모를 확장시키는 데 기여했다. 낯선 사람과 협력하고 집단의 규칙을 따르며 충동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은 대규모 공동체의 유지에 적합하다. 그러나 적응 능력의 향상이 곧 자유의 확장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에 효율적으로 적응하는 능력과 사회가 요구하는 행동을 내면화하는 능력은 상당 부분 겹친다.
노르베르트 엘리아스의 『문명화 과정』은 이 문제를 역사적으로 추적한다. 근대사회가 형성되는 동안 식사, 배설, 성, 폭력, 감정 표현과 관련된 행동 규칙은 점차 세분화되었다. 외부에서 가해지던 강제는 장기간에 걸쳐 자기통제의 형태로 내면화되었다. 사람들은 직접적인 감시가 없어도 행동을 조절하기 시작했다.
문명화는 외부 규율이 내부의 습관으로 전환되는 과정이었다.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권력의 기술이라는 차원에서 분석된다. 근대 권력은 신체를 지속적으로 처벌하기보다 시간과 공간을 조직하고, 사람을 분류하고, 행동을 기록하며, 성과를 비교하는 방식을 발전시켰다. 학교, 군대, 병원, 공장, 감옥은 서로 다른 기관이지만 인간을 관찰하고 측정하며 정상화한다는 점에서는 유사한 구조를 가진다.
푸코가 말한 ‘유순한 신체’는 통제에 저항하지 않는 신체만을 뜻하지 않는다. 훈련을 통해 더 유용하고 계산 가능하며 예측 가능한 신체를 의미한다.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인간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시간에 맞춰 움직이고, 자신의 성과를 확인하며, 평가 기준에 맞춰 행동을 수정한다.
이 구조는 현대에 들어 더욱 내부화되었다.
직장인은 별도의 감독이 없어도 업무 시간을 관리한다. 학생은 자신의 성적과 자격을 지속적으로 점검한다. 개인은 운동량, 수면시간, 체중, 소비, 생산성을 숫자로 기록한다. 소셜미디어 이용자는 게시물의 조회수와 좋아요, 팔로워 증감을 확인하며 자신의 표현 방식을 수정한다.
통제의 주체와 대상이 같은 사람이 된 것이다.
한병철이 성과사회라는 개념으로 분석한 지점도 여기에 있다. 규율사회가 금지와 명령을 중심으로 움직였다면 성과사회는 가능성과 자기계발을 강조한다. 사람은 명령받기보다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자신의 성과를 끌어올린다. 이 구조에서는 외부 강제가 줄어든 것처럼 보이지만 자기착취의 강도는 오히려 높아질 수 있다.
성과사회가 만들어낸 인간은 자신의 관리자이자 감독자이고 노동자다.
현대의 자기 가축화는 수치화와도 긴밀하게 연결된다.
연봉, 학점, 매출, 몸무게, 체지방률, 조회수, 팔로워 수, 별점, 신용점수, 성과평가 같은 지표는 개인의 상태를 빠르게 비교할 수 있도록 만든다. 지표는 복잡한 인간 행동을 관리 가능한 정보로 변환한다. 동시에 인간은 높은 평가를 받기 위해 자신의 행동을 지표에 맞추기 시작한다.
측정은 행동을 기록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측정 자체가 행동을 생산한다.
조회수가 중요해지면 콘텐츠는 조회수를 얻기 좋은 형태로 바뀐다. 성과평가가 중요해지면 노동자는 평가 항목에 맞는 업무를 우선한다. 대학 입시가 특정 능력을 측정하면 학생은 그 능력을 중심으로 학습한다. 숫자가 현실을 설명하는 도구에서 현실을 조직하는 기준으로 이동한다.
이 과정에서 측정하기 어려운 능력은 상대적으로 밀려난다. 오랜 시간에 걸친 사유, 즉각적인 결과를 만들지 않는 연구, 시장가격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예술, 목적 없는 놀이와 휴식은 생산성이 낮은 활동으로 처리되기 쉽다.
플랫폼 사회는 이러한 경향을 더욱 정교하게 만든다.
과거의 권력은 행동을 금지하거나 명령했다. 플랫폼은 행동 가능한 환경을 배열한다. 검색 결과의 순서, 추천 영상, 뉴스피드, 상품 추천, 자동재생, 알림은 사용자의 선택을 직접 금지하지 않으면서 행동의 방향을 조정한다.
추천 시스템은 사용자의 과거 행동을 학습한다. 사용자는 다시 추천 시스템의 작동 방식을 학습한다. 콘텐츠 생산자는 더 많은 노출을 얻기 위해 제목, 이미지, 영상 길이, 업로드 시간과 표현 방식을 수정한다. 사용자는 알고리즘을 이용하는 동시에 알고리즘이 선호하는 행동 형식에 적응한다.
여기에는 뚜렷한 비대칭성이 존재한다.
플랫폼은 수백만 명 또는 수억 명의 행동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지만 개인은 자신에게 제공된 화면만 경험한다. 따라서 행동 조정은 강압의 형태보다 환경 설계의 형태로 진행된다. 통제받고 있다는 감각이 약한 상태에서도 행동은 지속적으로 수정된다.
현대인은 역사적으로 많은 선택지를 가진 인간이지만 선택지가 많다는 사실과 자율성이 크다는 사실은 동일하지 않다. 대부분의 선택은 이미 설계된 환경 안에서 이루어진다. 어떤 영상을 볼지, 어떤 상품을 살지, 어떤 계정을 팔로우할지는 선택할 수 있지만 그 선택지를 배열하는 구조 자체에는 개인이 거의 개입하지 못한다.
노동시장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현대의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만 판매하지 않는다. 경력, 네트워크, 이미지, 전문성, 소셜미디어 활동, 자격증, 자기소개까지 관리해야 한다. 개인 전체가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되는 하나의 포트폴리오처럼 취급된다.
이 과정에서 자기계발은 생활의 특정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을 넘어 자기 자신을 지속적으로 시장에 맞추는 운영 방식으로 변한다.
산업사회가 정확한 시간에 출근하고 반복적인 업무를 수행할 인간을 필요로 했다면, 플랫폼 중심의 경제는 빠르게 반응하고 변화에 적응하며 자신을 지속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인간을 요구한다. 연결 상태를 유지하고, 데이터를 생산하며, 성과를 가시화하는 능력이 중요한 자질로 평가된다.
이러한 인간형은 높은 적응력을 가진다.
그러나 진화생물학에서 진화는 향상이나 진보를 의미하지 않는다. 특정 환경에서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특성이 선택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따라서 현대인이 현재의 시스템에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인간이 더 나은 상태로 발전했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현대사회의 자기 가축화라는 개념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간은 자신이 만든 환경에 적응하면서 동시에 그 환경을 강화한다. 생산성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개인은 스스로 생산성을 높인다. 가시성을 요구하는 플랫폼에서 개인은 자신을 더 자주 노출한다. 경쟁적인 노동시장에서 개인은 자신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더 많은 시간과 자원을 투자한다.
환경이 인간을 바꾸고, 변화한 인간이 다시 환경을 유지한다.
이 순환은 외부의 강제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현대적 통제의 특징은 규칙이 인간 내부에서 작동한다는 데 있다. 사람은 자신의 성과를 감시하고 스스로 부족함을 판단하며 행동을 수정한다. 제도는 모든 사람을 직접 감시할 필요가 없다. 평가 기준과 경쟁 구조를 제공하는 것만으로 상당한 자기조절을 만들어낼 수 있다.
자기 가축화의 문제를 단순히 억압의 문제로 처리해서는 안 된다. 충동 조절, 협력, 규칙의 준수는 복잡한 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능력이기도 하다. 문제는 어떤 수준의 자기통제가 공동생활을 위한 조건이고 어떤 수준부터 체제에 대한 과잉 적응으로 바뀌는가에 있다.
현대사회에서는 이 경계가 점점 흐려지고 있다.
생산성 향상과 자기착취, 자기관리와 자기감시, 사회적 협력과 순응, 자율적 선택과 알고리즘적 유도의 구분이 쉽지 않다.
따라서 현대인의 자기 가축화는 자유가 사라졌다는 선언으로 설명하기보다 자유가 작동하는 방식이 변했다는 문제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강압적 권력은 행동을 제한한다.
현대적 권력은 행동의 조건을 설계한다.
사람은 그 안에서 자유롭게 움직이지만 선택 가능한 범위와 선택의 우선순위는 이미 상당 부분 조직되어 있다.
이 지점에서 ‘당신은 진화하고 있는가’라는 제목은 자기계발의 문구와 반대 방향으로 작동한다.
현대인이 더 생산적이고, 더 연결되어 있고, 더 빠르게 적응한다는 사실만으로 인간의 진화를 평가할 수 없다. 인간이 어떤 환경에 적응하고 있는지, 그 환경이 어떤 인간형을 선호하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능력이 강화되고 어떤 능력이 사라지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
현대인은 매우 높은 적응 능력을 가진 존재가 되었다.
동시에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측정하고 수정하며 사회가 요구하는 형태에 맞추는 데에도 매우 능숙해졌다.
여기서 진화와 가축화는 분리된 현상이 아니다.
같은 변화가 어느 관점에서는 적응으로 보이고, 다른 관점에서는 길들여짐으로 보일 수 있다.
현대인의 자기 가축화는 인간이 퇴화했다는 주장이 아니다.
인간이 어떤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는지를 결정하는 힘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를 묻기 위한 개념이다.
오늘날 그 힘은 국가나 제도 한 곳에 집중되어 있지 않다. 시장, 플랫폼, 조직, 평가 시스템, 사회적 평판, 개인의 자기관리 안으로 분산되어 있다.
가축화의 울타리도 그만큼 알아보기 어려워졌다.
현대인은 울타리 안에 갇힌 존재라기보다 울타리를 자신의 행동 속에서 반복해서 재생산하는 존재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 상태를 진화라고 부를 것인지, 적응이라고 부를 것인지, 자기 가축화라고 부를 것인지는 인간이 무엇을 발전의 기준으로 삼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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