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보기)
http://semacoral.org/features/johanna-hedva-artist-talk
SeMA 옴니버스 《나는 우리를 사랑하고 싶다》 전시 연계 프로그램
요하나 헤드바 아티스트 토크
SeMA 옴니버스 《나는 우리를 사랑하고 싶다》 전시 연계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요하나 헤드바(Johanna Hedva)의 아티스트 토크를 진행하였다. 2024년 9월 27일 런던에서 열린 개인전 《성기의 불편(Genital Discomfort)》(2024)과 초기작 〈아픈 마녀(Sick Witch)〉를 중심으로 작가의 작업을 살펴본 뒤, 모더레이터 양효실과 대담을 이어 나갔다. 작가는 장애와 질병이 불가피한 삶의 일부라고 주장하면서 장애인을 장애인으로 만드는 사회 구조를 비판하고 BDSM1과 킹크(kink)2를 전유하여 불구 커뮤니티 내에서의 상호 돌봄의 공동체를 제안한다.
• 작가: 요하나 헤드바
• 모더레이터: 양효실(미학자)
• 사회자: 유은순(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학예연구사)
• 순차 통역: 유지원(독립 큐레이터)
• 일시 및 장소:
2024. 10. 24.(목) 16:00-17:30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다목적홀
SeMA 옴니버스 《나는 우리를 사랑하고 싶다》 전시 연계 프로그램, 요하나 헤드바 아티스트 토크,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다목적홀, 2024. 10. 24., 촬영: 이행진. © 서울시립미술관.
유은순: 안녕하세요? SeMA 옴니버스 《나는 우리를 사랑하고 싶다》 전시 연계 프로그램 요하나 헤드바의 아티스트 토크 진행을 맡은 유은순 학예연구사입니다. 오늘은 9월부터 12월까지 영국 런던 티나 갤러리(TINA Gallery)에서 개최되고 있는 요하나 헤드바의 개인전 《성기의 불편》과 더불어, 올해 9월 24일 미국에서 출간되었고 내년에 한국에서 출간될 예정인 도서 『우리가 언제 죽을지를 들려주는 방법 - 고통, 장애, 그리고 운명을 포함하여(How to Tell When We Will Die: On Pain, Disability, and Doom)』(이하 『우리가 우리가 언제 죽을지를 들려주는 방법』)3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예정입니다. 본 프로그램은 영어와 한국어로 진행됩니다. 유지원 독립 큐레이터가 영어와 한국어로 순차 통역을 진행하며, 자막 통역은 강단 왼쪽과 오른쪽 모니터를 통해 제공됩니다.
요하나 헤드바: 안녕하세요. 저는 작가 요하나 헤드바입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왔고, 할머니가 한국인입니다. 글을 쓰고 작가로 활동하면서 음악을 만들고 있습니다.
〈아픈 마녀〉에서 개인전 《성기의 불편》까지
요하나 헤드바, 〈아픈 마녀〉, 2016,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6분 50초. © 요하나 헤드바.
처음 보여 드릴 작업은 「아픈 여자 이론(Sick Woman Theory)」을 쓰던 2016년에 만든 영상 〈아픈 마녀〉입니다. 「아픈 여자 이론」의 그림자 혹은 쌍둥이와 같은 존재입니다. 개인 공간인 거실에서 스탠드업 코미디 스타일로 퍼포먼스를 실시간 기록한 것이며, 여러 가지 참조 사항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웃긴 작업이니까 여러분이 웃으시는 게 맞습니다.
요하나 헤드바 아티스트 토크, 발표 자료. 원문은 다음 링크를 참고(https://joanlosangeles.org/johanna-hedva-if-youre-reading-this-im-already-dead/).
이미지 속 화면은 저의 작업을 설명하는 문구로, 인공지능과 함께 작성했습니다. 저는 인공지능과 지난 몇 년간 함께 작업해 왔는데, 인공지능은 인간과 적대적이라고 할 수 있는 복잡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인공지능을 그렇게 싫어하지는 않지만요. 차례로 읽어 보겠습니다. “헤드바는 성애적인 관계, 즉 초자연적인 것과 맺는 성애적인 마주침에 대해서 글을 씁니다.(Between erotic encounters with the supernatural, Hedva writes about them).” 여기에 나오는 영문법 자체가 일반적으로 쓰는 방식이 아님을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헤드바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성적으로 불만족스러운데 지금 죽고 있는, 죽어 가는 상태이기 때문에 우리랑 그렇게 별반 다를 건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귀신과 섹스하는 헤드바(Hedva is more sexually frustrated than we can imagine but they are dying so this just makes them a little bit more like us. Hedva, ghost fucker).”
요하나 헤드바, 〈모든 두려움은 매혹적이다(협업: 론 에이시)〉, 2024,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10분 49초, 작가 소장. © 서울시립미술관.
다음에 소개할 작품은 현재 SeMA 옴니버스 《나는 우리를 사랑하고 싶다》에서 전시되고 있는 신작 〈모든 두려움은 매혹적이다(협업: 론 에이시) (All Fear Is Erotic (with Ron Athey))〉입니다. 유은순 학예연구사님이 잘 써 주신 전시장의 설명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4
요하나 헤드바, 〈시계는 항상 틀리다(다른 입)〉, 2024, 유리, 갈고리, 사슬, 실리콘 오일, 안료, 가변 크기. 《성기의 불편》(티나 갤러리, 2024) 전시 전경. © 요하나 헤드바.
지금 런던에서 하고 있는 개인전 《성기의 불편》에서는 작품 〈시계는 항상 틀리다(다른 입) (The Clock is Always Wrong (Other Mouth))〉를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모래시계를 활용해서 다양성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했습니다. 유리를 제가 원하는 모양과 크기로 (만들기 위해) 유리세공사와 함께 직접 제작했습니다. 전시가 끝나면 유리 안의 검은 물질이 흘러서 바닥에 다 쏟아지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이 유리 조형물은 전시마다 맞춤형으로 제작하고 있습니다. 유리 안의 물질이 다 쏟아지고 나면 그전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습니다.
요하나 헤드바, 〈시계는 항상 틀리다(다른 입)〉, 유리, 갈고리, 사슬, 실리콘 오일, 안료, 가변 크기. 《네가 이걸 읽고 있다면, 나는 이미 죽었을 거야》, (조안 로스앤젤레스, 2023) 전시 전경. © 요하나 헤드바.
동일한 작업이 2023년 조안 로스앤젤레스(JOAN Los Angeles)에서 열린 전시 《네가 이걸 읽고 있다면, 나는 이미 죽었을 거야(If You're Reading This, I'm Already Dead)》에도 등장합니다. 보시다시피 검은 물질이 카펫에 떨어지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두개골이나 외계인의 자궁을 유리병으로 형상화했습니다. BDSM에서 피부에 고리를 달아 천장에 매다는 것과 같은 형식으로 설치했고요. 제 작업실에서는 이것에 ‘실라(Sheela)’라고5 별명을 붙여 줬는데요. (실라는) 배를 갈라서 새로운 무엇인가를 만드는 재생산, 다산의 여신을 상징합니다.
《성기의 불편》(티나 갤러리, 2024) 전시 전경. © 요하나 헤드바.
런던에서 진행 중인 개인전의 사진을 조금 더 보여 드리겠습니다. 대체로 작년부터 만들어 왔던 신작이 전시되었습니다. 전시장 전반에 노란 조명을 설치하여 하수구 혹은 죽어 가는 문명처럼 보이게끔 하였습니다. 으스스함과 불편함을 자아내는 분위기를 의도적으로 조성하고자 했죠.
요하나 헤드바, 〈내 음경에는 아무도 없어〉, 2024, 유리, 꿀, 요도 소식자, 가변 크기. © 요하나 헤드바.
지금 보여 드리는 〈내 음경에는 아무도 없어(Nobody’s On My Dick)〉는 미국 할로윈의 호박 조명을 저만의 방식으로 만든 것입니다. 유리 안에는 꿀과 검은 막대가 있는데요. 이 막대는 BDSM에서 남성 성기에 삽입하는 장치입니다. 몸에 대한 어떤 것이라는 어렴풋한 느낌은 가질 수 있지만, 정확히 어떤 용도인지 알 수 없는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성기의 불편》(티나 갤러리, 2024) 전시 전경. © 요하나 헤드바.
저는 회화나 드로잉을 설치할 때 칼을 많이 사용합니다. 칼을 벽에 던지면 기분 좋거든요. 특히 미술관에서는요. (좌중 웃음) 사실 재밌는 활동이기도 하지만 칼을 벽에 꽂으려면 힘과 함께 특정한 감정이 개입되어야 합니다. 동시에 여러 부분에 신경을 굉장히 많이 써야 해요. 칼이 일정한 상태로 고정되어야 하고 관객이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양가성이 있다 보니 흥미로운 긴장감을 자아냅니다. 종이, 드로잉, 회화 작업은 대체로 연구와 창작 과정에 관여합니다. 읽었던 것, 썼던 것 혹은 머리카락, 침, 피, 잉크, 수채화와 같이 주변 재료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들이지요. 이번 전시에서 처음으로 개별 작업으로 전시하게 되었습니다.
요하나 헤드바, 〈섹스는 끝났어〉, 2023, 골반뼈 모형, 나방, 피아노 현, 메탈존, 엠프, 콘택트 마이크, 알루미늄, 구리, 서보 기구, 오디오 게이트, 진공관, 용수철, 페달 파워 서플라이, 105.4×35.5×35.5cm. © 요하나 헤드바.
지금 보시는 조각은 〈섹스는 끝났어(Sex is Over)〉라는 제목으로, 작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처음 선보인 작품입니다. 가짜 골반뼈에 조금 전 보셨던 것과 비슷한 은색으로 된 남성 성기용 장치가 함께 설치되었습니다. 이것은 안과 바깥을 사용하는 것으로 연결됩니다. 좌대 안에 모터 장치가 들어가 있어서 뼈가 움직이도록 되어 있는데요. 이때 1만 3천 년간의 일식(日蝕) 데이터로 장치의 움직임을 구성했습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던 해와 관련 지어서 일식 데이터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뼈가 마이크를 감싼 상태이기 때문에 뼈가 움직일 때마다 소리가 나게 됩니다. 점성술에 따르면 일식의 일정에 따라 영혼이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기서 영감을 받아 세대를 가로지르는 전통, 혈통 같은 것들을 떠올렸고, 그것을 끔찍한 소리로 보여 주려고 했습니다.
요하나 헤드바, 〈더 크게〉, 2023, 네오프랜, 머리카락, 풀, 잉크, 실리콘 요도 소식자, 잉크로 채색된 나방, 바늘, 실, 타액, 칼, 약 127×203cm. © 요하나 헤드바.
마지막으로 보여 드릴 회화 작업은 〈더 크게(Bigger)〉입니다. 가로 2미터 정도 크기에 칼이 많이 꽂혀 있는데요. 표면에 머리카락과 풀을 손으로 직접 발라 붙여 반짝반짝 빛나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이 작업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개인적으로 심란한 사건을 겪으면서 있었던 심리적인 변화를 바탕으로 작업하였습니다. 이전 작업에서 보셨듯이 과거에는 저의 거실이나 작업실을 배경으로 했지만, 이후 좀 더 큰 존재에 대해 관심을 두게 되었고 지금은 광활한 작업을 하는 시기에 돌입했습니다.
〈더 크게〉에 보이는 칼과 관련된 재밌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제가 칼을 구매할 때 베를린에 있는 군용품 판매점에 자주 갔습니다. 매일 가서 50개 정도씩 칼을 사다 보니 그들이 저에게 ‘칼 부인’이라는 별명을 지어 주었어요. 그러다 칼 하나를 무료로 준다고 해서 가장 큰 걸 달라고 했더니 화면에 보이는 이 긴 칼을 주셨습니다. 살다 보니 남자들이 나한테 칼도 다 주고 굉장히 좋은 일이 일어나고 있구나 생각했답니다. (웃음) 여기까지가 제 작업에 대한 간략한 이야기였습니다. 이제 책에 대해서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습니다.
장애 퀴어와 킹크
양효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우리가 언제 죽을지를 들려주는 방법』의 공동 번역자 중 한 명입니다. 책은 내년에 도서출판 마티에서 출간될 예정입니다. 여기 계신 많은 분들이 『오프 매거진(Off Magazine)』을 통해 「아픈 여자 이론」을 접하고, 『진세미나(Zineseminar)』에서 진행한 요하나 헤드바의 인터뷰도 보셨을 겁니다. 저도 2016년에 헤드바의 「아픈 여자 이론」을 처음 접한 후로 계속 작가님의 글과 인터뷰를 관심 있게 찾아보고 있는데요. 이 책이 올해 9월 24일 영미권에서 출판이 되었고, 이제 거의 한 달 정도 지났는데 현지에서의 반응이 어떤지 궁금합니다.
요하나 헤드바: 우선 제 책이 내년에 한국에서 출판될 것이라 생각하니 굉장히 기분이 좋습니다. 현지 반응은 대체로 좋기는 합니다. 하지만 사실 1년 전에 무당이 말하기를 독자들이 무척 화를 낼 것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지금 쓴 책은 죽음이 다가온다고 계속 이야기하는, 굉장히 공격적이고 영적인 자기계발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당이) 독자의 기분이 썩 좋지 않을 거라고 이야기했었습니다.
양효실: 아무래도 만성질환을 앓고 있거나 공감할 수 있는 상황에 처한 분들이 작가님의 글을 훨씬 더 많이 읽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성질환은 병원 입장에서 돈이 안 되는 질병이고 (원인이 규명되지 않는 경우) 이름 없는 질병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굉장히 많은 여성들이 앓고 있는 질병이고, 중요하다고 간주하지 않기 때문에 어려운 질병이죠. 그래서 만성질환과 더불어 젠더, 트랜스젠더, 논바이너리 트랜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장애인이면서 퀴어인, 말하자면 장애 퀴어는 가장 급진적인 운동이 벌어지는 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의 사전 질문 중에 “오늘 몸이 어떠십니까?”라는 것이 있었어요. 만성질환은 어떻게 보면 그때그때 달라지는 병이니까요. 여기도 아마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분들이 계시지 않을까 싶은데 혹시 손 들어 주실 수 있나요?
요하나 헤드바: 용기 내서 손을 들어 준 분들도 계신 것 같아요. 우리 사회는 만성질환에 대해 환자가 무엇인가 잘못했다고 규정하면서 수치심을 주고 있기 때문에, 저는 그것을 고백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 이야기가 누구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장애가 있고 장애가 없고, 건강하고 건강하지 못하고 이런 것들이 질적·물질적·정치적인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떤 시점에나 아플 수 있고, 그 아픔이 영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분명 차이는 있지만 그것이 우리 모두에게 해당될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네요. 그리고 이것이 보편적인 일이라면 사회가 그것을 함께 구성해야지 그 반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양효실: 그래서 이 책은 ‘비장애중심주의’라고 번역하고 있는 ‘에이블리즘(ableism)’을 함께 다루고 있습니다. 장애인 당사자의 자기 연민이나 자기 고백이 아니라 장애인을 장애인으로 만드는 사회 구조에 대해 이야기하는 굉장히 정치적인 책입니다. 이 책이 주로 공격하는 것은 에이블리즘이 환상이라는 점입니다. 보편적으로 지금이냐 나중이냐 하는 시간상의 차이에 불과할 뿐이죠. 누구에게나 닥칠 수밖에 없는 장애라고 하면 이는 피할 수 없는 운명(Doom)이 아닐까요? 그것으로부터 출발하는 책이었습니다.
SeMA 옴니버스 《나는 우리를 사랑하고 싶다》 전시 연계 프로그램, 요하나 헤드바 아티스트 토크,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다목적홀, 2024. 10. 24., 촬영: 이행진. © 서울시립미술관.
요하나 헤드바: ‘둠(Doom)’이라는 단어가 책의 제목에도 들어가 있는데요. 그 단어를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 질문한다면 이렇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둠’이 물론 ‘죽음’, ‘파괴’라는 단어를 연상시키지만 저는 어떤 특정한 사건보다는 두려움이라는 느낌, 말하자면 가장 최악의 사태가 일어날 것이라는 두려움에 더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죽음과 ‘둠’이라는 단어의 차이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책에 ‘죽음은 빠르고 둠은 느리다(The death is fast but doom is slow)’라는 표현을 썼는데 헤비메탈이라는 장르에서 생각해 봤을 때, 데스메탈과 다르게 둠 메탈(Doom Metal)6은 좀 더 느리거든요.
양효실: 실제로 작가님은 둠 메탈 퍼포머이기도 하지요. 저는 전시장에서 〈모든 두려움은 매혹적이다(협업: 론 에이시)〉 작업도 굉장히 흥미롭게 봤습니다. 이제 장애학에 이어 BDSM 혹은 킹크로 주제를 이어나가 보고자 합니다. 이 책이 저한테 흥미로웠던 부분은 자위에 관한 묘사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는 점이었습니다. 90대 할망구도 자위를 하고, 장애인의 섹슈얼리티에 관한 문제도 계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작가님께서는 매기 넬슨(Maggie Nelson)과의 인터뷰에서도 말씀하셨다시피 장애인이라는 개념을 굉장히 복잡하고 다양한 목소리가 공존하는 것으로 만들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전략 중 하나로 ‘성욕 없는 장애인’이라는 개념에 섹슈얼리티를 덧붙이고 싶었다고 하셨고요. 섹슈얼리티를 장애와 연결하는 방식에서 작가님만의 독특한 방식이 바로 BDSM이었던 것 같아요. 아까 보여 주신 작업 중에서도 BDSM과 연관된 것도 많았고, 킹크적 성향과 관련해 유년기에 겪었던 어머니의 폭력이 원인이기도 하다고 직접 고백하기도 합니다. 유년기의 폭력에서 BDSM이라고 하는, 퀴어적인 또는 변태스러운 이상 성욕이 언급되는 상황에서, 아까 본 BDSM에서 사용되는 장치들은 약간 오싹한 분위기를 만들기도 하는데요. 그것과 연관된 작가님의 경험이나 이론적인 부분에 대해 더 듣고 싶습니다.
요하나 헤드바: ‘모두가 섹슈얼하다’라는 맥락에서 장애도 당연히 섹슈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아프게 되거나 장애가 있다면 그런 친밀함의 영역에 대해서는 항상 협상이 전제되어야만 합니다. 제가 경험했던 킹크 혹은 퀴어 커뮤니티와 공간에서는 무엇을 원하는지 언제 원하는지에 대한 협상, 동의, 소통이 항상 수반됩니다. 그러한 협상은 돌봄에도 해당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돌봄에도 이와 유사한 협상과 소통이 계속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도 저의 글과 작업에서 섹스에 관한 부분이 더 흥미로워 보여서 반복적으로 언급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제 책에 섹스에 대한 언급이 반복되는 것은 분명 정치적이기도 합니다. 아픈 몸으로 인해 제가 무서움을 느끼는 것들이 사실은 섹스 등이 주는 희열과 함께 이야기되어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전문적인 도미넌트(Dominant)로8 활동하면서 킹크를 저의 일상으로 가져왔기 때문에 그런 지점이 함께 언급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양효실: 작가님의 웹사이트를 방문해 보면 「아픈 여자 이론」 이후 너무나 많은 일과 작업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작업의 형식은 (글, 음악, 영상, 퍼포먼스, 설치 등) 난잡하게 취하는 것 같았고요. 이때 난잡함이 약간 성적인 느낌도 있는데, 아픈 와중에 그렇게 많은 작업을 할 수 있는 동력이 궁금합니다.
요하나 헤드바: 글을 쓰고 작업하는 게 저를 힘들게 하거나 소진시키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살아 있게 하는 것들이고요. 다른 게 오히려 힘들죠. 그래서 작업을 많이 만들고 다양한 매체를 사용하는 것이 그나마 제가 살아갈 수 있는 최고의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상에 앉아서 매일 500단어는 무조건 쓰려고 합니다. 대체로 침대에서 작업하지만요. 작업 구상을 침대에서 하는 것이 제가 이 세계에서 깨어 있는 방식이라고 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아까 보셨던 영상은 「아픈 여자 이론」이 스탠드업 코미디 형식이 되었을 때 어떨까 상상하면서 만들었던 것이고, 〈링〉(1998)과 같은 공포 영화를 참고했습니다. 공포 영화처럼 촬영했지만 나오는 대사들은 평소에 항상 듣는 조언 같은 것이죠. 작업 환경을 이렇게 이야기하면 가볍게 보일 위험이 있기는 하지만, 제 작업이 난잡해 보이는 이유는 항상 제가 “뭐가 더 있지?”라고 질문하기 때문입니다.
점성술과 돌봄
SeMA 옴니버스 《나는 우리를 사랑하고 싶다》 전시 연계 프로그램, 요하나 헤드바 아티스트 토크,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다목적홀, 2024. 10. 24., 촬영: 이행진. © 서울시립미술관.
양효실: 작가님의 어머니 쪽 아버지 쪽 모두 점성술사이십니다. 아버지 쪽으로는 경북 상주 출신의 김정분이 할머니가 계시고요. 아까 작업에서도 등장하셨던 할머니도 스스로 자신을 마녀로 여기는 것 같아요. 실제로 점성술사이시기도 하면서요. 그리고 작가님도 처음 오신 한국이지만 무당, 한(恨)의 정서 등에 대해 굉장히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요. 한국에서 무당이 전국적으로 50만 명이 된다는 이야기를 몇 년 전 논문에서 보았는데, 아마 지금은 기하급수적으로 더 늘었을 것 같습니다. 미국에 거주하는 인종적 소수자인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이런 주술, 샤먼에 대한 관심이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언제 죽을지를 들려주는 방법』을 보면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굿으로 애도를 합니다. 양쪽 집안 모두 그러한 계보가 있어서 자연스럽게 물려받은 것 같아요. 이게 한국에서 살아온 한국인의 시선으로 볼 때는 시차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명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 질문도 인종적 소수자로서 민속의 맥락에서 전수해 문화를 이어가는 것을 고려했습니다. 실제로 타로점도 보시는 것 같아서, 굉장히 다양한 믿음을 활용하시는 듯했습니다.
요하나 헤드바: 미국에서 자라면서 한국 문화를 접할 기회가 많지는 않았어요. 할머니가 한국전쟁 때 미국으로 넘어오셨고 이민자로 살면서 건물 관리자로 일하셨는데 33년간 한 번도 일을 빠지신 적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일하셨던 분이었어요. 지금은 좀 다르겠지만 미국에서는 점성술, 사주, 마녀, 무당과 같은 존재를 삭제하고, 그것을 믿는 사람을 바보 취급하고, 교육받은 사람들이라면 그런 것을 믿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전반적인 분위기가 있어요. 유사 과학 취급을 했던 것이죠. 저 또한 오랫동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대학원에서 철학 공부를 하면서 진지한 사상가로 인정받고 싶어서 그런 부분을 부인해 왔지만, 아프고 나서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장애 혹은 퀴어라고 스스로 인정하게 되면서부터 의미를 만드는 다른 방식을 찾게 되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라든지 헤겔, 하이데거 이런 사람들이 전혀 말해 줄 수 없는 완전히 다른 방식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양효실: 그럼에도 작가님이 쓴 소설 『미네르바, 뇌의 사산(Minerva: the Miscarriage of the Brain)』9을 보면 백인으로 패싱되는 요하나가 서구 유럽의 기원으로서 그리스를 호명하는 또 다른 축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것은 ‘난잡한 형식’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저도 며칠 전에 수업 시간에 사이비 의학, 특히 한국에서 가시성의 영역에서 사라져 버린 ‘안아키’10를 흥미롭게 추적하는 입장에서 이러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주류 의학 담론에서 배제되는 사이비가 어떻게 타자의 담론으로서 의미가 있는지 살피고 있는 것인데요. 작가님의 발언을 통해 (무속, 샤먼 등이) 개인의 고백으로서 굉장히 절절하게 들어오는 부분이 있는 것 같고요. 주로 성공한 한국계 미국인을 보면 기독교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어요. 교회를 통해 사람들이 정보를 교환하니까요. 그래서 이민자 여성 작가에게서 무속, 샤먼에 관한 이야기를 다시 듣게 되는 게 저에게도 새로운 것 같습니다.
요하나 헤드바: 저희 할머니의 네 번째 남편은 신내림을 받은 무당이었습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직접적으로 말할 수는 없었고 대외적으로는 사업가라고 이야기를 했었다고 해요. 그래서 저는 항상 말해서는 안 되는 것, 우리가 알아서는 안 되는 것에 어떤 지식이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게 정답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돌이 있다면 들춰서 그 밑에 무엇이 있느냐를 보는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고대 그리스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저는 서구 시스템에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서구에서 민주주의, 계몽 이런 개념들이 그리스가 기원이라고 학습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 밑에 무엇이 깔려 있는지 들춰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고대 아테네에는 노예제가 있었고, 그리스가 아닌 다른 곳에서 태어난 사람은 인간 이하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런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나왔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틀린 말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거기서부터 여성 운동도 나오고, 가부장제도 나오고, 온갖 폭력과 악재가 시작되었으니까요.
양효실: 마지막으로 제가 하나 더 여쭙고 싶은 것은 어쨌든 돌봄, 보살핌(care)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책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다루고 있고, 심지어 BDSM이라고 하는 것을 바깥에서 볼 때 합의에 따라 폭력이 섹슈얼리티와 연동된다고 볼 수 있는데요. 요하나 헤드바 작가님과의 대화를 통해서 BDSM이 돌봄의 장면일 수 있겠다는 새로운 관점을 얻었습니다. 저 역시도 나날이 이렇게 배우는 학생의 입장이네요. 책에서 이야기하는 돌봄은 힘 있는 사람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는 방식의 돌봄이 아니고, 아픈 자들이 서로를 보살피는 커뮤니티에 대한 이야기란 말이에요. 이것도 사실 처음이죠. 지금껏 돌봄을 이야기하는 방식이 어머니, 간호사처럼 돌보는 자의 관점을 중심해 왔고, 그래서 ‘불구(crip) 커뮤니티’라는 것들에 대해 상당히 배제적인 방식으로 이야기를 해왔던 것에 비추어보면요. 그래서 의료 권력이나 가족주의가 작동하는 일반적인 돌봄에 관한 페미니즘이나 신자유주의적인 입장과 작가님이 이야기하는 ‘아픈 자들이 서로를 돌보는 공동체’가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조금 더 듣고 싶습니다.
SeMA 옴니버스 《나는 우리를 사랑하고 싶다》 전시 연계 프로그램, 요하나 헤드바 아티스트 토크,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다목적홀, 2024. 10. 24., 촬영: 이행진. © 서울시립미술관.
요하나 헤드바: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졌을 때 우리는 이 세계가 서로를 돌볼 수 있도록 만들어지지 않았고, 그런 것이 잘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코로나19가 세상을 바꿨다고 이야기하지만, 저는 오히려 이 세계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보여 줬다고 생각합니다. 그 세계는 전혀 돌봄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것을 할 수도 없는 곳이었습니다. 책에서 제언하고자 했던 것은 돌봄이라는 것이 병리학적이거나 착취적이지 않고, 말하자면 가끔 문제가 있을 때 해결하기 위해서 돌봄을 도입하는 것이 아닌 다른 길이 있을지 보고자 했던 것입니다. 불구 커뮤니티에서도 돌봄을 자선 사업으로 보지 않고,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돌본다는 개념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려고 하는 것이죠. 흥미로운 지점은 영어에서는 ‘받다(take)’, ‘주다(give)’라는 것은 아예 서로 반대되는 단어인데 ‘돌봄(care)’이라는 단어를 붙이면 ‘돌보는(caretaking, caregiving)’이라는 동일한 의미가 된다는 것입니다.
유은순: 작가님의 작업에서부터 돌봄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모더레이터 양효실 선생님과 순차 통역을 진행해 주신 유지원 큐레이터님, 한국에 처음 방문한 요하나 헤드바 작가님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오늘 찾아와 주신 모든 분께도 감사드립니다.
속박(bondage), 훈육 혹은 지배(discipline or domination), 사디즘 혹은 복종(sadism or submission), 마조히즘(masochism)의 축약어로 즐거움을 위해 고통을 주고받거나 통제하는 다양한 성적 행위를 포함한다. 케임브리지 영어 사전(dictionary.cambridge.org) 참고. ↩
‘킹크’는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는데, 여기서는 성적인 의미에서 사용된다. 통상적인 성적 행위를 넘어서는 비주류적인 성적 행위 및 다양한 관심사를 포함하며 BDSM, 롤플레잉 등을 아우른다. Kelsey Borresen, “The Difference Between A Fetish And Kink, According To Sex Experts,” Huffpost (July 24, 2018), https://www.huffpost.com/entry/difference-between-fetish-and-kink_n_5b58a59ae4b0b15aba94749b. ↩
Johanna Hedva, How to Tell When We Will Die: On Pain, Disability, and Doom (New York: Hillman Grad Books, 2024). 도서와 연관된 요하나 헤드바의 활동에 대해서는 다음 링크의 내용을 참고할 수 있다. https://johannahedva.com/how-to-tell-when-we-will-die.php (2025. 1. 3. 최종 접속). ↩
SeMA 옴니버스 《나는 우리를 사랑하고 싶다》 온라인 전시 리플릿은 다음 링크를 참고. https://sema.seoul.go.kr/kr/knowledge_research/publish_detail?museumDataNo=1318096 (2025. 1. 3. 최종 접속). ↩
작가는 이 별명이 ‘실라 나 기그(sheela-na-gig)’에서 왔다고 언급하였다. ‘실라 나 기그’는 중세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에서 주로 발견되는 조각품으로, 성기가 과장되게 표현되는 것이 특징이다. ↩
헤비 메탈의 하위 장르로 둠 메탈은 죽음, 어둠, 오컬트에서 영감을 받아 197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무거운 베이스와 정리되지 않은 기타, 느린 박자, 잊혀지지 않는 가사로 으스스한 느낌을 자아내는 것이 특징이다. Selena Aguilera, “Darkness and the Occult: A brief history of doom metal”, The Michigan Daily(October 24, 2017), https://www.michigandaily.com/arts/darkness-and-occult-brief-history-doom/. ↩
『우리가 언제 죽을지를 들려주는 방법』의 마지막 장 제목이 「할망구 총책(The Hag in Charge)」으로 번역되었고, 대화상에서 모더레이터이자 역자로서의 의도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할망구’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
광범위한 성적 행위를 포괄하는 BDSM에서 참여자의 관심사가 통제권을 행사하는 지배적인 역할에 있을 경우 ‘도미넌트’라고 부른다. Andreas A. J. Wismeijer, Marcel A. L. M. van Assen, “Psychological characteristics of BDSM practitioners”, International Society for Sexual Medicine 10(8), (2013): 1943. ↩
Johanna Hedva, Minerva: the Miscarriage of the Brain (Saratoga, CA: Sming Sming Books; Oakland, CA: Wolfman Books, 2020). 이 책에 대해서는 다음 링크를 참고할 수 있다. https://johannahedva.com/minerva-the-miscarriage-of-the-brain.php (2025. 1. 6. 최종 접속). ↩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의 약어인 ‘안아키’는 자연주의 의료와 자연 치유법을 주장하는 온라인 카페로 2017년 사회적으로 아동학대와 관련된 논란을 일으켰다. 조혜림, 정민수, 「자연주의 의료에 대한 언론보도와 미디어 프레이밍의 탐색적 연구」, 『보건사회연구』 39(2), (2019): 333. ↩ (출처: 서서히 치닫는, 그러나 저항하며 돌보는 ― 요하나 헤드바 아티스트 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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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협회 아이테르 [ AITHER ] 부산전시관
아이테르 AITHER
부산 갤러리/전시관
- 문화예술기획업
주소: (48737)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로 65번길 21
주차: 진시장 공영주차장
서비스 운영시간: 월-토 10:00~18:00
연락처: 051-977-5272 | sck02145@naver.com | https://aither.kr/
팩스: 0504-322-2379
인스타그램: @aither.kr
유튜브: https://www.youtube.com/@AITHERART
[시설 안내]
4층, 전시 공간
5층, 라운지
6층, 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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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보기)
http://semacoral.org/features/johanna-hedva-artist-talk
SeMA 옴니버스 《나는 우리를 사랑하고 싶다》 전시 연계 프로그램
요하나 헤드바 아티스트 토크
SeMA 옴니버스 《나는 우리를 사랑하고 싶다》 전시 연계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요하나 헤드바(Johanna Hedva)의 아티스트 토크를 진행하였다. 2024년 9월 27일 런던에서 열린 개인전 《성기의 불편(Genital Discomfort)》(2024)과 초기작 〈아픈 마녀(Sick Witch)〉를 중심으로 작가의 작업을 살펴본 뒤, 모더레이터 양효실과 대담을 이어 나갔다. 작가는 장애와 질병이 불가피한 삶의 일부라고 주장하면서 장애인을 장애인으로 만드는 사회 구조를 비판하고 BDSM1과 킹크(kink)2를 전유하여 불구 커뮤니티 내에서의 상호 돌봄의 공동체를 제안한다.
• 작가: 요하나 헤드바
• 모더레이터: 양효실(미학자)
• 사회자: 유은순(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학예연구사)
• 순차 통역: 유지원(독립 큐레이터)
• 일시 및 장소:
2024. 10. 24.(목) 16:00-17:30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다목적홀
SeMA 옴니버스 《나는 우리를 사랑하고 싶다》 전시 연계 프로그램, 요하나 헤드바 아티스트 토크,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다목적홀, 2024. 10. 24., 촬영: 이행진. © 서울시립미술관.
유은순: 안녕하세요? SeMA 옴니버스 《나는 우리를 사랑하고 싶다》 전시 연계 프로그램 요하나 헤드바의 아티스트 토크 진행을 맡은 유은순 학예연구사입니다. 오늘은 9월부터 12월까지 영국 런던 티나 갤러리(TINA Gallery)에서 개최되고 있는 요하나 헤드바의 개인전 《성기의 불편》과 더불어, 올해 9월 24일 미국에서 출간되었고 내년에 한국에서 출간될 예정인 도서 『우리가 언제 죽을지를 들려주는 방법 - 고통, 장애, 그리고 운명을 포함하여(How to Tell When We Will Die: On Pain, Disability, and Doom)』(이하 『우리가 우리가 언제 죽을지를 들려주는 방법』)3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예정입니다. 본 프로그램은 영어와 한국어로 진행됩니다. 유지원 독립 큐레이터가 영어와 한국어로 순차 통역을 진행하며, 자막 통역은 강단 왼쪽과 오른쪽 모니터를 통해 제공됩니다.
요하나 헤드바: 안녕하세요. 저는 작가 요하나 헤드바입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왔고, 할머니가 한국인입니다. 글을 쓰고 작가로 활동하면서 음악을 만들고 있습니다.
〈아픈 마녀〉에서 개인전 《성기의 불편》까지
요하나 헤드바, 〈아픈 마녀〉, 2016,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6분 50초. © 요하나 헤드바.
처음 보여 드릴 작업은 「아픈 여자 이론(Sick Woman Theory)」을 쓰던 2016년에 만든 영상 〈아픈 마녀〉입니다. 「아픈 여자 이론」의 그림자 혹은 쌍둥이와 같은 존재입니다. 개인 공간인 거실에서 스탠드업 코미디 스타일로 퍼포먼스를 실시간 기록한 것이며, 여러 가지 참조 사항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웃긴 작업이니까 여러분이 웃으시는 게 맞습니다.
요하나 헤드바 아티스트 토크, 발표 자료. 원문은 다음 링크를 참고(https://joanlosangeles.org/johanna-hedva-if-youre-reading-this-im-already-dead/).
이미지 속 화면은 저의 작업을 설명하는 문구로, 인공지능과 함께 작성했습니다. 저는 인공지능과 지난 몇 년간 함께 작업해 왔는데, 인공지능은 인간과 적대적이라고 할 수 있는 복잡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인공지능을 그렇게 싫어하지는 않지만요. 차례로 읽어 보겠습니다. “헤드바는 성애적인 관계, 즉 초자연적인 것과 맺는 성애적인 마주침에 대해서 글을 씁니다.(Between erotic encounters with the supernatural, Hedva writes about them).” 여기에 나오는 영문법 자체가 일반적으로 쓰는 방식이 아님을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헤드바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성적으로 불만족스러운데 지금 죽고 있는, 죽어 가는 상태이기 때문에 우리랑 그렇게 별반 다를 건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귀신과 섹스하는 헤드바(Hedva is more sexually frustrated than we can imagine but they are dying so this just makes them a little bit more like us. Hedva, ghost fucker).”
요하나 헤드바, 〈모든 두려움은 매혹적이다(협업: 론 에이시)〉, 2024,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10분 49초, 작가 소장. © 서울시립미술관.
다음에 소개할 작품은 현재 SeMA 옴니버스 《나는 우리를 사랑하고 싶다》에서 전시되고 있는 신작 〈모든 두려움은 매혹적이다(협업: 론 에이시) (All Fear Is Erotic (with Ron Athey))〉입니다. 유은순 학예연구사님이 잘 써 주신 전시장의 설명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4
요하나 헤드바, 〈시계는 항상 틀리다(다른 입)〉, 2024, 유리, 갈고리, 사슬, 실리콘 오일, 안료, 가변 크기. 《성기의 불편》(티나 갤러리, 2024) 전시 전경. © 요하나 헤드바.
지금 런던에서 하고 있는 개인전 《성기의 불편》에서는 작품 〈시계는 항상 틀리다(다른 입) (The Clock is Always Wrong (Other Mouth))〉를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모래시계를 활용해서 다양성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했습니다. 유리를 제가 원하는 모양과 크기로 (만들기 위해) 유리세공사와 함께 직접 제작했습니다. 전시가 끝나면 유리 안의 검은 물질이 흘러서 바닥에 다 쏟아지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이 유리 조형물은 전시마다 맞춤형으로 제작하고 있습니다. 유리 안의 물질이 다 쏟아지고 나면 그전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습니다.
요하나 헤드바, 〈시계는 항상 틀리다(다른 입)〉, 유리, 갈고리, 사슬, 실리콘 오일, 안료, 가변 크기. 《네가 이걸 읽고 있다면, 나는 이미 죽었을 거야》, (조안 로스앤젤레스, 2023) 전시 전경. © 요하나 헤드바.
동일한 작업이 2023년 조안 로스앤젤레스(JOAN Los Angeles)에서 열린 전시 《네가 이걸 읽고 있다면, 나는 이미 죽었을 거야(If You're Reading This, I'm Already Dead)》에도 등장합니다. 보시다시피 검은 물질이 카펫에 떨어지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두개골이나 외계인의 자궁을 유리병으로 형상화했습니다. BDSM에서 피부에 고리를 달아 천장에 매다는 것과 같은 형식으로 설치했고요. 제 작업실에서는 이것에 ‘실라(Sheela)’라고5 별명을 붙여 줬는데요. (실라는) 배를 갈라서 새로운 무엇인가를 만드는 재생산, 다산의 여신을 상징합니다.
《성기의 불편》(티나 갤러리, 2024) 전시 전경. © 요하나 헤드바.
런던에서 진행 중인 개인전의 사진을 조금 더 보여 드리겠습니다. 대체로 작년부터 만들어 왔던 신작이 전시되었습니다. 전시장 전반에 노란 조명을 설치하여 하수구 혹은 죽어 가는 문명처럼 보이게끔 하였습니다. 으스스함과 불편함을 자아내는 분위기를 의도적으로 조성하고자 했죠.
요하나 헤드바, 〈내 음경에는 아무도 없어〉, 2024, 유리, 꿀, 요도 소식자, 가변 크기. © 요하나 헤드바.
지금 보여 드리는 〈내 음경에는 아무도 없어(Nobody’s On My Dick)〉는 미국 할로윈의 호박 조명을 저만의 방식으로 만든 것입니다. 유리 안에는 꿀과 검은 막대가 있는데요. 이 막대는 BDSM에서 남성 성기에 삽입하는 장치입니다. 몸에 대한 어떤 것이라는 어렴풋한 느낌은 가질 수 있지만, 정확히 어떤 용도인지 알 수 없는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성기의 불편》(티나 갤러리, 2024) 전시 전경. © 요하나 헤드바.
저는 회화나 드로잉을 설치할 때 칼을 많이 사용합니다. 칼을 벽에 던지면 기분 좋거든요. 특히 미술관에서는요. (좌중 웃음) 사실 재밌는 활동이기도 하지만 칼을 벽에 꽂으려면 힘과 함께 특정한 감정이 개입되어야 합니다. 동시에 여러 부분에 신경을 굉장히 많이 써야 해요. 칼이 일정한 상태로 고정되어야 하고 관객이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양가성이 있다 보니 흥미로운 긴장감을 자아냅니다. 종이, 드로잉, 회화 작업은 대체로 연구와 창작 과정에 관여합니다. 읽었던 것, 썼던 것 혹은 머리카락, 침, 피, 잉크, 수채화와 같이 주변 재료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들이지요. 이번 전시에서 처음으로 개별 작업으로 전시하게 되었습니다.
요하나 헤드바, 〈섹스는 끝났어〉, 2023, 골반뼈 모형, 나방, 피아노 현, 메탈존, 엠프, 콘택트 마이크, 알루미늄, 구리, 서보 기구, 오디오 게이트, 진공관, 용수철, 페달 파워 서플라이, 105.4×35.5×35.5cm. © 요하나 헤드바.
지금 보시는 조각은 〈섹스는 끝났어(Sex is Over)〉라는 제목으로, 작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처음 선보인 작품입니다. 가짜 골반뼈에 조금 전 보셨던 것과 비슷한 은색으로 된 남성 성기용 장치가 함께 설치되었습니다. 이것은 안과 바깥을 사용하는 것으로 연결됩니다. 좌대 안에 모터 장치가 들어가 있어서 뼈가 움직이도록 되어 있는데요. 이때 1만 3천 년간의 일식(日蝕) 데이터로 장치의 움직임을 구성했습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던 해와 관련 지어서 일식 데이터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뼈가 마이크를 감싼 상태이기 때문에 뼈가 움직일 때마다 소리가 나게 됩니다. 점성술에 따르면 일식의 일정에 따라 영혼이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기서 영감을 받아 세대를 가로지르는 전통, 혈통 같은 것들을 떠올렸고, 그것을 끔찍한 소리로 보여 주려고 했습니다.
요하나 헤드바, 〈더 크게〉, 2023, 네오프랜, 머리카락, 풀, 잉크, 실리콘 요도 소식자, 잉크로 채색된 나방, 바늘, 실, 타액, 칼, 약 127×203cm. © 요하나 헤드바.
마지막으로 보여 드릴 회화 작업은 〈더 크게(Bigger)〉입니다. 가로 2미터 정도 크기에 칼이 많이 꽂혀 있는데요. 표면에 머리카락과 풀을 손으로 직접 발라 붙여 반짝반짝 빛나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이 작업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개인적으로 심란한 사건을 겪으면서 있었던 심리적인 변화를 바탕으로 작업하였습니다. 이전 작업에서 보셨듯이 과거에는 저의 거실이나 작업실을 배경으로 했지만, 이후 좀 더 큰 존재에 대해 관심을 두게 되었고 지금은 광활한 작업을 하는 시기에 돌입했습니다.
〈더 크게〉에 보이는 칼과 관련된 재밌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제가 칼을 구매할 때 베를린에 있는 군용품 판매점에 자주 갔습니다. 매일 가서 50개 정도씩 칼을 사다 보니 그들이 저에게 ‘칼 부인’이라는 별명을 지어 주었어요. 그러다 칼 하나를 무료로 준다고 해서 가장 큰 걸 달라고 했더니 화면에 보이는 이 긴 칼을 주셨습니다. 살다 보니 남자들이 나한테 칼도 다 주고 굉장히 좋은 일이 일어나고 있구나 생각했답니다. (웃음) 여기까지가 제 작업에 대한 간략한 이야기였습니다. 이제 책에 대해서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습니다.
장애 퀴어와 킹크
양효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우리가 언제 죽을지를 들려주는 방법』의 공동 번역자 중 한 명입니다. 책은 내년에 도서출판 마티에서 출간될 예정입니다. 여기 계신 많은 분들이 『오프 매거진(Off Magazine)』을 통해 「아픈 여자 이론」을 접하고, 『진세미나(Zineseminar)』에서 진행한 요하나 헤드바의 인터뷰도 보셨을 겁니다. 저도 2016년에 헤드바의 「아픈 여자 이론」을 처음 접한 후로 계속 작가님의 글과 인터뷰를 관심 있게 찾아보고 있는데요. 이 책이 올해 9월 24일 영미권에서 출판이 되었고, 이제 거의 한 달 정도 지났는데 현지에서의 반응이 어떤지 궁금합니다.
요하나 헤드바: 우선 제 책이 내년에 한국에서 출판될 것이라 생각하니 굉장히 기분이 좋습니다. 현지 반응은 대체로 좋기는 합니다. 하지만 사실 1년 전에 무당이 말하기를 독자들이 무척 화를 낼 것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지금 쓴 책은 죽음이 다가온다고 계속 이야기하는, 굉장히 공격적이고 영적인 자기계발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당이) 독자의 기분이 썩 좋지 않을 거라고 이야기했었습니다.
양효실: 아무래도 만성질환을 앓고 있거나 공감할 수 있는 상황에 처한 분들이 작가님의 글을 훨씬 더 많이 읽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성질환은 병원 입장에서 돈이 안 되는 질병이고 (원인이 규명되지 않는 경우) 이름 없는 질병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굉장히 많은 여성들이 앓고 있는 질병이고, 중요하다고 간주하지 않기 때문에 어려운 질병이죠. 그래서 만성질환과 더불어 젠더, 트랜스젠더, 논바이너리 트랜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장애인이면서 퀴어인, 말하자면 장애 퀴어는 가장 급진적인 운동이 벌어지는 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의 사전 질문 중에 “오늘 몸이 어떠십니까?”라는 것이 있었어요. 만성질환은 어떻게 보면 그때그때 달라지는 병이니까요. 여기도 아마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분들이 계시지 않을까 싶은데 혹시 손 들어 주실 수 있나요?
요하나 헤드바: 용기 내서 손을 들어 준 분들도 계신 것 같아요. 우리 사회는 만성질환에 대해 환자가 무엇인가 잘못했다고 규정하면서 수치심을 주고 있기 때문에, 저는 그것을 고백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 이야기가 누구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장애가 있고 장애가 없고, 건강하고 건강하지 못하고 이런 것들이 질적·물질적·정치적인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떤 시점에나 아플 수 있고, 그 아픔이 영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분명 차이는 있지만 그것이 우리 모두에게 해당될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네요. 그리고 이것이 보편적인 일이라면 사회가 그것을 함께 구성해야지 그 반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양효실: 그래서 이 책은 ‘비장애중심주의’라고 번역하고 있는 ‘에이블리즘(ableism)’을 함께 다루고 있습니다. 장애인 당사자의 자기 연민이나 자기 고백이 아니라 장애인을 장애인으로 만드는 사회 구조에 대해 이야기하는 굉장히 정치적인 책입니다. 이 책이 주로 공격하는 것은 에이블리즘이 환상이라는 점입니다. 보편적으로 지금이냐 나중이냐 하는 시간상의 차이에 불과할 뿐이죠. 누구에게나 닥칠 수밖에 없는 장애라고 하면 이는 피할 수 없는 운명(Doom)이 아닐까요? 그것으로부터 출발하는 책이었습니다.
SeMA 옴니버스 《나는 우리를 사랑하고 싶다》 전시 연계 프로그램, 요하나 헤드바 아티스트 토크,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다목적홀, 2024. 10. 24., 촬영: 이행진. © 서울시립미술관.
요하나 헤드바: ‘둠(Doom)’이라는 단어가 책의 제목에도 들어가 있는데요. 그 단어를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 질문한다면 이렇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둠’이 물론 ‘죽음’, ‘파괴’라는 단어를 연상시키지만 저는 어떤 특정한 사건보다는 두려움이라는 느낌, 말하자면 가장 최악의 사태가 일어날 것이라는 두려움에 더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죽음과 ‘둠’이라는 단어의 차이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책에 ‘죽음은 빠르고 둠은 느리다(The death is fast but doom is slow)’라는 표현을 썼는데 헤비메탈이라는 장르에서 생각해 봤을 때, 데스메탈과 다르게 둠 메탈(Doom Metal)6은 좀 더 느리거든요.
양효실: 실제로 작가님은 둠 메탈 퍼포머이기도 하지요. 저는 전시장에서 〈모든 두려움은 매혹적이다(협업: 론 에이시)〉 작업도 굉장히 흥미롭게 봤습니다. 이제 장애학에 이어 BDSM 혹은 킹크로 주제를 이어나가 보고자 합니다. 이 책이 저한테 흥미로웠던 부분은 자위에 관한 묘사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는 점이었습니다. 90대 할망구도 자위를 하고, 장애인의 섹슈얼리티에 관한 문제도 계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작가님께서는 매기 넬슨(Maggie Nelson)과의 인터뷰에서도 말씀하셨다시피 장애인이라는 개념을 굉장히 복잡하고 다양한 목소리가 공존하는 것으로 만들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전략 중 하나로 ‘성욕 없는 장애인’이라는 개념에 섹슈얼리티를 덧붙이고 싶었다고 하셨고요. 섹슈얼리티를 장애와 연결하는 방식에서 작가님만의 독특한 방식이 바로 BDSM이었던 것 같아요. 아까 보여 주신 작업 중에서도 BDSM과 연관된 것도 많았고, 킹크적 성향과 관련해 유년기에 겪었던 어머니의 폭력이 원인이기도 하다고 직접 고백하기도 합니다. 유년기의 폭력에서 BDSM이라고 하는, 퀴어적인 또는 변태스러운 이상 성욕이 언급되는 상황에서, 아까 본 BDSM에서 사용되는 장치들은 약간 오싹한 분위기를 만들기도 하는데요. 그것과 연관된 작가님의 경험이나 이론적인 부분에 대해 더 듣고 싶습니다.
요하나 헤드바: ‘모두가 섹슈얼하다’라는 맥락에서 장애도 당연히 섹슈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아프게 되거나 장애가 있다면 그런 친밀함의 영역에 대해서는 항상 협상이 전제되어야만 합니다. 제가 경험했던 킹크 혹은 퀴어 커뮤니티와 공간에서는 무엇을 원하는지 언제 원하는지에 대한 협상, 동의, 소통이 항상 수반됩니다. 그러한 협상은 돌봄에도 해당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돌봄에도 이와 유사한 협상과 소통이 계속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도 저의 글과 작업에서 섹스에 관한 부분이 더 흥미로워 보여서 반복적으로 언급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제 책에 섹스에 대한 언급이 반복되는 것은 분명 정치적이기도 합니다. 아픈 몸으로 인해 제가 무서움을 느끼는 것들이 사실은 섹스 등이 주는 희열과 함께 이야기되어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전문적인 도미넌트(Dominant)로8 활동하면서 킹크를 저의 일상으로 가져왔기 때문에 그런 지점이 함께 언급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양효실: 작가님의 웹사이트를 방문해 보면 「아픈 여자 이론」 이후 너무나 많은 일과 작업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작업의 형식은 (글, 음악, 영상, 퍼포먼스, 설치 등) 난잡하게 취하는 것 같았고요. 이때 난잡함이 약간 성적인 느낌도 있는데, 아픈 와중에 그렇게 많은 작업을 할 수 있는 동력이 궁금합니다.
요하나 헤드바: 글을 쓰고 작업하는 게 저를 힘들게 하거나 소진시키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살아 있게 하는 것들이고요. 다른 게 오히려 힘들죠. 그래서 작업을 많이 만들고 다양한 매체를 사용하는 것이 그나마 제가 살아갈 수 있는 최고의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상에 앉아서 매일 500단어는 무조건 쓰려고 합니다. 대체로 침대에서 작업하지만요. 작업 구상을 침대에서 하는 것이 제가 이 세계에서 깨어 있는 방식이라고 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아까 보셨던 영상은 「아픈 여자 이론」이 스탠드업 코미디 형식이 되었을 때 어떨까 상상하면서 만들었던 것이고, 〈링〉(1998)과 같은 공포 영화를 참고했습니다. 공포 영화처럼 촬영했지만 나오는 대사들은 평소에 항상 듣는 조언 같은 것이죠. 작업 환경을 이렇게 이야기하면 가볍게 보일 위험이 있기는 하지만, 제 작업이 난잡해 보이는 이유는 항상 제가 “뭐가 더 있지?”라고 질문하기 때문입니다.
점성술과 돌봄
SeMA 옴니버스 《나는 우리를 사랑하고 싶다》 전시 연계 프로그램, 요하나 헤드바 아티스트 토크,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다목적홀, 2024. 10. 24., 촬영: 이행진. © 서울시립미술관.
양효실: 작가님의 어머니 쪽 아버지 쪽 모두 점성술사이십니다. 아버지 쪽으로는 경북 상주 출신의 김정분이 할머니가 계시고요. 아까 작업에서도 등장하셨던 할머니도 스스로 자신을 마녀로 여기는 것 같아요. 실제로 점성술사이시기도 하면서요. 그리고 작가님도 처음 오신 한국이지만 무당, 한(恨)의 정서 등에 대해 굉장히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요. 한국에서 무당이 전국적으로 50만 명이 된다는 이야기를 몇 년 전 논문에서 보았는데, 아마 지금은 기하급수적으로 더 늘었을 것 같습니다. 미국에 거주하는 인종적 소수자인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이런 주술, 샤먼에 대한 관심이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언제 죽을지를 들려주는 방법』을 보면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굿으로 애도를 합니다. 양쪽 집안 모두 그러한 계보가 있어서 자연스럽게 물려받은 것 같아요. 이게 한국에서 살아온 한국인의 시선으로 볼 때는 시차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명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 질문도 인종적 소수자로서 민속의 맥락에서 전수해 문화를 이어가는 것을 고려했습니다. 실제로 타로점도 보시는 것 같아서, 굉장히 다양한 믿음을 활용하시는 듯했습니다.
요하나 헤드바: 미국에서 자라면서 한국 문화를 접할 기회가 많지는 않았어요. 할머니가 한국전쟁 때 미국으로 넘어오셨고 이민자로 살면서 건물 관리자로 일하셨는데 33년간 한 번도 일을 빠지신 적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일하셨던 분이었어요. 지금은 좀 다르겠지만 미국에서는 점성술, 사주, 마녀, 무당과 같은 존재를 삭제하고, 그것을 믿는 사람을 바보 취급하고, 교육받은 사람들이라면 그런 것을 믿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전반적인 분위기가 있어요. 유사 과학 취급을 했던 것이죠. 저 또한 오랫동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대학원에서 철학 공부를 하면서 진지한 사상가로 인정받고 싶어서 그런 부분을 부인해 왔지만, 아프고 나서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장애 혹은 퀴어라고 스스로 인정하게 되면서부터 의미를 만드는 다른 방식을 찾게 되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라든지 헤겔, 하이데거 이런 사람들이 전혀 말해 줄 수 없는 완전히 다른 방식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양효실: 그럼에도 작가님이 쓴 소설 『미네르바, 뇌의 사산(Minerva: the Miscarriage of the Brain)』9을 보면 백인으로 패싱되는 요하나가 서구 유럽의 기원으로서 그리스를 호명하는 또 다른 축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것은 ‘난잡한 형식’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저도 며칠 전에 수업 시간에 사이비 의학, 특히 한국에서 가시성의 영역에서 사라져 버린 ‘안아키’10를 흥미롭게 추적하는 입장에서 이러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주류 의학 담론에서 배제되는 사이비가 어떻게 타자의 담론으로서 의미가 있는지 살피고 있는 것인데요. 작가님의 발언을 통해 (무속, 샤먼 등이) 개인의 고백으로서 굉장히 절절하게 들어오는 부분이 있는 것 같고요. 주로 성공한 한국계 미국인을 보면 기독교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어요. 교회를 통해 사람들이 정보를 교환하니까요. 그래서 이민자 여성 작가에게서 무속, 샤먼에 관한 이야기를 다시 듣게 되는 게 저에게도 새로운 것 같습니다.
요하나 헤드바: 저희 할머니의 네 번째 남편은 신내림을 받은 무당이었습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직접적으로 말할 수는 없었고 대외적으로는 사업가라고 이야기를 했었다고 해요. 그래서 저는 항상 말해서는 안 되는 것, 우리가 알아서는 안 되는 것에 어떤 지식이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게 정답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돌이 있다면 들춰서 그 밑에 무엇이 있느냐를 보는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고대 그리스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저는 서구 시스템에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서구에서 민주주의, 계몽 이런 개념들이 그리스가 기원이라고 학습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 밑에 무엇이 깔려 있는지 들춰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고대 아테네에는 노예제가 있었고, 그리스가 아닌 다른 곳에서 태어난 사람은 인간 이하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런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나왔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틀린 말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거기서부터 여성 운동도 나오고, 가부장제도 나오고, 온갖 폭력과 악재가 시작되었으니까요.
양효실: 마지막으로 제가 하나 더 여쭙고 싶은 것은 어쨌든 돌봄, 보살핌(care)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책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다루고 있고, 심지어 BDSM이라고 하는 것을 바깥에서 볼 때 합의에 따라 폭력이 섹슈얼리티와 연동된다고 볼 수 있는데요. 요하나 헤드바 작가님과의 대화를 통해서 BDSM이 돌봄의 장면일 수 있겠다는 새로운 관점을 얻었습니다. 저 역시도 나날이 이렇게 배우는 학생의 입장이네요. 책에서 이야기하는 돌봄은 힘 있는 사람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는 방식의 돌봄이 아니고, 아픈 자들이 서로를 보살피는 커뮤니티에 대한 이야기란 말이에요. 이것도 사실 처음이죠. 지금껏 돌봄을 이야기하는 방식이 어머니, 간호사처럼 돌보는 자의 관점을 중심해 왔고, 그래서 ‘불구(crip) 커뮤니티’라는 것들에 대해 상당히 배제적인 방식으로 이야기를 해왔던 것에 비추어보면요. 그래서 의료 권력이나 가족주의가 작동하는 일반적인 돌봄에 관한 페미니즘이나 신자유주의적인 입장과 작가님이 이야기하는 ‘아픈 자들이 서로를 돌보는 공동체’가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조금 더 듣고 싶습니다.
SeMA 옴니버스 《나는 우리를 사랑하고 싶다》 전시 연계 프로그램, 요하나 헤드바 아티스트 토크,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다목적홀, 2024. 10. 24., 촬영: 이행진. © 서울시립미술관.
요하나 헤드바: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졌을 때 우리는 이 세계가 서로를 돌볼 수 있도록 만들어지지 않았고, 그런 것이 잘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코로나19가 세상을 바꿨다고 이야기하지만, 저는 오히려 이 세계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보여 줬다고 생각합니다. 그 세계는 전혀 돌봄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것을 할 수도 없는 곳이었습니다. 책에서 제언하고자 했던 것은 돌봄이라는 것이 병리학적이거나 착취적이지 않고, 말하자면 가끔 문제가 있을 때 해결하기 위해서 돌봄을 도입하는 것이 아닌 다른 길이 있을지 보고자 했던 것입니다. 불구 커뮤니티에서도 돌봄을 자선 사업으로 보지 않고,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돌본다는 개념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려고 하는 것이죠. 흥미로운 지점은 영어에서는 ‘받다(take)’, ‘주다(give)’라는 것은 아예 서로 반대되는 단어인데 ‘돌봄(care)’이라는 단어를 붙이면 ‘돌보는(caretaking, caregiving)’이라는 동일한 의미가 된다는 것입니다.
유은순: 작가님의 작업에서부터 돌봄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모더레이터 양효실 선생님과 순차 통역을 진행해 주신 유지원 큐레이터님, 한국에 처음 방문한 요하나 헤드바 작가님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오늘 찾아와 주신 모든 분께도 감사드립니다.
속박(bondage), 훈육 혹은 지배(discipline or domination), 사디즘 혹은 복종(sadism or submission), 마조히즘(masochism)의 축약어로 즐거움을 위해 고통을 주고받거나 통제하는 다양한 성적 행위를 포함한다. 케임브리지 영어 사전(dictionary.cambridge.org) 참고. ↩
‘킹크’는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는데, 여기서는 성적인 의미에서 사용된다. 통상적인 성적 행위를 넘어서는 비주류적인 성적 행위 및 다양한 관심사를 포함하며 BDSM, 롤플레잉 등을 아우른다. Kelsey Borresen, “The Difference Between A Fetish And Kink, According To Sex Experts,” Huffpost (July 24, 2018), https://www.huffpost.com/entry/difference-between-fetish-and-kink_n_5b58a59ae4b0b15aba94749b. ↩
Johanna Hedva, How to Tell When We Will Die: On Pain, Disability, and Doom (New York: Hillman Grad Books, 2024). 도서와 연관된 요하나 헤드바의 활동에 대해서는 다음 링크의 내용을 참고할 수 있다. https://johannahedva.com/how-to-tell-when-we-will-die.php (2025. 1. 3. 최종 접속). ↩
SeMA 옴니버스 《나는 우리를 사랑하고 싶다》 온라인 전시 리플릿은 다음 링크를 참고. https://sema.seoul.go.kr/kr/knowledge_research/publish_detail?museumDataNo=1318096 (2025. 1. 3. 최종 접속). ↩
작가는 이 별명이 ‘실라 나 기그(sheela-na-gig)’에서 왔다고 언급하였다. ‘실라 나 기그’는 중세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에서 주로 발견되는 조각품으로, 성기가 과장되게 표현되는 것이 특징이다. ↩
헤비 메탈의 하위 장르로 둠 메탈은 죽음, 어둠, 오컬트에서 영감을 받아 197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무거운 베이스와 정리되지 않은 기타, 느린 박자, 잊혀지지 않는 가사로 으스스한 느낌을 자아내는 것이 특징이다. Selena Aguilera, “Darkness and the Occult: A brief history of doom metal”, The Michigan Daily(October 24, 2017), https://www.michigandaily.com/arts/darkness-and-occult-brief-history-doom/. ↩
『우리가 언제 죽을지를 들려주는 방법』의 마지막 장 제목이 「할망구 총책(The Hag in Charge)」으로 번역되었고, 대화상에서 모더레이터이자 역자로서의 의도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할망구’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
광범위한 성적 행위를 포괄하는 BDSM에서 참여자의 관심사가 통제권을 행사하는 지배적인 역할에 있을 경우 ‘도미넌트’라고 부른다. Andreas A. J. Wismeijer, Marcel A. L. M. van Assen, “Psychological characteristics of BDSM practitioners”, International Society for Sexual Medicine 10(8), (2013): 1943. ↩
Johanna Hedva, Minerva: the Miscarriage of the Brain (Saratoga, CA: Sming Sming Books; Oakland, CA: Wolfman Books, 2020). 이 책에 대해서는 다음 링크를 참고할 수 있다. https://johannahedva.com/minerva-the-miscarriage-of-the-brain.php (2025. 1. 6. 최종 접속). ↩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의 약어인 ‘안아키’는 자연주의 의료와 자연 치유법을 주장하는 온라인 카페로 2017년 사회적으로 아동학대와 관련된 논란을 일으켰다. 조혜림, 정민수, 「자연주의 의료에 대한 언론보도와 미디어 프레이밍의 탐색적 연구」, 『보건사회연구』 39(2), (2019): 333. ↩ (출처: 서서히 치닫는, 그러나 저항하며 돌보는 ― 요하나 헤드바 아티스트 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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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테르 AI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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