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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미완의 관계, 감응의 구조 — 최빛나의 예술 실천과 비형식적 동료성의 정치학》

《미완의 관계, 감응의 구조 — 최빛나의 예술 실천과 비형식적 동료성의 정치학》


목차 및 구성:

  1. 서론 — 왜 지금 최빛나인가

  2. 구조 없이 구조하기 — 기획, 전시, 미완의 형식

  3. 비공식성과 감응의 정치 — 동료란 무엇인가

  4. 번역과 이주 — 글로벌 사우스와 최빛나의 포지셔닝

  5. 결론 — 감응을 위한 비평, 미완을 위한 윤리







1. 서론 — 왜 지금 최빛나인가

21세기 동시대 예술의 화두 중 하나는 ‘관계’이다. 그러나 그 관계는 더 이상 단순한 협업이나 상호작용의 방식이 아니라, 예술이 도달하는 감각의 경계, 윤리의 조건, 제도의 재구성을 가늠하는 좌표로 기능하고 있다. 이 글이 주목하는 작가이자 기획자 최빛나는 그러한 ‘관계의 전환’을 감각적으로 실천해온 인물이다. 그의 전시는 완결된 구조라기보다 미완의 상태에 머무는 관계적 구조이며, 전시를 통해 구축되는 동료성은 공식적인 제도나 계약을 통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실패하고 번역되는 감응의 과정에 가깝다.

최빛나는 제도와 주변, 중심과 경계, 전시와 공동체, 작가와 기획자라는 이분법적 구조를 해체하면서 비형식적이고 비위계적인 예술의 공동 주체성을 탐색해왔다. 그의 실천은 거대 담론이나 미술계 중심 제도를 전복하거나 거부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 안에서의 균열을 드러내고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즉, 그는 제도 바깥의 대안적 예술이 아니라, 제도 안팎을 넘나드는 ‘이주적 기획자’로서 동시대 예술의 정치성과 미학을 새롭게 구성하고 있다.

이 논문은 최빛나의 예술 실천을 중심으로, 관계의 정치학, 감응의 구조, 미완의 형식성, 이주적 윤리, 공동체의 재개념화를 비평적으로 고찰한다. 이를 위해 그의 대표적 프로젝트와 전시, 큐레이토리얼 기획, 공동체 실험, 디지털 기술 기반 작업(언메이크랩), 그리고 비엔날레 참여 사례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한다. 특히 그는 한국의 주변 도시(부산, 유촌 등)와 국제 미술 제도(카스코 아트 인스티튜트, 싱가포르 비엔날레, 하와이 트리엔날레 등)를 가로지르며, ‘로컬-글로벌’을 교차하는 감응의 네트워크를 형성해왔다.

이러한 작업은 오늘날 ‘예술가란 누구인가’, ‘기획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다시 쓰게 만든다. 최빛나는 작가로서만이 아니라, 동료로서, 기획자이자 공동체의 설계자로서, 그리고 감응의 중계자로서 존재한다. 이 논문은 그의 실천을 통해 예술 실천의 새로운 윤리적 기반과 정치적 지형을 모색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한 개인의 사례 분석을 넘어서, 동시대 예술의 전환기적 구조에 대한 비평적 응답으로 기능할 것이다.


2. 구조 없이 구조하기 — 기획, 전시, 미완의 형식

최빛나의 예술 실천은 일관되게 전시의 고정성과 제도의 완결성을 의심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는 전시를 하나의 폐쇄된 서사로 기획하지 않으며, 관람자를 고려한 감각적 경험의 완결물을 제시하려 하지도 않는다. 대신 그는 전시를 "과정의 잔류물"로, 혹은 "서사의 중간지점"으로 상정한다. 이러한 태도는 그의 주요 전시에서 일관되게 드러난다. 예컨대 2016년 광주비엔날레의 공동 큐레이터로 참여한 '제8기 후대: 예술은 무엇을 하는가'에서 그는 다원적 언어와 모호한 개념들이 교차하는 구조를 의도적으로 마련하였다. 작가들의 작업이 각기 다른 언어와 역사적 무게를 지닌 채 교차하면서, 오히려 전시는 단일 주제를 중심으로 수렴되기보다 다발적 의미망을 형성한다.

최빛나는 흔히 '기획자'로서 호출되지만, 실은 기획을 조직하기보다는 느슨하게 해체하고 미루는 자에 가깝다. 그에게 기획은 계획이 아니라 관계의 생성 과정이며, 전시는 결과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열려 있는 제안이다. 이는 그의 공동체 실천과도 연결된다. 범일가옥(부산 동구)이나 언메이크랩의 활동은 전시 공간으로서가 아니라 열림의 구조를 실험하는 장이다. 그는 완성된 설계도를 들고 공간을 조직하지 않고, 오히려 공간의 틈과 균열을 발굴하며 그 사이로 ‘사람이 머무는 감응의 조건’을 발굴한다. 최빛나는 이를 “감응적 동료 구조”라 명명하며, 관계의 결과가 아닌 조건으로서 전시를 바라본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그의 기획이 '없음의 감각'을 구조화하는 방식이다. 작가가 존재하지 않는 전시, 시작은 되었지만 끝나지 않는 설치, 반쯤만 조립된 구조물, 글 없이 텅 빈 벽면 등은 모두 ‘결여’라기보다 **‘여백으로 남겨진 구조’**의 일부로 기능한다. 이는 어떤 서사의 생략이라기보다, 관계와 해석이 발생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하는 윤리적 실천이다. 그는 이를 통해 관람자가 능동적으로 '의미를 발명'하게끔 유도하고, 기획자와 작가, 관람자 사이의 위계 구조를 탈중심화한다.

나아가 그는 기획 그 자체에 대한 비평적 재구성을 시도한다. '기획의 기획'이라 할 만한 그의 실천은, 전시라는 형식 안에서 감각, 리듬, 공동체성, 공간성, 정치성을 통합하며 하나의 구조적 서사를 만드는 것을 지양한다. 대신 그는 "기획은 하나의 전술이며, 그 전술은 실패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태도는 동시대 미술에서 큐레이터리얼 실천이 지나치게 제도화되거나, 국제 비엔날레 시스템 안에서 기획이 자율성과 실험성을 상실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명료한 비판이기도 하다.

이처럼 최빛나의 기획은 단지 전시를 구성하는 실무적 행위가 아니라, 제도와 관계를 다루는 하나의 감각적 정치로 작동한다. 이는 오늘날 기획자 혹은 작가가 "어떤 형식으로 존재할 것인가"라는 물음과 직결되며, 나아가 예술이 어떤 사회적 감응의 구조를 형성할 수 있는지를 실험하는 행위로 이해할 수 있다. 그의 전시는 구조가 없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구조 개념을 전복하여 '감응할 수 있도록 남겨진 구조', 혹은 **'형식 이전의 형식'**으로 존재한다.


3. 비공식성과 감응의 정치 — 동료란 무엇인가

최빛나의 예술 실천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개념 중 하나는 ‘동료성(companionship)’이다. 그러나 이는 제도나 계약으로 형성된 ‘공식적 파트너십’이 아닌, 비공식적이고 비형식적인 관계망의 정치학에 가깝다. 그는 동료를 함께 일한 사람, 계약서를 쓴 사람, 혹은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으로 정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함께 있지 않지만 서로를 감각하는 사람들”, “관계가 끝난 뒤에도 잔류하는 감응의 흔적”을 동료라 부른다. 이처럼 그의 동료 개념은 제도적 협력관계를 넘어, 지속 불가능하고 불완전한, 그러나 감응 가능한 존재들 사이의 연결망을 지칭한다.

이러한 감각은 그의 전시 방식과 공동체 실천에서 두드러진다. 범일가옥, 언메이크랩, 카스코 아트 인스티튜트 등에서 진행된 프로젝트는 공통적으로 ‘공식 조직’이나 ‘완결된 커뮤니티’가 아닌, 불완전한 협업의 장을 만들어왔다. 그는 ‘같이 하는 것’보다 ‘같이 있을 수 있는 조건’을 고민하며, 결과보다는 감응의 구조, 제안의 조건, 머무름의 시간에 집중한다. 이때 공동체란 어떤 가치를 공유하고 목적을 함께 성취하는 조직이 아니라, 서로의 결여와 단절을 감각하면서도 함께 남아 있는 사람들의 느슨한 형태이다.

그는 자주 ‘감응(resonance)’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는 정치적이거나 윤리적인 책임보다 더 전 단계의 감각적 층위에서 발생하는 개념이다. 감응이란 언어 이전의 교환, 제도 이전의 이해, 제안 이전의 가능성에 속한다. 이 감응이야말로 최빛나가 구축해온 ‘동료의 조건’이다. 예컨대 그는 싱가포르 비엔날레에서 지역 사회의 여성 공동체와 함께 비전시 공간을 기반으로 현장의 시간성에 감응하는 느린 프로그램을 설계했다. 이때 작가와 공동체의 관계는 협력이나 창작이라는 목적이 아니라, 그 현장에 머물고 있음을 증명하는 감응의 윤리에 기반하고 있었다.

흥미롭게도, 최빛나는 이런 감응적 동료성의 구조를 항상 실패 가능하고 불안정한 것으로 설정한다. 동료는 언제든 떠날 수 있으며, 공동체는 언제든 해체될 수 있다. 그는 이것이야말로 공식성의 권력을 탈중심화하는 가장 윤리적인 태도라고 본다. 동료성은 의무나 지속성에서 나오지 않고, 실패하고 갈라지는 과정을 감싸안는 감응의 반복에서 생성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실천에서 공동체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남겨진 감응의 여백 속에서 발생하는 사건이다.

이와 같은 비공식적 동료 구조는 제도와 자원의 흐름을 따라 형성되는 일시적 네트워크, 즉 국제 비엔날레나 레지던시의 기획 시스템과는 상반되는 감각이다. 그는 이런 일회성 관계를 ‘동료성’이 아닌 ‘관계의 이미지’라고 비판한다. 최빛나는 이미지보다 조건, 프로그램보다 여백, 이벤트보다 시간성을 중시하며, 예술적 관계를 자율성보다는 ‘공존의 감응 구조’로 재정의한다.

동료란 결국 “함께 노동하지 않더라도, 나의 시간에 균열을 남긴 존재”라고 그는 말한다. 이 말은 그의 실천 전체를 꿰뚫는 윤리적 태도를 잘 보여준다. 최빛나에게 동료란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존재가 아니라,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는 가능성으로 내 안에 남아 있는 존재, 혹은 그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소환하는 비가시적 조건이다. 이는 예술이 사람을 조직하고 구속하는 제도가 되지 않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감응 가능한 틈을 남겨두는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음을 제안한다.


4. 번역과 이주 — 글로벌 사우스와 최빛나의 포지셔닝

최빛나는 자신의 작업을 글로벌 시스템 안에서 위치 짓는 데 있어서, ‘중심에서 말하는 예술’이 아니라 주변에서 듣는 예술, 혹은 ‘이주하며 감응하는 실천’으로 이해해왔다. 그는 자주 ‘포지셔닝’이 아닌 ‘디스포지셔닝(dis-positioning)’이라는 개념을 언급하며, 고정된 정체성이나 국적, 혹은 미술계의 중심적 가치 체계로부터 자유로운, 떠돌며 조정되는 위치성을 자신의 전략으로 삼는다. 이러한 태도는 그가 카스코 아트 인스티튜트(네덜란드)에서 디렉터로 활동하거나, 싱가포르 비엔날레, 하와이 트리엔날레, Afield 자문으로 참여했던 여러 국제 프로젝트에서도 일관되게 나타난다.

최빛나는 이 과정에서 ‘글로벌 사우스’라는 개념을 단지 지정학적 남반구 혹은 비서구적 예술생산지로서 접근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언어적으로 번역되지 못한 감각, 제도적으로 배제된 시선, 혹은 시간적으로 차이 나는 리듬이 존재하는 지점들을 ‘글로벌 사우스’의 감응지대로 상정한다. 다시 말해, 글로벌 사우스는 장소가 아니라 감각의 밀도와 균열을 구성하는 하나의 정치적 조건이며, 최빛나는 바로 그 감각적 여백을 예술적 실천의 장소로 삼는다.

이러한 전략은 ‘번역’에 대한 그의 독특한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국제 네트워크에서 활동할 때마다 ‘불완전한 번역’의 조건을 유지하려는 윤리적 노력을 지속해왔다. 이는 단지 한국어를 영어로 바꾸는 언어적 작업을 넘어, 정서적, 정치적, 공동체적 맥락을 완전히 전이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그 틈을 열어두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그는 하와이 트리엔날레에서 하와이 지역 원주민 여성들과의 협업을 진행하면서, 프로젝트 전체를 ‘서사화’하지 않는 방식으로 설계하였다. 그들은 전시실 내부에 무언가를 ‘설치’하거나 ‘재현’하기보다는, 그들의 시간에 감응하며 함께 있는 존재로 머무는 방식을 택했다. 이때 번역은 서사 이전의 감응, 정보 이전의 침묵, 해석 이전의 동행으로 기능했다.

이러한 번역 불가능성을 끌어안는 태도는, 역설적으로 그의 국제적 실천을 더욱 공명하게 만들었다. 그는 비엔날레 큐레이터나 국제 기관의 자문으로서 활동할 때, **제도적 언어를 복제하기보다는 현장의 목소리에 감응하는 ‘느린 기획자’**로서의 역할을 택한다. 이는 빠르게 소비되고 전시되는 프로젝트 중심 국제 미술계 시스템과는 다른 윤리적 입장을 반영하며, 프로젝트의 물리적 형식보다는 감응의 시간성을 기록하는 방식을 제안한다.

한편, 이러한 감응적 번역과 이주의 전략은 ‘코리안 큐레토리얼’이라는 프레임 안에서도 유효하다. 최빛나는 한국이라는 지역성을 민족주의적 정체성이나 근대기획의 일환으로 환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한국 현대사의 분단, 도시 재개발, 지역 공동체의 붕괴, 사라지는 언어와 공간의 경험을 통해, 언제나 이주하고 해체되는 로컬의 감각을 구축해왔다. 그가 부산의 범일가옥이나 유촌 지역에서 전개했던 프로젝트는 ‘한국적인 것’의 재현이 아니라, 한국의 언어가 감응하지 못하는 균열을 드러내고, 그 안에서 동료적 상상력을 재구성하는 과정이었다.

이처럼 최빛나의 예술 실천은 글로벌 사우스라는 개념을 장소가 아닌 ‘실천의 방식’으로 재정의하며, 번역과 이주라는 행위를 통해 감응의 지도를 그려낸다. 그는 예술이 도달하는 최종 형태보다, 이동하는 과정에서 누락되는 의미, 잊히는 경험, 번역되지 못하는 감정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며, 이를 하나의 정치적, 윤리적 실천으로 확장한다.


5. 결론 — 감응을 위한 비평, 미완을 위한 윤리

최빛나의 예술 실천은 하나의 경향이나 양식을 규정짓기 어려울 만큼 다층적이고 비정형적이다. 그는 전시를 조직하지 않고, 기획을 연기하며, 제도 바깥의 감응 구조를 구성한다. 그는 동료를 조직하지 않으며, 공동체를 완성하려 하지 않는다. 이처럼 완결을 미루고 구조를 해체하는 실천은 단지 실험적 양식을 넘어서서, 동시대 예술이 감각해야 할 윤리적 전환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것은 ‘말하는 자’가 되려는 것이 아니라, ‘듣는 자’로 남는 감응의 비평을 수행하는 예술가의 태도이기도 하다.

현대 예술은 여전히 서사와 의미의 구조, 제도와 매개의 장치, 시선과 권력의 분포를 중심으로 작동한다. 작가는 메시지를 전송하고, 큐레이터는 의미를 조율하며, 관람자는 해석을 수행하는 소비자로 위치 지워진다. 그러나 최빛나는 이 구조를 일관되게 거부한다. 그는 감각과 감응의 층위에서 예술이 어떻게 ‘함께 있음’을 재구성할 수 있을지를 실험한다. 전시와 기획은 목적이 아니라 관계의 장이며, 실패와 누락, 망설임과 기다림은 결과가 아닌 예술의 감각적 윤리 그 자체가 된다.

이러한 태도는 동시대 비평에 중요한 도전이 된다. 기존의 미술 비평은 종종 작품의 완성도나 기획의 완결성을 평가하는 데 집중해왔다. 그러나 최빛나의 실천은 미완의 상태에서 발생하는 감응의 흔적, 혹은 결과가 아닌 조건에 주목하는 비평의 전환을 요구한다. 이때 비평은 설명이나 규정이 아니라, 같이 기다리는 윤리, 혹은 해석 이전에 함께 침묵하는 태도가 된다. 그의 실천은 감각 이전의 정치, 전시 이전의 공동체, 기획 이전의 시간성을 요청하며, 비평 역시 그것에 반응할 수 있는 새로운 언어를 발명해야 함을 촉구한다.

또한 최빛나의 실천은 지속 가능성과 재현의 윤리에 대한 감각적 전환을 요청한다. 그는 비엔날레, 대형 국제 프로젝트, 제도권 기관 안에서 활동하면서도, 그 구조 안에서 어떻게 감응의 윤리를 유지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탐색해왔다. 그는 제도와의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내부에서 구조를 재배열할 수 있는 느린 감각을 제안하고, 감응을 유보함으로써 오히려 더 긴 호흡의 윤리적 실천을 가능하게 했다. 이때 예술은 해석의 대상이 아니라, 서로 다른 리듬들이 교차하는 감응의 매개체로 기능한다.

마지막으로, 최빛나의 실천은 미완의 상태를 결핍이 아니라 ‘여백으로 남겨진 가능성’으로 사유하게 한다. 이는 예술을 통해 사회적 연대를 구성하고자 했던 근대적 기획의 유산과도 결을 달리한다. 그는 예술을 통해 사회를 설득하거나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예술은 감각을 되돌리고 리듬을 바꾸는 감응의 조건이 된다. 이때 예술은 메시지가 아니라, 함께 있음에 대한 재구성이며, 말함이 아닌 듣기의 재정의로 기능한다.

우리는 이제 예술이 무엇을 말하는가보다, 어떻게 들을 수 있게 만드는가를 질문해야 한다. 최빛나의 실천은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응답이며, 동시대 예술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새로운 감응의 윤리이자 실천의 가능성이다. 그리고 이 실천을 따라가는 비평 역시, 설명이 아닌 감응, 평가가 아닌 동행의 형태로 변화해야 한다. 최빛나는 그것을 미리 도착해 보여주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망설이며 머무는 감응의 동료로서의 예술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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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감독 공명성


 



사진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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