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강명관 — 『조선의 뒷골목 풍경』
이 책은 엄밀히 말하면 근현대사가 아니라 조선 후기 사회문화사에 가깝다. 그런데 한국 근대를 이해하려면 “근대 이전의 일상과 사회가 어떤 모습이었는가”를 알아야 하기 때문에 중요한 책이다. 강명관은 왕, 양반, 정치제도와 같은 거대 역사에서 벗어나 이름 없는 평민, 여성, 도박꾼, 술꾼, 무뢰배, 중인, 천민 등 공식 역사에서 주변화된 사람들을 역사의 중심으로 불러낸다. 책이 다루는 대상도 민간 의료, 도적, 승려, 도박, 술집, 과거시험, 성문화, 반촌, 검계, 별감 등 기존의 정통 역사서가 잘 다루지 않았던 영역이다.
핵심은 “역사는 국가와 지배층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법과 제도가 규정한 공식적인 조선사회와 사람들이 실제로 살아간 조선사회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예를 들어 국가가 도박이나 술, 범죄를 금지한다고 해서 그런 행위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금지와 통제의 주변에서 새로운 문화, 네트워크, 시장이 만들어진다. 따라서 사회를 이해하려면 법전이나 왕조실록뿐 아니라 금지된 행동, 비공식적 경제, 유행, 소문, 소비와 욕망을 보아야 한다.
이 관점은 한국 근현대 담론 연구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한국 근대가 단순히 서구 문물이 도입되면서 어느 날 시작된 것이 아니라 기존 조선사회의 생활세계 위에 겹쳐졌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근대적 도시문화가 등장했다고 해서 전근대의 습속이나 관계망이 곧바로 사라진 것은 아니다. 도시의 뒷골목, 비공식 시장, 유흥문화, 사회적 주변인은 근대 이후에도 계속 존재하면서 형태만 바꾼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강명관의 연구방법이다. 거대한 개념을 먼저 제시한 뒤 사례를 끼워 맞추기보다, 작은 사건과 기록을 모아 사회 전체의 모습을 재구성한다. 이런 방식은 미술이나 문화 담론 연구에도 적용할 수 있다. 정전이나 대표작만 연구하지 않고 전시장의 주변부, 관객의 행동, 유행하는 이미지, 판매방식, 대중적 취향 같은 작은 현상을 모으면 당시 문화의 구조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핵심 키워드는 “주변부, 일상, 욕망, 통제, 비공식성”이다. 한국 근대성을 연구하기 위한 일종의 전사前史라고 볼 수 있다. 근대가 무엇을 파괴했고 무엇을 계승했는지 판단하기 위한 기준점을 제공한다.
2. 전우용 — 『서울은 깊다』
『서울은 깊다』는 서울이라는 도시를 하나의 거대한 역사적 텍스트로 읽는다. 전우용은 도시의 역사를 건축물이나 정치사건의 연대기로 설명하지 않는다. ‘서울’이라는 말에서 시작해 똥개, 땅거지, 무뢰배, 촌뜨기 같은 언어, 종로의 전차, 물장수, 복덕방, 덕수궁 돌담길, 시계탑, 제중원, 도깨비시장, 분수대 등 도시 곳곳에 남아 있는 작은 흔적을 통해 서울의 사회구조를 복원한다.
이 책에서 중요한 것은 공간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는 점이다. 공간은 권력과 계급, 경제, 욕망을 조직한다. 조선의 수도 한양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보면 정도전과 이방원의 정치적 구상이 도시의 구조에 반영되어 있다. 이후 시장이 발달하고 인구가 증가하면서 공식적으로 설계된 도시와 실제 사람들이 사용하는 도시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변화한다.
근대로 넘어오면 도시공간의 의미는 더욱 급격하게 변한다. 전차, 병원, 사진, 시계, 공원 같은 새로운 장치들은 단순한 편의시설이 아니다.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간감각과 공간감각을 가르친다. 시계가 확산되면 사람은 자연의 시간보다 표준화된 시간에 맞춰 움직이고, 전차가 등장하면 도시의 거리감각이 달라진다. 사진은 사람과 공간을 재현하는 방식을 바꾸며, 병원은 신체를 바라보는 새로운 제도를 만든다.
따라서 서울의 근대화는 건물이 서양식으로 바뀌는 과정만을 뜻하지 않는다. 인간의 감각, 행동, 이동, 소비, 언어가 바뀌는 과정이다. 이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또 전우용은 서울이 중심이 되는 과정에서 ‘지방’이라는 개념 역시 만들어졌음을 보여준다. 서울은 한국의 정치·행정·문화·경제 자원이 집중되면서 단순한 도시를 넘어 중심성을 획득한다. 서울과 지방이라는 위계 역시 역사적으로 생산된 것이다.
한국 근현대 담론 연구에서 이 책이 중요한 이유는 “도시를 통해 근대성을 읽는 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재개발, 아파트, 백화점, 전시장, 미술관 같은 공간도 마찬가지다. 공간의 형태를 연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공간이 어떤 인간을 만들고 어떤 행동을 요구하며 어떤 계층을 배제하는지까지 보아야 한다.
결국 『서울은 깊다』는 서울에 대한 책이면서 한국 근대의 공간정치에 대한 책이다. 핵심 키워드는 “도시, 공간, 중심과 주변, 일상, 기술, 기억”이다.
3. 박해천 — 『콘크리트 유토피아』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한국의 아파트를 단순한 주거건축이 아니라 한국 현대사 전체를 압축하는 문화적 장치로 분석한다. 책은 픽션과 팩트를 오가면서 마포아파트, 한강맨션, 강남 아파트, 분당과 용인 등의 신도시를 통해 1960년대 이후 한국인이 어떻게 새로운 생활양식과 중산층 정체성을 획득했는지를 보여준다. 2026년 개정판 역시 ‘시선의 모험’, ‘아파트의 자서전’, 강남 1세대, 꽃무늬 인테리어 등을 픽션으로 다룬 뒤 마포아파트, 한강맨션, 강남, 분당·용인을 역사적으로 분석하는 구성을 취한다.
아파트는 처음부터 한국인이 원하는 주거형태가 아니었다. 좌식생활이 익숙했던 사회에 입식 부엌, 식탁, 소파, 거실, 베란다, 욕실 같은 새로운 공간구조가 도입됐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낯선 생활방식에 적응해야 했다. 그러나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아파트는 빠르게 “현대적인 삶”의 상징이 된다.
특히 강남 개발 이후 아파트의 의미가 바뀐다. 집은 더 이상 거주공간만이 아니라 자산이다. 좋은 아파트를 소유한다는 것은 경제적 성공뿐 아니라 교육, 소비, 문화적 지위와 연결된다. 아파트 가격과 학군, 쇼핑, 자동차, 인테리어가 결합하면서 한국의 중산층 라이프스타일이 만들어진다.
저자는 거실에도 주목한다. 텔레비전과 소파가 놓인 거실은 가족이 현대적 생활을 연출하는 무대다. 아파트 내부의 디자인은 단순한 미적 취향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계층에 속하는지를 보여주는 기호가 된다. 꽃무늬 벽지, 시스템키친, 침실, 가구와 가전제품의 변화가 한국인의 욕망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아파트는 국가의 개발정책, 건설자본, 금융, 중산층의 욕망이 교차하는 장소가 된다. 국가가 주택을 공급하고 도시를 확장하며, 개인은 분양과 재산증식을 통해 개발체제에 참여한다.
한국 근현대 담론에서 이 책이 중요한 이유는 “압축성장”이라는 거대한 개념을 구체적인 사물과 공간으로 설명하기 때문이다. 산업화가 무엇인가를 GDP로 설명하지 않고 부엌, 거실, 텔레비전, 모델하우스, 아파트 평면으로 보여준다.
핵심 키워드는 “아파트, 중산층, 강남, 압축성장, 디자인, 소비, 자산”이다. 한국 현대성을 시각문화와 공간문화 차원에서 연구하려면 특히 중요한 책이다.
4. 김진송 — 『서울에 딴스홀을 許하라』
이 책은 1930년대 식민지 조선에서 ‘현대적인 인간’이 어떻게 등장했는지를 추적한다. 기존 역사학이 독립운동·식민정책·정치사를 중심으로 일제강점기를 설명했다면 김진송은 광고, 잡지, 신문, 춤, 라디오, 영화, 유행가, 네온사인, 과학, 여성, 도시생활 같은 일상의 자료를 통해 근대를 읽는다. 책의 장 역시 ‘현대를 바라보는 눈’, ‘물질과 과학의 시대’, ‘지식인·룸펜과 데카당’, ‘유행과 대중문화의 형성’, ‘신식 여성의 등장’, ‘도시의 꿈과 도시의 삶’, ‘현대적 인간의 탄생’으로 구성된다.
책에서 ‘현대’는 단순히 역사적 시기가 아니다. 새로운 것을 보고 욕망하고 소비하는 방식이다. 전기, 라디오, 영화, 백화점, 자동차, 네온사인 같은 기술과 상품이 등장하면서 사람들은 이전과 다른 세계를 경험한다. 물리적인 도시뿐 아니라 사람의 감각 자체가 바뀐다.
특히 중요한 것은 대중문화다. 영화와 유행가, 스포츠, 라디오가 등장하면서 수많은 사람이 동시에 같은 이미지와 정보를 소비한다. 이때 대중이라는 새로운 사회적 집단이 만들어진다. 대중은 국가나 계급만으로 정의되는 집단이 아니라 동일한 미디어와 상품, 유행을 공유하는 집단이다.
‘신여성’ 역시 중요한 사례다. 여성의 교육 확대, 새로운 패션, 직업, 연애와 결혼에 대한 인식 변화는 단순한 여성사 문제가 아니다. 근대가 개인에게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하는 과정이다.
하지만 이 근대성에는 결정적인 모순이 있다. 조선에서 현대화가 진행되는 시기가 식민지배와 겹친다는 점이다. 새로운 기술과 문화, 도시생활이 들어오는 동시에 정치적 자유는 제한되어 있었다. 즉 현대성과 식민성은 분리할 수 없다. 한국의 근대는 해방을 향한 저항의 역사인 동시에 식민지 체제 안에서 현대적 생활방식이 형성되는 역사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책은 “근대=서구화=발전”이라는 단순한 도식을 깨뜨린다. 현대적인 생활을 받아들이는 것이 반드시 정치적인 해방을 의미하지 않는다.
한국 근현대 담론 연구에서 이 책이 특히 강력한 이유는 ‘작은 문화현상을 통해 거대한 시대정신을 읽는 방식’ 때문이다. 춤이나 유행, 광고처럼 사소하게 보이는 행동을 추적하면 시대의 욕망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핵심 키워드는 “식민지 근대성, 도시, 대중문화, 미디어, 유행, 신여성, 현대적 인간”이다.
5. 권보드래 — 『연애의 시대』
『연애의 시대』는 1920년대 조선에서 ‘연애’라는 새로운 언어와 감정체계가 어떻게 등장했는지를 연구한다. 책의 출발점은 매우 단순하다. 지금은 너무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연애’라는 개념이 사실 역사적으로 만들어진 개념이라는 것이다.
조선사회에서 남녀관계는 오랫동안 가족과 혼인제도를 중심으로 조직됐다. 결혼은 개인의 감정보다 가문과 사회질서의 문제였다. 그런데 근대에 들어서면서 자유연애, 사랑결혼, 개인적 감정 같은 개념이 확산된다. 권보드래는 이 변화가 단순히 서양의 사랑 개념이 수입된 결과라고 보지 않는다. 교육, 문학, 잡지, 신문, 독서, 편지문화, 신여성 담론 등이 서로 결합하며 새로운 감정의 문법을 만들었다고 본다. 책은 기생과 여학생, 구여성과 신여성, 독서, 연애편지, 육체와 사랑 등을 통해 이를 추적한다.
특히 독서가 중요하다. 소설을 읽은 젊은 세대는 작품 속 연애와 감정을 자신의 삶과 비교하기 시작한다. 문학은 현실을 단순히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매체가 된다.
연애편지도 중요한 기술이다. 편지를 통해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언어화한다. 감정을 글로 표현하고 상대방의 답장을 기다리면서 새로운 형태의 개인적 내면이 만들어진다.
신여성의 등장은 이러한 변화를 더욱 극적으로 보여준다. 교육받은 여성은 기존의 가족질서와 다른 욕망을 말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새로운 자유는 곧바로 해방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신여성을 향한 사회적 비난과 성적 대상화도 동시에 등장했다.
따라서 ‘연애의 시대’는 자유의 시대인 동시에 규율의 시대다. 사람들은 사랑을 자유롭게 선택하기 시작하지만 동시에 어떤 사랑이 정상적인지, 어떤 여성과 남성이 이상적인지를 둘러싼 새로운 규범도 형성된다.
한국 근대성 연구에서 이 책의 의미는 크다. 근대를 철도, 공장, 국가제도 같은 거대한 변화로만 설명하지 않고 ‘감정’이 변하는 과정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근대인은 새로운 도시에서 사는 인간일 뿐 아니라 자신의 사랑, 욕망, 내면을 개인의 것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인간이다.
따라서 핵심 키워드는 “연애, 개인, 감정, 신여성, 독서, 편지, 근대적 주체”다.
6. 천정환 — 『근대의 책 읽기』
이 책은 “근대인은 어떻게 독자가 되었는가”를 묻는다. 1920~30년대를 중심으로 한국에서 대중적 독서문화가 형성되는 과정과 소설 독자의 탄생을 분석한다. 중요한 점은 문학사를 작가와 작품만으로 설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책을 읽은 사람이 누구였는지, 어떤 방식으로 읽었는지, 어떤 책이 유통됐는지를 함께 봐야 문학과 사회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조선 후기까지 독서는 제한된 계층의 행위였다. 문자교육이 확대되고 출판시장과 신문·잡지가 성장하면서 독자가 늘어나기 시작한다. 그러나 식민지 조선의 독서환경은 단순하지 않았다. 한글과 한자, 일본어가 동시에 사용됐고 문맹률 역시 높았다. 어떤 언어를 읽을 수 있는지는 개인의 사회적 위치와 연결됐다.
저자는 특히 음독에서 묵독으로의 변화를 주목한다. 공동체에서 한 사람이 읽고 여러 사람이 듣는 방식에서 개인이 혼자 책을 읽는 방식으로 이동하면서 독서는 개인적인 경험이 된다. 이것은 새로운 내면의 탄생과 연결된다.
혼자 소설을 읽는 사람은 작품의 등장인물과 자신을 비교하고 상상한다. 현실에서 경험하지 못한 사랑, 도시, 직업, 인간관계를 책을 통해 경험한다. 독서는 개인의 욕망과 세계관을 확장한다.
동시에 책은 새로운 대중문화를 형성한다. 사람들이 같은 소설을 읽고 같은 작가를 알고 동일한 사건에 반응하면서 물리적으로 만나지 않아도 문화적 공동체가 만들어진다.
이 연구가 중요한 이유는 근대가 단순히 새로운 사상이 들어오는 과정이 아니라 ‘정보를 소비하는 인간’이 등장하는 과정이라는 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오늘날 SNS나 유튜브가 인간의 세계인식을 구성하는 것처럼 1920~30년대에는 신문, 잡지, 소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따라서 『근대의 책 읽기』는 미디어 연구로 확장해서 읽을 수 있다. 매체가 달라지면 사람의 행동이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지면 새로운 사회적 주체가 형성된다.
한국 근현대 담론 연구에서 특히 유용한 지점은 “콘텐츠의 의미뿐 아니라 콘텐츠가 유통되고 소비되는 방식까지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핵심 키워드는 “독자, 독서, 미디어, 문자, 소설, 대중, 근대적 개인”이다.
7. 임지현 — 『민족주의는 반역이다』
이 책은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강력한 정치적 언어 가운데 하나인 ‘민족’을 비판적으로 재검토한다. 제목만 보면 민족주의 자체를 단순히 폐기하자는 주장처럼 보이지만 실제 문제의식은 더 복잡하다. 저자는 민족주의가 역사적으로 식민지배에 저항하고 독립과 해방을 요구하는 중요한 언어였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민족이 국가권력과 결합할 경우 개인과 소수자를 억압하는 논리로 바뀔 수 있다고 본다. 책이 출간된 1999년 당시 저자는 세계적으로 나타난 극단적 민족주의와 인종갈등까지 문제의식 안에 넣었다.
핵심 질문은 “민족은 누구를 해방시키고 누구를 배제하는가”다.
민족주의는 ‘우리’라는 강력한 공동체 의식을 만든다. 문제는 우리가 만들어지는 순간 ‘우리 아닌 사람’도 함께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민족 내부에서도 계급, 젠더, 지역, 정치적 견해의 차이가 존재하지만 민족주의는 이런 차이를 하나의 공동체라는 이름 아래 압축하기 쉽다.
한국사에서는 민족주의가 식민지배와 분단이라는 역사 때문에 특별히 강력한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의 중요한 이념이었고 해방 이후에도 통일과 국가건설의 언어로 기능했다.
그러나 남한과 북한 모두 민족을 국가권력의 정당성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 같은 민족이라는 말이 민주적인 정치와 자동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민족’이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고정된 실체라기보다 역사적으로 구성되고 반복적으로 재생산되는 정치적 개념이라는 관점이다. 역사교육, 국가기념일, 기념비, 스포츠, 언론과 문화가 민족적 정체성을 지속적으로 만든다.
한국 근현대 담론 연구에서 이 책은 매우 중요하다. 한국미술에서도 ‘민족미술’, ‘한국성’, ‘전통’, ‘한국적 미감’ 같은 언어가 반복적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개념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누가, 언제, 왜 한국적인 것을 정의했는가”라고 질문하게 만든다.
즉 한국적이라는 표현은 중립적인 미학적 개념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 국가정책, 문화민족주의, 국제전시 전략, 시장과 연결된 담론일 수 있다.
핵심 키워드는 “민족, 국가, 정체성, 배제, 권력, 역사서술”이다.
8. 김동춘 — 『근대의 그늘』
김동춘은 한국 근대를 ‘성공적인 산업화와 민주화의 역사’로만 바라보는 관점을 비판한다. 책은 한국의 근대성과 국가폭력, 계급, 국민, 교육, 사회운동, 민족주의를 연결해 분석한다. 저자의 관심은 특히 1990년대 한국 시민사회의 성격이 어디에서 형성되었는가에 있다.
한국은 매우 짧은 기간에 식민지배, 해방, 분단, 전쟁, 군사독재, 산업화, 도시화, 민주화를 경험했다. 이런 압축적인 변화는 경제적 성장을 만들어냈지만 동시에 강력한 국가주의와 경쟁사회, 계급격차를 남겼다.
‘국가폭력’은 중요한 개념이다. 한국 근대국가는 시민과 계약을 맺고 권리를 보장하는 자유주의적 국가로만 발전한 것이 아니다. 식민지 국가, 전쟁, 반공체제, 군사정권을 거치면서 국가가 개인의 삶에 강하게 개입하는 경험을 반복했다.
이러한 경험은 한국인의 국가관에도 흔적을 남긴다. 국가는 두려움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경제성장과 교육, 주거, 안보를 제공하는 존재였다.
교육 문제도 중요하다. 한국의 강한 교육열을 단순히 유교문화로 설명하기보다 급격한 계층이동과 사회적 경쟁이라는 근대적 조건과 연결한다. 학력은 개인과 가족이 계층을 상승시키기 위한 가장 중요한 자원이 됐다.
가족 역시 한국 근대성의 핵심이다. 복지제도가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상황에서 가족은 교육, 노후, 주거, 취업 등 사회적 위험을 책임지는 단위가 된다. 개인의 성공은 가족 전체의 프로젝트가 되기 쉽다.
민족주의 역시 이러한 구조와 결합한다. 식민지 경험과 분단은 강력한 민족의식을 만들었지만 국가주의, 반공주의와 결합하면서 개인의 자유와 다양한 정체성을 억압할 가능성도 만들어냈다.
따라서 이 책에서 ‘근대의 그늘’은 근대화의 실패를 뜻하지 않는다. 성공적인 근대화 자체가 만들어낸 비용과 모순을 뜻한다.
한국 근현대를 연구할 때 특히 유용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산업화·민주화·도시화를 각각 따로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족·교육·계급·민족이라는 구조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핵심 키워드는 “압축근대, 국가폭력, 국민, 계급, 교육, 가족, 민족주의”다.
9. 김영나 — 『1945년 이후 한국 현대미술』
이 책은 1945년 해방 이후부터 2010년대까지 한국 현대미술을 정치·사회 변화와 연결해 정리한 개설서다. 특히 한국 현대미술이 순수하게 미술 내부의 형식 변화만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 전쟁, 분단, 산업화, 군사독재, 민주화, 도시화, 세계화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관점을 취한다. 회화뿐 아니라 조각, 사진, 공예, 건축, 퍼포먼스, 설치 등을 폭넓게 다루며 북한미술도 별도 장으로 포함한다.
첫 단계는 1945~1957년이다. 해방 이후 미술계는 식민지시기의 제도와 인맥을 어떻게 정리할지 고민한다. 곧 한국전쟁이 발생하면서 많은 예술가의 삶과 작업환경이 파괴된다. 분단은 이후 한국미술의 중요한 역사적 조건이 된다.
1957~1975년에는 모더니즘과 국가주도 미술이 동시에 성장한다. 젊은 작가들은 앵포르멜 등 새로운 추상미술을 통해 기존 화단에 도전한다. 동시에 정부는 국전, 공공조각, 민족기록화 등을 통해 국가가 원하는 미술을 생산하고 지원한다.
1975~1990년은 한국미술의 정체성을 둘러싼 논쟁이 강해진다. 한쪽에서는 단색화가 등장한다. 반복적인 행위, 물질, 평면성과 절제된 색채를 통해 독자적인 추상미술을 구축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민중미술이 등장해 노동, 농민, 도시빈민, 군사독재와 사회갈등을 직접 다룬다.
두 흐름의 차이는 단순한 스타일 차이가 아니다. “예술은 정치·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의 차이다.
1990년대 이후에는 상황이 크게 바뀐다. 광주비엔날레를 비롯한 국제전시가 확대되고 한국 작가들의 해외 활동도 증가한다. 설치, 영상, 뉴미디어, 개념미술이 확산되면서 장르의 경계가 약해진다. 정체성, 기억, 이동, 도시, 글로벌리즘이 중요한 주제가 된다.
이 책의 강점은 한국 현대미술을 ‘작가들의 계보’로만 설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술제도와 정치, 국가, 국제교류가 함께 움직인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 근현대 담론을 미술에 적용하려면 가장 기본적인 지도 역할을 하는 책이다.
핵심 키워드는 “분단, 모더니즘, 국가주도미술, 단색화, 민중미술, 세계화, 비엔날레”다.
10. 박해천 — 『아파트 게임』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한국 아파트의 문화사와 디자인사를 폭넓게 다룬다면 『아파트 게임』은 한 단계 더 나아가 아파트를 둘러싼 세대와 자산의 문제를 분석한다. 책은 4·19세대, 유신세대, 386세대, 베이비부머, 신세대, 청년세대가 각각 아파트와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를 보여준다. 목차 역시 ‘중산층 가족 로망스’, 베이비부머의 투자와 버블 경험, 신세대 문화, 하숙방·고시원·원룸 등 ‘지상의 방 한 칸’으로 이어진다.
초기 산업화 세대에게 아파트는 성공의 결과였다. 국가가 경제개발을 추진하고 서울이 급격히 확장되면서 주택은 삶의 기반이자 중산층 진입의 상징이 됐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아파트는 단순한 주거공간이 아니라 자산증식의 핵심 수단이 된다. 분양권, 재건축, 부동산 가격 상승을 통해 집을 가진 사람과 가지지 못한 사람 사이에 자산격차가 발생한다.
여기서 ‘게임’이라는 표현이 중요하다. 한국사회에서 주거가 하나의 게임처럼 작동하기 때문이다. 어느 지역에 언제 집을 샀는지, 어떤 아파트를 분양받았는지가 개인의 노동소득보다 더 큰 경제적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게임의 규칙은 세대마다 다르다. 앞선 세대는 비교적 낮은 가격에 집을 구입해 도시성장과 함께 자산을 축적할 수 있었다. 이후 세대는 이미 상승한 가격에서 게임을 시작한다.
그래서 청년세대의 주거는 아파트가 아니라 원룸, 하숙방, 고시원 같은 작은 공간으로 이동한다. 저자는 이를 ‘큐브’라는 공간적 이미지로 설명한다. 중산층 가족이 넓은 아파트에서 미래를 설계하던 시대와 달리 개인화된 청년은 최소한의 사적 공간에서 살아간다.
이 변화는 가족구조와도 연결된다. 과거의 아파트는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중산층 핵가족의 공간이었다. 그러나 결혼과 출산이 늦어지고 1인가구가 늘면서 아파트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가족 모델 자체가 흔들린다.
따라서 이 책은 사실상 한국사회의 세대론이다.
1960~80년대의 산업화 → 강남 개발 → 아파트 소유 → 중산층 형성 → 부동산 자산화 → 외환위기 → 청년세대의 주거불안이라는 흐름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한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같이 읽으면 특히 좋다. 전자가 “한국인은 어떻게 아파트 인간이 되었는가”를 보여준다면, 후자는 “아파트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한국적 성공모델이 어떻게 세대불평등으로 전환됐는가”를 보여준다고 정리할 수 있다.
핵심 키워드는 “아파트, 부동산, 세대, 중산층, 자산, 가족, 청년, 불평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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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명관 — 『조선의 뒷골목 풍경』
이 책은 엄밀히 말하면 근현대사가 아니라 조선 후기 사회문화사에 가깝다. 그런데 한국 근대를 이해하려면 “근대 이전의 일상과 사회가 어떤 모습이었는가”를 알아야 하기 때문에 중요한 책이다. 강명관은 왕, 양반, 정치제도와 같은 거대 역사에서 벗어나 이름 없는 평민, 여성, 도박꾼, 술꾼, 무뢰배, 중인, 천민 등 공식 역사에서 주변화된 사람들을 역사의 중심으로 불러낸다. 책이 다루는 대상도 민간 의료, 도적, 승려, 도박, 술집, 과거시험, 성문화, 반촌, 검계, 별감 등 기존의 정통 역사서가 잘 다루지 않았던 영역이다.
핵심은 “역사는 국가와 지배층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법과 제도가 규정한 공식적인 조선사회와 사람들이 실제로 살아간 조선사회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예를 들어 국가가 도박이나 술, 범죄를 금지한다고 해서 그런 행위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금지와 통제의 주변에서 새로운 문화, 네트워크, 시장이 만들어진다. 따라서 사회를 이해하려면 법전이나 왕조실록뿐 아니라 금지된 행동, 비공식적 경제, 유행, 소문, 소비와 욕망을 보아야 한다.
이 관점은 한국 근현대 담론 연구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한국 근대가 단순히 서구 문물이 도입되면서 어느 날 시작된 것이 아니라 기존 조선사회의 생활세계 위에 겹쳐졌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근대적 도시문화가 등장했다고 해서 전근대의 습속이나 관계망이 곧바로 사라진 것은 아니다. 도시의 뒷골목, 비공식 시장, 유흥문화, 사회적 주변인은 근대 이후에도 계속 존재하면서 형태만 바꾼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강명관의 연구방법이다. 거대한 개념을 먼저 제시한 뒤 사례를 끼워 맞추기보다, 작은 사건과 기록을 모아 사회 전체의 모습을 재구성한다. 이런 방식은 미술이나 문화 담론 연구에도 적용할 수 있다. 정전이나 대표작만 연구하지 않고 전시장의 주변부, 관객의 행동, 유행하는 이미지, 판매방식, 대중적 취향 같은 작은 현상을 모으면 당시 문화의 구조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핵심 키워드는 “주변부, 일상, 욕망, 통제, 비공식성”이다. 한국 근대성을 연구하기 위한 일종의 전사前史라고 볼 수 있다. 근대가 무엇을 파괴했고 무엇을 계승했는지 판단하기 위한 기준점을 제공한다.
2. 전우용 — 『서울은 깊다』
『서울은 깊다』는 서울이라는 도시를 하나의 거대한 역사적 텍스트로 읽는다. 전우용은 도시의 역사를 건축물이나 정치사건의 연대기로 설명하지 않는다. ‘서울’이라는 말에서 시작해 똥개, 땅거지, 무뢰배, 촌뜨기 같은 언어, 종로의 전차, 물장수, 복덕방, 덕수궁 돌담길, 시계탑, 제중원, 도깨비시장, 분수대 등 도시 곳곳에 남아 있는 작은 흔적을 통해 서울의 사회구조를 복원한다.
이 책에서 중요한 것은 공간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는 점이다. 공간은 권력과 계급, 경제, 욕망을 조직한다. 조선의 수도 한양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보면 정도전과 이방원의 정치적 구상이 도시의 구조에 반영되어 있다. 이후 시장이 발달하고 인구가 증가하면서 공식적으로 설계된 도시와 실제 사람들이 사용하는 도시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변화한다.
근대로 넘어오면 도시공간의 의미는 더욱 급격하게 변한다. 전차, 병원, 사진, 시계, 공원 같은 새로운 장치들은 단순한 편의시설이 아니다.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간감각과 공간감각을 가르친다. 시계가 확산되면 사람은 자연의 시간보다 표준화된 시간에 맞춰 움직이고, 전차가 등장하면 도시의 거리감각이 달라진다. 사진은 사람과 공간을 재현하는 방식을 바꾸며, 병원은 신체를 바라보는 새로운 제도를 만든다.
따라서 서울의 근대화는 건물이 서양식으로 바뀌는 과정만을 뜻하지 않는다. 인간의 감각, 행동, 이동, 소비, 언어가 바뀌는 과정이다. 이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또 전우용은 서울이 중심이 되는 과정에서 ‘지방’이라는 개념 역시 만들어졌음을 보여준다. 서울은 한국의 정치·행정·문화·경제 자원이 집중되면서 단순한 도시를 넘어 중심성을 획득한다. 서울과 지방이라는 위계 역시 역사적으로 생산된 것이다.
한국 근현대 담론 연구에서 이 책이 중요한 이유는 “도시를 통해 근대성을 읽는 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재개발, 아파트, 백화점, 전시장, 미술관 같은 공간도 마찬가지다. 공간의 형태를 연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공간이 어떤 인간을 만들고 어떤 행동을 요구하며 어떤 계층을 배제하는지까지 보아야 한다.
결국 『서울은 깊다』는 서울에 대한 책이면서 한국 근대의 공간정치에 대한 책이다. 핵심 키워드는 “도시, 공간, 중심과 주변, 일상, 기술, 기억”이다.
3. 박해천 — 『콘크리트 유토피아』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한국의 아파트를 단순한 주거건축이 아니라 한국 현대사 전체를 압축하는 문화적 장치로 분석한다. 책은 픽션과 팩트를 오가면서 마포아파트, 한강맨션, 강남 아파트, 분당과 용인 등의 신도시를 통해 1960년대 이후 한국인이 어떻게 새로운 생활양식과 중산층 정체성을 획득했는지를 보여준다. 2026년 개정판 역시 ‘시선의 모험’, ‘아파트의 자서전’, 강남 1세대, 꽃무늬 인테리어 등을 픽션으로 다룬 뒤 마포아파트, 한강맨션, 강남, 분당·용인을 역사적으로 분석하는 구성을 취한다.
아파트는 처음부터 한국인이 원하는 주거형태가 아니었다. 좌식생활이 익숙했던 사회에 입식 부엌, 식탁, 소파, 거실, 베란다, 욕실 같은 새로운 공간구조가 도입됐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낯선 생활방식에 적응해야 했다. 그러나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아파트는 빠르게 “현대적인 삶”의 상징이 된다.
특히 강남 개발 이후 아파트의 의미가 바뀐다. 집은 더 이상 거주공간만이 아니라 자산이다. 좋은 아파트를 소유한다는 것은 경제적 성공뿐 아니라 교육, 소비, 문화적 지위와 연결된다. 아파트 가격과 학군, 쇼핑, 자동차, 인테리어가 결합하면서 한국의 중산층 라이프스타일이 만들어진다.
저자는 거실에도 주목한다. 텔레비전과 소파가 놓인 거실은 가족이 현대적 생활을 연출하는 무대다. 아파트 내부의 디자인은 단순한 미적 취향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계층에 속하는지를 보여주는 기호가 된다. 꽃무늬 벽지, 시스템키친, 침실, 가구와 가전제품의 변화가 한국인의 욕망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아파트는 국가의 개발정책, 건설자본, 금융, 중산층의 욕망이 교차하는 장소가 된다. 국가가 주택을 공급하고 도시를 확장하며, 개인은 분양과 재산증식을 통해 개발체제에 참여한다.
한국 근현대 담론에서 이 책이 중요한 이유는 “압축성장”이라는 거대한 개념을 구체적인 사물과 공간으로 설명하기 때문이다. 산업화가 무엇인가를 GDP로 설명하지 않고 부엌, 거실, 텔레비전, 모델하우스, 아파트 평면으로 보여준다.
핵심 키워드는 “아파트, 중산층, 강남, 압축성장, 디자인, 소비, 자산”이다. 한국 현대성을 시각문화와 공간문화 차원에서 연구하려면 특히 중요한 책이다.
4. 김진송 — 『서울에 딴스홀을 許하라』
이 책은 1930년대 식민지 조선에서 ‘현대적인 인간’이 어떻게 등장했는지를 추적한다. 기존 역사학이 독립운동·식민정책·정치사를 중심으로 일제강점기를 설명했다면 김진송은 광고, 잡지, 신문, 춤, 라디오, 영화, 유행가, 네온사인, 과학, 여성, 도시생활 같은 일상의 자료를 통해 근대를 읽는다. 책의 장 역시 ‘현대를 바라보는 눈’, ‘물질과 과학의 시대’, ‘지식인·룸펜과 데카당’, ‘유행과 대중문화의 형성’, ‘신식 여성의 등장’, ‘도시의 꿈과 도시의 삶’, ‘현대적 인간의 탄생’으로 구성된다.
책에서 ‘현대’는 단순히 역사적 시기가 아니다. 새로운 것을 보고 욕망하고 소비하는 방식이다. 전기, 라디오, 영화, 백화점, 자동차, 네온사인 같은 기술과 상품이 등장하면서 사람들은 이전과 다른 세계를 경험한다. 물리적인 도시뿐 아니라 사람의 감각 자체가 바뀐다.
특히 중요한 것은 대중문화다. 영화와 유행가, 스포츠, 라디오가 등장하면서 수많은 사람이 동시에 같은 이미지와 정보를 소비한다. 이때 대중이라는 새로운 사회적 집단이 만들어진다. 대중은 국가나 계급만으로 정의되는 집단이 아니라 동일한 미디어와 상품, 유행을 공유하는 집단이다.
‘신여성’ 역시 중요한 사례다. 여성의 교육 확대, 새로운 패션, 직업, 연애와 결혼에 대한 인식 변화는 단순한 여성사 문제가 아니다. 근대가 개인에게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하는 과정이다.
하지만 이 근대성에는 결정적인 모순이 있다. 조선에서 현대화가 진행되는 시기가 식민지배와 겹친다는 점이다. 새로운 기술과 문화, 도시생활이 들어오는 동시에 정치적 자유는 제한되어 있었다. 즉 현대성과 식민성은 분리할 수 없다. 한국의 근대는 해방을 향한 저항의 역사인 동시에 식민지 체제 안에서 현대적 생활방식이 형성되는 역사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책은 “근대=서구화=발전”이라는 단순한 도식을 깨뜨린다. 현대적인 생활을 받아들이는 것이 반드시 정치적인 해방을 의미하지 않는다.
한국 근현대 담론 연구에서 이 책이 특히 강력한 이유는 ‘작은 문화현상을 통해 거대한 시대정신을 읽는 방식’ 때문이다. 춤이나 유행, 광고처럼 사소하게 보이는 행동을 추적하면 시대의 욕망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핵심 키워드는 “식민지 근대성, 도시, 대중문화, 미디어, 유행, 신여성, 현대적 인간”이다.
5. 권보드래 — 『연애의 시대』
『연애의 시대』는 1920년대 조선에서 ‘연애’라는 새로운 언어와 감정체계가 어떻게 등장했는지를 연구한다. 책의 출발점은 매우 단순하다. 지금은 너무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연애’라는 개념이 사실 역사적으로 만들어진 개념이라는 것이다.
조선사회에서 남녀관계는 오랫동안 가족과 혼인제도를 중심으로 조직됐다. 결혼은 개인의 감정보다 가문과 사회질서의 문제였다. 그런데 근대에 들어서면서 자유연애, 사랑결혼, 개인적 감정 같은 개념이 확산된다. 권보드래는 이 변화가 단순히 서양의 사랑 개념이 수입된 결과라고 보지 않는다. 교육, 문학, 잡지, 신문, 독서, 편지문화, 신여성 담론 등이 서로 결합하며 새로운 감정의 문법을 만들었다고 본다. 책은 기생과 여학생, 구여성과 신여성, 독서, 연애편지, 육체와 사랑 등을 통해 이를 추적한다.
특히 독서가 중요하다. 소설을 읽은 젊은 세대는 작품 속 연애와 감정을 자신의 삶과 비교하기 시작한다. 문학은 현실을 단순히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매체가 된다.
연애편지도 중요한 기술이다. 편지를 통해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언어화한다. 감정을 글로 표현하고 상대방의 답장을 기다리면서 새로운 형태의 개인적 내면이 만들어진다.
신여성의 등장은 이러한 변화를 더욱 극적으로 보여준다. 교육받은 여성은 기존의 가족질서와 다른 욕망을 말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새로운 자유는 곧바로 해방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신여성을 향한 사회적 비난과 성적 대상화도 동시에 등장했다.
따라서 ‘연애의 시대’는 자유의 시대인 동시에 규율의 시대다. 사람들은 사랑을 자유롭게 선택하기 시작하지만 동시에 어떤 사랑이 정상적인지, 어떤 여성과 남성이 이상적인지를 둘러싼 새로운 규범도 형성된다.
한국 근대성 연구에서 이 책의 의미는 크다. 근대를 철도, 공장, 국가제도 같은 거대한 변화로만 설명하지 않고 ‘감정’이 변하는 과정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근대인은 새로운 도시에서 사는 인간일 뿐 아니라 자신의 사랑, 욕망, 내면을 개인의 것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인간이다.
따라서 핵심 키워드는 “연애, 개인, 감정, 신여성, 독서, 편지, 근대적 주체”다.
6. 천정환 — 『근대의 책 읽기』
이 책은 “근대인은 어떻게 독자가 되었는가”를 묻는다. 1920~30년대를 중심으로 한국에서 대중적 독서문화가 형성되는 과정과 소설 독자의 탄생을 분석한다. 중요한 점은 문학사를 작가와 작품만으로 설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책을 읽은 사람이 누구였는지, 어떤 방식으로 읽었는지, 어떤 책이 유통됐는지를 함께 봐야 문학과 사회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조선 후기까지 독서는 제한된 계층의 행위였다. 문자교육이 확대되고 출판시장과 신문·잡지가 성장하면서 독자가 늘어나기 시작한다. 그러나 식민지 조선의 독서환경은 단순하지 않았다. 한글과 한자, 일본어가 동시에 사용됐고 문맹률 역시 높았다. 어떤 언어를 읽을 수 있는지는 개인의 사회적 위치와 연결됐다.
저자는 특히 음독에서 묵독으로의 변화를 주목한다. 공동체에서 한 사람이 읽고 여러 사람이 듣는 방식에서 개인이 혼자 책을 읽는 방식으로 이동하면서 독서는 개인적인 경험이 된다. 이것은 새로운 내면의 탄생과 연결된다.
혼자 소설을 읽는 사람은 작품의 등장인물과 자신을 비교하고 상상한다. 현실에서 경험하지 못한 사랑, 도시, 직업, 인간관계를 책을 통해 경험한다. 독서는 개인의 욕망과 세계관을 확장한다.
동시에 책은 새로운 대중문화를 형성한다. 사람들이 같은 소설을 읽고 같은 작가를 알고 동일한 사건에 반응하면서 물리적으로 만나지 않아도 문화적 공동체가 만들어진다.
이 연구가 중요한 이유는 근대가 단순히 새로운 사상이 들어오는 과정이 아니라 ‘정보를 소비하는 인간’이 등장하는 과정이라는 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오늘날 SNS나 유튜브가 인간의 세계인식을 구성하는 것처럼 1920~30년대에는 신문, 잡지, 소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따라서 『근대의 책 읽기』는 미디어 연구로 확장해서 읽을 수 있다. 매체가 달라지면 사람의 행동이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지면 새로운 사회적 주체가 형성된다.
한국 근현대 담론 연구에서 특히 유용한 지점은 “콘텐츠의 의미뿐 아니라 콘텐츠가 유통되고 소비되는 방식까지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핵심 키워드는 “독자, 독서, 미디어, 문자, 소설, 대중, 근대적 개인”이다.
7. 임지현 — 『민족주의는 반역이다』
이 책은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강력한 정치적 언어 가운데 하나인 ‘민족’을 비판적으로 재검토한다. 제목만 보면 민족주의 자체를 단순히 폐기하자는 주장처럼 보이지만 실제 문제의식은 더 복잡하다. 저자는 민족주의가 역사적으로 식민지배에 저항하고 독립과 해방을 요구하는 중요한 언어였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민족이 국가권력과 결합할 경우 개인과 소수자를 억압하는 논리로 바뀔 수 있다고 본다. 책이 출간된 1999년 당시 저자는 세계적으로 나타난 극단적 민족주의와 인종갈등까지 문제의식 안에 넣었다.
핵심 질문은 “민족은 누구를 해방시키고 누구를 배제하는가”다.
민족주의는 ‘우리’라는 강력한 공동체 의식을 만든다. 문제는 우리가 만들어지는 순간 ‘우리 아닌 사람’도 함께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민족 내부에서도 계급, 젠더, 지역, 정치적 견해의 차이가 존재하지만 민족주의는 이런 차이를 하나의 공동체라는 이름 아래 압축하기 쉽다.
한국사에서는 민족주의가 식민지배와 분단이라는 역사 때문에 특별히 강력한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의 중요한 이념이었고 해방 이후에도 통일과 국가건설의 언어로 기능했다.
그러나 남한과 북한 모두 민족을 국가권력의 정당성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 같은 민족이라는 말이 민주적인 정치와 자동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민족’이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고정된 실체라기보다 역사적으로 구성되고 반복적으로 재생산되는 정치적 개념이라는 관점이다. 역사교육, 국가기념일, 기념비, 스포츠, 언론과 문화가 민족적 정체성을 지속적으로 만든다.
한국 근현대 담론 연구에서 이 책은 매우 중요하다. 한국미술에서도 ‘민족미술’, ‘한국성’, ‘전통’, ‘한국적 미감’ 같은 언어가 반복적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개념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누가, 언제, 왜 한국적인 것을 정의했는가”라고 질문하게 만든다.
즉 한국적이라는 표현은 중립적인 미학적 개념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 국가정책, 문화민족주의, 국제전시 전략, 시장과 연결된 담론일 수 있다.
핵심 키워드는 “민족, 국가, 정체성, 배제, 권력, 역사서술”이다.
8. 김동춘 — 『근대의 그늘』
김동춘은 한국 근대를 ‘성공적인 산업화와 민주화의 역사’로만 바라보는 관점을 비판한다. 책은 한국의 근대성과 국가폭력, 계급, 국민, 교육, 사회운동, 민족주의를 연결해 분석한다. 저자의 관심은 특히 1990년대 한국 시민사회의 성격이 어디에서 형성되었는가에 있다.
한국은 매우 짧은 기간에 식민지배, 해방, 분단, 전쟁, 군사독재, 산업화, 도시화, 민주화를 경험했다. 이런 압축적인 변화는 경제적 성장을 만들어냈지만 동시에 강력한 국가주의와 경쟁사회, 계급격차를 남겼다.
‘국가폭력’은 중요한 개념이다. 한국 근대국가는 시민과 계약을 맺고 권리를 보장하는 자유주의적 국가로만 발전한 것이 아니다. 식민지 국가, 전쟁, 반공체제, 군사정권을 거치면서 국가가 개인의 삶에 강하게 개입하는 경험을 반복했다.
이러한 경험은 한국인의 국가관에도 흔적을 남긴다. 국가는 두려움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경제성장과 교육, 주거, 안보를 제공하는 존재였다.
교육 문제도 중요하다. 한국의 강한 교육열을 단순히 유교문화로 설명하기보다 급격한 계층이동과 사회적 경쟁이라는 근대적 조건과 연결한다. 학력은 개인과 가족이 계층을 상승시키기 위한 가장 중요한 자원이 됐다.
가족 역시 한국 근대성의 핵심이다. 복지제도가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상황에서 가족은 교육, 노후, 주거, 취업 등 사회적 위험을 책임지는 단위가 된다. 개인의 성공은 가족 전체의 프로젝트가 되기 쉽다.
민족주의 역시 이러한 구조와 결합한다. 식민지 경험과 분단은 강력한 민족의식을 만들었지만 국가주의, 반공주의와 결합하면서 개인의 자유와 다양한 정체성을 억압할 가능성도 만들어냈다.
따라서 이 책에서 ‘근대의 그늘’은 근대화의 실패를 뜻하지 않는다. 성공적인 근대화 자체가 만들어낸 비용과 모순을 뜻한다.
한국 근현대를 연구할 때 특히 유용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산업화·민주화·도시화를 각각 따로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족·교육·계급·민족이라는 구조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핵심 키워드는 “압축근대, 국가폭력, 국민, 계급, 교육, 가족, 민족주의”다.
9. 김영나 — 『1945년 이후 한국 현대미술』
이 책은 1945년 해방 이후부터 2010년대까지 한국 현대미술을 정치·사회 변화와 연결해 정리한 개설서다. 특히 한국 현대미술이 순수하게 미술 내부의 형식 변화만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 전쟁, 분단, 산업화, 군사독재, 민주화, 도시화, 세계화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관점을 취한다. 회화뿐 아니라 조각, 사진, 공예, 건축, 퍼포먼스, 설치 등을 폭넓게 다루며 북한미술도 별도 장으로 포함한다.
첫 단계는 1945~1957년이다. 해방 이후 미술계는 식민지시기의 제도와 인맥을 어떻게 정리할지 고민한다. 곧 한국전쟁이 발생하면서 많은 예술가의 삶과 작업환경이 파괴된다. 분단은 이후 한국미술의 중요한 역사적 조건이 된다.
1957~1975년에는 모더니즘과 국가주도 미술이 동시에 성장한다. 젊은 작가들은 앵포르멜 등 새로운 추상미술을 통해 기존 화단에 도전한다. 동시에 정부는 국전, 공공조각, 민족기록화 등을 통해 국가가 원하는 미술을 생산하고 지원한다.
1975~1990년은 한국미술의 정체성을 둘러싼 논쟁이 강해진다. 한쪽에서는 단색화가 등장한다. 반복적인 행위, 물질, 평면성과 절제된 색채를 통해 독자적인 추상미술을 구축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민중미술이 등장해 노동, 농민, 도시빈민, 군사독재와 사회갈등을 직접 다룬다.
두 흐름의 차이는 단순한 스타일 차이가 아니다. “예술은 정치·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의 차이다.
1990년대 이후에는 상황이 크게 바뀐다. 광주비엔날레를 비롯한 국제전시가 확대되고 한국 작가들의 해외 활동도 증가한다. 설치, 영상, 뉴미디어, 개념미술이 확산되면서 장르의 경계가 약해진다. 정체성, 기억, 이동, 도시, 글로벌리즘이 중요한 주제가 된다.
이 책의 강점은 한국 현대미술을 ‘작가들의 계보’로만 설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술제도와 정치, 국가, 국제교류가 함께 움직인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 근현대 담론을 미술에 적용하려면 가장 기본적인 지도 역할을 하는 책이다.
핵심 키워드는 “분단, 모더니즘, 국가주도미술, 단색화, 민중미술, 세계화, 비엔날레”다.
10. 박해천 — 『아파트 게임』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한국 아파트의 문화사와 디자인사를 폭넓게 다룬다면 『아파트 게임』은 한 단계 더 나아가 아파트를 둘러싼 세대와 자산의 문제를 분석한다. 책은 4·19세대, 유신세대, 386세대, 베이비부머, 신세대, 청년세대가 각각 아파트와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를 보여준다. 목차 역시 ‘중산층 가족 로망스’, 베이비부머의 투자와 버블 경험, 신세대 문화, 하숙방·고시원·원룸 등 ‘지상의 방 한 칸’으로 이어진다.
초기 산업화 세대에게 아파트는 성공의 결과였다. 국가가 경제개발을 추진하고 서울이 급격히 확장되면서 주택은 삶의 기반이자 중산층 진입의 상징이 됐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아파트는 단순한 주거공간이 아니라 자산증식의 핵심 수단이 된다. 분양권, 재건축, 부동산 가격 상승을 통해 집을 가진 사람과 가지지 못한 사람 사이에 자산격차가 발생한다.
여기서 ‘게임’이라는 표현이 중요하다. 한국사회에서 주거가 하나의 게임처럼 작동하기 때문이다. 어느 지역에 언제 집을 샀는지, 어떤 아파트를 분양받았는지가 개인의 노동소득보다 더 큰 경제적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게임의 규칙은 세대마다 다르다. 앞선 세대는 비교적 낮은 가격에 집을 구입해 도시성장과 함께 자산을 축적할 수 있었다. 이후 세대는 이미 상승한 가격에서 게임을 시작한다.
그래서 청년세대의 주거는 아파트가 아니라 원룸, 하숙방, 고시원 같은 작은 공간으로 이동한다. 저자는 이를 ‘큐브’라는 공간적 이미지로 설명한다. 중산층 가족이 넓은 아파트에서 미래를 설계하던 시대와 달리 개인화된 청년은 최소한의 사적 공간에서 살아간다.
이 변화는 가족구조와도 연결된다. 과거의 아파트는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중산층 핵가족의 공간이었다. 그러나 결혼과 출산이 늦어지고 1인가구가 늘면서 아파트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가족 모델 자체가 흔들린다.
따라서 이 책은 사실상 한국사회의 세대론이다.
1960~80년대의 산업화 → 강남 개발 → 아파트 소유 → 중산층 형성 → 부동산 자산화 → 외환위기 → 청년세대의 주거불안이라는 흐름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한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같이 읽으면 특히 좋다. 전자가 “한국인은 어떻게 아파트 인간이 되었는가”를 보여준다면, 후자는 “아파트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한국적 성공모델이 어떻게 세대불평등으로 전환됐는가”를 보여준다고 정리할 수 있다.
핵심 키워드는 “아파트, 부동산, 세대, 중산층, 자산, 가족, 청년, 불평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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