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색즉시공≫
조성두 기획전
26.4.28.~ 26.5.7. 10:00 ~18:00(KST)
아이테르 범일가옥, 부산 동구 범일로 65번길 21
AITHER (Beomil House, 凡一家屋)
먹은 깊다.
작가에게 먹은 존재의 상태를 드러내는 매질에 가깝다. 그의 삶을 따라가면 하나의 구절에 자연스럽게 도달한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형상이 공으로, 공이 다시 형상으로 이어지며 흐른다.
그는 글을 쓰던 사람에서 글씨를 쓰는 사람으로 이동했고, 다시 이미지를 그리는 사람으로 나아간다. 그어낸 선과 다시 번지는 그의 궤적을 잠시 이 공간에 잡아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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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과 생애 사이에서
― 조성두의 예술 세계와 ≪색즉시공≫
글 : 공명성 예술감독
1. 서언(序言) ― 먹먹함이라는 언어
'먹먹하다'는 말이 있다.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하고, 말문이 닫히고, 그럼에도 무언가가 안에서 울렁이는 상태. 한국어에서 이 형용사는 묘하게도 먹(墨)이라는 글자를 두 번 품고 있다. 먹먹함. 먹이 먹을 포개는 말. 조성두의 작업 앞에 서면 그 말이 절로 떠오른다. 그의 붓질은 설명하지 않는다. 해명하지도 않는다. 그저 먹먹하게 남는다. 그리고 그 먹먹함이 우리를 건드린다.
≪색즉시공(色卽是空)≫. 2026년 4월 28일부터 5월 7일까지, 부산 동구 범일로의 아이테르 범일가옥(凡一家屋)에서 열리는 조성두의 기획전 이름이다. 제목은 『반야심경(般若心經)』의 핵심 구절에서 가져왔다.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형상은 공이요 공은 형상이다. 불교 철학의 정수를 압축한 이 여덟 글자는 단순한 개념이 아니라 하나의 운동이다. 형상이 생겨나고 사라지고, 사라짐이 다시 형상을 품는 순환. 조성두의 삶과 예술은 그 순환의 살아있는 예증이다.
이 글은 그의 작업을 단순히 감상하는 비평이 아니다. 한 인간이 어떻게 삶의 파탄 속에서 예술을 건져 올렸는지, 어떻게 먹이라는 매질(媒質)을 통해 자신의 실존을 드러내는지, 그리고 그 드러냄이 어떻게 타자의 치유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따라가려는 시도다. 조성두라는 사람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한 편의 비경(悲境)과 갱생(更生)의 서사이며, 그 서사가 화폭 위에서 선과 번짐으로 다시 태어난다.
2. 부서진 형상들 ― 공(空)의 시간
조성두는 1976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별나고 짓궂은 아이였다고 스스로 회고한다. 고교 시절에는 만화책에 빠졌고, 고3 때부터는 노트에 펜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돌려 보며 재미있다고 하면 쾌감을 느꼈다는 그 장면은, 이미 이 사람이 어려서부터 무언가를 타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충동을 가지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표현하고, 공유하고, 반향을 확인하려는 욕구. 예술가의 근원적 동력이 이미 소년의 공책 속에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원고들은 군 입대 직전 모두 불태워졌다. 창작의 첫 싹이 스스로의 손에 의해 소각된 것이다. 이 장면은 이후 그의 삶에서 반복될 하나의 패턴, 즉 형성과 해체의 반복을 예고하는 듯하다.
1995년 해병대 입대, 1997년 제대. 그리고 두 달 뒤 외환위기(IMF)가 터졌다. 나라 전체의 형상이 무너지던 그 시절, 조성두도 제대로 된 직장 없이 막일을 전전했다. 경제적 불안정, 사회적 소외, 미래의 불투명함. 이 시기를 전시 기획문은 "공의 상태에 가깝다"고 표현한다. 의미가 비워지고 방향이 사라진 자리. 하지만 바로 이 자리에서 그는 시립도서관을 드나들며 인문학의 세계에 스스로를 내던졌다. 특히 동양 사상과 불교에 대한 흥미가 증폭되었다는 사실은, 삶의 외부적 질서가 무너질 때 인간이 내면의 질서를 찾아 나서는 본능적 몸부림처럼 읽힌다.
2001년의 부친상은 또 다른 형상의 붕괴였다. 불효했던 지난 세월에 대한 자괴감과 죄책감. 이미 죽은 자에게 사과할 수 없다는 것, 그 상실이 죄의식과 뒤섞이는 것은 유난히 잔인한 슬픔이다. 조성두는 이 시기 "심적 변화"를 겪었다고 기록하지만, 그 말 아래에 얼마나 많은 무게가 눌려 있는지는 상상만으로도 가늠된다. 2002년, 그는 부친이 세운 작은 절에서 스스로 머리를 깎고 불교 수행을 시작했다. 세상의 언어로 설명되지 않는 고통을 다른 차원의 언어로 번역하려는 시도였다.
이 모든 것이 공(空)의 시간이다. 취직이 안 되고, 아버지를 잃고, 죄책감에 시달리고, 삭발을 하고 수행에 들어간다. 외부에서 보면 삶의 형상이 하나씩 지워지는 과정이다. 직업이라는 형상, 가족 구조라는 형상, 세속적 자아라는 형상. 하지만 불교적 시각에서 이 비워짐은 파멸이 아니라 전환의 조건이다. 형상이 비워질 때 비로소 다른 형상이 들어설 자리가 생긴다. 공(空)은 무(無)가 아니라 가능성의 장(場)이다.
2005년 동국대 경주캠퍼스 불교학과 입학. 그는 이상적 인간상으로 삼았던 신라의 원효를 탐구하기 시작한다. 원효(元曉).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체득하고, 파계(破戒)와 귀속(歸俗)을 통해 오히려 더 깊은 깨달음에 이른 성인. 화쟁(和諍)의 논리로 대립과 갈등을 아우른 사상가. 원효를 이상으로 삼았다는 것은 조성두가 단순한 은둔이나 수행만을 꿈꾼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수행을 실현하고 모순을 통합하는 길을 지향했음을 보여준다. 원효가 무애가(無碍歌)를 부르며 저잣거리를 누볐듯, 조성두는 결국 전시장이라는 공개된 장소에서 자신의 내면을 꺼내 보이게 된다.
3. 언어에서 문자로, 문자에서 이미지로 ― 매체의 전환과 의미
2009년 졸업 후 만해 한용운의 시를 읽으며 문학에 심취했다는 기록은 흥미롭다. 만해는 시인이자 승려이자 독립운동가였다. 그의 시에서 '님'은 연인이기도 하고, 조국이기도 하고, 불타이기도 하다. 만해는 언어를 통해 부재를 현존으로, 침묵을 발화로 전환하는 방법을 알았다. 그 언어를 통해 조성두는 2011년 문예지 『문장』에 단편동화로 등단하고, 이후 동화집, 시집, 단편소설을 차례로 발표했다.
그런데 그는 이 모든 출간 뒤에 "후회했다"고 쓴다. 동화집을 출간하고 후회했다. 시집을 출간하고 후회했다. 소설을 발표하고 후회했다. 이 반복되는 후회는 무엇인가? 출판 자체에 대한 후회인가, 아니면 그 형식이 담지 못한 무언가에 대한 후회인가? 나는 후자 쪽이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언어는 의미를 전달하지만, 동시에 의미를 고정한다. 글로 쓰인 것은 말해진 것이 되고, 말해진 것은 한정된 것이 된다. 그는 아마도 자신이 전달하고 싶은 것이 언어의 경계 바깥에 있음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2017년 이후 "글쓰기를 그만두고 글씨쓰기로 전향했다."
이 전환은 단순한 장르 이동이 아니다. '글쓰기'와 '글씨쓰기'의 차이는 무엇인가? 글쓰기는 의미를 생산한다. 문장은 의미 단위를 이어 붙이고, 그 연쇄가 이야기나 논리나 감정을 만든다. 반면 글씨쓰기, 즉 서예는 의미를 쓰면서 동시에 그 의미의 외부를 드러낸다. 같은 글자를 쓰더라도 획의 두께, 먹의 농도, 붓의 속도, 호흡의 상태가 달라지면 글씨가 달라진다. 서예는 내용(의미)과 형식(획)이 분리되지 않는 예술이다. 쓰는 사람의 몸과 마음의 상태가 글씨에 직접 각인된다.
중광 스님, 석정 스님, 이외수 작가의 수묵 작품에 깊이 빠졌다는 것도 이 맥락에서 읽힌다. 이 세 사람은 서로 다른 배경을 가졌지만 공통점이 있다. 먹과 선을 통해 언어로는 설명되지 않는 내면의 상태를 드러냈다는 것. 특히 중광 스님은 파격적인 행위와 수묵화로 선(禪)의 세계를 표현했고, 이외수는 문학에서 수묵으로 이동하며 '쓴다'는 행위 자체의 의미를 확장했다. 조성두는 이들로부터 새로운 언어의 가능성을 보았을 것이다. 의미를 담으면서 동시에 의미를 넘어서는 언어. 먹의 언어.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서예학·동양미학 석사과정 입학은 이 전환의 이론적 기반을 다지는 과정이었다. 서예 미학에 관한 이론을 탐구하며 그는 단순히 붓을 잡는 법이 아니라, 붓질이 어떤 미학적·철학적 차원을 가지는지를 체계적으로 공부했다. 2021년 석사 졸업 후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미 45세의 나이였다. 이른 시작이 아니다. 하지만 늦은 시작도 아니다. 그것은 충분한 공(空)의 시간을 거친 뒤에야 가능했던 시작이었다.
4. 변상도(變相圖) ― 형상의 변용과 개인적 수행
2022년, 그의 작업에 결정적인 전환점이 찾아온다. 채지충 작가의 불교 만화를 읽다가 영감을 받은 것이다. 채지충은 불교 경전을 현대적 만화로 재해석한 타이완 작가로, 복잡한 교리를 시각 언어로 풀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고교 시절부터 만화를 사랑했던 소년이 반세기 가까이 돌아 다시 만화와 만나는 장면은 묘한 감동을 준다. 과거의 기호가 새로운 형태로 귀환하는 것, 이것도 하나의 색즉시공이다.
그는 작업실을 '변상도창작실'이라 명명하고, 전통 변상도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변상도(變相圖)란 무엇인가? 불교 경전의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으로, 불타의 생애, 극락과 지옥의 세계, 경전의 핵심 교의를 시각화한 도상이다. 전통 변상도는 교리를 전달하기 위한 형식이었다. 일종의 교육적 시각화. 그러나 조성두의 '창작 변상도'는 다르다. 그의 화면에는 개인의 수행 경험이 스며든다. 교리의 도해가 아니라 체험의 흔적이다.
이 차이는 결정적이다. 전통 변상도가 '무엇을 전달할 것인가'를 묻는다면, 조성두의 창작 변상도는 '나는 지금 어떤 상태인가'를 묻는다. 전자가 타자를 향한 소통이라면, 후자는 자기 자신을 향한 응시다. 그리고 그 응시가 화면에 형상으로 맺힌다. 선은 통제와 흔들림이 함께 남아 있고, 번짐은 의도와 우연이 만나는 지점이다. 형상은 완결된 결과라기보다 생성 과정의 흔적에 가깝다.
2024년 4월 서울국제불교박람회에 창작 변상도 12점을 전시하고, 2025년 8월 부산불교박람회에 창작 변상도 15점과 전통 변상도 수행 작품 4점을 전시했다. 박람회라는 공간에 자신의 작업을 내놓는 것은 수행을 공개하는 것과 같다. 완성된 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진행 중인 수행의 흔적을 공유하는 것. 그의 전시는 그런 의미에서 자기 노출이자 자기 증거이다.
5. 달마도(達磨圖) ― 반복과 차이, 수행의 현재성
2026년 2월 옴니보어아트쇼에서 신작 달마도 12점을 선보였다. 달마(達磨). 선종의 초조(初祖)로 알려진 인물로, 소림사 벽 앞에서 9년간 좌선을 했다는 전설의 주인공이다. 달마도는 동아시아 불교 미술에서 오랫동안 그려져 온 도상이다. 특히 선종 문화권에서 달마는 깨달음의 결의와 고집의 상징으로 즐겨 그려졌다.
달마는 반복해서 그려지는 대상이다. 수많은 화가가 달마를 그렸고, 한 화가가 수십 번, 수백 번 달마를 그리는 경우도 흔하다. 조성두의 달마도 12점도 그 반복의 선상에 있다. 그런데 반복이 반드시 동일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같은 대상을 반복해서 그릴 때, 매번의 차이는 무엇을 드러내는가? 그것은 화가의 현재 상태다. 손의 긴장도, 호흡의 깊이, 마음의 동요나 평정. 달마의 형상을 그리면서 화가는 역설적으로 자신의 형상을 드러낸다.
전시 기획문은 이를 정확하게 짚는다. "달마의 형상은 고정된 아이콘으로 머물지 않는다. 반복 속에서 달라지는 선과 표정은 수행의 현재 상태를 반영한다. 매 작업은 동일한 대상을 다루면서도 다른 시간의 감각을 담는다." 이것이 달마도가 단순한 종교 도상을 넘어 수행의 기록이 되는 이유다. 관람자가 12점의 달마도를 순서대로 바라볼 때, 그것은 12개의 시간을, 12개의 마음 상태를 마주하는 것이다.
달마도를 그리는 행위 자체가 수행이다. 선종에서 그림 그리기는 종종 참선과 같은 맥락에 놓인다. 붓을 드는 순간부터 화면에 먹이 닿는 순간까지, 그 모든 과정에 온전한 현존을 요구받는다. 과거를 후회하거나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이 개입하면 선이 흔들린다. 지금 이 순간의 집중, 지금 이 획의 정확성. 달마도는 그 순간들의 결정체다.
그렇게 생각하면 조성두의 달마도는 그가 지나온 모든 시간의 응축이다. 막일을 하던 시절의 질긴 인내, 도서관에서 혼자 책을 읽던 고독, 부친을 잃고 삭발하던 결의, 불교학과에서 원효를 공부하던 열의, 서예학에서 획의 미학을 탐구하던 집중. 그 모든 것이 붓을 쥔 손에 기억으로 남아 있다가, 달마의 형상을 통해 지금 이 순간 화면 위에 나타난다.
6. 사랑과 지탱 ― 무엇이 이 삶을 이어왔는가
비평은 흔히 작품을 분석하지만, 작품을 만드는 삶을 지탱하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조성두의 이력을 읽으면서 자꾸 한 가지 물음이 떠오른다. 무엇이 그를 지탱했는가? 경제적 불안정, 상실, 자괴감, 후회의 반복 속에서도 그는 계속 무언가를 했다. 글을 썼다가 불태우고, 책을 읽고, 수행을 시작하고, 대학에 들어가고,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렸다. 이 끈질긴 지속의 힘은 어디서 오는가?
나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르고 싶다. 특정 대상에 대한 낭만적 사랑이 아니라, 삶 자체에 대한 사랑. 만화를 사랑하는 소년이 있었고, 책을 사랑하는 청년이 있었고, 불교 사상을 사랑하는 수행자가 있었고, 먹과 선을 사랑하는 예술가가 있다. 그 사랑의 대상은 달라졌지만, 사랑한다는 행위 자체는 끊어지지 않았다. 이 사랑이 그의 삶을 지탱해왔다.
특히 부친의 죽음 이후 찾아온 자괴감과 죄책감의 시간은 주목할 만하다. 그는 그 고통을 외면하거나 억압하지 않았다. 대신 그 고통을 향해 움직였다. 부친이 세운 절로 돌아가 삭발하고 수행을 시작한 것은 고통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고통을 통과하려는 시도였다. 고통을 사랑으로 변환하는 연금술. 불교의 수행이 그 길을 제공했다.
후회를 반복하면서도 계속 쓰고 출간했다는 것도 이 맥락에서 이해된다. 후회는 자기 비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더 잘하고 싶다는 열망의 표현이기도 하다. 만족했다면 계속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불만족이, 더 나아가야 한다는 느낌이, 그를 계속 새로운 형식을 향해 밀어붙였다. 글에서 글씨로, 글씨에서 이미지로. 그 이행의 동력에는 완전한 표현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언어로 담지 못한 것을 획으로, 획으로 담지 못한 것을 형상으로.
그렇다면 그의 사랑은 지금 어디를 향하는가? 달마의 눈을 보면 알 것 같다. 달마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눈이다. 날카롭고 형형한 눈. 그 눈은 외부를 향하지 않는다. 내면을 향한다. 조성두가 달마를 반복해서 그릴 때, 그 눈은 그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는 눈이기도 하다.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 더 정확히는 자기 자신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려는 의지. 그것이 그의 삶을 지탱해온 힘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7. 먹이라는 매질 ― 치유와 전달
먹은 탄소의 물질이다. 그을음을 아교로 굳힌 것. 동아시아의 문명이 수천 년에 걸쳐 다듬어온 재료. 먹을 물에 갈면 흑색의 액체가 된다. 그것이 붓에 묻어 종이나 비단에 닿으면 스며든다. 한번 스며든 먹은 지워지지 않는다. 서예와 수묵화가 퇴고를 허용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붓이 지나간 자리는 영원히 남는다.
이 성질이 먹을 특별한 예술 재료로 만든다. 유화는 덧칠할 수 있다. 연필은 지울 수 있다. 하지만 먹은 지워지지 않는다. 화가는 그 획을 책임져야 한다. 이것은 단순한 기술적 제약이 아니라 윤리적 요구다. 지금 이 순간에 완전히 존재해야 한다는 요구. 과거의 획을 후회하거나 미래의 획을 계획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획에 온전히 있어야 한다.
조성두에게 먹은 "존재의 상태를 드러내는 매질"이다. 전시 기획문의 이 표현은 정확하다. 먹은 내용을 담는 용기가 아니라, 상태를 드러내는 매질이다. 화가의 몸과 마음의 상태가 먹의 농담(濃淡), 획의 굵기, 번짐의 정도, 여백의 감각으로 직접 번역된다. 거짓말할 수 없다. 불안하면 선이 떨린다. 서두르면 먹이 얕아진다. 고요하면 번짐이 살아난다. 먹은 내면의 지도다.
이 먹의 언어가 어떻게 타자에게 전달되는가? 치유의 예술이 되는 메커니즘은 무엇인가? 나는 이것이 공명(共鳴)을 통해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조성두의 화면 앞에 선 관람자는 그의 삶의 이야기를 읽지 않더라도, 그 선과 번짐에서 무언가를 느낀다.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 불안정한 선을 가지고 있다.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 번지고 흐르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의 획이 우리 자신의 획과 공명할 때, 우리는 자신의 내면을 화면 위에서 마주한다.
이것이 예술의 치유 기능이다. 예술가가 직접 치유하는 것이 아니다. 예술가의 작업이 관람자의 내면을 건드리고, 그 건드림이 각자의 내면에서 무언가를 풀어놓는 것이다. 조성두가 막일을 하고, 부친을 잃고, 삭발하고, 서예를 공부하고, 달마를 그리며 쌓아온 시간이 한 장의 화면 위에 응축되어 있을 때, 그것은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살아있는 에너지가 된다. 그 에너지가 관람자에게 전달된다.
우리는 종이에 먹을 드리우듯 다시 살아간다. 한없이 써내리던 그의 먹먹한 먹처럼. 이 문장이 가슴을 치는 것은, 그것이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하나의 진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도 지워지지 않는다. 어제의 흔적이 오늘의 바탕이 되고, 오늘의 획이 내일의 형상을 예비한다. 먹이 번지듯 삶도 번진다. 그 번짐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 번짐 속에서 형상을 건져 올리는 것이 수행이고 예술이다.
8. ≪색즉시공≫ ― 전시 공간과 존재의 순환
아이테르 범일가옥(凡一家屋). 부산 동구 범일로 65번길 21. 이 공간의 이름이 품고 있는 두 개의 층위에 주목하고 싶다. 아이테르(AITHER)는 고대 그리스어로 하늘의 빛, 혹은 천상의 공기를 의미한다. 형이상학적이고 초월적인 함의를 가진 단어다. 반면 범일가옥(凡一家屋)은 범상한 하나의 집이라는 뜻이다. 평범한, 일상의, 세속의 집. 이 두 이름이 같은 공간을 가리킨다. 초월과 일상이 한 지붕 아래 있다. 형상과 공이 함께 있다.
조성두의 작업을 이 공간에서 보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진다. 비워진 가옥, 오래된 집의 구조, 일상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공간 안에서 달마의 눈이 빛나고, 변상도의 형상이 번진다. 세속의 공간이 수행의 공간이 된다. 이것도 색즉시공이다. 평범한 집(空)이 의미 있는 전시 장소(色)가 되고, 그 전시가 끝나면 다시 평범한 공간으로 돌아간다(空).
전시 기간 2026년 4월 28일부터 5월 7일까지, 10일이라는 짧은 시간. 전시는 열리고 닫힌다. 형상이 생겨났다가 사라진다. 하지만 그 10일 동안 그 공간을 통과한 사람들의 내면에 무언가가 남는다. 먹처럼. 한번 스며들면 지워지지 않는 것으로.
색즉시공 공즉시색. 이 순환을 전시라는 사건으로 살아낸다는 것. 그것이 조성두가 이 전시에서 하려는 일이다. 완성된 예술을 선보이는 것이 아니라, 형상과 비움의 순환을 함께 경험하자는 초대. 관람자는 이미지를 해석하기보다 그 안에 머물며 자신의 상태를 마주하게 된다. 이 경험은 감상의 영역을 넘어 수행의 시간으로 이어진다.
9. 늦게 피어난다는 것의 의미
조성두는 2021년 45세의 나이에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늦은 출발이다. 스무 살에 미술 대학에 들어가 서른에 첫 개인전을 여는 것이 '정상적' 예술가의 경로라면, 그는 그 경로 밖에 있었다. 막일을 하고, 삭발을 하고, 불교학을 공부하고, 서예학 석사를 마치고 나서야 작가로 나섰다.
하지만 이 늦음이 그의 작업을 더 깊게 만든다. 고통의 시간이 없었다면, 상실의 경험이 없었다면, 수행의 세월이 없었다면, 그 모든 것이 몸과 마음에 쌓이지 않았다면, 지금의 달마도는 다른 달마도였을 것이다. 기술적으로 뛰어나지만 가볍고 화려한 달마도. 조성두의 달마는 다르다. 그것은 삶의 무게를 아는 손이 그린 달마다.
거친 그의 삶이 늦게나마 인정받고 피어나는 것처럼 우리의 삶을 치유한다는 말은, 이 맥락에서 가장 정확한 표현이다. 그의 늦음이 우리에게 허락을 준다. 늦어도 된다는 허락. 돌아가도 된다는 허락. 여러 번 실패해도 된다는 허락.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든 새로운 형상을 시작할 수 있다는 허락.
한국 사회는 빠름을 숭배한다. 조기 교육, 조기 취업, 조기 성공. 늦는 것은 실패로 간주된다. 하지만 예술은, 특히 먹과 수행에 기반한 예술은, 이 빠름의 논리에 저항한다. 달마가 9년 동안 벽만 바라보았듯, 무언가가 익으려면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조성두의 45년이 그 증거다. 막일의 시간, 도서관의 시간, 절의 시간, 학교의 시간, 서예 공방의 시간 ― 그 모든 시간이 하나의 획에 담긴다.
10. 결어(結語) ― 먹먹함이 살아있음을 증명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먹먹하다는 말로. 먹먹한 가슴이 우리를 내리칠 때면 다시 삶의 기운이 들어선다. 이 역설적 진술은 옳다. 먹먹함은 마비가 아니다. 그것은 감각이다. 무언가를 느끼고 있다는 증거. 삶에 반응하고 있다는 증거. 무감각한 사람은 먹먹하지 않다.
조성두의 그림 앞에서 우리가 먹먹해진다면, 그것은 우리가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다. 그의 선이 우리의 내면을 건드린다는 것은, 우리 안에 건드려질 무언가가 남아있다는 것이다. 상처, 슬픔, 그리움, 아직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갈망,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려는 의지. 이런 것들이 화면 앞에서 잠시 수면 위로 떠오른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아까와는 조금 다른 상태로. 무언가가 풀렸거나, 무언가가 다시 불붙었거나, 무언가가 허용되었거나. 이것이 예술의 기능이다. 삶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방식을 잠시 달리 보게 하는 것.
우리는 종이에 먹을 드리우듯 다시 살아간다. 먹이 종이에 스며드는 것처럼, 우리도 매일의 시간 속에 스며들며 살아간다. 어떤 날은 선이 떨리고, 어떤 날은 번짐이 예상치 못한 형상을 만든다. 완벽한 획은 없고, 완벽한 삶도 없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이 모여 하나의 화폭이 되고, 하나의 생애가 된다.
조성두는 지금도 작업실에서 붓을 들고 있을 것이다. 달마의 눈을 그리면서 자신의 눈으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있을 것이다. 그 고요하고도 치열한 순간이, 화면이 되고, 전시가 되고, 우리에게 닿는다.
한없이 써내리던 그의 먹먹한 먹처럼. 형상과 공 사이에서, 색과 공 사이에서, 그는 오늘도 획을 긋는다. 그 획이 우리에게 살아가는 힘을 준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끝―







예술협회 아이테르 [ AITHER ] 부산전시관
아이테르 AITHER
부산 갤러리/전시관
- 문화예술기획업
주소: (48737)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로 65번길 21
주차: 진시장 공영주차장
서비스 운영시간: 월-토 10:00~18:00
연락처: 051-977-5272 | sck02145@naver.com | https://aither.kr/
팩스: 0504-322-2379
인스타그램: @aither.kr
유튜브: https://www.youtube.com/@AITHERART
[시설 안내]
4층, 전시 공간
5층, 라운지
6층, 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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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두 기획전
26.4.28.~ 26.5.7. 10:00 ~18:00(KST)
아이테르 범일가옥, 부산 동구 범일로 65번길 21
AITHER (Beomil House, 凡一家屋)
먹은 깊다.
작가에게 먹은 존재의 상태를 드러내는 매질에 가깝다. 그의 삶을 따라가면 하나의 구절에 자연스럽게 도달한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형상이 공으로, 공이 다시 형상으로 이어지며 흐른다.
그는 글을 쓰던 사람에서 글씨를 쓰는 사람으로 이동했고, 다시 이미지를 그리는 사람으로 나아간다. 그어낸 선과 다시 번지는 그의 궤적을 잠시 이 공간에 잡아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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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과 생애 사이에서
― 조성두의 예술 세계와 ≪색즉시공≫
글 : 공명성 예술감독
1. 서언(序言) ― 먹먹함이라는 언어
'먹먹하다'는 말이 있다.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하고, 말문이 닫히고, 그럼에도 무언가가 안에서 울렁이는 상태. 한국어에서 이 형용사는 묘하게도 먹(墨)이라는 글자를 두 번 품고 있다. 먹먹함. 먹이 먹을 포개는 말. 조성두의 작업 앞에 서면 그 말이 절로 떠오른다. 그의 붓질은 설명하지 않는다. 해명하지도 않는다. 그저 먹먹하게 남는다. 그리고 그 먹먹함이 우리를 건드린다.
≪색즉시공(色卽是空)≫. 2026년 4월 28일부터 5월 7일까지, 부산 동구 범일로의 아이테르 범일가옥(凡一家屋)에서 열리는 조성두의 기획전 이름이다. 제목은 『반야심경(般若心經)』의 핵심 구절에서 가져왔다.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형상은 공이요 공은 형상이다. 불교 철학의 정수를 압축한 이 여덟 글자는 단순한 개념이 아니라 하나의 운동이다. 형상이 생겨나고 사라지고, 사라짐이 다시 형상을 품는 순환. 조성두의 삶과 예술은 그 순환의 살아있는 예증이다.
이 글은 그의 작업을 단순히 감상하는 비평이 아니다. 한 인간이 어떻게 삶의 파탄 속에서 예술을 건져 올렸는지, 어떻게 먹이라는 매질(媒質)을 통해 자신의 실존을 드러내는지, 그리고 그 드러냄이 어떻게 타자의 치유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따라가려는 시도다. 조성두라는 사람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한 편의 비경(悲境)과 갱생(更生)의 서사이며, 그 서사가 화폭 위에서 선과 번짐으로 다시 태어난다.
2. 부서진 형상들 ― 공(空)의 시간
조성두는 1976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별나고 짓궂은 아이였다고 스스로 회고한다. 고교 시절에는 만화책에 빠졌고, 고3 때부터는 노트에 펜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돌려 보며 재미있다고 하면 쾌감을 느꼈다는 그 장면은, 이미 이 사람이 어려서부터 무언가를 타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충동을 가지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표현하고, 공유하고, 반향을 확인하려는 욕구. 예술가의 근원적 동력이 이미 소년의 공책 속에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원고들은 군 입대 직전 모두 불태워졌다. 창작의 첫 싹이 스스로의 손에 의해 소각된 것이다. 이 장면은 이후 그의 삶에서 반복될 하나의 패턴, 즉 형성과 해체의 반복을 예고하는 듯하다.
1995년 해병대 입대, 1997년 제대. 그리고 두 달 뒤 외환위기(IMF)가 터졌다. 나라 전체의 형상이 무너지던 그 시절, 조성두도 제대로 된 직장 없이 막일을 전전했다. 경제적 불안정, 사회적 소외, 미래의 불투명함. 이 시기를 전시 기획문은 "공의 상태에 가깝다"고 표현한다. 의미가 비워지고 방향이 사라진 자리. 하지만 바로 이 자리에서 그는 시립도서관을 드나들며 인문학의 세계에 스스로를 내던졌다. 특히 동양 사상과 불교에 대한 흥미가 증폭되었다는 사실은, 삶의 외부적 질서가 무너질 때 인간이 내면의 질서를 찾아 나서는 본능적 몸부림처럼 읽힌다.
2001년의 부친상은 또 다른 형상의 붕괴였다. 불효했던 지난 세월에 대한 자괴감과 죄책감. 이미 죽은 자에게 사과할 수 없다는 것, 그 상실이 죄의식과 뒤섞이는 것은 유난히 잔인한 슬픔이다. 조성두는 이 시기 "심적 변화"를 겪었다고 기록하지만, 그 말 아래에 얼마나 많은 무게가 눌려 있는지는 상상만으로도 가늠된다. 2002년, 그는 부친이 세운 작은 절에서 스스로 머리를 깎고 불교 수행을 시작했다. 세상의 언어로 설명되지 않는 고통을 다른 차원의 언어로 번역하려는 시도였다.
이 모든 것이 공(空)의 시간이다. 취직이 안 되고, 아버지를 잃고, 죄책감에 시달리고, 삭발을 하고 수행에 들어간다. 외부에서 보면 삶의 형상이 하나씩 지워지는 과정이다. 직업이라는 형상, 가족 구조라는 형상, 세속적 자아라는 형상. 하지만 불교적 시각에서 이 비워짐은 파멸이 아니라 전환의 조건이다. 형상이 비워질 때 비로소 다른 형상이 들어설 자리가 생긴다. 공(空)은 무(無)가 아니라 가능성의 장(場)이다.
2005년 동국대 경주캠퍼스 불교학과 입학. 그는 이상적 인간상으로 삼았던 신라의 원효를 탐구하기 시작한다. 원효(元曉).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체득하고, 파계(破戒)와 귀속(歸俗)을 통해 오히려 더 깊은 깨달음에 이른 성인. 화쟁(和諍)의 논리로 대립과 갈등을 아우른 사상가. 원효를 이상으로 삼았다는 것은 조성두가 단순한 은둔이나 수행만을 꿈꾼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수행을 실현하고 모순을 통합하는 길을 지향했음을 보여준다. 원효가 무애가(無碍歌)를 부르며 저잣거리를 누볐듯, 조성두는 결국 전시장이라는 공개된 장소에서 자신의 내면을 꺼내 보이게 된다.
3. 언어에서 문자로, 문자에서 이미지로 ― 매체의 전환과 의미
2009년 졸업 후 만해 한용운의 시를 읽으며 문학에 심취했다는 기록은 흥미롭다. 만해는 시인이자 승려이자 독립운동가였다. 그의 시에서 '님'은 연인이기도 하고, 조국이기도 하고, 불타이기도 하다. 만해는 언어를 통해 부재를 현존으로, 침묵을 발화로 전환하는 방법을 알았다. 그 언어를 통해 조성두는 2011년 문예지 『문장』에 단편동화로 등단하고, 이후 동화집, 시집, 단편소설을 차례로 발표했다.
그런데 그는 이 모든 출간 뒤에 "후회했다"고 쓴다. 동화집을 출간하고 후회했다. 시집을 출간하고 후회했다. 소설을 발표하고 후회했다. 이 반복되는 후회는 무엇인가? 출판 자체에 대한 후회인가, 아니면 그 형식이 담지 못한 무언가에 대한 후회인가? 나는 후자 쪽이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언어는 의미를 전달하지만, 동시에 의미를 고정한다. 글로 쓰인 것은 말해진 것이 되고, 말해진 것은 한정된 것이 된다. 그는 아마도 자신이 전달하고 싶은 것이 언어의 경계 바깥에 있음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2017년 이후 "글쓰기를 그만두고 글씨쓰기로 전향했다."
이 전환은 단순한 장르 이동이 아니다. '글쓰기'와 '글씨쓰기'의 차이는 무엇인가? 글쓰기는 의미를 생산한다. 문장은 의미 단위를 이어 붙이고, 그 연쇄가 이야기나 논리나 감정을 만든다. 반면 글씨쓰기, 즉 서예는 의미를 쓰면서 동시에 그 의미의 외부를 드러낸다. 같은 글자를 쓰더라도 획의 두께, 먹의 농도, 붓의 속도, 호흡의 상태가 달라지면 글씨가 달라진다. 서예는 내용(의미)과 형식(획)이 분리되지 않는 예술이다. 쓰는 사람의 몸과 마음의 상태가 글씨에 직접 각인된다.
중광 스님, 석정 스님, 이외수 작가의 수묵 작품에 깊이 빠졌다는 것도 이 맥락에서 읽힌다. 이 세 사람은 서로 다른 배경을 가졌지만 공통점이 있다. 먹과 선을 통해 언어로는 설명되지 않는 내면의 상태를 드러냈다는 것. 특히 중광 스님은 파격적인 행위와 수묵화로 선(禪)의 세계를 표현했고, 이외수는 문학에서 수묵으로 이동하며 '쓴다'는 행위 자체의 의미를 확장했다. 조성두는 이들로부터 새로운 언어의 가능성을 보았을 것이다. 의미를 담으면서 동시에 의미를 넘어서는 언어. 먹의 언어.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서예학·동양미학 석사과정 입학은 이 전환의 이론적 기반을 다지는 과정이었다. 서예 미학에 관한 이론을 탐구하며 그는 단순히 붓을 잡는 법이 아니라, 붓질이 어떤 미학적·철학적 차원을 가지는지를 체계적으로 공부했다. 2021년 석사 졸업 후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미 45세의 나이였다. 이른 시작이 아니다. 하지만 늦은 시작도 아니다. 그것은 충분한 공(空)의 시간을 거친 뒤에야 가능했던 시작이었다.
4. 변상도(變相圖) ― 형상의 변용과 개인적 수행
2022년, 그의 작업에 결정적인 전환점이 찾아온다. 채지충 작가의 불교 만화를 읽다가 영감을 받은 것이다. 채지충은 불교 경전을 현대적 만화로 재해석한 타이완 작가로, 복잡한 교리를 시각 언어로 풀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고교 시절부터 만화를 사랑했던 소년이 반세기 가까이 돌아 다시 만화와 만나는 장면은 묘한 감동을 준다. 과거의 기호가 새로운 형태로 귀환하는 것, 이것도 하나의 색즉시공이다.
그는 작업실을 '변상도창작실'이라 명명하고, 전통 변상도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변상도(變相圖)란 무엇인가? 불교 경전의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으로, 불타의 생애, 극락과 지옥의 세계, 경전의 핵심 교의를 시각화한 도상이다. 전통 변상도는 교리를 전달하기 위한 형식이었다. 일종의 교육적 시각화. 그러나 조성두의 '창작 변상도'는 다르다. 그의 화면에는 개인의 수행 경험이 스며든다. 교리의 도해가 아니라 체험의 흔적이다.
이 차이는 결정적이다. 전통 변상도가 '무엇을 전달할 것인가'를 묻는다면, 조성두의 창작 변상도는 '나는 지금 어떤 상태인가'를 묻는다. 전자가 타자를 향한 소통이라면, 후자는 자기 자신을 향한 응시다. 그리고 그 응시가 화면에 형상으로 맺힌다. 선은 통제와 흔들림이 함께 남아 있고, 번짐은 의도와 우연이 만나는 지점이다. 형상은 완결된 결과라기보다 생성 과정의 흔적에 가깝다.
2024년 4월 서울국제불교박람회에 창작 변상도 12점을 전시하고, 2025년 8월 부산불교박람회에 창작 변상도 15점과 전통 변상도 수행 작품 4점을 전시했다. 박람회라는 공간에 자신의 작업을 내놓는 것은 수행을 공개하는 것과 같다. 완성된 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진행 중인 수행의 흔적을 공유하는 것. 그의 전시는 그런 의미에서 자기 노출이자 자기 증거이다.
5. 달마도(達磨圖) ― 반복과 차이, 수행의 현재성
2026년 2월 옴니보어아트쇼에서 신작 달마도 12점을 선보였다. 달마(達磨). 선종의 초조(初祖)로 알려진 인물로, 소림사 벽 앞에서 9년간 좌선을 했다는 전설의 주인공이다. 달마도는 동아시아 불교 미술에서 오랫동안 그려져 온 도상이다. 특히 선종 문화권에서 달마는 깨달음의 결의와 고집의 상징으로 즐겨 그려졌다.
달마는 반복해서 그려지는 대상이다. 수많은 화가가 달마를 그렸고, 한 화가가 수십 번, 수백 번 달마를 그리는 경우도 흔하다. 조성두의 달마도 12점도 그 반복의 선상에 있다. 그런데 반복이 반드시 동일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같은 대상을 반복해서 그릴 때, 매번의 차이는 무엇을 드러내는가? 그것은 화가의 현재 상태다. 손의 긴장도, 호흡의 깊이, 마음의 동요나 평정. 달마의 형상을 그리면서 화가는 역설적으로 자신의 형상을 드러낸다.
전시 기획문은 이를 정확하게 짚는다. "달마의 형상은 고정된 아이콘으로 머물지 않는다. 반복 속에서 달라지는 선과 표정은 수행의 현재 상태를 반영한다. 매 작업은 동일한 대상을 다루면서도 다른 시간의 감각을 담는다." 이것이 달마도가 단순한 종교 도상을 넘어 수행의 기록이 되는 이유다. 관람자가 12점의 달마도를 순서대로 바라볼 때, 그것은 12개의 시간을, 12개의 마음 상태를 마주하는 것이다.
달마도를 그리는 행위 자체가 수행이다. 선종에서 그림 그리기는 종종 참선과 같은 맥락에 놓인다. 붓을 드는 순간부터 화면에 먹이 닿는 순간까지, 그 모든 과정에 온전한 현존을 요구받는다. 과거를 후회하거나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이 개입하면 선이 흔들린다. 지금 이 순간의 집중, 지금 이 획의 정확성. 달마도는 그 순간들의 결정체다.
그렇게 생각하면 조성두의 달마도는 그가 지나온 모든 시간의 응축이다. 막일을 하던 시절의 질긴 인내, 도서관에서 혼자 책을 읽던 고독, 부친을 잃고 삭발하던 결의, 불교학과에서 원효를 공부하던 열의, 서예학에서 획의 미학을 탐구하던 집중. 그 모든 것이 붓을 쥔 손에 기억으로 남아 있다가, 달마의 형상을 통해 지금 이 순간 화면 위에 나타난다.
6. 사랑과 지탱 ― 무엇이 이 삶을 이어왔는가
비평은 흔히 작품을 분석하지만, 작품을 만드는 삶을 지탱하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조성두의 이력을 읽으면서 자꾸 한 가지 물음이 떠오른다. 무엇이 그를 지탱했는가? 경제적 불안정, 상실, 자괴감, 후회의 반복 속에서도 그는 계속 무언가를 했다. 글을 썼다가 불태우고, 책을 읽고, 수행을 시작하고, 대학에 들어가고,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렸다. 이 끈질긴 지속의 힘은 어디서 오는가?
나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르고 싶다. 특정 대상에 대한 낭만적 사랑이 아니라, 삶 자체에 대한 사랑. 만화를 사랑하는 소년이 있었고, 책을 사랑하는 청년이 있었고, 불교 사상을 사랑하는 수행자가 있었고, 먹과 선을 사랑하는 예술가가 있다. 그 사랑의 대상은 달라졌지만, 사랑한다는 행위 자체는 끊어지지 않았다. 이 사랑이 그의 삶을 지탱해왔다.
특히 부친의 죽음 이후 찾아온 자괴감과 죄책감의 시간은 주목할 만하다. 그는 그 고통을 외면하거나 억압하지 않았다. 대신 그 고통을 향해 움직였다. 부친이 세운 절로 돌아가 삭발하고 수행을 시작한 것은 고통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고통을 통과하려는 시도였다. 고통을 사랑으로 변환하는 연금술. 불교의 수행이 그 길을 제공했다.
후회를 반복하면서도 계속 쓰고 출간했다는 것도 이 맥락에서 이해된다. 후회는 자기 비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더 잘하고 싶다는 열망의 표현이기도 하다. 만족했다면 계속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불만족이, 더 나아가야 한다는 느낌이, 그를 계속 새로운 형식을 향해 밀어붙였다. 글에서 글씨로, 글씨에서 이미지로. 그 이행의 동력에는 완전한 표현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언어로 담지 못한 것을 획으로, 획으로 담지 못한 것을 형상으로.
그렇다면 그의 사랑은 지금 어디를 향하는가? 달마의 눈을 보면 알 것 같다. 달마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눈이다. 날카롭고 형형한 눈. 그 눈은 외부를 향하지 않는다. 내면을 향한다. 조성두가 달마를 반복해서 그릴 때, 그 눈은 그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는 눈이기도 하다.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 더 정확히는 자기 자신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려는 의지. 그것이 그의 삶을 지탱해온 힘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7. 먹이라는 매질 ― 치유와 전달
먹은 탄소의 물질이다. 그을음을 아교로 굳힌 것. 동아시아의 문명이 수천 년에 걸쳐 다듬어온 재료. 먹을 물에 갈면 흑색의 액체가 된다. 그것이 붓에 묻어 종이나 비단에 닿으면 스며든다. 한번 스며든 먹은 지워지지 않는다. 서예와 수묵화가 퇴고를 허용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붓이 지나간 자리는 영원히 남는다.
이 성질이 먹을 특별한 예술 재료로 만든다. 유화는 덧칠할 수 있다. 연필은 지울 수 있다. 하지만 먹은 지워지지 않는다. 화가는 그 획을 책임져야 한다. 이것은 단순한 기술적 제약이 아니라 윤리적 요구다. 지금 이 순간에 완전히 존재해야 한다는 요구. 과거의 획을 후회하거나 미래의 획을 계획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획에 온전히 있어야 한다.
조성두에게 먹은 "존재의 상태를 드러내는 매질"이다. 전시 기획문의 이 표현은 정확하다. 먹은 내용을 담는 용기가 아니라, 상태를 드러내는 매질이다. 화가의 몸과 마음의 상태가 먹의 농담(濃淡), 획의 굵기, 번짐의 정도, 여백의 감각으로 직접 번역된다. 거짓말할 수 없다. 불안하면 선이 떨린다. 서두르면 먹이 얕아진다. 고요하면 번짐이 살아난다. 먹은 내면의 지도다.
이 먹의 언어가 어떻게 타자에게 전달되는가? 치유의 예술이 되는 메커니즘은 무엇인가? 나는 이것이 공명(共鳴)을 통해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조성두의 화면 앞에 선 관람자는 그의 삶의 이야기를 읽지 않더라도, 그 선과 번짐에서 무언가를 느낀다.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 불안정한 선을 가지고 있다.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 번지고 흐르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의 획이 우리 자신의 획과 공명할 때, 우리는 자신의 내면을 화면 위에서 마주한다.
이것이 예술의 치유 기능이다. 예술가가 직접 치유하는 것이 아니다. 예술가의 작업이 관람자의 내면을 건드리고, 그 건드림이 각자의 내면에서 무언가를 풀어놓는 것이다. 조성두가 막일을 하고, 부친을 잃고, 삭발하고, 서예를 공부하고, 달마를 그리며 쌓아온 시간이 한 장의 화면 위에 응축되어 있을 때, 그것은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살아있는 에너지가 된다. 그 에너지가 관람자에게 전달된다.
우리는 종이에 먹을 드리우듯 다시 살아간다. 한없이 써내리던 그의 먹먹한 먹처럼. 이 문장이 가슴을 치는 것은, 그것이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하나의 진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도 지워지지 않는다. 어제의 흔적이 오늘의 바탕이 되고, 오늘의 획이 내일의 형상을 예비한다. 먹이 번지듯 삶도 번진다. 그 번짐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 번짐 속에서 형상을 건져 올리는 것이 수행이고 예술이다.
8. ≪색즉시공≫ ― 전시 공간과 존재의 순환
아이테르 범일가옥(凡一家屋). 부산 동구 범일로 65번길 21. 이 공간의 이름이 품고 있는 두 개의 층위에 주목하고 싶다. 아이테르(AITHER)는 고대 그리스어로 하늘의 빛, 혹은 천상의 공기를 의미한다. 형이상학적이고 초월적인 함의를 가진 단어다. 반면 범일가옥(凡一家屋)은 범상한 하나의 집이라는 뜻이다. 평범한, 일상의, 세속의 집. 이 두 이름이 같은 공간을 가리킨다. 초월과 일상이 한 지붕 아래 있다. 형상과 공이 함께 있다.
조성두의 작업을 이 공간에서 보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진다. 비워진 가옥, 오래된 집의 구조, 일상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공간 안에서 달마의 눈이 빛나고, 변상도의 형상이 번진다. 세속의 공간이 수행의 공간이 된다. 이것도 색즉시공이다. 평범한 집(空)이 의미 있는 전시 장소(色)가 되고, 그 전시가 끝나면 다시 평범한 공간으로 돌아간다(空).
전시 기간 2026년 4월 28일부터 5월 7일까지, 10일이라는 짧은 시간. 전시는 열리고 닫힌다. 형상이 생겨났다가 사라진다. 하지만 그 10일 동안 그 공간을 통과한 사람들의 내면에 무언가가 남는다. 먹처럼. 한번 스며들면 지워지지 않는 것으로.
색즉시공 공즉시색. 이 순환을 전시라는 사건으로 살아낸다는 것. 그것이 조성두가 이 전시에서 하려는 일이다. 완성된 예술을 선보이는 것이 아니라, 형상과 비움의 순환을 함께 경험하자는 초대. 관람자는 이미지를 해석하기보다 그 안에 머물며 자신의 상태를 마주하게 된다. 이 경험은 감상의 영역을 넘어 수행의 시간으로 이어진다.
9. 늦게 피어난다는 것의 의미
조성두는 2021년 45세의 나이에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늦은 출발이다. 스무 살에 미술 대학에 들어가 서른에 첫 개인전을 여는 것이 '정상적' 예술가의 경로라면, 그는 그 경로 밖에 있었다. 막일을 하고, 삭발을 하고, 불교학을 공부하고, 서예학 석사를 마치고 나서야 작가로 나섰다.
하지만 이 늦음이 그의 작업을 더 깊게 만든다. 고통의 시간이 없었다면, 상실의 경험이 없었다면, 수행의 세월이 없었다면, 그 모든 것이 몸과 마음에 쌓이지 않았다면, 지금의 달마도는 다른 달마도였을 것이다. 기술적으로 뛰어나지만 가볍고 화려한 달마도. 조성두의 달마는 다르다. 그것은 삶의 무게를 아는 손이 그린 달마다.
거친 그의 삶이 늦게나마 인정받고 피어나는 것처럼 우리의 삶을 치유한다는 말은, 이 맥락에서 가장 정확한 표현이다. 그의 늦음이 우리에게 허락을 준다. 늦어도 된다는 허락. 돌아가도 된다는 허락. 여러 번 실패해도 된다는 허락.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든 새로운 형상을 시작할 수 있다는 허락.
한국 사회는 빠름을 숭배한다. 조기 교육, 조기 취업, 조기 성공. 늦는 것은 실패로 간주된다. 하지만 예술은, 특히 먹과 수행에 기반한 예술은, 이 빠름의 논리에 저항한다. 달마가 9년 동안 벽만 바라보았듯, 무언가가 익으려면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조성두의 45년이 그 증거다. 막일의 시간, 도서관의 시간, 절의 시간, 학교의 시간, 서예 공방의 시간 ― 그 모든 시간이 하나의 획에 담긴다.
10. 결어(結語) ― 먹먹함이 살아있음을 증명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먹먹하다는 말로. 먹먹한 가슴이 우리를 내리칠 때면 다시 삶의 기운이 들어선다. 이 역설적 진술은 옳다. 먹먹함은 마비가 아니다. 그것은 감각이다. 무언가를 느끼고 있다는 증거. 삶에 반응하고 있다는 증거. 무감각한 사람은 먹먹하지 않다.
조성두의 그림 앞에서 우리가 먹먹해진다면, 그것은 우리가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다. 그의 선이 우리의 내면을 건드린다는 것은, 우리 안에 건드려질 무언가가 남아있다는 것이다. 상처, 슬픔, 그리움, 아직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갈망,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려는 의지. 이런 것들이 화면 앞에서 잠시 수면 위로 떠오른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아까와는 조금 다른 상태로. 무언가가 풀렸거나, 무언가가 다시 불붙었거나, 무언가가 허용되었거나. 이것이 예술의 기능이다. 삶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방식을 잠시 달리 보게 하는 것.
우리는 종이에 먹을 드리우듯 다시 살아간다. 먹이 종이에 스며드는 것처럼, 우리도 매일의 시간 속에 스며들며 살아간다. 어떤 날은 선이 떨리고, 어떤 날은 번짐이 예상치 못한 형상을 만든다. 완벽한 획은 없고, 완벽한 삶도 없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이 모여 하나의 화폭이 되고, 하나의 생애가 된다.
조성두는 지금도 작업실에서 붓을 들고 있을 것이다. 달마의 눈을 그리면서 자신의 눈으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있을 것이다. 그 고요하고도 치열한 순간이, 화면이 되고, 전시가 되고, 우리에게 닿는다.
한없이 써내리던 그의 먹먹한 먹처럼. 형상과 공 사이에서, 색과 공 사이에서, 그는 오늘도 획을 긋는다. 그 획이 우리에게 살아가는 힘을 준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끝―
예술협회 아이테르 [ AITHER ] 부산전시관
아이테르 AITHER
부산 갤러리/전시관
- 문화예술기획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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